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먹지 않으면 산다

소요유 : 2010. 2. 6. 19:32


“먹지 않으면 산다.”

나는 당뇨병에 걸린 어떤 분과 교분을 나눈 지 두 해 정도 된다.
쉰 중반이 넘어 갑자기 찾아온 병 때문에 사업도 접고,
인생행로가 새로운 길로 꺾여 전개된 그 분.

그 분 말씀 중에 뇌리에 새겨져 인상적으로 남겨진 것은?

바로,

“먹지 않으면 산다.”

이 명제이다.
역설적인 이 말씀은 얼마나 차고 시린가?

“먹어야 산다.”

또는

“살기 위해 먹는다.”

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알딸딸한 우로보로스(uroboros) 화법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대들 듯 토해버려진,

“먹지 않으면 산다.”

이 말씀은,

당뇨병으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 하였지만,
그동안 쓰러져 사경을 헤매길 세 차례 이상 한 분으로부터,
고발의 형식으로 내게 던져졌다.

당뇨병이란 무엇인가?
이야기인즉슨 간단하다.
체내에 당이 많아지는 것이다.
까닭이 어떠하든 간에 소비되어야 할 당을 인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이자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든,
기타 다른 기관의 기능부전에 의한 것이든,
몸 안에 쓸데없이 당이 많이 남겨진 것이다.
이게 그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여러 후발적인 문제를 일으켜,
종국엔 개중엔 발을 자른다든가, 실명을 한다든가 심각한 사태에 이르게 된다.

만약 몸이 처리하여야 할 당을 제대로 취급하지 못하다면,
보통은 ‘약’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당뇨병 환자들이 복약(服藥)을 의사의 지시대로 하였다한들,
편안히 제 명을 관리하며 안심족명(安心足命)할 자가 기개(幾個)이런가?

“못 먹어서 귀신이 되지, 이 풍진 세상에 먹고 싶은 것 먹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살아?”

이러면서 병에 항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대개 종국엔 발 자르고, 눈이 멀고는 일찍 세상을 져버리곤 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지인은 당뇨병 발병이후 근 20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제1원칙 : 적게 먹는 것.

제2원칙 : 먹은 만큼 모두 산화시켜버리는 것.

사실 제2원칙은 제1원칙의 뜻으로부터 자연 도출되는 것에 불과하다.
제1원칙은 생존유지에 합(合)하는 만큼만 먹자는 것이다.
혹여 이를 지나쳐 과식하게 되면 이를 모두 소비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중 가장 간단하며, 효율적인 것은 ‘운동’이다.

그 날 먹은 것으로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 외에,
나머지는 모두 운동으로 소진시켜버리면,
남겨질 당(糖)이 없다.

그런데 기실 산다는 것은 욕(慾)의 발현이 아니겠는가?
이를 구하기 위해 의지(意志)를 펴는 것일진대,
먹는다는 것이야말로 이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살기 위해 먹는다.”
“먹어야 산다.”

이런 모습이 통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헌데,

“(도를 넘겨 필요 이상으로) 먹지 않으면 산다.”

이 말씀이란 얼마나 역설적이게도 서늘한가?
생의 '욕망과 의지'를 제한하므로서,
되려 생을 부축하는 이 도리란 제법 그럴 싸하지 않은가 말이다.

내 지인에게 권하길,
그동안의 내력을 글로 남겨 후학을 가르쳐 경계하라 하곤 있으나,
흐르는 세월을 마냥 기약할 수 없은즉 우선 이리 골체만 먼저 발겨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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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0.02.10 13:12 PERM. MOD/DEL REPLY

    요즘 국민은행 동화공모에 3편의 글을 응모한다고 한동안 발길이 멎었습니다.
    지난 10년간 글을 제법 써습니다만,
    실제 제 글의 성숙이 미완이라 여겨 문예공모엔 관심을 갖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글만 쓰다보니 생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글도 쓰고 돈도 벌고 할만한 게 뭔가?
    생각해 보니 공모밖엔 없더란 겁니다.

    오늘 일부러 방문하셔서 좋은 글을 올려주셨더군요.
    귀한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저도 현재까진 큰 탈이 없습니다.
    담배를 많이 피우고 운동을 전혀 안해서 그게 좀 걱정입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남한테 원한 사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세상이 딱히 저 혼자 조용히 살려해도 그것 또한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09 14:02 신고 PERM MOD/DEL

    글 짓는 일이라는 것이 내면을 관조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측면이 주요한 것인데,
    이야말로 사뭇 진지한 노릇이요, 흥미 또한 진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해볼 만한 것인데, 생업을 마냥 여윌 수는 없는 것,
    만약 저것이 이에 보탬이 된다면 참으로 복된 일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최근 밭에 관정을 파면서 뜻하지 않은 여러 일을 겪었습니다.
    별별 일이 다 벌어져 한편으로는 힘도 들었습니다만,
    활극을 구경하는 것처럼 재미도 있더군요.

    말씀대로,
    “하루를 살더라도 남한테 원한 사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세상이 딱히 저 혼자 조용히 살려해도 그것 또한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리 되어야 하는데,
    이웃의 훼방도 받고, 뜻하지 않은 귀인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훼방꾼의 경우엔,
    구구절절 사연을 끝까지 요로에 풀며,
    천지공사(天地公事)에 붙이려고도 하였습니다만,
    이즈음엔 그냥 흐르는 물에 잎사귀 하나 띄워버리듯,
    다 놔버리고 싶은 생각이 조록조록 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는,
    웬일인지 사업을 하다가 일이 여의치 않아 외국으로 피신을 한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당시 이 친구는 제 연구소 옆에 사무실을 하나 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는 거래처 손님들을 제 연구소로 끌어들이더군요.
    자신의 사무실은 협소하니 그들을 이리로 끌어들여 허장성세를 보인 것입니다.
    그리 상담을 하더니만 당시로는 거금인 근 1억 원어치 상품을 들입니다.
    어느 날 그 물건들을 빼내 다 팔고는 미국으로 도피를 합니다.
    그러자 그 친구의 거래처 손님들이 제게 우르르 몰려와 하소연을 합니다.
    그 중 한 분이 저와 술자리를 가지면서 토로합니다.

