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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난(法難)과 암호화폐

decentralization : 2018. 3. 20. 16:56


법난(法難)과 암호화폐


법난은 무엇인가?

이를 알자면 삼무일종의 법난(三武一宗-法難)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이 첩경이다.

北魏太武帝、北周武帝、唐武宗、後周世宗

중국 고대사 가운데, 이 네 황제가 특히 강한 폐불(廢佛) 정책을 폈다.

그래 이름을 따서 삼무일종의 법난이라 칭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불교를 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 곧잘 대척점에 서있던 도교는 반대로 진흥시키며 대립시켰다는 점이,

이 법난의 전개 구조를 살피는 흥미로운 요소가 되고 있다.

물론 북주 무제는 불교는 물론 도교까지 탄압했다 점이 이들과는 다르긴 하다.


나는 문득 법난의 전개 과정이,

암호화폐를 말살하려는 세력과 반대로 지키려는 세력 간의,

갈등 관계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여 좀 짚어보려고 한다.


4개의 법난은 그 일어난 동기가 약간 씩은 다르지만,

종합적으로 보자면, 상대 종교인 유교 특히 도교와의 대립,

그리고 정치, 경제적인 요인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불교 자체적인 문제 요소도 간과할 수는 없다.


불교는 중국에 전해진 이래,

특유의 중국문화 친화력 덕분에,

민중은 물론, 통치 세력의 외호까지 받아가며 크게 성장하게 된다.

급기야, 정치, 사상, 문화적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통 문화와 갈등도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기층 민중과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 통치 권력내지는 도교란 종교 권력과의 마찰 때문인 요인이 크다.


국가통화제도에 대한 위협, 탈세, 돈세탁 발생 가능성에 대해

현대 국가 권력은 암호화폐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거죽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인정하고 발전시키겠다고 하지만,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암호화폐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탈중앙화 철학과 이념을 기술적으로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중대한 임무를 스스로에게 즐거이 부과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정치, 경제 권력과의 치열한 갈등, 긴장 관계를 극복하여야 하는

실로 엄청난 위협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기대하거니와,

법난의 전개 과정을 잘 살펴보면,

암호화폐의 향후 진로 상 의미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


4개의 법난 모두를 살필 겨를은 없고,

이 중 앞의 두 가지 경우만 알아보도록 하며,

암호화폐와 대비를 통해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그럼 이제 북위의 태무제에 의한 법난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동진16국 시대엔 이미 불교가 정치적 지배 이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조(南朝) 시대엔 정교분리가 철저하게 이뤄져,

사문(沙門)은 황제에게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되었으니,

이는 기왕의 유교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또한 불교에 귀의한 황제도 이를 인정하고 따랐다.


이는 동진(東晉)의 혜원(慧遠)이 찬한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에,

명확히 그 이치를 밝히고 있다.

당시 동진은 점차 세력이 쇠미해지고 있었다.

이 때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왕권과 불교가 충돌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의 실권자인 환현(桓玄)은,

승려는 왕에게 경배의 예를 올려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승려 혜원은 이를 반대하였다.

이제, 사문불경왕자론에서 그가 말한 중심 글귀를 끌어내어본다.


出家則是方外之賓。

(弘明集卷第五-沙門不敬王者論)


출가자는 방외의 손님이라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한마디로 outsider란 말이다.


是故內乖天屬之重而不違其孝。外闕奉主之恭而不失其敬。
(弘明集卷第五-沙門不敬王者論)


그런즉, 안으로 혈육의 무거움을 떠났다한들 결코 불효가 아니며,

밖으로 황제를 받들지 않는다하여 공경함을 잃었다 할 수 없다.


그러면서 논을 내었으니, 이게 그 유명한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이다.

그러자, 환현은 그 명령을 취소하였다.


혜원의 주장은 한마디로 승려는 탈중앙화 철학을 신봉하는 무리란 뜻이다.

그러니, 세속적 잣대로 우리를 함부로 구속하지 말라는 천명(闡明)이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같은 이는 폭망하는 내기해도 좋다며 호기롭게 망언을 일삼는 한편,

암호화폐 투자용 은행 계좌 개설을 독려하겠다는 허언을 늘어놓는 이중 플레이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환현은 비록 한때 기존 질서에 순응하라 명령을 내렸지만,

혜원이 절규한 진실 앞에 이내 경복하고 그 명령을 철회하였다.


