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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獨醒)

소요유 : 2008.12.17 23:47


어떤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늘 주변의 신세를 지곤 했다.
그러던 그가 우연한 기회에, 기술 노동자 신분으로 외국으로 나가게 되었다.

거기 가서 돈을 조금 벌었던지, 귀국하여 집도 장만하고 형편이 나아졌다.
그로서는 일찍이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 안락이 40세 후반에 처음으로 찾아든 것이다.

그런데, 열대지방에서 무리를 한 결과인 듯, 큰 병을 얻고 만다.
다행히 수술하고 나았으나, 그의 행적은 아연 놀라운 구석이 많아졌다.

예전에 그리 주눅 들어 살던 이가, 갑자기 거만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래 보았자,
그가 가진 것은 그저 고추자지 정도 가릴 정도일 뿐,
여전히 사추리가 휑하니 허전함을 면치 못한 것임을 그만 몰랐음인가?
참으로 딱한 장면이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있는 대로 위세를 부리며, 신세진 사람들에게 한 턱 크게 낸다며 연신 떠벌이며 공언을 해댔다.
하지만, 불러낸 사람들에겐 여전히 예전 그대로 인색했다.
당시 어지간한 사람은 얼추 다 장만한 핸드폰을 뒤늦게 하나 사들고는
일도 없이 들었다 놓으며 사뭇 자랑이 뻔지르르 가관(可觀)이었다.
그를 알던 이들은 사람이 사뭇 달라졌다며 슬슬 경원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그는 결코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사람의 격(格)이란 밀가루 반죽처럼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제 아무리 기고만장(氣高萬丈)한다한들,
하늘은 여전히 높고 푸르다.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이치가 이러하다.

내가 예전에 알던 G군 이야기다.
그런데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잠깐 놔두고, 고사(故事)를 먼저 상기해본다.

한(漢)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죽고 나자,
왕비인 여태후(呂太后)는 전횡으로 국권을 농락하였다.
이에 각지에 봉해진 왕들은 속속 여씨 일당으로 바뀌는 형편이었으니,
한나라가 유씨가 세운 나라가 아니고 여씨의 나라로 바뀌고 말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유방은 이리 말했다.

“유씨 이외의 자가 왕이 되는 일이 있으면 격멸하라.”

하지만, 여태후는 도리어 유씨들을 하나 둘 야금야금 죽여 나갔다.
그런데도 가신들은 제 몸을 사리고 꿈쩍도 하지 못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도 운동권 세력들이 젊은 시절의 푸릇푸릇한 기상을 잃고,
정권을 잡자 제 일신의 안일과 이(利)를 탐하여 타락하지 않았던가?

여태후는 정권을 장악하자,
갖은 패악질을 서슴지 않았으니,
예컨대, 유방의 애비(愛妃)인 척부인(戚夫人)을 팔다리 끊고,
눈알을 도려내고, 귀를 자르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변소에 넣어두고는 이를 인간돼지(人彘,인체)라 불렀다.
그녀는 혜제(惠帝)에게 이를 보였다고 하는데,
충격을 받은 그는 그 후로 1년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음이 약할 뿐만 아니라, 몸도 약한 혜제는 재위 7년 만에 죽는다.

물론 척부인의 아들인 여의(如意)도 짐독(鴆毒) 마시게 하여 죽인다.
여태후 자신도 스스로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른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만년에 병상에 누워 했다는 말은 사뭇 묘하다.
당시 홍수, 일식이 일어나면 위정자의 잘못으로 치부되던 시대다.
여태후는 이런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내 탓이야.”
이리 말했다.

모든 탈이 자신에게 몰려오고 있는 것이라며, 병을 앓으며 체념했다.

천성활란(天城活蘭)으로 개명하였던 김활란도 자신의 친일행위를 의식하여,
한 때 실명위기의 병상에서 이리 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죗값으로 눈이 멀어도 달게 받겠다."

혜제(惠帝)이후 여태후가 죽자,
진평(陳平), 주발(周勃)등 유방의 옛 가신들은 다시 정권을 되찾아 유씨에게로 돌린다.
이제 살아남은 유씨 중에서 누구를 황제로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때 황제의 후보로서 적합한 기준이 되었던 것은,
누가 외척의 발호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었다.
즉 황제의 외가쪽 족벌이 한문(寒門)으로 미미한 것이 우선 조건이었다.
일개 궁인 출신이었다 용케 고조의 총애를 딱 한번만 받았던 박씨(薄氏),
그리고 그의 아들인 대왕(代王) 항(恒)이 유력한 후보가 되었다.
마침내 그가 황제의 위에 오르니 명군으로 칭송이 자자한 문제(文帝)이다.

