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
내가 진국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들이 진국이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한 인간의 표상(表象)일는지 모르겠다.
왜?
먼저 진국이란 무엇인가?
알아본다.
津국이라 풀이 하면,
津이 본래 나루를 뜻하기도 하나,
침, 땀이 나는 것을 이르기도 한즉,
오래 국물을 끓여 맛이 좋은 국물을 뜻한다.
설렁탕처럼 오래도록 끓이면 고기, 뼈다귀에서 진액이 나와 깊은 맛을 내게 된다.
그러한즉 津이란 반응 주체가 어떠한 외부 자극에 즉응하여,
체액(體液)을 외부로 발출(發出 or 拔出)하는 연출 상황을 상정하면,
얼추 글의 본뜻에 근리(近理)하니 다가 설 수 있다.
감히 체액까지 내놓다니,
자극에 얼마나 감흥이 북받쳐 일기에,
제 존재의 물적 토대를 근원으로부터 쥐어짜서,
그리 함께 흐느끼겠단 말인가?
흔히 흥미진진(興味津津)하다고 할 때,
진진이라는 것은 너무 맛이 좋아 질질 침이 고이는 모양을 연상하면,
대개 그 어의(語義)에 가깝게 다가섰다 하리라.
거기다 눈물, 콧물까지 더하면 여간 걸맞지 않으리라.
왜 아니,
좃물을 빼놓으랴.
계집 앞이 아니더라도,
제 존재를 밑바닥까지 겁박(劫迫)하듯 도도양양(滔滔洋洋) 밀려드는 감흥(感興)에
좃부리 끝이 자르르 떨리며 실정(失精)이라도 한 적이 있다면,
이 자야말로 흥을 제대로 알 만하다, 이리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계집이라면 개짐 속이 지릿지릿 하니 젖다 못해 흥건하니 질척일 게다.
이런 계집이라면,
풀숲에 엎어만 놓아도,
달디단 요본감창(搖本甘唱)에,
허리가 부러질듯 요분질로,
달밤을 온이슬로 지새우리니,
과시 천하의 남자가 품길 원하는 명기(名器)리라.
그러한 것이거늘,
진진(津津).
과연,
그대는,
삼삼칠칠(三三七七),
사무치도록 무엇인가를 사랑한 적이 있는가?
眞국이라 풀이 하자면,
이는 말 그대로 진짜배기 국물이다.
그게 국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가짜배기가 아니라,
참살이, 진짜란 얘기다.
全국이란 국, 술 따위에 물을 타지 않은 온전한 것을 뜻한다.
처음 술을 거른 것을 전국이라 한다.
이를 때로는 진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가 예전에 ‘달의 눈물’이란 만화책을 본 적이 있다.
술집 도가(都家)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맛의 달인’식으로 전문 직업 영역을 그리고 있되,
순정소설 양식을 빌리고 있어,
제법 달콤짭짜르한 눈물을 흘리게 한다.
나는 그 이야기에 취해,
저으기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때 불현 듯,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게 누구인가 하면, 배상면 국순당 주인이다.
왜 그런지,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생면부지 국순당네를 떠올렸다.
아마도 평소에 신세를 많이 졌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당시 막 나오기 시작한 백세주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훌륭한 술을 그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그 분이 마냥 고마웠다.
소주 아니면 맥주, 그리고 양주, 막걸리 이 뻔한 세상,
그 척박한 토양에 우리 술을 현대화하여 내놓으신 저 분이 너무 신기롭게도 고마웠다.
그야말로 全국 같은 분,
나는 그 분, 그리고 그의 아들, 딸들이 이어 만드시는
국향(麴香) 가득한 내력을 사랑한다.
최근엔 우연히도 배상면 그 분의 책을 구입하여 읽기까지 하였으니,
과시 내 홀로 그 분을 흠모하였든가 보다.
내내 국향(麴香)을 국향(國香)으로 승화시켜,
전국을 아름다운 몽유향(夢遊鄕)으로 만드시길 빈다.
자정 가까이 취객이 포장마차에 앉아 있다.
