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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小人)

상학(相學) : 2011. 12. 12. 13:17



或曰 賊是小人 何多奸巧,
虛虛子曰 眼目得斜視下視亂視 故主奸狼
<相理衡眞>

어떤 이가 허허자(虛虛子)에 묻는다.
도적들은 소인배이거늘 어찌하여 간사함과 재주가 많은 것입니까?

허허자가 이르신다.
(저들은 사물을)
옆으로 삐딱하니 기울게 보고,
아래로 내리깔고 보며,
이리저리 어지럽게 보는 까닭으로,
저리 간악하고 모지니라.

※ 참고

① 적(賊)
여기서 나는 도적으로 풀어내었으나,
기실 賊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적만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무릇 상해(傷害)를 입히는 것은 모두 賊이다.
현명한 사람을 해치고, 백성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들도 賊이고,
사람을 죽인 살인자도 賊이며,
복숭아 안에 들어 살을 파먹는 벌레도 賊이라 이르는 것이다.

② 사시하시난시(斜視下視亂視)
사시(斜視)란 사물을 바로보지 않고 삐뚜름하니 보는 것을 이른다.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의 첫출발은 정견(正見)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르게 볾은 바르게 앎(正思惟)의 단초인 것이다.
그러하니 바르게 보지 못하면 결코 바르게 알 수 없음이다.
바르게 알 수 없음이니 어찌 정정(正定) 즉 바른 길, 삼매(三昧)에 들 수 있으랴.

하시(下視)란 다른 이(사물)를 대할 때 아래로 내리깔아 무시하는 것을 이른다.
남을 무시한다는 것은 곧 교만하다는 것이다.
교만한 마음은 욕심이란 기름에 꽂힌 심지인 것이라,
제 욕심을 불 질러 질러 남을 이용하고 동원하는데 쉼이 없다.

난시(亂視)는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정처 없이 떠다니기 때문에 일어난다.
악한 일을 하기 때문에 사위(四圍)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혹은 탐심을 일으키는 자는 육합(六合)을 훑어 다니며 남의 것을 빼앗기에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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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12.14 23:07 PERM. MOD/DEL REPLY

    이제 날씨가 제법 겨울티가 납니다.
    한동안 날씨도 뒤죽박죽이라 계절이 어찌 지나가는지 헷갈릴 뿐이지요.
    소인과 소인배는 전혀 그 뜻이 다르겠지요?

  2. 사용자 bongta 2011.12.15 19:52 신고 PERM. MOD/DEL REPLY

    소인과 소인배는 여기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전자는 단수, 후자는 복수일 뿐이지요.
    다만 소인은 키가 작은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지만 소인배는 그렇진 않습니다.
    소인배의 배(輩)는 무리 배이니 류(類), 등(等)에 해당합니다.
    즉 ‘소인 부류들’, ‘소인 따위’를 의미한다고 할 것입니다.
    ‘너는 소인배야’
    이리 규정해버리면,
    그자는 순식간에 일상에서 몰아 통으로 저런 족속들 속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입니다.

    소인에 비해 소인배라 부를 때는,
    일개의 한 인간이 무리 속으로 떨구어지기 때문에,
    타깃의 규정력이 외려 희석되기도 합니다.
    대놓고 소인이라 하는 것보다 소인배라고 하면,
    혼자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과 동시에 당하는 것이니까,
    조금 덜 민망해질런가요?

    소인의 반대는 군자입니다.
    군자와 소인에 대하여는 논어의 이인편에 잘 나옵니다.

    제가 가끔씩 인용하는,

    君子喻於義,小人喻於利。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

    이 구절은 나이 들면서 더욱 절실히 실감하고 있지요.

    그럼 이 구절은 어떠한가요?

    君子懷德,小人懷土;君子懷刑,小人懷惠。
    군자는 가슴 속에 인덕(仁德)을 품지만,
    소인은 가향(家鄉)을 품는다.
    군자는 가슴 속에 법제를 품지만,
    소인은 실리를 품는다.

    여기서 懷土란 자기만의 삶의 터, 입장만을 살피는 것을 뜻하지요.
    자기, 자기 가족, 친척 ....
    현대인의 자기 가족 이기주의가 대표적인 실례가 될 것입니다.
    여기 시골에서도 길가에 개똥처럼 흩뿌려져 있는 텃새의식 역시 매한가지일 것입니다.

    土에 아직도 묶여져 있는 인간상이란,
    프로이드가 말하는 항문기(肛門期)내지는 구순기(口脣期)에서 발달단계가 멈춘 유형들이지요.
    懷德이란 문화를 아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제갈공명이 남만왕(南蠻王) 맹획을 칠종칠금(七縱七擒) 일곱 번 잡았다 일곱 번 풀어줍니다.
    미개한 야만인을 덕화(德化)시키려 함이지요.
    도대체가 얼마나 부끄러운 노릇입니까?
    저 맹획이란 무지렁이 말입니다.
    일곱 차례, 그제서야 부끄러움을 겨우 알아차렸으니 말입니다.
    (물론 여기선 제갈쪽 입장에서 풀었습니다만. 맹획쪽에서 보자면 굴욕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회토의 土는 야만을 뜻합니다.
    덕을 모르니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강아지를 뜬장에 가둬놓고 염천지절에 물 한번 주지 않는 인간들,
    이자들을 어찌 덕화된 사람이라 이르겠습니까?
    그래도 묵묵히 근 2년을 아뭇소리 없이 저 강아지들을 제가 때때로 보살폈습니다만,
    이를 듣고 보고도 깨우침이 없었지요.
    아무려면 한 인간으로서 전혀 부끄럽지도 않았을까요?

