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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明心寶鑑)과 처세술.

소요유 : 2011. 12. 5. 11:30


어느 날 한 사람을 만났다.
그가 아주 자랑스러이 떠벌린다.

“우리 아들은 재테크 서적을 보고 있어.”

그의 얼굴엔 몹시도 대견스럽다는 듯, 흐뭇한 표정이 흐른다.
갓 졸업하고 취직한 모양이다.
하기사 이제 사회에 나갔으니 돈 벌 궁리 좀 하여야겠지.
그래도 그렇지 학교 다닐 때는 교양서적이라도 좀 읽었을까나?
내가 겪지 못했으니 알 바 없다, 알려고 할 이유도 물론 없다.

이게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일인가?
남의 일이니까 내겐 상관없는 짓이다.
하지만 나라면 이게 자랑이 될 까닭은 없다.

책방에 가면 처세술 관련 책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인맥을 잘 맺고 이를 활용할 방책은 없는가?
옷이 곧 인격이다.
이젠 남자가 화장하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다.
외려 자기관리에 신경 쓰는 섬세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옷, 화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기 몸에 칼질을 하며,
몸을 성형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예전에 이를 감추는 부끄러움이 있었으나,
이젠 부끄러움은커녕 오히려 부끄럽다고 감추는 것이 부끄러운 세상이 되었다.

명심보감이라는 책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중학교 한문 시간에 처음으로 소개받았다.
그 후 한두 번 훑어본 적이 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이라.
자귀로 풀어보면 ‘마음을 밝히는 보배 같은 책’이란 뜻이다.
감(鑑)은 본디 거울이다.
거울인즉 온갖 사물을 바로 비춘다.
이를 따서 사물의 본보기, 귀감이란 뜻으로 전화(轉化)된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도 나는 ‘명심’이란 말에 주목한다.
명심(明心)이라니 마음을 밝히운다는 뜻이다.
밝게 삿되지 않게 ...
그러하니 얼핏 제목만 보면,
사람이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될 도리를 가르치는 책인가 여겨지게 된다.
사뭇 윤리적인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는 게다.

마냥 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부귀공명(富貴功名), 안명(安命), 치가(治家) 내지는 수가(守家)
즉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실용적인 처세술에 가닿아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조금만 유의를 해도 바로.

이게 나쁘다, 혹은 옳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런 측면에서,
책 제목은 차라리 명심(明心)이 아니라 명심(銘心)이라 하여야 하지 않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다.

여기저기 고전에서 그럴 듯한 말을 끌어다 모았지만,
결국은 패가망신하지 않고 수분(守分), 수명(守命)하는 방책을 은근히 지향하고 있다.
그런즉 마음을 밝힌다기(明心)보다는 외려 마음에 잘 새겨두어야 한다는,
실천적 요술(要述)로 보고 싶은 것이다.

요즘 처세술 관련 책자보다는 한결 의젓하고 점잖지만,
이는 시대적 한계 때문에 그러하지 그 위(位)는 처세술의 범주를 그리 많이 넘지 않는다.
짜투라기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 편을 갈라 나누고,
그럴듯하니 배설(排設)하여 얼핏 가르침을 펴고 있는 양 싶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습들이 마치 시골 훈장이 가래침 돋아 헛기침하며,
잔뜩 거드름 피고 몽학(蒙學)하며 때마다 무지렁이 촌것들의,
양식을 빼앗고, 달걀, 엿, 조청, 꿀, 포목을 빼먹는 수작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노장(老莊)의 술(術)이라는 것이 자연을 본받고 도를 따르자는 것인 양 싶지만,
한번 잦혀 뒤집기를 하면 이처럼 노회한 처세술이 아닌 게 없다.
가령 장자(莊子)의 도척(盜跖)편을 보면,
거죽으로는 공자가 도척을 설득하러 갔다 망신을 당한 이야기지만,
안에 부절(不絶)하니 흐르는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공자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부화(浮華)할 뿐,
현실의 이익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도척의 당당한 논리를 만나게 된다.
그 뾰족한 정점에 양주(楊朱)란 인물이 있다.

설혹 천하를 위하는 일이라 한들,
제 터럭 하나 내놓기를 아끼겠다는 양주야말로,
노장 철학의,
현실세계에서의 실천적 맹주(盟主)이다.
그가 요즘에 나타나면 아마도 처세학의 일인자가 되었을 터다.
그래도 양주는 솔직하고, 당당함이 있다.

명심보감 역시 도도하니 어짐을 노래하고 의기로움을 가르치지만,
이러함인즉 남에게 짐짓 꾸며 자신의 어짐과 의로움을 드러내,
이름과 명예를 사서 하회(下回)를 도모하는 술책으로 번신(翻身)한다.

분절(分節)된 이야기들은 위험하다.
내게 들어와 체화(体化)되지 않고,
그저 허공중에 분분 날아다니는 글발들.
이게 마치 기지촌 가시철망에 걸려진 양공주들의 팬티처럼,
채집을 강요하는 곤충의 몸짓인 양,
허랑하고 때론 처량하게 보인다.

결정적으로,
명심보감이든, 처세술이든,
거기엔 자신의 이야기가 부재하다.

남의 부스러기, 짜투라기들이,
벗어놓은 팬티처럼 너부러져 있다.
마치 읽지도 않은 고전을 다이제스트로 때우려는 허세와 위선.
자기 집에 샘물을 파지 않고 남의 집 물을 훔쳐,
자신의 허기와 목마름을 재우려는 교활, 야비함.
명심보감, 처세술 따위를 대하면,
이들을 구매하고 게트림을 하는 위선들,
그리고 바로 따라오며 오버랩되는 가시철망에 나부끼는 기지촌 창녀들의 팬티들.

나라면,
명심보감을 읽고 때우려니 차라리 일평생 공자 하나만을 읽겠다.
처세술을 탐식하느니 차라리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뛰겠다.

이런 탐식을 중국에서는 탐취(貪嘴)라고 이른다.
嘴는 부리취인데, 탐욕스런 조동아리란 뜻이다.
실제론 게걸스럽다는 동사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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