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예측술(豫測術) - ①/②

소요유/묵은 글 : 2008.03.01 09:30


예측(豫測)

이게 글자 뜻대로 풀이한다면, 미리(豫) 잰다(測)는 것입니다.
두가지 함의가 있습니다.
즉, 하나는 미래를 상대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재고 따진다고 할 때, 질/양적 두가지 접근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측은 미래를 상대하는 것인즉,
상대할 대상이 작업하는 지금, 여기(now and here)에 있지 않다는
근원적으로 시공부재의 문제가 따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대상일지라도 온전히 재(測)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것이
비일비재한 현실에 비추어,
실로 예측이란 문제 제기부터 어렵고 고통스런 작업임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적(地積)을 측량(測量)한다 할 때,
그 과업은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측량人, 측정도구의 신뢰성 한계내에서
유효한 결과로 객관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측은 아무리 측량人, 측정도구의 신뢰성이 높아도,
그 결과를 객관적인 측정치로 고정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짐작한다”라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물리적 운동법칙을 따르는 운동 경로의 예상,
예컨대 하늘로 향해 쏘아진 포탄이 포물선의 궤적을 그려
날아갈 탄도와 같은 것은 데이터만 충분히 확보된다면 비교적 정확히 맞습니다.

여기서 제가 예측이란 제목으로 다루려는 것은
이미 물리학적 법칙으로 고정된 것을 제외한,
물리적, 비물리적인 모든 영역에서 시도되는
미래를 짐작하고자 하는 행위 일반을 의미합니다.
개중에는 과학적인 원리를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 끝에 나중에 법칙화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그 이전이라면 제가 지금 다루고자 하는
“예측”의 범주내에 속한 것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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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은 왜 필요한가 ?

어떠한 사건의 발생과 그 인식의 시점 또는 필요 시점과는
항상 시간상의 불일치(time lag)가 있게 됩니다.
인간의 불행한 존재조건이기도 한 이러한 시간 불일치성으로 인해 
인간은 예측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 자연과학 또는 사회과학에서는 이러한 예측을 위한
다양한 수단이 연구, 개발되어 왔습니다.
천문학의 천동설 역시 당시로는 가장 정확한 이론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지동설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는 천동설이 틀리고 지동설이 맞다라는 이유가 아니라,
실인즉 당시 확립된 천동설의 이론적인 수준이 천체의 운행을 제대로 기술하기에는
상대적으로 허술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복잡다단한 천체의 운행을 기술하기엔 당시의 천동설로는
체계적 오류(systematic errors)를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동설로는 보다 체계적으로 기술하기 쉬울 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천체의 운행을 이해하기 쉬운 이론이라는 것이지,
지구 중심으로 온 천체의 움직임을 그려내든, 태양을 중심으로 기술하든,
또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관찰하든,
그 기준(reference)을 어디에 두었다라는 것 자체가 틀렸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천동설에서의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점이지요.
그들이 어떤 것이라도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지구를 중심으로 우리는 기술하겠다라고 한다면,
그 이론은 설혹 난해해질망정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오직 지구는 고정되어 있고 나머지가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순간,
그들은 문제의 중심에 서 있게 됩니다.