문제의 황후인 두씨(竇氏) 역시 원래는 여태후의 시녀였다.
이리저리 팔리다시피 전전하다 인연이 풀려 황후까지 되었는데,
나중에 어려서 헤어진 동생인 소군(少君)과의 상봉장면은 제법 유명하다.
누나인 두씨가 동생과 헤어질 때, 음식을 사 먹이고 쌀뜨물로 몸을 씻어 주었는데,
이를 단서로 동생임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은 듣는 이를 모두 눈물짓게 만든다.
한 때, 노예였던 소군은 이후 일약 장무후(章武侯)로 봉해진다.

장무후(章武侯)는 전반생을 숱한 고생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높은 신분이 된 이후에도 교만함이 없이 근신하며 일생을 마쳤다.

태양왕 한무제(漢武帝)의 황후인 위자부(衛子夫)도 원래 종복(舞姬) 출신이다.
그의 동생인 위청(衛靑) 역시 누나 덕에 장군이 되는데,
흉노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워 위명이 높다.
하지만, 그 역시 평생을 근신하고, 삼가며 살았다.

사기(史記)에서는 그를 이리 평했다.

“위청의 사람됨은 어질고 선량했다.
삼가 사양하는 정신이 있었음이니 ...”

大將軍衞青的爲人却是仁愛善良,有退讓的精神,以寛和柔順取悦皇上,但是天下之人沒有稱贊他的。

장무후(章武侯)나 위청(衛靑) 모두 하천(下賤) 출신이었으나,
후에 부귀하게 되었을 때, 결코 교만하지 않고, 겸양하며 조신했다.

소건(蘇建)이란 자가 흉노군과 맞부딪쳐 힘껏 싸웠지만,
전군을 잃고 단신 혈로를 뚫고 간신 도망쳐 온 일이 있다.
이는 당시의 군법으로는 사형감이다.

그러나 위청은 그를 목베이는 것을 미루고 황제의 재결을
받자는 식으로 미루며 인정을 베푼다.

어느 날 목숨을 구한 소건이 위청에게 조언을 한다.

“당신은 위(位)는 인신(人臣)을 다하고 있지만,
사대부 중에서 그처럼 평판이 높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자를 초빙해서 손님으로 대접하는
옛날의 명장들의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사랑방을 활짝 열고 유능한 사대부를 모으십시오.”

“현자를 초빙하는 일은 폐하가 하실 일이고,
신하된 몸이 할 일이 아니네.”

어느 시대인들 아니 그러겠는가마는,
소건이 말한 현자를 초빙하라는 말은,
끼리 짝패를 지어 결련(結連)함을 권함이니,
위청의 사양하는 깊은 뜻이
직절(直截)한 가운데 사뭇 절실(切實)하다 하겠다.

나는 생각한다.

장무후(章武侯)나 위청(衛靑) 등은 과히 인신(人臣)으로서는 극귀(極貴)에 올랐지만,
인애선량(仁愛善良)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노예 출신이었기 때문에만,
그리 자중한 것은 아니리라.
이미 그들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으리란 생각이다.

모두(冒頭)에 들었던 나의 옛 인연 G군,
그리고 이들이 아울러 겹치어 생각나는 것은
오늘따라 겨울비가 내려 산색(山色)이 검게 잠겼기 때문일런가?

대저(大抵),
사람 됨됨이란, 사람에 따라 달라질 뿐,
어찌 부(富), 귀(貴), 빈(貧), 천(賤) 때문에 갈라질 수 있으랴?

***

창밖에 긋는 겨울비,
곁에 타다 논 커피 잔에서 향 한 올이 피어오른다.
문득,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詞)에 등장하는 일귀(一句)를 다시 되뇌어본다.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세상 들어 모두 탁한데, 나 홀로 맑다.
뭇사람이 모두 취해있지만 나만 홀로 깨어 있어
(무리로부터) 추방당했다."

당시 비교적 강대국에 속한 남방의 초나라는,
대부들끼리 짝패지어 붕당을 이루고 국익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리(私利)를 도모하기 바빴다.
하지만 굴원 하나만 대죽처럼 홀로 푸르러, 초나라의 장래를 염려했다.
결국, 굴원은 저들에게 참소를 당하여 실각하고 마니,
종내(終乃)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는 운명에 처한다.

지금도 중국에선,
국란이 일어 나라가 어지러울 때면,
멱라강에 투신한 굴원을 제일 처음으로 떠올린다.
남방 초나라는 사실 중국으로 치지도 않는 오랑캐 국에 불과하다.
그러함에도 오늘날까지 그를 열사, 충신으로 떠받들고 있음은,
그의 청죽(靑竹)같은 절개를 사모함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아무리 사리(私利) 취하기에 급급하며, 부박(浮薄)하게 흘러간다한들,
모두는 굴원 같은 사람들의 신세를 지고 있음을 어찌 잊어서야 되겠는가?
단오절에 역시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음을
봄풀 파란 어느 날 홀연 물가에 설 때는 기억하라.

마침 굴원을 빌어 쓴 글 하나가 있다.
이 글에 이어 바로 올려,
(☞ 2008/12/17 - [소요유/묵은 글] - 멱라수(汨羅水)에 잠긴 달 그림자)
비록 묵은 글이지만 덧새겨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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