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혀가 붙어 있는가?

소요유 : 2008.12.20 23:45


여러 가지 글제들이 막 앞을 다툰다.

얼마 전에 쓴 굴원에 대한 보탤 말씀이 하나요,
프랑스 신부의 소녀 몰카 사진에 대한 단상이 다음 하나요.
최근 물의를 일으켜 한참 고생을 할 어떤 분에 대한 격려의 말씀이 그 하나다.

우선 마지막에 대한 글을 적어본다.

먼저 그 사연은 이러하다.
oo연구가이신 어떤 분이 하나 계시다.
이 분은 듣건대 TV 출연도 간간히 하시고,
주부들이 모이는 유명 사이트에서 한참 인기를 끌던 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그 사이트에 개설된 회원장터에 ‘양념돼지고기’ 판매 글을 올렸다.
처음엔 그의 지명도와 어울려 제품의 품질에 대한 호평으로 제법 많이 판매가 되었다.
헌데, 애초 수입산이라고만 표시된 그 고기의 원산지가
우연한 기회에 회원 한 사람에 의해 미국산이라고 밝혀져버렸다.
판매한 분은 원래 돼지고기 유통업자가 아니다.
평소 교류가 있던 한 업자의 청에 의해 장터에 올린 것이라는데,
처음엔 칠레산, 스페인산이라고만 하였다 한다.
그런데, 이게 나중에 미국산으로 밝혀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원산지를 속인 폭이니 큰 사단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나로서는 당사자가 아니니,
그게 내부적으로는 유통업자의 책임인지, 판매자의 책임인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외부적으로는 당연 판매자가 책임질 노릇이리라.

판매자의 해명 글이 올라오고, 사과도 당연 따랐지만,
신뢰를 배반당하고, 건강 위해를 염려한 회원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며
날로 분란은 확대되어 갔다.
개중에는 용서하자는 분도 적지 않았지만,
미국 고기에 대한 주부들의 불신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음이니,
그게 단순한 착오이든, 허위이든 책임이 뒤따름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일의 추이는 아직 충분히 결론이 난 것은 아니로되,
한 가지 이 일에 대하여 느끼는 단상을 간단히 던져두고,
내가 이 자리에서 정작 하고 싶은 본론으로 나아가련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사단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은 대단히 특징적이다.
감정의 분출은 치열하나,
정작 해결 과정, 수단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은 불투명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감정의 분출이라는 게,
주관적인 것이기에 사건 현장 마당에선 각자 부유(浮游)하며 떠돌 뿐,
통일된 주장으로 모아지거나,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다음 처리 단계로 넘어가기 어렵다.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의견은 다른 글에서 잇기로 하고 일단은 예서 멈추자.
(※ 참고 글 : ☞ 2008/12/21 - [소요유] - 책임의 공적 분산 그리고 도착된 자위)
그 판매자의 책임 소재를 추구(追究)하는 것도 당사자에게 돌리기로 하자.
내 자신의 의견도 있으나, 이 자리에서는 주제가 아닌즉 접어둔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개중에는 판매자의 위신 실추와 명예가 허물어진 데 대하여
안타까움을 표출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나는 판매자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하지만, 그가 다년간 쌓아 올린 해당 분야의 명성이 이번 일로 하루아침에
허물어진 것에 대하여 역시나 멈칫멈칫 마음에 무엇인가 괴고 만다.
그는 이제 막 세간에 자신을 알리며, 본격 활동을 하려는 와중이었으니,
이번 타격은 실로 막대하다 하겠다.

해서, 나는 이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전국시대 합종연횡술의 양대 라이벌로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를 꼽는다.
이들은 가끔, 특히 소진은 그 실체가 의심을 받기도 하지만,
아무튼 장의가 입신(立身)하기 전 이야기를 꺼내 본다.

나는 앞에서 두어 번 화씨지벽(和氏之璧)에 대하여 말했다.
(※ 참고 글 :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문.무(文.武)의 진실과 그 화해를 위하여)
이 화씨의 구슬은 언젠가 초위왕(楚威王)에 의해
위나라를 쳐서 이긴 신하 소양(昭陽)에게 하사되었다.

