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성에와 미소

소요유 : 2008. 12. 22. 18:16


어떤 사람이 하나 있었다.

봉제 사업을 하던 분인데,
당시 업계에선 제법 이름도 알려졌고,
유명 백화점에도 입점하여 사업을 잘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부도를 맞았는지 혹은 부도를 냈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완전히 사업을 둘러엎고 말았다.

빚쟁이에 둘러싸인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산동네 사글세 집을 전전하는 처지가 된다.

한 때 사업이 잘 되었을 때,
인심 좋은 그는 친구에게 자동차를 사주기도 했다.
그랬던 친구였는데,
막상 영락(零落)한 그를 개 닭 쳐다보듯 했다.

이 장면을 상기하자니,
다시 언젠가 인용했던 이 글이 생각난다.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한유(韓愈)가 그의 文友인 유종원(柳宗元)의 묘비명에 쓴 글이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절치부심,
그는 다시 재기했다.
사업은 잘 되어, 쫓겨났던 백화점에 다시 입점했다.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술을 완전히 끊었다.
그리고 그는 예전 친구들을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그가 어느 날 했던 말.

“내가 말이야,
그 날 이후 예전 친구들을 다 끊었어,
그런데, 그 후에 다시 새로운 친구가 생기더란 말이야.”

오늘 같이 추운 날엔,
사람 좋아 보이던 그가 생각난다.
따뜻한 그의 미소가
서쪽 창문에 성에 서리듯
뽀얗게 얼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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