    “그 친구에게 화가 나는 것보다는,
    외려 외로워 보이고 불쌍해서 펑펑 울었습니다.”

    마냥 순진하고 착한 제 친구가,
    당시 이혼, 분가 등으로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더니만,
    저에겐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속으로만 삭이다가,
    끝내는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지요.

    그래도 친구라고 그 와중에도 제게 선물을 남겨두고 떠났더군요.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사 늘 분분하니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만,
    평소 천하에 제일 선한 듯, 의로운 양 의표(儀表)를 내보이던 이가,
    갑자기 그 행로를 꺾어 갈짓자 행보를 합니다.
    이를 보자하니 참으로 세상사는 일이 두렵더군요.

    맡은 일인데도,
    약속을 이리저리 어기고, 거짓말을 하더니만,
    끝내 일을 그르치게 만듭니다.

    도대체 그가 왜 그랬을까 여전히 의문입니다.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이관대?”

    사실 이 일 때문에 제가 분심(忿心)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만,
    요즘엔 바로 이 장면,

    “그 친구에게 화가 나는 것보다는,
    외려 외로워 보이고 불쌍해서 펑펑 울었습니다.”

    이게 떠오르면서,

    “두어라,
    방하착(放下着)”

    이런 심정이 드는 것입니다.

  2. 은유시인 2010.02.10 13:16 PERM. MOD/DEL REPLY

    저는 15년전부터 부산 사하구에서 지역신문을 발행해왔습니다.
    신문 외에도 문학지니 시사지니 의료지니 온갖 잡지를 발행했습니만,
    잡지란 것이 아무리 내용이 좋고 잘 만들어졌어도 지역의 한계성, 신생잡지로서의 입지 등으로
    발행할 수록 돈만 축나고 사람꼴 형편없어 지는 겁니다.

    저딴엔 사하지역을 위해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해왔습니다만
    잘난 놈들이 워낙 많은지라 그 일들이 무색해지더군요.
    지역을 위해서 온갖 잡지를 발행하고 또 지역의 영웅을 소재로 역사장편소설까지 쓰고 시도 열댓편이나 썼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최근엔 여력도 없거니와 전세계약이 끝나는 싯점인 11월말엔 남해 좋은경관을 지닌 곳으로
    영구히 잠입하려했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으려고요.

    근데 적반하장격으로 제 밑에서 광고영업했던 친구가 지난 7년동안 제 신문제호로 신문을 경쟁적으로 발행하며 제게 말못할 해악을 끼치기에 재판으로 제호를 사용 못하도록 못을 박았습니다.
    "사하신문 제호를 사용하여 신문을 발행하면 1번 발행할 때마다 500만원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판결 때문에 그와 그의 운영위원들이 악심을 품어왔던 겁니다.
    그리고 작년 2월경에 인터뷰니 광고니 하여 제 신문과 문예지에 여러차례 게재하고도 광고비 300만원을 내놓지 않던 지역 무슨 경제단체 회장이 그 친구와 손 잡고는 몇몇 제게 반감을 품던 자들과 연대하여
    자그마치 10여명이 저를 고소한 겁니다.

    어제 하루종일 경찰서 녹음실에서 녹음까지 해가며 취조를 받고 왔습니다.
    어쩌면 있지도 않았던 일들을 버젓이 거짓말로 음해하여 고발해왔는지 실소가 끝임없이 나왔습니다.
    제가 공갈협박해서 10만원을 뜯겼다느니 30만원을 뜯겼다느니, 100만원을 뜯겼다느니...
    그야말로 형편없는 사이비기자로 공갈협잡꾼으로 몰아붙이더군요. 물론 그런일이 전혀 없었지요. 광고를 내고 준 돈을 그런식으로 뜯겼다는 걸로 보여지는데...
    저는 수사관한테 "참으로 지지리 못난 놈들이다. 나같이 가진 것하나 없는 불쌍한 놈 하나 때려잡으려고
    사하지역의 온갖 유지들이 다 나섰구나"했지요.
    그리고 그같은 정신구조를 지닌 인간들이라면 열이 아니라 수백만명이 몰려오더라도 하나도 겁날 것 없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10만원이니 30만원이니 100만원이니 푼돈을 운운하기에 그것 때문에 자존심 디게 상하더군요.
    그래서 좀더 조사해보시면 알겠지만 고작 그 정도의 돈으로 고소하진 않았을 거라며 아마 건당 1천만원이 넘을 겁니다. 그랬지요.

    떨리냐고요?
    글쎄요.
    전혀 떨지거나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수사관이 고소가 아니라 진정으로 수사하는 것이라더군요.
    고소로 고발하면 무혐의처분되어 저희들한테 불이익 당할까봐 진정으로 한 것이더군요.
    혐의 내용 없으면 그저 그렇게 끝나버리는...
    그것 또한 남자답지 못한 그야말로 약삭빠른 짓이지요.
    그래서 그만 만들려던 신문을 또 만들어야 겠네요.
    그들이 고소한 내용 전문을 실명과 함께 그대로 게재하여 모든 유지들에게 뿌리려합니다.
    저희들이 언제 저한테 그런 돈을 줘다고 억지를 부리는지
    제가 수사관한테 조서말미에 그 사람들의 진술 내용중에 거짓이 드러날 경우 그저 웃고 넘어갈 일로 치지 말고 그들에 대해 엄벌하라는 내용을 넣도록 했습니다.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으려 작당한 놈들을 그런 계획이 무산되었다하여 없던 일로 쳐서야 되겠습니까?

    사용자 bongta 2010.02.11 10:38 신고 PERM MOD/DEL

    그런 언짢은 일이 계셨군요.

