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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 아가리

decentralization : 2018. 3. 6. 10:30


삼천갑자 동방삭일지라도,

삼천갑자 이듬해는 명을 더 잇질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삼천갑자 위에 사천갑자가 있었을 터이며, 오천갑자라 없을 텐가?

이런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삼천갑자 이후는 짐작되지 않는다.

 

여근 안에 남근을 담금으로써, 년년세세 장생을 이어갈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자손을 통해서이지 결코 생식 단위 개체의 사정은 아니다.

 

도교는 바로 이 단위 개체 단위에서 혁명을 일으키고자 별 짓을 다한다만,

자고로 아무리 찾아보아도 삼천갑자 이상을 넘긴 이를 찾기 어렵다.

 

불교는 무여열반이란 실로 애매모한 말로써 장생불사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들은 모두 생사를 아직 여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생과 사를 의식하고 있는 한에서 그렇다.

 

나는 장생이 문제 상황이 아니라,

다만 오늘을 분노하고 슬퍼할 따름이다.

때론 즐겁지 않을 때가 왜 아니 없으련만,

인생은 고해이며, 법화경에 등장하는 화택 속에서 구슬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나는 오늘을 산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내일도 기약하지 않는다.

 

이런 나날을 그린다.

그것만이 유일한 축복이 아니런가?

까짓 장생이라?

절대권력 진시황은 기실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머리가 비상한 천재이지만,

일설에 의하면 조선 사람이라는 서복에게 농락당하고 말았다.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일본에 들어가 야만족인 그들을 정복하고 왕이 되었으니,
 그가 곧 신무천황(神武天皇)이라 한다.)

불로초를 구하려 들다니,

도대체가 장생불사 앞에서는 천재도 바보가 되고 만다.

 

헌즉, 채굴인은 그저 채굴만 열심히 할 뿐,

트레이더는 트레이더만 집중할 뿐,

나 같은 농부는 그저 나무나 잘 돌볼 뿐.

장생을 꾀한다든가,

다른 것을 넘볼 사치의 까닭, 틈이 없다.

 

寧以男根置在猛害毒蛇口中。不安女根中。

 

차라리 독사 아가리에 남근을 넣지,

계집 음물 한가운데 넣으면 영 편치 않게 된다.

 

寧以男根置在猛害毒蛇口中

 

이를 나무 목판에 새겨,

마음의 목에 걸고 사는 이도 세상에 많다.

욕망의 당체들.

 

중들의 동안거 중,

별 일이 다 일어난다.

어떤 놈은 목에다 묵언수행중이란 패찰을 걸고 사는 놈도 있고,

해제일엔 부자지까지 칼로 끊어내었다는 녀석도 나타난다.

어리석은 중생이로고.

 

백골관(白骨觀)

 

계집 생각날 때마다,

구멍마다 더러운 것이 나오는 것을 상상한다.

입에선 더러운 침을 흘리고,

음근에선 지린내 나는 오줌이 나오며,

뒷구멍에선 똥이 나온다.

아무리 거죽이 반드르르해도,

알고 보면 거죽 안에는 가득 더러운 똥이 들어 있다.

이것 똥자루에 불과하다.

 

허나, 백골관을 수행하고 있는 단계라면,

이자는 아직 풋중에 불과하다.

 

낮에,

그럴 듯이 차려입고,

백일기도를 하여도,

밤에는,

전반측 후반측,

이부자리 흥건하니 적시며,

못내 안희정 그를 부러워한다.

 

낮엔,

한 때, 폐족이라 근신하는 척도 하고,

어제는 통섭을 이야기하며,

고상한 한 지사로 살아가지만, 

밤엔,

멀쩡한 처자를 농락하며,

열락지경을 노닌다.

 

차라리, 희정이가 낫지,

땡중은 분소의(糞掃衣) 입고, 

폼만 잡을 뿐,

백년하청,

해탈의 길은 멀다.

 

차라리, 

들키기 전까진, 희정이가 

되지도 않을 성불(成佛)하기를 노리는,

땡중보다 백곱절은 낫다.

 

그대,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천 원짜리 막걸리 하나 사, 

검정 비닐봉투에 넣고 흔들며 집으로 돌아들 가라.

개다리소반에 김치쪽 올려놓고,

프라이팬에 빈대떡이나 부쳐 먹을 일이다.

혹여, 

곰보각시라도 곁에 있다면, 

하늘 복인줄 알라.

 

설혹,

반반한 계집이 곁에 있다한들,

마음은 이미 천리 밖에 달아나 있으며,

없다한들 네 곁에 올 일은 없다.

저들은 서른커녕 쉰이 넘어도 독신녀로 살기를 고집하니,

네 차례는 꿈엔들 기약하지 말 일이다.

 

차라리,

곁을 지켜주는 곰보 각시가,

천년 복인줄 알라.

 

문득 고개 들어 곁을 보면,

面滿如初日 目淨若青蓮

얼굴은 첫 새벽처럼 같이 환하고,

눈은 푸른 연꽃처럼 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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