소양은 출타할 때에도 항상 화씨의 옥을 지니고 다녔다.
어느 날, 소양이 적산(赤山)에 놀러갔다.
소양을 따라간 빈객들 백여 명이 적산 밑 연못가에 지어진 누각에서 즐길 때의 일이다.

빈객들이 소양에게 청하여 가로대,

“대감은 잠시도 화씨의 옥을 집에 두고 출타하시는 일이 없으시다지요?
저희들은 늘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그 옥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이 기회에 한 번 보여 줍시오.”

소양은 심복을 시켜 그 옥을 가져 오게 일렀다.
그 부하가 옥이 들은 칠상자(漆箱子)를 소양에게 받쳤다.
소양은 열쇠를 내어 친히 그 칠상자를 열고, 손수 세 겹의 비단을 벗겼다.
드러난 화씨의 옥은 지극히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빈객들은 돌려가며 감상하며 다 같이 극구 칭찬하는 중이었다.
그 때 시종자가 와서 아뢴다.

“못에서 큰 고기가 뛰어 오르고 있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나 난간에 기대어 못물을 굽어보았다.
그 못물을 구경하는 중, 비가 댓줄기처럼 쏟아졌다.
소양이 수행인들에게 분부한다.

“즉시 돌아가도록 준비 하여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모두들 난간에 기대어 고기를 구경하는 동안에 화씨의 옥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러한즉, 아연 놀라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결국 소양은 화씨의 옥을 잃고 부중으로 돌아갔다.
소양이 즉시 모든 문객들에게 분부한다.

“풀을 헤치고, 돌을 들춰서라도 화씨의 옥을 훔쳐 간 놈을 잡아들여라.”

수일 후, 한 문객이 소양에게 고한다.

“그날 대감을 모시고 적산에 간 사람들로서 그런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 중 혹 수상한 자가 있었다면 장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장의는 몹시 가난합니다.
사람이 가난하면 못할 짓이 없습니다.”

실인즉 장의는 초나라 사람이 아니다.
원래는 위(魏)나라 사람으로서 소진과 동문수학한 사이다.
초나라에 와서 그저 식객으로 소양에게 일시 의탁한 처지에 불과했다.
그러하니, 저들은 소위 텃세를 부린 것이다.
무리에 들지도 못하고, 돈도 없고,
그저 말석에 끼어 밥이나 빌어먹고 있는 처지로서,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귀곡자 선생에게 요즘 말로 하면 정치외교술을 집중적으로 배웠으되,
아직 그 쓰임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소양은 의심을 품고 즉시 장의를 잡아들여 화씨의 옥을 내노라고 족쳤다.
그러나 화씨의 옥을 훔치지 않은 장의는 내놓을 물건이 없었다.

“나는 그날 화씨의 옥을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소양이 호령한다.

“별 수 없다.
저 놈이 이실직고할 때까지 사정을 두지 말고 쳐라!”

장의는 곤장(棍杖) 수백 대를 맞고 기절했다.

소양은 장의가 거의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매질을 멈추었다.

그날 그의 친구 하나가 장의를 업어다가 그 집에 데려다 줬다.
그날 밤중에야 장의는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장의에게 말한다.

“당신이 오늘날 이렇듯 곤욕을 당한 것은 그저 책만 읽고,
그 빌어먹을 외교법인가를 공부한 때문이오.
만일 일찌감치 시골구석에 편안히 들어박혀 농사나 지었더라면
어찌 이런 꼴을 당했으리요.”

장의가 입을 벌려 입속을 아내에게 보이고 나서 묻는다.

“내 혀가 아직 있소? 없소?”

장의의 하는 꼴이 하도 우스워 아내가 웃으며 답한다.

“아직 있기는 있군요.”

장의가 엄숙히 말한다.

“혀는 나의 모든 밑천이오.
혀가 있고 말만 할 수 있다면야 뭣을 근심하리요.”

