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고요.'

소요유 : 2011. 12. 5. 12:11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고맙다고요.”

“고맙습니다.”와 “고맙다고요.”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는 주관적, 후자는 객관적 화법이다.
후자는, 기대할 노릇을 벗어나 논할 상대도 되지 않지만,
예대법(禮待法)을 한참 벗어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우선은 자기가 뒤로 숨어 빠져있다.
고맙다고 이르는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관찰하고 있는 주체.

이런 주체는 과연 내심 고마움을 갖고 있음인가?
아니면 고맙다고 말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확인시켜주려는,
과업에 충실한 메신저로서 저 자리에 임하고 있음인가?
여기 마음은 없고 다만 마른 수수깡같은 말만 남아 있다.
거기 빈 벌판, 휑하니 바람만 불고 있다.
그래 그게 어쨌단 말인가?
가만히 있는 사람, 어이하여 소맷자락을 잡아끄는가?
내겐 하나도 가치없는,
속알 빠진 거죽뿐인 제 말을 알리는 것이 그리도 급한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교활하거나, 비겁하거나.

언어는 일차적으로 기호 즉 형식으로 외부에 던져진다.
때문에 속알은 언어만으로 명확히 확인되거나 보증되지 않는다.
형식논리적으로 전자엔 최소한 그 자체만으론 언표(言表)가 부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후자는 형식 체제 안에서도 자기존재의 확인이 위태하니 불안스럽다.

참으로 본데없는 녀석이다.

그래 고작 ‘고맙다고요’라는 토막 말을 전하기 위해 내게 전화를 하였단 말인가?
그것도 형사가 나에게 사과를 하여야 소 취하가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에,
확인 차 전화를 한 것이란다.
그렇다면 전번의 말만의 사과라는 것도 자발적인 의사표시가 아니라,
취하를 받으려는 목적 때문에 온 셈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확인해줄 의무를 지고 있는가?
언제 내가 소 취하해준다고 언질이라도 주었단 말인가?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부채 받으로 온 양,
뜬금없이 확인하려 전화하였다니,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예법인가?

참으로 닦음이 없는 녀석이다.

고맙다고 하려면 지난번 죄송했다고 말길을 트는 것이 순서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젠 안심이라는 생각이겠지만,
자기 마음의 평온을 위해 나를 동원해도 되는가?

저 파렴치(破廉恥)에,

“알았다.”

나는 이 한 마디로 슬라이더를 덮는다.
검은 장막을 치듯.

내가 저자에게 알리지도 않고 우정 생심을 내어 소를 취하한 것은,
녀석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참고 글 : ☞ 2011/11/29 - [농사] - 괴한)
죄목에 따르면 죗값이 적지 않다.
필경 정식으로 재판을 받으면 전과자가 될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업에 차질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위 “인생이 불쌍해서 봐준다.”
이 따위 값싼 동정 때문이 아니다.

다만 더러운 이 상황을 떨쳐 지나기 위해서일 뿐이다.
나를 위해서 일 뿐이란 말이다.

강아지를 구하면,
평생 나를 믿고 따른다.
하지만 검은 머리 짐승은 귀엽다고 어르면 수염을 잡아당기고,
급기야 무릎에 기어올라 오줌을 싼다.

하천배는 스스로 그리 하찮게 대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음이다.
그러하다면 그리 다루어 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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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1. 12. 5. 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