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수고

소요유 : 2011. 1. 17. 12:16


농원 앞은 부대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병사들이 오가기 때문에 저들이 하는 이야기가 절로 귀에 들어오곤 한다.

'수고하십시오.'

선임/후임, 고참/졸병, 장교/사병
이들 간 상하를 가리지 않고 저 편치 않은 말씨들이 오고간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수고라는 것이 한자어로 쓰면 필경은 手苦 아니면 受苦일 것이다.
手苦는 글자대로라면 손이 고생을 한다는 말일 터인데,
여기서 手는 굳이 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할 때 대개는 손으로 하게 되지만,
때로는 발이 될 수도 있고, 머리(두뇌)가 될 수도 있다.
그러하니 이들을 대표하여 앞으로 이끌려져 나온 말로 보면 된다.
이 글자는 본디 우리글에는 없고 일본어에 있을 뿐이다.
이와 비슷하게 중국어에는 수각고(手脚苦)란 말이 있는데,
가령 이런 용례가 있다.

'腦袋不靈手脚苦啊'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내가 시골에서 지난여름에 철물점에 들려서 물건을 사는데,
거기 안주인이 바로 이 말을 주워섬겨 서로들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철물점엔 온갖 물건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당시 거기를 저무도록 툭하면 드나들던 형편인지라,
스스럼이 없는 사이가 되었기로 어느 날 내가 말을 툭 던져내었다.

"이 수많은 물건을 죄다 꿰고 가게를 꾸려가려면,
여간 머리가 좋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웬걸요, 이 일이 거의 노가다와 다름없지요.
저희는 머리가 나빠서 이리 손발이 고생을 한답니다."

거기 안주인은 푸근하고 친절하여,
내가 돌아와서는 집사람에게 자주 칭찬을 하곤 한다.

여하간 수고(手苦), 수각고(手脚苦)이든 거기서 거기인데,
나는 이 말들이 그리 점잖게 여겨지지 않는다.

반면 수고(受苦)는 이들에 비하여는 한결 어의(語義)가 적실하니 바르다.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수인(受忍) 즉 인내로 참아낸다는 말이겠거니,
거기엔 마땅히 수분(守分)한다는 체념(諦念), 달관(達觀)의 경지로 나아가는 모습이 읽히운다.

나는 수십 년래 '수고'란 말에 대하여 가끔씩 틈새에 궁리를 틀곤 하였다.
우선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건네어지는 수고란 말은
수고(受苦)가 아니라 수고(手苦)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대는 지금 손을 더럽혀 욕을 보고 있음이니,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네 형편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가엽고 안됐지만 그저 참아 내거라."

대체로 이 정도의 의미공간을 만들어내 낼 뿐,

"귀하고 어려운 일을 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음이니,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런 어의(語義)로 읽혀지는 경험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통상 내가 겪거나, 지켜보는 우리네 언어생활 가운데,
사려 가리는 예의도 없이 그저 툭툭 던져지는 말투로 미루어,
수고(受苦)가 아니라 수고(手苦) 정도의 헐한 쓰임으로 거의 고정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녀노소, 상하 불문 이 말이 거의 무차별적으로 쓰이는데,
이게 내겐 여간 거북살스럽게 여겨지지 않을 뿐더로 천박하기 짝이 없게 느껴져,
어쩌다 격에 어긋난 이 말을 듣게 되면 공연히 기분까지 언짢아지곤 했다.

중국집 배달원이 음식을 부려놓고 나가면서 이리 말한다.

"수고하세요."

배달하는 친구는 말을 뱉어놓고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는데,
그를 불러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고 나는 혼자 혀를 찰 수밖에 없다.

나 보고 음식 먹는 '작업'에 임하여 '수고'하라고 이르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그런데 이 말은 택배 아저씨도 물건을 전하고 돌아가면서 가끔씩 던져두곤 간다.
저들은 이제 무의식적으로 입에 자연 익어버린 것이다.
이는 내게는 참으로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가여운 가운데,
주제넘게도, 그래 주제넘게도 말이다.
나는 감히 저들의 삶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진한 슬픔 한 덩어리를 엿보게 된다.
이때에 이르르면 저들 손을 부여잡고 땅에 꿇어 엎드려 함께 기도하고 싶어진다.
난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참 나어린 사람이 자리를 떠나면서 남겨져 일하는 나를 두고 이른다.