    저의 경우엔 관정 파는 것을 어떤 이에게 의뢰하였는데,
    이게 차일피일 미루어지더니만,
    나중에 가까스로 업자 하나를 소개받게 됩니다.
    이렇듯 지연되었기 때문에,
    애초의 계획상 관정을 판 후, 설치하려 한 하우스를 덩달아 짓지 못하여,
    추운 겨울 맞이하게 되니 결국 봄까지 기다려야 할 판입니다.
    게다가 소개 받은 관정업자는 연속으로 약속을 부러 어겨가며 수작을 걸더군요.
    이게 돈을 더 받아먹겠다는 심보인데 어림없는 짓이지요.

    그렇지 않았으면 지난 해 땅이 얼지 않았을 때,
    마무리되어 다른 준비를 할 수 이었을 터인데,
    이리 지연되어 여러 모로 불편이 큽니다.

    그런데, 당시 차라리 맡지 못하겠다 하였으면,
    나름 다른 대책을 세웠을 터인데,
    사람 하나 믿을 만하다 잘못 여기고,
    따르다보니 도리 없이 몇 차례씩 지연되고,
    이게 누적되어 곤란한 사태가 벌어졌지요.

    도처에 쌓이고 쌓인 게 관정업자인데,
    구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주말마다 밭에 나간 처지이지만 그 동안 안면을 얼추 튼 사이인데도,
    이리 일을 외로 틀어재껴 신뢰를 저버릴 수 있겠는지요?

    저는 지금도 이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차후 제 얼굴을 어찌 대하려고 그런 행태를 저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입니다.
    외지인 서울 사람이라고 얕잡고 대한 것일까요?
    그로부터 변백(辨白)을 듣지 않았으니, (애써 들을 까닭도 없고 ...)
    함부로 추단하는 것은 그만 두겠습니다만,
    평소 정의롭고 선량한 모습으로 나투던 이가,
    이리 다른 행동을 보인 것은,
    제가 미처 아지 못하는 다른 까닭이 있지 않을까 추측도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하지 않다면 이런 행티는 정상적인 사람 사이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짓이거든요.

    제가 처음에 돼가는 꼴이 상궤를 벗어난 듯싶어,
    그 일의 추이를 잘 챙겨두었기에 지금도 사태를 그대로 재현하며,
    누구 앞이라 한들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가려 주십사 내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놔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해든 이해든 간에 이런 시비꺼리에 놓여 있는 저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안심입명(安心立命)하기 위해 전원에 깃들려고 하는 마당에,
    이런 시비꺼리 와중으로 저를 던져 넣을 이유가 없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회심(回心)은 평소의 저라면 거의 있을 수 없는데,
    이젠 그냥 지나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방하착(放下着)!
    ‘집착으로부터 자유’,

    전원에 든 처음부터 이런 번거로운 일에 매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나중에,
    이 사태에 대하여 그동안 정리하여 둔 3편의 글감은 다 버리고,
    소략(疏略)하니 정리한 글 하나로 남겨둘까 합니다.
    상대를 밝히고 싶지도 않고,
    그저 두리둥실히 뼈만 추려 기록에 남겨두려 할 따름입니다.

    제가 원래 부정한 일에 대해 매조지는 것은 자신이 있습니다.
    내가 천하에 내놔도 떳떳하고 부끄러움이 없는데,
    그리고 그 게임에 임하여 하나도 질 이유가 없는데,
    다툼에 있어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은유시인님의 경우엔 저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엔 그저 경제적인 손해를 보면 되지만,
    은유시인님의 경우엔 상대가 일신의 구속을 노려,
    송사를 벌이려고 하는 것이니 저들이 정녕 거짓이라면,
    참으로 죄가 크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나브로 떠오릅니다.
    주역에 보면 천수송(天水訟)괘라고 있지요.
    득괘(得卦)시 이를 얻게 되면 송사에 걸린다고 합니다만,
    하늘을 가리키는 건괘(乾卦)가 위에 있고, 물을 가리키는 감괘(坎卦)가 아래 있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형태입니다.
    즉 위에 있는 강한 것이 아래에 있는 약한 것을 궁박하고,
    아래에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을 향해 항거하니 제법 험한 양상입니다.

    제6(上九) 괘사

    ‘或錫之鞶帶,終朝三褫之。’
    ‘以訟受服,亦不足敬也。’

    ‘혹 소송에 이기고 (패옥 달린) 큰 띠를 하사받는다한들,
    그 영예가 오래가지는 못한다.’
    ‘소송에서 이긴다 하여도 역시나 그게 그리 존경할만한 가치는 없는 것이다.’

    이 구절을 다시 한 번 함께 새겼으면 싶은 것입니다.

    속담에 이러하지 않습니까?

    ‘송사 3년에 남은 것이 없다.’
    ‘재판에 이기고도 망했다.’

    이게 재판과정, 체계의 합리성, 효율성이 미흡한 반증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누천년이래 재판은 이리 진행되고 있습니다.

    은유시인님께서 어련히 잘 알아서 처리하시겠습니까만,
    그리고 제가 제대로 상황을 속속히 아지 못하는 처지에서,
    섣부른 조언을 드리기에 한참 부족합니다만,
    일시적인 화를 억제하시지 못하고 분심(忿心)대로 하시다가,
    몸도 축나시고 마음도 상하시어,
    결과적으로 상처뿐인 영광,
    즉, 주역에선 이를 ‘以訟受服,亦不足敬也。’ 진즉에 이렇듯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니,
    더불어 이 뜻을 가만히 음미하고 싶은 것입니다.

    모쪼록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시어,
    천금 같은 당신의 몸을 보중(保重)하시길 빕니다.

    분심(忿心)이 마구 솟아오를 때는
    한신(韓信)이 남의 사타구니 밑을 기었다는 고사,
    즉 과하지욕(胯下之辱)을 다시 상기해볼 만합니다.
    ( ※ 참고 글 : http://bongta.com/433 )
    이 참고 글을 잠간 틈에 읽어 주세요.

    저는 일개 관외지인(關外之人)에 불과한즉,
    이리 일반론적인 말씀 밖에 드리지 못하게 되어,
    그저 송구할 뿐입니다.

    ‘利見大人,不利涉大川。’
    ‘대인을 만나면 길하리라, 대천을 건너면 불리하리라.’

