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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駐錫)

소요유 : 2010. 1. 30. 18:34


주석(駐錫)

주석이란 승려가 머무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게 산이 되었든, 저잣거리가 되었든 한 곳에 주처(駐處)함을 가리킨다.

주석(駐錫)이라 할 때,
주(駐)는 ‘머무를 주’이니 그 뜻을 살핌에 가히 맞춤 알 수 있다.
그런데 석(錫)은 어인 까닭으로 여기 들어 앉아 있는가?
석(錫)이란 ‘주석 석’이니 곧 tin (원소명 Sn: stannum)이다.
이러하니 주석(駐錫)을 새김에 있어 이 글자는 사뭇 요해(了解)가 아니 되는 수가 있다.

여기 자리하고 있는 석(錫)이란 그럼 무엇인가?
이는 본시 석장(錫杖)을 가리키고 있다.
석장(錫杖)이란 화상(和尚)이 지니고 다니는 지팡이를 뜻한다.
(※ 錫杖 : 승려가 손에 들고 다니는 지팡이를 이름.
지팡이 머리에 주석으로 만든 고리를 다는데, 흔들면 소리가 난다.
별칭으로 禪杖, 聲杖, 鳴杖이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지팡이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빌려 승려를 환유(換喩)하고 있다.

이제 비로소,
주석(駐錫)이란,
곧 승려가 머무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로 짚여올 것이다.

그런데 승려가 주석하는 본래의 뜻은 무엇인가?

화엄경에 등장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53인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구법행(求法行)을 하는 동안 한 곳에 머무른 바 없다.
그가 지녔을 법한 막대기 역시 다 닳도록 한 곳에 눕혀져 있을 새가 없다.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에서 지산(知山)은 술에 쩔고 여자와 접(接)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계율에 묶이지 않고, 스스로 파계함으로써 무애행(無碍行)을 걸었던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출구를 찾고자 몸부림 쳤던 것인가?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계율을 따른다면서 실인즉 마음으로는 위선(僞善)을 짓는 배부른 땡중 보다는,
차라리 백배는 구법적 아니 최소 인간적이다.
지산 역시 지팡이(錫)를 한 곳에 내려놓은 적이 없다.
아니 그는 애저녁에 지팡이조차 없었다.

중이 늙고 병이 들어 어디 한 곳을 정하고 머무르게 될 경우라든가?
고법대덕(高法大德) 승려 하나가 있어,
화개(華蓋) 펴 열고 법석(法席) 깔아,
구름같이 몰려드는 눈 푸른 제자들을 가르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돈 많은 화주(化主) 하나와 인연 지어,
그럴듯한 사찰 하나 보시 받고,
지팡이를 처마 밑에 던져 버리고는,
천년만년 시줏쌀 축내며 배 두드리고,
남은 법랍(法臘)을 채워 갈 수도 있으리라.

언필칭 이 모두 ‘주석하고 있다’ 이를 수는 있겠다.

그러하니,
주석(駐錫)이란 중에겐,
참으로 화톳불처럼 뜨거운 물음인 게다.

지산(知山)은,
어느 눈이 많이 오는 날,
합장 한 채 눈 속에서 얼어 죽었다.

그는 지팡이조차 없었다.

주석(駐錫)이란 게,
중에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럴듯하니,
용인지 뱀인지 꽈 올려 멋 부린 주장자(柱杖子)를 꼲아 들고는
법석(法席)을 탕탕 내리치며
신도들 겁박하는 가승(假僧)들이,
과연 이를 알런가?

오늘,
산 속,
잔설(殘雪) 위를 걸으며,
중의 주석(駐錫),
아니 이내,
나에 관한 주석(駐錫)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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