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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심흑(眼紅心黑)

소요유 : 2018. 9. 29. 09:33


안홍심흑(眼紅心黑)


중국에서 쓰이는 속담 같은 말이 있다.


人本是眼黑心紅,但有時候眼紅了,心就會黑了


“사람이란 본디 눈은 검고, 심장은 붉다.

하지만, 종종 눈이 붉어지면, 심장이 검어진다.”


왜 그런가?


눈이 붉어진다는 것은,

질투가 일어난다든가,

욕심이 크게 발동할 때이다.


이 때 심장이 검게 된다는 뜻은,

곧 흑심(黑心)을 품게 된다는 말이다.


흑심은 무엇인가?


검은 심보, 고약한 생각, 음흉한 의도, 양심을 거스리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에 비하여,

다음은 또 어떠한가?


후흑학(厚黑學)은 청말(淸末) 이종오(李宗五 1879~1944)가 발표한 글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당시 사회에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며,

지금도 후흑학은 중국에서 인기를 잃지 않고 있다.

아니, 글을 아는 어지간한 중국 사람이라면, 이 말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古之所謂英雄豪傑者,不外面厚心黑而已!


“옛날의 소위 영웅호걸이란, 

얼굴이 두껍고, 양심이 검은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厚黑叢話에서 이종오가 뱉어내듯,

그러나 한편으론 실로 웅변적으로 갈파한 말이다. 



원래 후흑학은 당시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의 독립과 자존을 지켜내자는 취지로 설파한 것이다. - 厚黑救國

하니, 개인의 처세술과는 무관한 일이다.

이리 말하는 이가 있다.


하지만, 후흑학 그 자체는,

인간 심리의 밑바닥을 꿰뚫어,

面厚하여 心黑을 감추는 처세술로, 

세상을 요리하는 모습을 그리듯 잘 표현하였다 할 수 있다.

그러한즉, 이로써, 온 세상을 강하게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眼紅心黑에서 眼紅은 

面厚心黑의 面厚에 비하면,

아주 서툰 모습이라 하겠다.


眼紅으로 자신을 드러내, 

心黑을 남에게 들켜버리고서야, 만사휴의(萬事休矣)다.

눈을 싯벌겋게 하고서야,

어찌 영웅호걸이 될 수 있겠음인가?



眼紅心黑을 넘어 面厚心黑을 알고 싶은 이는,

이종오의 글을 대할 일이다.

이는 한국에도 일부 번역이 되어 있다.


한 때,

이종오 선생에게 경도되어,

그가 쓴 문헌을 할 수 있는 한, 모두 수집하였던 적이 있다.

厚黑叢話, 厚黑原理, 厚黑別論 ....

원래 신문에 발표된 것이라,

이게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상호 중복이 되어 있기도 하다.


청말 나라가 혼란스러운 시절,

장검을 휘두르듯한 그의 언설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머리 위에 벼락치듯 큰 충격을 주었다.


후흑학은 사회적 큰 반향을 일으켜,

후흑학에 반기를 든 反후흑학이 등장하였고,

이를 다시 반박하는 反反후흑학, 反反反 ... 후흑학이,

마치 점화식처럼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만치 사회적 충격이 컸고, 센세이션날한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2001년도에 발표된 창랑지수(滄浪之水)란 중국 소설이 있다.

오래 전, 프레시안에 연재되기도 하였는데,

주인공인 지대위(池大爲)의 인생 역정을 통해,

현대 중국 사회의 모습을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 창랑지수)

지대위의 고민, 좌절, 타협을 지켜보며,

후흑학과 관련지어,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안홍심흑(眼紅心黑)

이는 바보가 아닌 한, 장삼이사 누구라도, 그리 할 뿐이다.


면후심흑(面厚心黑)

얼굴은 두텁고, 마음은 검어야 영웅호걸이라 이종오는 갈파하였다.


기실 심흑은 누군들 아니 그런 적이 없겠음인가?

하지만 안홍은 누구라도 쉽게 그리 하지만,

실로 면후는 영웅호걸이나 그리 할 수 있다.

아니, 거꾸로 면후심흑할 수 있어야, 영웅호걸이 된다.

아니, 면후심흑한 이를 영웅호걸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다.