말씀이 약간 옆길로 새었습니다.
다시 돌려잡고 잇습니다.
하여간,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관점을 바꾸는 순간,
우리는 별의 운행에 대한 더욱 확실한 정보를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은 예측술은 굳이 자연과학부문뿐이 아니고
사회과학부문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연애, 결혼, 사업 등의 개인적 과제뿐이 아니고 사회, 국가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예측이란 인간행동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적 예측을 한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확실한 조명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우리가 나아갈 길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보다 충분한 생각으로 통찰력과 창조성있는 의사결정( making-decision)을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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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정량적 방법만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과방법은 界( system )의 입․출력 사이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는 가정으로부터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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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시계열방법은 界( system )를 Black Box로 취급합니다.
Black Box로 취급하는데는 두 가지 주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첫째, 界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설사 이해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을 지배하는 관계를 측정하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둘째, 관심사는 왜( Why ) 그것이 일어났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것( What )을 예측하는데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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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방법의 대표적인 것은 경영학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회귀분석이 그것이고,
시계열방법은 이동평균법 따위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이 시계열 방법은 주식투자의 기술적분석방법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 분석가의 기본적 태도는 주가의 형성원인엔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blackbox로 취급할 뿐입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컴퓨팅 기술의 발달로 인과적 방법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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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도표로 예시한 예측술(forecasting) 전체를 소개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흥미가 유발되지는 않을 노릇이니
다만 예측술에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외삽법(外揷法 extrapolation)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외삽법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모두 배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예측 일반의 가장 기초적인 수단인 것을
대개는 잊고 계시지는 않은가 싶군요.
그저 수학, 화학 시간 등에서 그래프로 보고나,
시험 공부에 대비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을 보시면 까만 점들이 기히 얻어진 데이터들입니다.
이 때 다가올 여섯번째 시점에서 어떤 데이터가 올 것인가 ?
우리는 기존의 데이터들을 기초로 물음표(?) 표시가 있는 위치에
다음 데이터가 존재하리라고 예측을 하곤 합니다.

이렇듯 기존의 자료를 해석하여 그 외부의 자료를 가상으로 구축하는 방법을
외삽법(外揷法 extrapolation)이라고 합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는 내삽법(內揷法 interpolation)이라고 있는데,
이는 기존 자료들 외부가 아닌 내부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흔히 보간법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외삽법은 기존의 자료의 경향성에 의존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자료들의 분포 또는 궤적이 연속성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료 외부 공간 영역 또는 미래에 급격한 불연속적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외삽법은 대단히 위험한 예측 방법이 되고 맙니다.
(※ 여기서 외부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는 예측자가 경험하지 못한 과거 또는 미래,
공간적으로는 예측자의 자료미획득 상태 공간을 의미합니다.
앞으로는 설명의 편의상 외부를 “미래”로 한정하여 지칭하므로서 
예측이란 주제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여론조사에서 흔히 듣는 “95% 신뢰구간” 운운할 때도,
표본집단이 충분히 커서 모집단의 분포를 통계학적으로 대표한다고 한들,
모집단이 어떠한 이유로 연속성을 잃고 급격한 변동을 겪게 되면
0%의 신뢰조차 담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중요한 고려 요소를 확인하여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삽법의 “정확한 확정”과 “불확실성”(또는 "불연속성")입니다.

“불확실성”과 "불연속성"은 다른 속성들입니다만,

여기서는 "불연속성"에 대하여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먼저 외삽법의 확정이란, 여러 종류의 외삽 기법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입니다.
즉 선형적인 외삽법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비선형적인 것을 택할 것인가 ?
개별적으로는 선형, 다항식, 스플라인 등등의
자료의 형태에 따라 적절한 외삽법을 잘 선택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외삽법을 잘 적용하였다한들,
천체의 운동법칙과 같은 질서정연한 현상이 아닌 한,
대부분은 내적 포텐셜, 외부 조건 변동 등에 따라
예상과 다른 결과에 봉착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외삽이 되었든 내삽이 되었든 무엇이 인간의 예측을 어긋나게 하는 것일까요 ?
대표적인 게 파국과 랜덤워크라고 생각합니다.

***

파국(Catastrophe)
우리 사회에서 겪었던 대표적인 파국사건은 성수대교 붕락입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다리가 어느 날 아침 붕괴되어 강 속으로 두 동강나 떨어져버렸습니다.
외삽법에 입각한 의식으로 늘 건너던 다리를 대하고 있었다면,
여지없이 불행을 당하고 맙니다.
긋그저께도, 그저께도, 어제도 멀쩡하였으니,
이를 외삽하면 오늘 역시 건재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경사면에 쌓여 있던 눈더미들이 빛을 받아 얼핏 푸르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허물어져 내리면서 겉잡을 수 없는 눈사태가 됩니다.

3년간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식사후 그의 입가에 묻은 고춧가루를 본 순간
그녀는 절교를 선언합니다.

