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유튜브 먹방

소요유 : 2018. 10. 4. 21:52


내가 근래 아이들이 떠드는 소위 먹방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보는 눈에 탄력이 붙어 몇몇을 갈아가며 보았다.


유튜브는 영상 하나를 보면,

다른 유사한 영상을 노출시켜 시청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처음 영상을 보는 이에게 이게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나,

그 이면에 저들의 설정 의도에 맞춰 놀아나는 측면은 없는가?

이런 의심을 하였다.

어찌 있지 않으랴?

상업적 기획에 따라 적절히 안분된 영상을 따라 보게 되면서,

저들의 하부 구조에 편입되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복무하게 된다면, 이것은 여간 찜찜한 노릇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렇고, 한국 먹방 프로그램을 보니,

이것은 뭐 거의 야비한 폭력에 가깝다.

짜장면을 앉은 자리에서 몇 그릇씩 연거푸 먹는다든가,

일식 집에서 물린 접시를 수십 개 쌓아가면서 먹는 장면을 보았다.

일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저것이 유튜버의 컨텐츠 주제인데,

저런 식으로 도대체 얼마 동안을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저리 하다가는 건강 망가지고, 오래지 않아 쓰러지고 말 상 싶다.

더욱이 도대체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무뢰하기 짝이 없다.

진행하는 쇼를 위해, 음식을 도구화 하고, 자신을 학대하고 있음이니,

저 정도라면 이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라고 생각을 하였다.

음식에 대한, 문화에 대한, 인간에 대한 폭력이 거기 있었다.


이내 염증이 일어나 저런 따위의 영상은 이젠 외면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헌데, 외국 영상 중엔, 이와는 사뭇 격이 다른 것이 있음을 근래 알게 되었다.


하여, 이를 여기 끌어두고자 한다.



(utube, 红烧肉这样做是最好吃,一次做5斤,真是人间美味)

- 원초적 본능,

  장쾌한 기상,

  격식에 매임없는 시원한 연출이 돋보인다.

  다만, 육식 위주로 꾸며져,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심적 마찰이 있다.


(utube, 【野食小哥】天上飛來一只豬,然後。。。)

-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마리 돼지라,

  녀석 설정이 재미있구나.


(utube, Giant Paneer Cheese Pizza)

- 할아버지의 웃음이 푸근하다.

  일필휘지 거리낌없는 요리 실력, 

  조수의 묵언 수행.

  모두 일품이다.


이들 영상엔 보여주기 위한 쇼적 설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허나, 어차피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니, 이 정도는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음식을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시키며, 

욕망과 절제의 경계를 적절히 넘나들면서, 

원초적 식욕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끌어 들이고 있다.


게다가, 마지막 Grandpa kitchen은 자선사업과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사람들의 눈과 손을 지그시 저들의 뜨락 안으로 이끈다. 


이들의 설정 구도와, 영상 제작 테크닉, 영상 미학,

모든 게 조화롭다.

억지나 강요가 없으면서도,

아름답고 그윽한 저들의 정원으로 초대된다.


하지만, 요즘 보았던,

한국의 일부 먹방들은,

스케일도 작고, 쩨쩨하고, 구차스러운 억지만 질펀하다.

이는 아가리만 큰 욕망의 당체(當體)일 뿐,

거긴 한 줌의 철학도, 한 톨의 미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예를 몇 개 여기 소개할까 싶었는데,

이 자리를 더럽힐 것이 염려되니 그저 참기로 한다.


나는 반대하지만,

오죽하면, 얼마 전 먹방 규제론까지 나왔을까?


起居時,飲食節,寒暑適,則身利而壽命益。起居不時,飲食不節,寒暑不適,則形體累而壽命損。

(管子)


“일상생활이 제 때 이뤄져, 음식을 절제하고, 기후가 적절하면,

몸에 이로와 수명이 늘어난다.

일상생활이 제 때 이뤄지지 않고, 음식을 절제하지 않으며, 기후가 적절하지 못하면,

몸이 지쳐, 수명이 감해진다.”


좀 살만해졌는가?

저들, 문제의 일부 먹방 영상을 보면,

음식을 마구 허투루 대하고,

폭식을 일삼으며,

장난짓거리하기 바쁘다.

흉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다.


음식남녀(飮食男女)란 영화가 있다.

이것 원래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식욕과 색욕을 가리키고 있다.


飲食男女,人之大欲存焉;死亡貧苦,人之大惡存焉。故欲惡者,心之大端也。人藏其心,不可測度也;美惡皆在其心,不見其色也,欲一以窮之,舍禮何以哉?

(禮記)


“식욕과 색욕은 사람의 커다란 근본 욕망이다.

죽음과 빈곤은 사람이 크게 꺼리는 것이다.

그런고로, 이런 본능은 마음의 커다란 단서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 마음을 감추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욕망은 모두 마음에 있으나, 그 외표를 볼 수가 없다.

그 궁극의 도리를 순일한 하나로 통일하려면, 

예를 버리고서야 그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욕(欲)과 오(惡) 이 둘을 주목하여야 한다.

욕망과 꺼림 이 양자는 그저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나쁘고, 좋고가 없다.

다만, 지나치게 나아가 도를 잃게 됨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는 예로써 조화롭게 조절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欲은 천리(天理)지만,

지나치게 나아가 욕심을 부리면,

바로 그 이때에 이르면, 

천리를 벗어난 욕(慾), 즉 인욕(人慾)이 된다.


저 천박한 일부 먹방들은,

천리인 욕(欲)을 인욕(人慾)으로, 다그쳐 몰아, 극대로 팽창시키며, 

이를 조폭이 장바닥에서 힘자랑하듯 한껏 뽐내며 영상화한다.

음식을 희학질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인간의 순수한 식욕을 저급한 물량 퍼포먼스로 타락시키고 만다.

또한 시청자들은 식욕(食欲)을 욕망(慾望)의 경기장으로 내몰아,

즐기며, 스스로를 값싼 관중으로 전락시킨다.


실로 천박한 세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가리가 미처 영글지도 않은 인간들의,

타락한 폭주 공연을 탄(嘆)한다.


하지만, 섣부른 당국의 규제엔 회의적이다.

하나를 규제하기로 시작하면, 또 다른 규제가 잇따를 것이다.

시민들을 권력이 간섭할 때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직은 좀 더,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그 뻔한 자정(自淨) 기능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현재로선, 나 역시 좋은 도리를 아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이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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