"수고하세요."

수고라는 말은 연장자 또는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던져 넣어 줄 수는 있다.
또는 내가 서비스를 금을 치루고 구매하여 누군가에게 일을 사역시켰을 때,
그에게 부림을 이끌어내고 그 노고를 치하하는 언사로는 그다지 나무랄 바 없다.

하지만, 그 반대로,
나이 어린 자가 윗사람에게 건네기에는 적이 조심스럽고 송구스럽기 짝이 없는 말이다.
한즉 이런 경우라면 아예 쓰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이를까?
상황마다 다 다르니 적절한 말은 제각기 알아 찾아내야겠지만,
가령 이리 말하는 게 적당한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죄송하지만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네에겐 인색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실례합니다."

이런 말씨를 허두(虛頭)에 앞세우면 대개는 크게 유루(有漏,遺漏)가 없다.
이 말들을 입에 익히면 종국엔 마음보도 낮은 곳에 내려 임하여,
하심(下心)코 발아래를 밝히게 된다. - 조고각하(照顧脚下)

그런데, 수고라는 말처럼 이리도 한참 격이 떨어지는 말이,
온 사회에 거침없이 두루 쓰이게 된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생각건대 그 태반이 군대에서 유래하지 않았는가 싶은 것이다.
게다가 경제에 올인하는 강퍅한 심전(心田)에서 널리 퍼져나간 것이리라.

삽으로 땅을 파고, 들것을 들고, 총을 메고,
행군을 하고, 구보를 하며,
땀을 한참 흘리는 현장.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이가 1~2년 남짓 별로 층하가 지지 않는 사병들 간에,
'수고하십시오'
이 말처럼 스스럼없는 게 어디에 있으랴.
이게 익숙해지다 종내는 자리가 버성기어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라도,
그저 편히 '수고하십시오' 툭 던지며 빗겨갈 수도 있고,
식당에서 밥을 먼저 먹고 자리를  일어서면서도,
남겨진 이들에게 '수고하십시오' 하며 인사랍시고 툭 부려놓고는 벗어난다.

먼지 뽀얀 들과 산에서,
전우끼리 '수고하십시오' 이리 주고받는 말에,
보태어 무엇을 더 주문할 수 있겠으며,
이를 탓할 것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저들이 제대하여 사회에 복귀하고 나서도,
타성에 젖어 상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저 말을 난사를 하게 되면,
사회는 쉬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즈음엔 혼란을 혼란으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모두들 여기 익숙해져 그저 무감각하게 지나치고 있다.

제대병을 상대로 한참 감각이 떨어진 언어예절을 다시 추스리는 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별 티도 나지 않는 헐값으로 거의 거저 부린 저들에게 그 정도의 서비스는 해야 도리가 아닐까?
거저 끌어들여 오래도록 부리고서는,
나중에 사회에 복귀시킬 때도 무책임하게 그저 놔버리면 그 뿐인가?
닦아 윤은 못 낼지언정 노역에 지쳐 쳐지고 흩뜨려진 것을,
최소 원래만큼이라도 돌려 보수(補修)는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염치 바른 군 수뇌부를 기대하는 것은 과연 무망(無望)한 것인가?

여하간, 언중들이 무차별적으로 내뱉는 이런 따위의 언어생활을,  
나는 이를 아주 천박한 노릇이라고 여긴다.
점잖지 못하고, 천하고, 상스러운 어법(語法)은 사뭇 위험하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씀이다.

“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도 말라.”

또한,
“始吾於人也,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聽其言而觀其行”라 하지 않았던가?
처음엔 사람을 대할 때,
말로 미루어 그 행을 그러리라 믿었지만,
나아가 이제는 말을 듣고도 내처 행을 살펴본다 하지 않았던가?
이러함이니 행은커녕 말조차 가려 쓰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사람의 신뢰를 끌어낼 염치가 있으랴.

말이 제 말 값에 당(當)하는 자리를 못 찾게 되면,
음양이 고르지 못하게 되고,
상하, 귀천이 뒤집히고,
바른 가치가 전도(顚倒)되어,
종내는 세상을 어지럽히게 된다.

사뭇 위태스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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