지금 최흥식은 어느 골짜기로 숨어들어있기에,

그가 뱉은 말은 아직도 불쾌하니 끈끈한데,

인적은 보이질 않는구나.


이 땅에 혜원이 없는 것은 암호화폐 진영의 불운이라 하자,

환현처럼 한 때의 잘못을 깨닫고 바른 길로 회귀하는 관리가 없는 것은 명운이라 감수하자,

하지만, 거래소를 무작정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관리 무리가 아직도 적지 아니 남아 있는 것은,

참으로 탈중앙화 이념과 철학계의 불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북조(北朝)의 사정은 달랐다. 

당시 북조의 지도급 승려인 법과(法果)는 태조(太祖)의 은혜를 받았다 하기로서니,

혜원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위서(魏書) 석로지(釋老志)엔 그의 행적이 이리 기록되어 있다.


法果每言,太祖明叡好道,即是當今如來,沙門宜應盡禮,遂常致拜。謂人曰:“能鴻道者人主也,我非拜天子,乃是禮佛耳。


내용인즉슨 그가 매양 말하길,

태조는 총명하고 불도를 좋아하니, 이 시대의 부처와 같다.

사문(중)은 마땅히 예를 다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이르길,

도를 크게 넓히는 이가 곧 임금이다.

내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천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곧 부처에게 예불 드리는 것과 다름이 없느니라.


이것은 곧 부처를 팔아 황제에게 아부함에 다름이 아니다.

게다가 북위가 439년 북방을 통일하고,

승관(僧官)제를 확립하면서 더욱 불교는 왕권에 복속하고 만다.


법난이 처음부터 북조에서 연달아 일어난 것은,

실로 바로 이때부터 예비된 것이라 하겠다.


중 녀석이 불도를 닦는데 온 힘을 다하여도, 될까 말까 한데,

황제 똥구멍이나 핥고 있으니, 

어찌 불교가 바로 서겠음인가?


암호화폐 사람들 역시 제도화를 갈구하고,

법적 울타리 안으로 복속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이게 한 때는 나라에서 베푸는 은혜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 때가 지나면 머지않아 법과(法果)와 같이 불도를 팔아먹는 이가,

물 묻은 손에 깨알 붙듯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법난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크다.


그렇다 하여, 내가 현실을 이기는 방책을 갖고 있지도 않으니,

더 이상의 일에 대하여는 내게 물을 게 없다. 


종교를 지지하고 아니하고를 떠나,

무릇 정교분리가 허물어지는 순간,

종교는 정치의 시녀가 되고, 밑을 대주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넋까지 내주게 되는 것이다.

현실 권력은 그 무엇보다 막강하다.

그러니, 엊그제 보다시피 중놈이 정치 인사에게 뇌물주고 놀아나는 일이 생기지 않았던가?


태무제 이전의 황제들은 모두 불교를 신봉하였고,

정치적인 이유로도 불교를 배척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무제는 관리 최호(崔浩)와 도사(道士) 구겸지(寇謙之)의 꾐에 빠져,

도교를 믿게 된다.

그리고는 나아가 승려인 玄高、慧崇를 죽이고,

중에게 시주하는 것을 금하였으며,

50세 이하의 중들은 환속하라 명령하였다.


게다가, 관중지방의 반란을 정벌하러 나섰던 태무제는,

장안에 이르자 사찰에 병장기가 숨겨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자, 진노한 태무제는 불상, 불경을 불사르고, 승려를 묻어버리라 명령하였다.

당시 북위에 단 하나의 승려도 남아나지 못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

但他們都天不假壽,中年早逝。

이들 네 황제는 하늘이 긴 수명을 빌려주지 않았다.

모두 일찍 요절을 하고 만다.


암호화폐를 위협하고 방해하는 세력에게도,

하늘은 (정치적) 수명을 꿔주는데 인색하길 빌어본다.


이들을 잇는 황제는 바로 폐불 정책을 버리고,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물론 이것으로 완전히 전의 모습을 회복하지는 못하였으니,

대개는 대를 바꿔가며 완만하니 점진적으로 상처를 치유해나갔다.


오늘날 현정권에 의해 압살되다시피한 암호화폐 시장이 되살아나려면,

과연 대가 바뀌어야 하는지, 아니면 수권 정당 내용까지 바꿔야 하는지 아지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정치권력 하에서는 말살 기조 자체가,

내부적 자체 동력으로 쉬이 바뀔 것이라 전망하기 어렵다.