포장마차 주인은 저 자식들이 제 잘났다고 떠드는 것이 영 시답지 않다.
오늘 장사도 시원치 않다.
같지 않은 데데한 것들이 꼴에 위세가 떠그르르하다.
닭똥집 하나 시켜놓고 수 시간을 버티던 것들이,
소주 하나를 더 내오라고 큰 소리를 지른다.
이 때 몰래 준비한 소주를 내놓는다.
어제 손님이 남기고 간 소주를 모은 것,
거기다 물까지 타서 내놓는다.
저 놈들이 꼭지가 돌았으니 물이든 술이든 알 턱이 없으리라.
술커녕 물국인 것이다.
예전에 술국집에 가면,
全국은 잡인 몰래 단골손님을 이끌어내어 따로 맛을 뵈었다.
근래 내가 진국이라고 부른 이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들로부터 영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게 되어,
내 감식안의 허술함을 자탄한 적이 있다.
내가 어느 날 농업 관련 서적 기사를 보고,
관련 정보를 더 전해 달라고 기자께 메일을 보냈다.
그 기자는 내가 평소 눈여겨보며 내심 그야말로 진국이고뇨,
하며 존중하던 이이기도 하다.
그가 친절하게도 바로 답장을 주어 문제의 서적을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이미 절판이 되었지만 다행이 원서는 인터넷 상에서 용이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저러한 인연으로 메일을 한 두 번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한데 어느 날 그로부터 메일이 왔다.
우정 내게 책을 주겠다고 한다.
나로서는 읽고 싶었던 책이었던 바,
기꺼이 주십사하였다.
그런데,
그에게 다시 메일이 왔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관여하는 카페를 소개하길,
거기 돌려 읽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다음 순번으로 신청하여 책을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언제 책을 달란 것도 아니오,
우정 자신이 나를 생각하는 양 은근히 인사치레를 한 후,
책을 거저 주겠다고 하고서는,
이리 사정이 달라지니 마음이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찌 생각하면 돌려 읽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나를 동원하였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그는 모 인터넷 매체에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TV 프로그램에도 몇 차 등장하였던 모양이다.
그가 설마하니 악의를 가지고 그리했다고 믿지는 않지만,
실수라 하여도 이리 선후가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은 무례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로서는 진국인,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리 되어 영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또 하나는,
안면을 튼 지 오랜 사이는 아니나,
술자리에서 듣건대 썩이나 반듯하고 정의감에 충일한 언사를 늘어놓기에,
한촌에 제법 의기로운 사나이가 숨어 있었구나 이리 내심 생각하였다.
그러한데,
소문을 듣자하니 그가 셈이 흐려 이리저리 이웃에 폐를 끼치고 있다고 하질 않는가?
나는 설마하니 그럴까 싶어 그냥 무시하고 지냈다.
그런데 최근 내가 직접 그런 일을 겪어보니 아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하기에,
나는 늘,
말도, 글도, 얼굴도 믿을 것이 아니 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 참고 글 : ☞ 2008/02/22 - [소요유/묵은 글] - 링컨의 얼굴)
그러한데도 나는 근래 관상을 공부하고 있음이다.
상(相)이란 것이 과연 믿음의 표상(表象)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이를 시험하고자 한다.
상(相)을 통해 상(象)을 건지어 올릴 수 있겠는가?
내가 최근 실수하였듯이 진국은 과연 심상(心相)이 아니라,
면상(面相) 또는 체상(體相)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라고 하지만,
나는 외려 역으로 뒤집어 관하고자 하는 것이다.
순역(順逆)을 나눠하면,
조금 나아지려는가?
후한(後漢)의 허소(許劭)는 월단(月旦)이란 인물평으로
당세(當世)에 이름을 크게 날렸다.
그 역시 관상을 보았다고 하는데,
과연 관상만으로 지인지감(知人之鑑)을 하였을까나?
여하간,
현재로선 내겐 관상도 걸음마 단계요,
게다가 지인지감(知人之鑑)도 서투니 한참 모자르구나.
갈길이 사뭇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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