    여기서 대천이라 함은 곧 송사가 아니겠습니까?
    이기곤 지건 송사 자체를 꺼리는 것은 고대엔 더욱 심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당연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 권세에 붙어 구부려지길 예사로 하였을 테니까요.

    ‘아 삶이란,
    대인을 만나기는 어렵고 물살 세고 험한 대천을 만나기는 쉽구나!’

    그러하니, 삼가고 조심하는 것도 때로는 한 가지 방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리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

    모쪼록 여의(如意)한대로 수월히 일이 풀리시길 빕니다.

  3. 은유시인 2010.02.11 00:31 PERM. MOD/DEL REPLY

    요즘은 개나 소나 다 거짓말에 이력이 쌓였나 봅니다.
    도무지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더 어렵습니다.
    큰 이익을 바라보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들 한결같이 별 것 아닌 걸 가지고도 그리 거짓말을 해대더군요.
    이젠 거짓말을 못하는 것도 병신소리 듣는 세상입니다.


    저를 고발한 열명도 하나같이 저한테 피해를 입혔던 놈들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저한테 공갈협박으로 시달려온 것처럼 거짓말을 늘어놓더군요.
    어쨌든 공연히 근심거리를 드린 듯 싶어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성격이 굵은 스테인리스 철심이라 별 걱정은 안합니다.
    잠도 잘자고 밥도 잘 먹습니다.
    그리고 할 짓은 다합니다.
    그래서 오늘 마감인 국민은행 동화공모에 원고지 40매 분량의 동화 네 편을
    1주일동안 써서 응모 마감에 맞춰 보냈습니다.

    스스로 몇번 읽어봐도 아주 내용이 흡족합니다.
    떨어지면 운이 나쁘다 생각할 겁니다.
    3월3일 발표인데...

    오늘은 잠시 담당수사관한테 그들의 고발을 진정이 아닌 고소로 바꿔달라 얘기했습니다.
    내가 죄가 있음 엄한 처벌을 받겠으니 고소로 바꿔달라고 졸랐지요.
    그리고 10명 모두 엄격하게 동시에 대질조사를 꼭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진정이라고 어물쩡 넘기면 그냥 놔두지 않겠다고 했더니
    수사관이 지금 자기를 협박하냐고 그러더군요.
    협박이 아니라 당신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 했습니다.
    날 잡아넣겠다고 무더기로 짜고 진정한 것인데
    사실이라면 내가 감옥소에 갈 지경인데
    무혐의로 밝혀져도 진정이란 이유로 그들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울 수 없다면
    그런 불공평한 처사가 어딨냐는 겁니다.
    그리고 1주일동안 경과 지켜보고 신문을 발행할 겁니다.
    까짓 이틀만 주물럭거리면 8면짜지 신문 편집을 끝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며 얼굴사진까지 공개할 것이고,
    어떤 터무니없는 사유로 저를 고발했는지 낱낱이 기사로 내보낼 겁니다.
    그중 한놈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출마할 놈이지요.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제가 다칠 일도 없습니다.
    물론 건달을 사서 저를 다치게 한다면 모를까....

    아무튼 죄송합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1 10:39 신고 PERM MOD/DEL

    10명이라면,
    그 중 약한 자를 하나 겨냥하여 집중 추달하면,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떼거리로 달겨드는 양아치를 만났을 때,
    모두 상대를 하려면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지요.
    제 아무리 무술의 고수도 싸움의 매 순간은 1:1로 적을 상대하고 있을 뿐이지요.

    약점이 많은 자, 심지가 무른 자를 하나 골라
    사실을 거론하고, 거짓을 밝혀,
    궁박해나가면 이쪽에 유리한 단서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를 지렛대 삼아,
    전체를 들어올려 기우려뜨리는 것이지요.

    어쨋건
    길을 나선 마당이시니,
    건투를 빕니다.

  4. 은유시인 2010.02.11 15:31 PERM. MOD/DEL REPLY

    처음부터 두 놈의 농간임을 알았지요.
    제 밑에서 일했던 경쟁신문 발행인과 괜한 트집으로 광고비 등 5백만원 떼먹은데다 폭행까지 저질러 제가 고소했던 경제단체협회장 입니다.
    두 놈이 제 신문에 그간 좋지 않은 기사가 나갔던 나머지 사람들을 충동하여 떼거리로 몰려 진정서를 낸 겁니다.

    나머지 8명은 단순 가담자며 오히려 제 광고비를 떼먹은 사람들이지요.
    광고비떼먹었다며 신문에 냈는데 그건으로 기분나쁘다며 동참한 작자들이지요.
    따지고보면 저희들한테 약점이 많습니다.
    전 단지 신문에 실명으로 "광고비 떼먹었다"라는 기사로 냈다는 죄...
    예를 들면 명예훼손에만 적용되는데
    명예훼손으로는 고발하지 않았더군요.

    선생님!
    제 얘기는 그저 가벼운 흥미거리로 읽어주십시요.
    이런 일도 있다는 정도로만 말입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1 19:56 신고 PERM MOD/DEL

    보통 인간관계의 기초는 이해(利害)에 기반하는 것이 예사입니다.
    이게 마냥 나쁜 것이라 치부할 수는 없되,
    도리에 어긋나는 데도 제 욕심에 갇혀,
    억지를 부릴 때 문제가 노정됩니다.
    경우에 맞지 않으면 제 욕심을 유보하고,
    이치껏 행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람을 적지 아니 만나게 됩니다.
    거죽으로는 멀쩡한 사람으로 뵈지만 실인즉 소인배에 불과하지요.