최근 일련의 암호화폐 법난에서 입증되었듯이,

저들의 암호화폐에 대한 공부 수준은 매우 낮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외부의 영향을 받아 쉬이 무너질 여지도 있다.

가령 국제 환경이 암호화폐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면,

밸도 없고, 철학도 없는 저들 관리들의 마음도,

덩달아 흔들려 그를 따르지는 않을까 하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어본다.

구차하고, 슬픈 일이지만. 


북위의 태무제는 환관에게 피살되고 만다.

그 뒤를 잇는 문성제(文成帝)는 폐불책을 버리고 불교를 다시 인정한다.

당시 정권은 선비족이 세운 나라였는데,

그들 고유의 신앙과 더불어 유불선 모두를 존중해주었다.


기실 삼무일종 법난을 살피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 이후 불교 회복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못지않게 뜻이 있다.

향후 암호화폐를 부정하지 않는 정권이 등장한다면,

어찌 흐를 것인가 하는 부분을 이를 통해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늘의 주제를 벗어난다. 

차후로 미뤄둔다.


폐불책에 의해 망가진 불교가 다음 황제에 들어와,

차차 회복하게 되어, 아연 옛 모습을 찾는 듯싶었다.

하지만, 서위(西魏)를 이은 북주(北周)의 무제(武帝)에 들어와 다시 위기를 맞는다.

무제는 실인즉 총명하고, 근검절약하며 큰 뜻을 품은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불교를 믿으면, 

승려들을 공양하느라, 생산 활동에 전념하지 못할 것이라 보았다.

게다가 승려들 역시 생산 활동을 하지 않으니, 세금을 거둘 수도 없은즉,

국가재정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였다.

실제, 이미 이의 영향을 크게 받아 재정 악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 내심 불교를 없애버리려 하였다.  

하지만, 무제는 무지막지한 이가 아닌지라,

복심을 감추고서는 승려와 도사들을 불러 모아, 

짐짓, 불교와 도교 사이에 우열을 가르는 토론을 하게 하였다. 

하지만, 일곱 차례에 걸친 쟁론이 벌어졌으나,

도교는 불교를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자 무제는 급기야 아예 불교, 도교를 모두에게 철퇴를 내리고 만다.


“斷佛、道二教, 經像悉毀, 罷沙門、道士,並令還民。並禁諸淫祀, 禮典所不載者, 盡除之”


“불교와 도교를 없애고, 경전과 불상을 모두 없애며,

승려, 도사들을 모두 환속하게 하였다.

아울러 음란한 제사를 금하게 하며, 

정하지 않은 예배지도 모두 없애버리게 하였다.”


(참고로 여기 淫祀, 禮典所란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은 제사, 예배소란 뜻이다.
마치 법정통화가 아닌 암호화폐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融佛焚經驅僧破塔聖教靈跡削地靡遺。寶剎伽藍皆為俗宅。


불상을 불에 녹이고, 경전을 태우며, 중을 내쫓고, 불탑을 파괴하고,

영험의 기적을 보인 곳을 모두 뭉개버렸다.

절집을 속가의 집으로 만들고, 승려들에게 백의를 입게 하였다.

(즉 환속시켰다는 말이다.)


이것 거죽으로는 불교, 도교를 무지막스럽게 폐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즉 당시 승려의 수가 200만에 달하여, 전 인구의 1/16에 달하였고,

사찰 수가 3, 4만에 이르렀은즉, 국가 경제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위도식하는 중들이 있다면,

그것 자체로 문제가 되겠지만,

여기 중을 일반 백성으로 환치하면,

황제가 독식하던 것을 백성들이 그만큼 나눠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 정경을 그리면, 암호화폐가 융성하는 세상의 모습 역시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암호화폐가 크게 성장하면,

법정통화도 그 지위를 헐어 나누어야 할 것이며,

국가 권력은 분할되고, 약화될 것이며,

권력자, 기득권자들은 기름진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비정규직이 사라지고, 청년 백수가 없어지며,

서민들 삶에도 한 줄기 따스한 햇빛이 비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아주 재미있는 일, 아니 교활하다고 하여야 하나,

아무튼 야릇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즉 불교, 도교를 없앴다고 하였지만,

통도관(通道觀)을 설치하여, 각기 이에 정통한 인사들을 선발하여 맥은 잇게 하였다.

거기서 주역, 노장 철학을 강론하게 하고,

겸하여 불경을 연찬하게 하였다.


암호화폐가 융성하게 되면,

세수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불법 돈세탁이 자행될 것이며,

급기야 중앙 법정통화의 지위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저들이 이런 생각을 왜 아니 할 것인가?