그대,

당신은,

이종오의 말을 믿는가?

아니면, 아니 믿는가?


不薄之謂厚,不白之謂黑。厚者天下之厚臉皮,黑者天下之黑心子。

此篇乃古人傳授心法,宗吾恐其久而差也,故筆之於書,以授世人。


이종오는 이리 갈파하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화산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후흑학(厚黑學) ↔ 반후흑학(反厚黑學, 박백학, 薄白學)  ↔ 반반후흑학(反反厚黑學) ....


헌데, 

이종오는 이리 단도리를 엄히 하였다.


用厚黑以圖謀一己之私利是極卑劣之行爲用厚黑以圖謀眾人公利是至高無上之道德


"후흑으로써, 자기 개인의 사리를 도모하는데 쓰면, 지극히 비열한 짓이다.

후흑으로써, 대중의 공리를 도모하는데 쓰면, 지고무상의 도덕적인 일이다."


이 말을 믿는가?

예견되는 귀찮은 반론을 내치기 위한 변명의 장치일까?


세상엔 말이다.

박백(薄白)을 외치며,

짐짓, 자신을 선한 척 꾸미는 이도 적지 않다.


가위 바위 보


상대가 주먹을 낼 것을 예견하면 보를 내지를 일이다.

하지만, 이를 상대가 눈치를 채었다면 가위가 나올 터이니, 고쳐 주먹을 내놓아야 한다.

헌데, 이마저 상대가 앞질러 알아차린다면 또 어찌 할 것인가?


실제 소시적 묵찌바를 훈련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령 상대가 주먹을 내놓으면, 순식간에 보를 내놓고, 바로 주먹을 쥐어 묵을 외치는 것이다.

전광석화처럼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는 얼음이 되어 바로 당하고 만다.

이런 식의 각종 조합을 미리 열심히 연습을 해두는 것이다.

이것 조금만 익혀두면, 거의 백전백승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조금 후에, 이 전법이 동무들 사이에 전부 퍼지고 말았다.

이제 후흑(厚黑)보다 오히려 박백(薄白)이 유효한 전략이 되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박백(反薄白)이 왜 아니 등장하겠음인가?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

非, 非非

이거 이중 부정의 대표격인 말이다.


已無粗想,故稱非想;尚有細想,故稱非非想。


"거친 생각이 이미 없다.

그래 非想이라 부른다.

하지만 미세한 생각은 남아 있다.

그래 非非想이라 칭한다."


색계, 욕계, 무색계의 최고 정점에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이 있다.

여기 도달하려면 가없는 부정의 징검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하지만 아직 想을 상대하며 여기 매어 있다.

궁극엔 非想, 非非想을 모두 멸한 상수멸(想受滅)로 나아가야 한다.


非想非非想은 산스크리트어로 Naiva saṃjñino Na asaṃjñino라 한다.

영어로 하자면 naiva는 never, Na는 no에 상당한다.

asaṃjñino는 a+saṃjñino인데 여기 a는 부정사이다.

그러니까 saṃjñino 즉 想과 asaṃjñino 즉 非想을 쌍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엉터리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Nir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곧 불을 끄듯 불어 꺼버려야 한다. 없애버려야 한다.

여기 서성거리며 안주하고 있다가는 언젠가 종말을 맞게 된다.

아직 거긴 번뇌가 남아 있고, 윤회를 피할 수 없다.  


Nirvana, 곧 열반(涅槃)은 바로 이런 상태를 뜻한다.

瞋恚永盡

진애가 영원히 다한 상태,

번뇌를 다 불어 끈 상태를 의미한다.


反反厚黑學은 

非非想非非非想天처럼,

지아무리 反을 거듭 덧붙이고, 非를 겹으로 더한들,

다함을 기약할 수 없다.

헌즉, ...


"見神殺神 遇佛殺佛 逢祖殺祖. "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잡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이제 선사들이 툭하면 내뱉는 이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겠음인가?

새색시처럼 그저 얼굴에 박가분 바르고 새침 떼며 참한 척, 착한 척하지 마라.

차라리 후흑의 인간이 새색시보다 천 곱은 더 정직할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도 역시 귀신이요, 부처요, 조사에 불과한 것.

모두 잡아 죽여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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