    실인즉 바로 이 과제 상황에 놓여졌을 때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바로 알아볼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무사평온할 때는 누구나 선하고 발라보입니다.
    하지만, 가사(假使) 급박한 상황이 전개된다든가 전쟁이 일어난다든가 할 때,
    제 욕심만 앞장 세워 이제껏 사귀던 친구를 버리고,
    홀로 제 잇속을 차리는 사람을 소스라치게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래서야 그런 사람을 알아차리게 되면 한참 늦지요.
    이미 한참 당하고 난 이후이니 실속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연에 대해 예전에 글로 적어둔 적이 있습니다.
    (※ http://bongta.com/67)

    실로 저들은 알량한 제 자존심을 거지기 위해,
    세상의 옳은 길을 팔아 넘기고 있군요.
    가여운 노릇입니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그래서 이런 소인배를 애저녁에 멀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을 정색하고 물리칠 수만도 없지요.
    저의 경우엔 상대가 그릇 된 행동을 해도 삼세번을 넘어 댓번은 참아 줍니다.
    이게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상도(常道)를 벗어나 마냥 상스런 짓을 할 경우엔,
    더 이상 거래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혹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으나,
    검색어로 ‘고물할아버지’를 치시면 이 사연이 주르르 나옵니다만,
    그 주인공인 고물할아버지가 최근 입원을 하였다가 퇴원을 하였다더군요.
    오늘 그의 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유기기견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방기(放棄)된 강아지 한 마리가,
    그 집에 아직도 남아 있지요.
    둘 중 하나는 제가 이번에 데려왔습니다만,
    나머지 하나는 이제 제가 시골 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보살필 짬이 없습니다.
    해서 수개월 전부터 이리저리 단도리를 하며 할머니에게 준비를 시켰습니다.

    ‘지금부터 사료를 사서 강아지에게 사료를 먹여보라.’

    그랬던 것인데 말로는 ‘네네’ 하며 따르는 듯싶지마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 할머니가 대뜸 저 보고 강아지 하나를 마저 가져가라는군요.
    그 강아지는 시베리안 허스키로서 덩치가 송아지 크기로 자못 큽니다.
    제가 데려오려 하여도 시골,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키울 형편이 되질 않는군요.
    항상 시골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저 녀석을 데리고 옮겨 다니는 것도 벅차지만,
    제가 사는 아파트로 들이는 것도 용이치 않지요.

    해서 할머니에게 요모조모 사료 주는 방법 등을 진작부터 깨우쳐주었지만,
    아직껏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의를 단단히 주었지만 더 두고 보아야지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하면,
    이런 경우엔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좀 더 나아질 미래를 전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외 보통의 경우엔 그 사람의 인품을 깨닫게 되는 때는,
    한참 피해를 본 이후가 된다는 것이지요.

    ‘믿음의 표지’가 과연 있는가?
    저는 글도, 말도, 낯빛도 결코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 글 : http://bongta.com/115)
    그러하기에 신뢰의 배반은 늘 마지막 끄트머리에 밤도적처럼 슬그머니 나타나,
    뒤통수를 아닌 밤중의 홍두깨마냥 후려갈깁니다.

    이 배반의 공식을 빗겨갈 사람이 그 누구이던가?

    ‘새벽닭이 울기 전에 이미 삼세번 세상은 배반을 당하고 말리.’

    아, 이를 어찌하란 말인가?

  5. 은유시인 2010.02.11 23:14 PERM. MOD/DEL REPLY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때 아닌 속물들 지탄의 장을 만든 점 용서 바랍니다.
    그렇지만, 달리 이런 말을 털어놓을 데가 없네요.
    왜냐하면 전 선생님 글에서 이미 그런 속물들을 만났고,
    그런 속물들에 대한 선생님의 의중을 알았기에 조금 보태려고 했을 뿐입니다.

    저도 성격이 원만하여 서너번쯤은 알게 모르게 당해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개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계속 뻔뻔스런 짓을 저지르더라고요.
    제가 여직껏 살아오면서 경험해보기론
    제게 여러번에 걸쳐 거듭 피해를 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아마 열명은 넘을듯 싶습니다.

    특히 가장 피해를 많이 준 사람이 세 명인데
    그중 제일 경미한 사례를 올려드릴테니 시간 나시면 한번 읽어주십시오.
    그저 이런 경우도 있었구나란 식으로 가볍게 읽어주시면 됩니다.
    http://glog20894.ijakga.com/series/log_view.asp?iid=122834

    너무 어이가 없어서 경과를 쭉 정리해본 것 뿐이랍니다.

    오늘도 답답해서 사건 담당수사관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고소가 아닌 진정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그는 나에게 "선생님은 제가 보기에 거짓말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곁들여주더군요.
    위에 링크한 글도 자세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0.02.12 20:40 신고 PERM MOD/DEL

    사업을 하다보면 곧잘 사기꾼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한 마디로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사람을 만나고,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일을 꾸밉니다.

    이런 식의 생활에 익숙지 못한 이는 판판 당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런 따위의 별종자(別種者)가 아니더라도,
    보통, 자존심의 두께가 두터운 사람인 경우,
    사리와 이치를 거스를지언정 제 명예의 실추를 차마 견딜 수 없어 하지요.
    하여 무리인줄 알면서도 어깃장 부리며 앞으로 달려 나가곤 합니다.

    저 역시 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러하니 세상사는 늘상 번잡(煩雜)하니 아귀다툼으로 날을 지새우게 됩니다.

    선생님이 달아주신 링크를 따라드니,
    과연 그러한 일이 엮여 적나라하니 펼쳐지고 있군요.

    저 역시 짐작하거니와 선생님과 얼추 년배가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그러하니 그 동안 수상한 일을 겪은 적이 어디 하나 둘이겠습니까?

    제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떠오른 글 하나 인용합니다.

    ‘狂而不直,侗而不愿,悾悾而不信,吾不知之矣。’

    여기서 狂은 미치광이이지만,
    실인즉 사리, 경우, 도리를 알지 못하는 이를 이릅니다.
    그런데다 不直하다 하니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侗은 무지하다, 철이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한데다 성실하지 않다.

    悾悾은 정성스럽다.
    그러한데도 不信하다 즉 미덥지 못하다.

    이런 사람들을 향한 결정적인,
    공자의 말씀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吾不知’
    ‘나는 알지 못하겠노라.’

    어짐의 대명사이신 공자도,
    이런 사람은 알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계신 것이지요.

    이게 제가 요전에 말씀들인 바로 그런 경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 이상의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단호히 관계를 끊겠다는 이 말씀은 얼마나 추상같습니까?