향엄은 돌자갈이 대에 부딪히는 소리에 깨쳤고,
동산은 물 건너다 자기 그림자를 보고 깨쳤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범부였던 이들이 담박 도를 이루었음이니,
이를 일러 번갯불의 깨우침, 돈오(頓悟)라 하는 게 아닙니까 ?

작은 자극으로 균형이 깨지면서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합니다.
이렇듯 불연속적으로 급변하는 현상은 그 흔한 외삽법으로는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을 보면 고무판을 구부려 만든 가상 공간이 있습니다.
사건, 또는 사태의 추이가 지금 a에서 b로 진행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보통 외삽법을 구사하는 경우 고무판이 구부러져 있지 않고
그냥 편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의 지구관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편평하다.
땅은 반듯하니 고르게 연속하여 퍼져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존 자료들이 궤적이 a에서 b로 진행된 경우 b 이후의
궤적 예측은 b의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외삽됩니다.

하지만, 지금 제시된 고무판처럼 공간이 구부러져 있다면
b에서 아래로 뚝 떨어져 c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비유하건데, 기존의 구조공간이 편평한 고무판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한,
외삽법으로 이동평균을 동원하든 지수이동평균, 스플라인, FFT(Fast Fourier Transform),
ARIMA 등등 무엇을 동원하든 b의 지점에서는 모두 c로 추락하게 됩니다.

이 때에 파국을 맞게 됩니다.
만약 예측 현장에서 구부러진 고무판같은 구조공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제 아무리 훌륭한 외삽도구를 동원한들 위험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구부러진 고무판위에 우리가 居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대인과 다름없이 地.方.에 살고 있음입니다.
사후에 비로서 그 구조공간을 그럴 듯이 분석해낼 뿐입니다.

어렸을 때,
마음보 강퍅한 동네 영감탱이를 놀려 먹는 놀이가 있습니다.
그가 평소 잘 다니는 길 한가운데 몰래 구덩이를 파고 똥을 퍼넣습니다.
저희는 이를 호방다리라고 불렀습니다만, 다른 곳에서는 뭣이라 하였을까요 ?
그 위는 표가 나지 않게 살짝 흙으로 덮습니다.
조각달조차 비추지 않는 그믐밤입니다.
물레방아 옆, 외따로 떨어진 과부댁을 훔치듯 다녀오던 그는 그만
호방다리에 발을 딛고는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 파국의 현장을 그 뉘라서 피할 수 있었겠는지요.

신정아氏가 문제의 중심에 서자,
비로서 역학자들이 주둥이를 헐어 “도색기 흐르나 말년운은 꽝”이라고 떠벌립니다.
모두들 申의 남자가 아니라고 발 뺌하기 바쁜 와중에,
이들 관상쟁이들은 다투어 자신이 神의 아들, 딸들이라며 허공을 향해 외쳐댑니다.
늘 그렇듯이 파국은 사후에 확인되기에 삶은 어지럽습니다.

***

갈지자행보(Random walk,亂步)

외삽에서는 기존 데이터들이 표출하고 있는 경향성, 추세(趨勢)에 의지합니다.
하지만 랜덤워크가설에 의하면 그런 것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술 취한 이의 발걸음처럼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관찰 대상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
화란의 튜울립 투기는 모든 사람이 욕심에 취하였기에 오히려 한 방향으로
달려나가 끝없이 투기가 일어났습니다.
현실에서 주식시장이 효율적시장(efficient market)이 아니라는 반증은 많이 있습니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이 온전히 술에 취해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관여되지 않는 자연현상은 어떨까요 ?
자연은 술에 취할 일이 없으니 오히려 취보(醉步) 현상을 보일 것같기도 합니다.
올 여름처럼 일기예보가 늘 틀리는 이유는 기상청이 대단히 멍청한 집단이기도 하지만,
기상현상은 원천적으로 난보(亂步)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들 기상청 인사들의 부끄러움이 조금 감추어질런가요 ?