하지만, 4차 산업 혁명의 신기술이니 하고 떠드는 형편이니,

아무리 눈엣가시일지라도 마냥 없앨 명분은 없다.

그러니, 무제가 통도관(通道觀)을 설치하여 생색을 내듯이,

기관을 만들어 블록체인 연구는 적극 장려하겠다고 연막을 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 500여인의 중들이 도성 안에 있었는데,

이 중 하나인 혜원화상(慧遠和尚) 홀로 황제의 폐불 명령에 항거하였다.


陛下今恃王力,破壞三寶,是邪見人,阿鼻地獄不論倨賤,陛下安得不怖?


“폐하께서 이제 왕권에 기대어 삼보(불법승)를 파괴하시니,

사람들이 아비지옥에 빠지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오만하고 비열한 짓은 논하지 않더라도,

폐하는 어찌 두렵지 않사옵니까?”


무제는 이 말을 듣자 대노하여,

눈을 찢듯 크게 뜨고는 이리 말하였다.


但令百姓得樂,朕亦不辭地獄諸苦


“다만 나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하고자 함이니,

짐이 설혹 지옥으로 떨어져 모든 고통을 받을지라도 불사하겠노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니냐?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한다고 난리 법석을 떨 때,

사람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지 않았던가?

그러자 저들은 뭐라고 하였는가?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리 말하였다.


“지나친 과열 양상 또는 큰 폭의 등락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많이 발생하는 사태는 막아야겠다는 점과 자금세탁이나 다단계 등 불법 행위가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래도 그는 무제보다는 뜻만 굳고 충정심은 덜한가 보다.

지옥불에 뛰어들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으니.

하기사 그가 황제도 아니요 대통령도 아니니,

자신이 직접 지옥불에 뛰어드는 도박을 걸 이유는 없으리라.

그저 대독문 읽듯 적당히 닦아 세우고, 자리를 지키는데 열중함만 못하리라.


기왕에 나온 것이니 조금 더 소개를 하겠다.


무제가 저리 말하자,

혜원은 물러서지 않고 이리 절규하였다.


陛下以邪法化人,現種苦業,百姓當共陛下同墮地獄,何處有樂可得?


“폐하가 삿된 법으로 사람을 지금 당장 여기서 고업에 들게 하시니,

이는 백성과 폐하가 함께 (지금 바로 여기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밖에 별도로) 어디에서 편안함을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국가 권력의 폭력.

그리고 고금을 불문하고 그 전개되는 방식의 한결 같음을 여실히 볼 수 있지 않은가?


무제는 혜원화상의 말을 듣지 않았다.

폐불 정책은 온 천하에 펴졌다.

그 결과 4만에 이르는 사찰은 왕공들의 저택으로 나눠 주어졌다.

일체의 경전은 불에 태워져 버렸다.

사원 재산은 국고로 몰수되고,

승려는 모두 환속 조치되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모두 폐쇄되고,

투자자들의 재물은 모두 허공중에 재로 흩어지고,

암호화폐는 법정 통화에 흡수되었고,

채굴자들은 갈가마귀처럼 황량한 들판에 버려졌다.

그 재물은 다시 권력자, 기득권자들에게 나눠지고 만다.

마치 4만 사찰들이 왕공들의 저택으로 하사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四萬多所寺廟賜給王公作宅第)


만약 내가 이리 기술한다면,

당시의 아비규환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저들의 압살책이 지금 잠시 잠깐 멈추어 있지만,

현정권의 정책의지는 아직도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태무제 때 도겸지와 결탁한 최호처럼,

오늘 날 시민유와 같이 철저히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는 이도 적지 않다.


암호화폐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저들을 엄정히 감시하고,

바른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여야 하리라.

그것만이 정작은 스스로 내생 아비규환에 떨어질 가여운 저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저 짓을 한 무제는 그 후 어찌 되었는가?


不久武帝身患惡疾,全身糜爛而死。不到三年,楊堅(隋朝開國皇帝)殺死周靜帝自立為皇帝,北周亡國。


“오래지 않아 무제는 몸에 악질이 생겨,

전신이 썩어 들어가 죽었다.

미처 삼년이 지나지 않아 양견(수양제)이 주나라를 쓰러뜨리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으니,

이로서 북주는 망하고 만다.”


여기 미란(糜爛)은, 

죽처럼 문들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인데,

오래되면 급기야 썩어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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