    불교(佛敎)의 대자대비란,
    이에 비하면 광대무변 가없이 끝 간 데를 알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공갈을 치고 있는 것입니까?
    무량광대 마르고 닳도록 세세년년 때를 닦아내면,
    저 사람 같지 않은 이도 감히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깃발을 내달아 올리며 사람들을 충동질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거대한 우주적 대포 공갈을 대자대비라고 이르고 있음이 아닙니까?
    하기에 대자대비란 말씀은 정말로 사무치도록 슬퍼서,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 그러한데,
    공자는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吾不知’
    ‘난 몰라.’

    ‘나는 더 이상 저들을 어찌 할 수 없어,
    그러하니 거래를 트지 못하겠어!’

    이리 장탄식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공자가 매정하니,
    현실을 직시하시고 세상에 등을 돌리신 것인가?

    저는 이 때 느낍니다.
    그는 바로 그 자리 부처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세상을 걱정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부처는 따스하니 가슴으로부터 일렁여 눈가에 어리는 눈물로,
    공자는 차가우니 머리로부터 솟구쳐 손에 잡히는 채찍으로서,

    세상을 어루만지는 일편, 따끔하게 세상을 경계하시고 계심이 아닐까?
    겉말은 다르되 속뜻은 매한가지가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이게 앞에서 말씀드린,
    ‘분노와 슬픔’과 동궤동철(同軌同轍)에 오른 그 순수 원형이 아닐런지요?

  6. 은유시인 2010.02.13 01:48 PERM. MOD/DEL REPLY

    우리나라는 교육부터 틀려먹었습니다.
    그러니 잘 살 수는 있을지언정 인간답게는 살 수 없을 겁니다.
    아무리 외쳐봐야 나만 병신되니 참는게 저로서는 약입니다.
    앞으론 신랄한 글로써 외칠 것입니다.
    남이사 읽든 말든 말이죠.

    *******************************

    제가 어제 쓴 동화 한편 올리겠습니다.
    공모한 작품인데 동화로서는 낙제라 여겨집니다.
    동화란 동심의 세계에서 어린이의 감동을 자아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근데 이 글은 동화라기보단 성인용 풍자에 가깝습니다.


    ***********************************

    [동화]

    개들의 천국

    - 은유시인 -




    구두쇠란 고약한 평판을 들으면서도 개들만큼은 자신의 혈육 못잖게 끔찍이 사랑해 왔던 백설기라는 독거노인이 있었다.
    백 노인은 죽기 직전에 자신이 평생 모아둔 현금 70억 원 외에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집문서와 자신이 지닌 땅문서들을 ‘개들을 위한 복지기금으로 써 달라’며, 자신이 거주해온 부산지역 지방자치단체 사하구청에 기탁했다.
    백 노인은 사하구청장을 비롯하여 함께 동행 방문한 관계공무원들한테 자신이 자식처럼 키워온 네 마리의 개를 일일이 소개했다.
    “요 넘은 잉글리쉬코카스페니엘로 네 살 난 암컷이며, 예삐라 합니다. 또 요 넘은 시츄로 그 중 제일 나이 많은 여덟 살짜리 암컷인데, 이름은 돌돌이라 하지요. 에 또……. 저 밖에 있는 넘은 진돗개인데 여섯 살 된 수컷으로 이름은 순멍이라오. 그리고…… 또 한 놈……. 그러니까 조 넘은 닥스훈트 종으로 두 살짜리 막내인데 암컷으로 새촘이라 합니다. 늘그막 하니 요 넘들 때문에 그나마 사는 즐거움도 느꼈고,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하여튼 잘 좀 키워주이소.”
    백 노인은 구청장의 손을 꽉 움켜쥐고는 잘 좀 키워달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제가 버림받은 개나 학대받는 개들을 일일이 걷어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죽는 순간까지 네 마리밖에 거두지 못했으나 티브이프로 ‘동물의 왕국’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등을 통해 인간들에 의해 몹쓸 짓을 당해온 개들을 지켜보노라면 분노를 참기 어려울 때가 많았지요. 그때마다 그 개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네 마리의 개들에게 더욱 잘해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부디 제가 오늘 기탁하는 기금으로 네 마리의 개는 물론 인간에 의해 고통을 받는 개들을 구제하여 마땅히 개로서의 삶을 되찾게 하는데 사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백 노인은 걱정 말라는 구청장의 약속을 듣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백 노인의 그러한 행위가 매스컴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자 백 노인의 유지를 높게 칭송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의외로 미친 짓거리로 매도하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그리고 장애인관련단체들과 불우이웃돕기관련단체들의 관계자들이 사하구청으로 대거 몰려들어 항의를 했다.
    “별 미친 노인네 다 보겠네요. 사람도 배곯아 죽어가는 판에 개를 위한 복지기금이라니, 그게 미친 짓이 아니고서야 말이나 될법한 소리요?”
    사하구청 관계공무원들이 그들을 타일렀다.
    “고인의 뜻이 그러한데, 우리로서도 마땅히 고인의 유지를 따를 수밖에요.”
    “아무리 고인이 그런 뜻을 밝혔기로 사람이 먼저지 개가 먼저는 아닙니다. 그러니 일부는 개를 위해서 쓰더라도 나머지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원칙이며, 고인의 유지를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닐 겁니다.”
    “이 기금은 백설기 노인께서 평생 힘들게 벌어 장만한 겁니다. 요즘 돈 있는 사람들이 수천만 원짜리 골프채를 사든 수억 원짜리 수입차를 사든 제 돈 쓴다하여 누가 상관할 바 못되지 않습니까? 그런 사치품 사들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키우다 싫증나서 길바닥에 버린 개들을 구제하는데 써달라는데, 그게 크게 도리에 어긋난 짓도 아니잖습니까?”
    “그렇게는 못합니다. 우리가 결사반대해서라도 개를 위해 헛되이 쓰게끔 내버려두지는 않을 겁니다.”

