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구제역과 불교

소요유 : 2011. 1. 10. 11:53


지금까지 백삼십만 마리 이상이 죽어갔다.
구제역 때문에 죽은 것인가?
나는 구제역이 아니라 인간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멀쩡하다.
왜 그런가?

방역이라 불리우는 제법 고상한 역할 현장에서,
주어진 역을 마지못해 수행한 이들 외에 나머지 대다수는 부재자(不在者)일 뿐.
우리는 여전히 국외(局外)에 머무르고 있다.
백정들이 도살장에서 가축을 죽이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트에서 비닐로 예쁘게 포장된 고기 상품을 구매할 뿐,
우리는 도살 현장 바깥에 거(居)하는 착한(?)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뿐,
피를 부르고 있는 것은 너나 나나 별반 다를 것이 없음에도 말이다.

인간들은 너무 핑계가 많구나.
동물들은 구제역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인간 때문에 죽은 것이다.

서울-지방간을 수시로 오가는 나는 지경(地境)이 바뀌는 길목마다 설치된
방역시설을 몇 차례 거치게 된다.
뿌연 분무가 차를 향해 뿜어진다.
근처 도로는 이 때문에 늘 젖어있다.
밤길엔 얼어붙어 차가 미끄러지기도 한다.
나는 그 길을 지나면서 저게 뿌연 소독약이 아니고,
뻘건 핏물로 보이는 환영에 빠지곤 한다.

인간 지들만 살아남겠다고,
구제역 걸린 동물뿐이 아니고 근처에 있는 멀쩡한 동물도,
막무가내 산 채로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고도 살아 있음을 축복하여야겠다는 듯,
밤이 되면 꾸역꾸역 목구멍으로는 술과 육고기를 마냥 처넣는다.
도대체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책임의식이 없다.
제 아무리 인간이 잘났다한들,
종(種)과 종(種) 사이에 차마 넘지 못할 경계와 금도(襟度)가 있음이다.

이런 인간들이라면 동물과 인간만 깊고 깊은 협곡 사이로 나눠놓고 가를까?
종내엔 인간끼리도 아비와 아들, 형과 동생, 남편과 처, 너와 나 사이를,
철천지원수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에 있으랴?

이 아수라장(阿修羅場),
뉴스 매체를 통해 전해들은 소식에,
고상하니 동정심(同情心)을 잠깐 내비치는 것은 별반 수고로운 일이라 할 것 없다.
그보다 저녁 회식 자리에서 행여, 혹 입에 익은 육식을 마다하려면,
흔치 않은 비상한 결단력을 발휘해야 하리라.

그래, 우리는 그 핏빛 현장에 부재할 뿐이니까.
이건 여간 편리하며 한편 다행한 노릇이 아니리라.

불교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할 오계(五戒)에 불살생(不殺生)이 있다.
범망경(梵網經)에는 10중계(十重戒)가 나온다.
거기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것이 살계(殺戒)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수많은 종교 중에 불교가 그래도 한 자락 설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음은,
이 위대한 법설(法說)의 향훈(香薰) 때문이 아닌가?

부처의 전생 이야기를 꾸민 본생경(자타카)이란 경전이 있다.
거기엔 수많은 보시와 인욕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내 어렸을 적엔 초등학생 국어책에도 이 이야기 한토막이 실려 있곤 했다.
지금 여기 본생경 중에서 하나 꺼내 오늘을 비춰본다.

**

니그로다 사슴

그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보살은 사슴으로 태어났는데, 날 때부터 그의 몸은 온통 황금빛이었다.
그는 오백 마리 사슴에게 둘러싸여 숲에서 살고 있었다.
그를 불러 니그로다 사슴이라 했다.
그때 브라흐마닷타왕은 사슴 사냥에 미쳐 사슴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다.
일도 못하게 백성들을 불러다가 날마다 사슴 사냥을 나가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의논 끝에 궁전 뜰에 사슴의 먹이와 물을 마련해 두고
숲에서 사슴 떼를 몰아다 넣은 뒤 문을 닫아 버렸다.
왕은 뜰에 그득 갇혀 있는 사슴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였다.
그 속에서 황금빛 사슴을 보고, 그 사슴만은 다치지 않도록 시종들에게 명령했다.