***

여기 두 집안이 있습니다.
모두 딸만 9명씩 두고 있습니다.
우연히도 두 집안 부인들은 같은 날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 집안의 신생아 성별을 예측하고자 한다고 합시다.
외삽법을 차용한다면 미래의 아기들은 당연 딸이 될 것이 예측됩니다.
수십년 동안 출산만 하였다 하면 딸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엔 아들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은 손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집 할머니가 아니라면, 섣부른 짓입니다.
외삽법은 연속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년년히 딸이라는 출산의 경향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다음 차회의 출산이 딸일 가능성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드디어 양 집안에 새생명이 태어났습니다.
A 집안은 또 딸을 낳아 도합 딸만 10명을 꽉 채웁니다.
B 집안은 이번엔 아들을 낳아 그 집 할머니는 온 동네 잔치까지 벌입니다.

A 집안은 딸을 또 낳아 외삽법의 위력을 증거하였으나,
새로운 정보를 외부에 전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B 집안은 기존의 국면을 깨뜨리고(파국,破局)
극대의 정보량을 창출해내었습니다.

지금 여기서 자연스럽게 정보량이란 개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외삽법이 깨질 때 정보량이 극대화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제나, 어제나 일관되게 유지되던 추세가
지금도 그대로이고, 미래에도 그리 예측되고, 아니 예정되다싶이 되고 있는
상태라면 무슨 재미가 있을 것이며, 기회가 발생하겠습니까 ?

이 양 집안은 모두 10명의 자식을 꽉 채우게 되었다라는 사실에선 일치하지만,
정보 생산량에선 천양지차를 시현한 것입니다.

주식시장에서 말하여지고 있는 기술적분석가들은 추세를 말하며
오늘도 열심히 잣대를 주가 궤적에 갖다대고 그리며 미래를 외삽합니다.
주가 추세가 유지되는 한 기회는 없습니다.
추세가 깨질 때라야 새로운 황금의 기회가 도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삽법은 추세가 깨지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데
그리 재빠르지 못한 대안(對案)입니다.

외삽법은 미래를 예측하는데 기대하는 만큼의 충분한 보상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사후적으로 예측이 틀렸다라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곤 합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후에라야 조급증과 부패를 확인하고 대책을 세우곤 합니다.
눈사태가 나서 수많은 건물과 사람이 다친 연후라야,
산기슭 밑에 대책없이 집을 짓는 것은 위험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외삽법이 미래를 예측하는데 동원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증거는
바로 이런 파국의 실례로서 확인됩니다.

그럼 외삽법을 뛰어넘는 예측술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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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모음

bongta :

ggg님,
제가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그저 혼자 주섬주섬 공부한 것이라,
혹 틀린 것이 있을까 염려스럽군요.

기지의 자료로부터 次回를 예측함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점은
불연속성( discontinuity )이 아닌가 합니다.
事象이 연달아 선후 작용과 반작용의 동태적 균형을 잡아가며 진행되어가다가도,
돌연 어떠한 계기로 그 밸런스가 깨지면 그 연속성이 무너지며,
카타스트로피( catastrope, 破局 )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우리 사자성어중에
陰爲變陽, 陽爲化陰, 苦盡甘來, 興盡悲來, 成住壞空, 桑田碧海, 滄桑之變 ...
등등은 시간의 장단 차가 있습니다만,
모두 판국이 뒤집혀짐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塞翁之馬도 외삽만으로는, 얽혀드는 인생지사를 재량할 수 없음을 가르치고 있지요.

새옹은 아마도 파국이론의 오의를 알지 않았나 싶습니다.
파국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리 담담히 풍파를 맞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파국을 미리 짐작하는 방식으로는 고대의 경우,
혜성이 나타난다든가, 지진이 일고, 기린이 나타난다는 등
갖은 징조가 먼저 있고 이를 태사에 물어 앞을 대비하지요.
물론 이게 약간 미심적은 점은 있습니다만...

그러나, 현대엔 쓰나미가 지나면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랬다는
강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외는 기린도, 용도 자취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대신 등장한 것으로 대표적인 게 컴퓨터이긴 한데,
이게 과연 파국(Catastrophe)에 대해 豫備하고 있을런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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