    사하구청은 대규모 유기견 보호소건립을 위해 다대무지개공단 뒤쪽 아미산 기슭에 넓은 대지를 조성하고, 보호소건물 건립 등에 20억 원을 들여 그럴듯한 현대식시설로 꾸몄다. 1천2백 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대단한 규모로 그 규모에 있어선 전국 최대 규모인 것이다.
    그리고 사육장 명칭도 전국 공모를 통해 도그즈빌(Dog's Vill)로 명명했다. 보호소 소장을 비롯하여 전담수의사와 관리사, 그 외에 시설담당 환경담당 조경담당 구매담당 영양담당 사료담당 물담당 분뇨당담 등등 열두 명의 새 일자리가 생겨났다.
    “아니, 무슨 고급 양로원이나 노인복지병원도 아니고 개를 걷어 키우는 곳에 웬 관리직원들이 그렇게 많아요? 그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거창하게 치러진 건립기념 행사장에 취재하러 나온 기자들의 질문에 보호소 소장은 당연한 듯 말했다.
    “많긴 뭐가 많습니까? 개 1천2백 마리 키우는데, 그럼 그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지 않단 얘깁니까? 보소. 개 1천2백 마리에 사람 열두 명이면 개 1백 마리당 한 사람 꼴밖엔 더 됩니까? 학교 한 학급교실에도 교사 한 사람이 30명이나 많아봐야 40명의 학생을 수업하는데…….”

    초현대식의 유기견 보호소가 생겼다는 소문에 개를 입구에 갖다버리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개를 키우기가 곤란하게 되었으니 대신 키워달라며 맡기고 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래서 한때는 그 수용한계를 세 배 이상 뛰어 넘어 3천8백여 마리의 개가 수용되었다.
    사하구청은 시설확장에 10억 원을 더 투입했다. 그리고 관리직원도 서른 명으로 크게 늘렸다. 이 정도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그 규모를 따를 데가 없었다.
    자연히 미국 뉴스전문채널인 CNN과 영국의 공영방송 BBC를 비롯하여 미국 최대일간지 USA투데이, 독일의 대표적인 주간지 슈피겔지 등 전 세계의 주요언론사 외신기자들까지 몰려들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부산 변두리지역인 사하구는 일약 개들의 천국으로 부상했으며, 전 세계의 애견가나 전문가들을 비롯하여 관광객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사하구청은 구청장을 모델로 등장시킨 공익광고를 통해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에 열을 올렸다. 이미 세계 최대 규모로 기네스북에 등재한 바 있는 다대포해수욕장 바닥분수대도 홍보할 겸 지역 이미지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많은 개들이 속속 몰려들어 도그즈빌은 이미 수용한계를 넘어섰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은 사하구청은 보호소의 규모를 더 늘리는 한편, 공무원들을 집집마다 방문하게 하여 두당 5만원씩에 개를 구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나 후원자들도 끊임없이 늘어갔다.
    도그즈빌의 규모가 최고조에 이를 즈음엔 3만5천여 마리의 개와 78명의 관리직원 외에 5백7십여 명의 자원봉사자, 그리고 3천8백9십여 명의 후원자가 집계되었다.

    그러나 그런 열기도 한때였다. 전 세계의 매스컴은 물론 국내 언론들의 보도가 뜸해지자 열기마저 점차 수그러들면서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따라서 그 많던 자원봉사자들도 하나둘씩 떨어져나가고 몇 천 명을 헤아리던 후원자들도 냉담해졌다.
    영구히 지속되리라는 예측을 뒤엎고 금방 시들해진 것에 대해 사하구청은 골머리를 앓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많은 개를 어떻게, 무슨 돈으로 키울 것인가. 그리고 70명이 넘는 관리직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백 노인이 맡긴 복지기금마저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 많은 개들의 사료구입은커녕 직원들의 임금도 제때 지급할 여력이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덩치 큰 개들의 수효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수용소 직원들 얘기로는 영양실조로 인한 개들의 자연사가 늘어서 줄어든 것이라 했다. 그렇지만 내막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전국에서 몰려든 개장사들한테 고기로 쳐서 저울로 계량하여 내다 판 것이다.
    직원들 스스로도 ‘도리가 아니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줄어들기 시작한 개들의 수효가 도그즈빌 설립 2년 만에 3백여 마리를 밑돌게 되었다.
    물론 그 개들 가운데엔 백 노인이 그렇게나 애지중지 키어왔던, 그리고 그렇게나 사하구청장 손을 움켜쥐고 장래를 부탁했던 예삐나 돌돌이, 그리고 순멍이나 새촘이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오물로 질척거리는 휑뎅그레한 유기견 보호소 도그즈빌엔 오늘도 70여 명의 직원들이 ‘백 노인이 남겨놓은 복지기금이 바닥나는 그 순간, 쫓겨날지도 모른다’란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3백여 마리의 개들을 상대로 게으른 근무를 하고 있으리라.
    개들의 천국이란 전설만이 무성한 채…….




    (200자 원고지 22매 분량)

    2010/02/12/17:19

    사용자 bongta 2010.02.13 20:44 신고 PERM MOD/DEL

    동화가 너무 실감납니다.

    동물 보호소가 TV를 타면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그곳에 기르던 강아지를 유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나타나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조직에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위인설관(爲人設官)의 문제를 정말 잘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동화로서의 가치도 물론 훌륭합니다만,
    저는 일반참고자료로서 잘 보관해두렵니다.
    인상적인 동화,
    너무 감사합니다.

    동물보호소를 비롯한 봉사단체, 종교조직 등에서 흔히 목격되는 것이지요.
    사람이 일을 꾸미고, 행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목적사업 보다 조직원들에게 뿌려지는 돈이 더 많은 경우,
    주객이 전도되어 과연 그 조직의 설립 의의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됩니다.