이때부터 왕은 끼니때가 되면 혼자 나가 사슴 한 마리씩을 활로 쏘아 잡아왔다.
사슴들은 활을 볼 때마다 두려워 떨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화살에 맞아 죽어갔다.
니그로다 사슴은 많은 사슴들이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것을 보고,
이제부터는 차례를 정해 이편에서 스스로 처형대에 오르기로 하였다.
다른 사슴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 였다.
이 날부터 왕은 몸소 활을 쏘지 않아도 되었고,
자기 차례가 된 사슴은 제 발로 걸어가 처형대에 목을 대고 가로누웠다.
그러면 요리사가 와서 그 사슴을 잡아갔다.
그런데 하루는 새끼를 밴 암사슴의 차례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안 니그로다 사슴은 "당신은 새끼를 낳은 다음에 오시오.
내가 대신 가겠소"하고 처형대로 나갔다.
황금빛 사슴이 누워 있는 것을 본 요리사는 왕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왕은 뜰에 나와 니그로다 사슴을 보고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은 없는데 어째서 여기 누워 있느냐?"
"임금님, 새끼 밴 사슴의 차례가 되었기에 내가 대신 죽으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브라흐마닷타왕는 속으로 크게 뉘우쳤다.
"나는 너처럼 자비심이 많은 자를 사람들 속에서도 보지 못했다.
너로 인해 내 눈이 뜨이는 것 같구나.
일어나라, 너와 암사슴의 목숨을 살려 주리라."
"임금님, 둘만의 목숨을 건질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슴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좋다, 그들도 구해 주리라."
"사슴들은 죽음을 면했지만 다른 네 발 가진 짐승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좋다, 그들의 목숨도 보호하리라."
"네발 가진 짐승은 안전하게 되더라도 두발 가진 새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좋다, 그들도 보호하리라."
"임금님, 새들은 안전하지만 물속에 있는 고기는 어찌 되겠습니까?"
"착하다, 니그로다. 그들도 안전하게 해 주리라."
이와 같이 보살은 왕에게 모든 생물의 안전을 간청하여 눈을 뜨게 한 후 다른 사슴들과 함께 숲으로 돌아갔다

(인용처 : http://www.woorilife.pe.kr/bbs/zboard.php?id=bulta&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desc&no=150)

**

http://www.buddhism.or.kr/
불교 조계종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눈을 씻고 보아도 이 희대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공식적인 글 한 자락 없다.
우리나라 최대의 불교 종단인 조계종은 침묵하고 있음인가?
엄동설한이라 모두들 입이 얼어붙었는가?
태고종(http://www.taego.kr/),
법화종(http://beophwajong.org/) 역시 다름없다.

다만 조계종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
일부 신자들이 이들 원귀(寃鬼)를 위한 진혼제라도 지내자고 읍소하는 사연을 간간히 접할 뿐이다.
하마, 구색이런가?
월정사에서 2011.01.08
'구제역 확산 방지와 희생가축을 위한 천도기도 및 법회'를 봉행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나마 하나 건진 소식이 차라리 씁쓸하다.
이러고도 생명을 귀히 여긴다는 불교의 위신을 지킬 수 있는가?
이러고도 감히 승가(僧伽)가 불법(佛法)을 호지(護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인가?

다 죽고 난 다음에 천도법회만 열면 그 뿐인가?
불살생을 으뜸 계율로 세우고, 수행을 하는 승단이라면,
오늘의 이 아수라장 세상에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며,
저들의 패륜을 꾸짖어 말리고 생명존중의 사상을 설파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문(山門)에 빗장 닫아걸고,
귀한 시주 쌀로,
종내 썩어질 제 살을 찌우고,
헌향화(獻香華),
목석불(木石佛) 앞에 염불만 외면,
절로 도를 이룬단 말인가?

일개 동물단체에서도 이리 앞장서서 세상을 향해 애절히 울부짖고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3040

수백 년 묵은 고목도 가끔은 움을 틔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이 땅의 불교는 오늘날 철저히 다 식어버린 잿덩이와 다름없다.
수천 년 내리 뿌리내린 불교 운운하며 위광(威光)만 빌어 쓰고 억지 폼만 잡으면 다인가?

도를 펴지 못하고,
잿밥이나 탐하면,
종내 잿덩이가 되고 마는 것.

스님네들은,
금박 입힌 부처보다,
시주 쌀이,
그리고,
가여운 동물들의 원혼(冤魂)들이,
몇 천만 배 더 무섭다는 것을 사무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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