張儀已學游説○索隱音税。諸侯。嘗從楚相飮,已而楚相亡璧,門下意張儀,曰:“儀貧無行,必此盜相君之璧。”共執張儀,掠笞數百,不服,醳集解音釋。○索隱古釋字。之。其妻曰:“嘻!○索隱音僖。鄭玄曰:“嘻,悲恨之聲。”子毋讀書游説,安得此辱乎?”張儀謂其妻曰:“視吾舌尚在不?”其妻笑曰:“舌在也。”儀曰:“足矣。”

아내의 확인은 혀가 아직 붙어 있다는 것이라, - “舌在也
이에 장의는 외친다 그것으로 충분해! - “足矣

후에 장의는 초나라를 등지고, 진(秦)나라로 가서 재상이 된다.
이에 초나라를 마음껏 농락하며,
초나라 기둥뿌리를 하나하나 허물어뜨리고 만다.
그 앙갚음이었을까?
물론 장의가 갖은 위계를 마다하지 않고 부렸지만,
그를 나무라기 전에 초나라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을 탓함이 마땅하리라.
앞에서 말한 굴원도 당시 사람이다.
굴원같은 충신도 쫓아낸 초나라의 교만이란,
얼마나 못났는가?
결국은 나중에 초회왕(楚懷王)은 진나라에 끌려가 비참하게 객사하고 만다.

이 말씀이 나는 불현듯 떠올라,
꼭이나 판매하셨다는 분에게 일러주고 싶었다.

젊은 분이 까짓 일로 허물어진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하는 것이라,
이제껏 준비하고 닦은 기술을 발휘도 하지 못하고
지레 포기할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외에도 손자병법의 손빈(孫臏)과 범수(范睢)의 경우에도
이 사례와 얼핏 유사하다.
(※ 참고 글 : 손빈 ☞ 2008/11/13 - [소요유] - 귀인(貴人)과 중고기
                   범수 ☞ 2008/02/19 - [소요유] - 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

이런 사례들을 통해 깨우치는 두 가지 교훈을 나는 골라내본다.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재능,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동공작(調動工作) 즉 텃자리, 일터를 옮기는 것이 그 다음 하나이다.

이슬람 교주 마호멧은 본시 고향이 메카다.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그가 주장했지만,
애초에 고향 사람들에겐 이런 주장이 씨가 먹히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어렸을 때 코 흘리며, 어리광 부리던 그를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데,
그의 말이 먹혀 들어갈 까닭이 없다.
그는 메카에서의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70여명의 신자를 데리고
622년에 결국 메카를 탈출하여 메디아로 피신한다.
그는 본토가 아니라 외지에서 포교하여 성공한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630년에 메카로 되돌아와 부족들을 항복시키고 포교하여 성지로 삼는다.

흔히 성지라고 일컫는 메카는 종교적 성공의 표지로서보다,
차라리 정치적 성공의 확인으로서 의미가 더 크다면 너무 세속적인 평가일까?

아시는가?
메카를 등질 때,
그가 데리고 간 신자란 누구일까?
최초의 신자인 부인도 있을 터이고, 대개는 열렬신자이었을 터.
그러하니 oo연구가께 이를 특히 가려 확인시켜드리고 싶다.
옮겨 가시게 되면,
원래 활동하시던 곳에서의 열렬 팬들이 반드시 따라 올 터이니,
그들이야말로 ‘마호멧의 최초 70인’ 같은 이들이라는 것,
이들과 함께 권토중래 도모함의 뜻을 벼려 세우시라,
이리 특히 되새겨 드리고 싶다.  

이번 사건을 아내에게 전해 듣고는,
나는 말했다.

“어떤 연예인들 보라. 학력 속인 ooo는 단 일 년도 되지 않아 다시 복귀하지 않았던가?”

그랬더니 이번에 어떤 이는 상까지 받았다고 일러준다.

그 뿐인가?
어떤 연예인은 장사치와 짜고 사기도 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복귀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관대함인지, 혹은 허술한 사회인지 느끼는 자의 몫일 테지만,
이런 한국사회에서 항차 선의, 과실의 그런 사건 따위가 그리 대수로울까?
게다가 그 일개 온라인 상에서 말이다.

하니,
그 oo연구가라는 사람이 자신의 말대로 진정 착오내지는 과실에 불과한 것이라면,
무엇 그리 의기소침 지레 ‘자신으로부터’ 물러서 뜻을 허물 까닭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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