    예전에 읽은 교회관련 논문에선 조직 유지비용이 70%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제 생각엔 사기업이 아닌 봉사단체, 종교조직 등은,
    조직 유지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상 봉사요원을 적극 활용하고, 필수 요원을 정예화 하여 이를 실현하여야 합니다.
    게다가 미래 투자를 위한 유보자산을 과다하게 설정할 유인도,
    일반 사기업보다는 한결 적습니다.
    그러하니 애오라지 목적사업에 집중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호단체 회원이 만 명 그리고 월 회비가 만 원인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원 모두가 회비를 제대로 내지는 않지요.
    일 년에 모이는 회비가 7~8천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실인즉 6% 남짓 회원만 회비를 내는 셈입니다.
    저는 늘상 생각하기를 만 원도 많다.
    가령 천 원씩만 걷으면 어떨까 싶거든요.
    천 원이라면 누구에게도 하나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회원 만 명이 빠짐없이 회비를 낸다면 일 년에 1억2천만 원이 모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담의 과소 문제를 넘어 더욱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천원이든 백 원이든 동참한다는 뜻을,
    행동으로써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 회원에 가입만 하면 무엇 합니까?
    최초에 우정 뜻을 세워 가입을 했지만,
    차후 이런 저런 사정으로 회비를 거르게 되면서,
    차츰 소홀하게 되고, 점차 열의가 식어가며 멀리하게 되곤 합니다.
    하지만 천 원 정도라면 자동납입을 해놓으면 별 신경을 쓸 것도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 단체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폭이 됩니다.

    이런 소액의 회비는,
    널리 여러 사람의 뜻을 모으는데 적당하다는 생각입니다.
    하등 부담이 되지 않는 소액의 기부만으로,
    뜻있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단체 입장에서는 사실 기부금을 더 모으기 위해 열심입니다.
    각종 이벤트를 벌인다거나, 유명 인사를 앞장 세워 바자회를 한다든가 하면서,
    기회를 만들곤 합니다.
    그러다가 무리를 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람인 이상 돈 문제가 개재되면,
    욕심이 동하여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지요.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만,
    얼마 전 모 단체에서 이런 행사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거기 선전 문구를 보자하니,
    참여하는 인사들이 모두 xx변호사, oo교수, yy배우, zz국회의원.... 등이더군요.
    이들을 앞장세워 사람들을 유인하자는 것이겠습니다만,
    실제 참여의 주체는 회원 개개인이어야 하지 않는가?
    저는 이리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것이어야 하거늘 소수의 유명인사 그늘에 가려,
    정작 중요한 회원 개개인의 주체적 참여는 소외되고 있더군요.
    회원들이 한낱 동원의 객체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주객이 전도되었다.
    저는 이리 의심을 하였더랬습니다.

    단체는 호객꾼이 되어,
    회원들의 인격권을 부지불식간에 훼손한 것은 아닌가?
    이게 아니라면,
    xx변호사, oo교수, yy배우, zz국회의원이 아니라,
    최소 xx, oo, yy, zz 이리 타이틀만이라도 빼고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할 때, 각자는 동량의 무게로서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저는 이리 생각했습니다.
    회비 또는 기부금의 과소에 상관없이 참여한 회원들의 뜻은
    똑같은 무게로 대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제가 고안한 천 원짜리 기부는,
    기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장치로서도 훌륭히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고액이 아니라, 적은 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더 의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게 아니 되니까,

    “누구누구는 몇 십만 원을 기부했다,
    모모 씨는 몇 백을 쾌척했다.”

    이런 식으로 홍보를 하게 되지요.
    이게 단체 측 입장에서는 흥이 나기도 하겠지만,
    나머지 주머니 사정이 여유가 없는 분들을 걱정시키는 짓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7. 은유시인 2010.02.14 00:58 PERM. MOD/DEL REPLY

    부산 사하지역의 행사장에도 나가보면 별 따라지같은 정치인들이
    메인을 차지하고 앉아있지요.
    모든 행사가 정치인들 얼굴 알리는 행사로 변질된지 오랩니다.
    뭘 뜯어먹을게 그들한테 있는지 원,,,,
    그렇다고 선거법에 위반된다며 돈 한푼 내놓지 않는데....

    사용자 bongta 2010.02.14 18:28 신고 PERM MOD/DEL

    앞의 그 경우에도,
    행사장에 모모가 나왔다고 연신 선전해댑니다.
    그런데 실인즉 그 자리가 회원들 각자가 참여하여
    목적사업에 맞는 역사를 일구어내는 것일 터인데도,
    거기엔 회원들은 그저 그림자로 처리되고 맙니다.

    기실 유명인사는 일종의 삐끼에 불과한데,
    삐끼의 등장은 열심히 선전되는 반면,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회원들은
    그저 돈만 내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느 교회를 보니까,
    마치 영업사원 실적표를 벽에 걸고 직원들을 경쟁시키듯,
    기부금 순위표를 공개하여 신자들을 줄 세우더군요.
    줄을 세우는 순간 신자들은 교회조직에 복속하는 하부 단자가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위의 경우에도 누가 더 많이 행사장에 나온 물건을 구매하였는가가,
    회원의 충실도를 재는 척도가 되면서,
    회원들은 등급이 매겨집니다.
    잔인한 노릇이지요.
    무례한 것은 물론이고.

    주관하는 사람이 악의가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닌 줄 알지만,
    회비, 기부금을 많이 걷으려는 의욕이 앞서다 보면,
    이리 본말이 전도된 결과를 초래하게 되지요.
    하지만 보통 이런 의식들이 없이 자연스럽게들,
    행사를 치러나가게 됩니다.
    삐끼 질을 당하는 사람들도,
    그게 삐끼 질인줄 모르지요.

    외려 그런 유명인사가 참여하는 자리에 참여했다는
    허위의식에 젖어 외려 적극 나서기도 하지요.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 등을 중심으로
    팬들이 열광하는 축제의 자리라고 좋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전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지적하는 문제의식을 조금이라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특히 단체의 주관자는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회원들에게 보다 충실해질 수 있을 것이지요.

    저는 그래서 보호소를 운영한다면,
    일체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꾸려가는 바탕이 마련될 때 나서고 싶습니다.
    꿈만 꾸다 그게 영영 아니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해도,
    천 원 기부 방식과 같이 소액, 다수 참여 형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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