    수십 년 평생 농부로서 살아가면서,
    소출 나오는 밭에다 농약병, 비료푸대를 태우는 저들을 어찌 농부라 불러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 농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지요.
    천하의 불한당들인저!

    그러고 보니 懷土에서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땅을 품고 귀히 여긴다는 뜻이 됩니다만,
    여기서는 제 구역, 제 잇속만을 챙긴다는 의미이지요.

    懷刑은 법이니 곧 보편적인 사회질서의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 懷惠는 사사로운 이익, 호혜를 뜻합니다.
    설혹 법을 어기더라도 지들끼리 뒷배를 봐주고 눈감아주는 의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표적인 의식으로,

    ‘좋은 게 좋다.’
    ‘둥글게 살자.’
    ‘우리가 남이가?’

    이 따위 천박한 의식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런 말들을 사용하는 이들을 잘 관찰해보십시오.
    거지반 懷土, 懷惠하는 치들이지요.
    한마디로 小人喻於利인 것이지요.
    멀리해야 할 치들입니다.

  3. 김대성 2016.02.13 21:03 PERM. MOD/DEL REPLY

    제가 한쪽눈이 사시입니다~~ㅎㅎ 육체적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죠~~ㅎ 하지만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bongta 2016.02.14 09:52 신고 PERM MOD/DEL

    본디 形을 두고 運과 命을 논하는 것이 相입니다.
    하늘 별자리를 두고는 象이라 하지요.
    그래 觀相과 觀象은 차이가 있지요.
    여기 블로그에도 여기저기 이런 주제를 가지고 논한 글이 있을 것입니다.
    차제에 이를 정리하여 수일 내 글을 한번 올리고자 합니다.

    '사시(斜視)란 사물을 바로보지 않고 삐뚜름하니 보는 것을 이른다.'

    여기 이 말씀은 그런 형으로, 마음보로 사물을 보는 것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면상불여심상(面相不如心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일행선사라는 분이 배도를 두고 말한 내용입니다.
    원래 배도는 곧 굶어죽을 상이라 이리 예상을 한 것인데,
    나중 배도가 음덕을 많이 쌓아 피해갑니다.
    관상이 빗나가자 일행은 이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칠 척 몸이 일 척 얼굴과 같지 못하며,
    일 척 얼굴이 세 치 코만 못하다.
    세 치 코인들 또한 단 한 점 마음보만 못하니라.
    (七尺之身,不如一尺之面;一尺之面,不如三寸之鼻;
    三寸之鼻,又不如一點之心。)

    제 글을 두고 크게 괘심(掛心)치 마시길 바랍니다.

    병신(病身)
    이 말은 기실 가치 중립적인 말입니다.
    몸이 병들었다는 뜻이니,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내 언젠가는 병신론을 두고 글을 남기려고 하였습니다만,
    혹여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 삼가고 있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할 뿐,
    누구를 두고 폄훼하고자 아는 것이 아닌 바,
    당당합니다만, 급한 일이 아닌즉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다음 말씀을 전합니다.

    ‘마음이 있어도 상이 없으면, 상이 마음을 따라 생기고,
    상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상은 마음을 따라 멸한다.’

    ‘有心無相,相隨心生;有相無心,相隨心滅。’

    감사합니다.

    2016.03.19 23:12 PERM MOD/DEL

    비밀댓글입니다

  4. 사용자 bongta 2016.03.20 17:23 신고 PERM. MOD/DEL REPLY

    여기 티스토리는 비밀글에 비밀 답글을 달 수가 없군요.

    제가 선생님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여 제대로 된 말씀을 드리는데 한계가 있습니다만,
    주신 글의 s.... 귀절을 보자 다음 글을 떠올렸습니다.

    http://bongta.tistory.com/1537

    sound... 이것은 不落因果일 수 있지요.

    그렇다면 不昧因果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참고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정확한 말씀은 아닙니다만,
    혹 참고가 될까 싶어 다음 말씀을 드려봅니다.
    가령 s....를 의식하는 한, uns.... 상태 인식이 기정사실화 되고 맙니다.
    이것은 不落의 세계에 영원히 거하게 되는 결과가 됩니다.
    不昧는 굳이 s....가 되고자 의욕하지 않습니다.
    매이지 않는 상태라야 당당하게 제 모습 여여히 세상을 거닐 수 있습니다.

    자책하실 일이 아니지요.
    나는 나일 뿐인 것을.
    물론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기준을 외부에서 구할 일은 아니지요.
    자중자애.
    자신은 자기가 사랑하는 법.

    http://bongta.tistory.com/1127

    이것도 한번 읽어봐 주세요.
    법당 불상에 백천만번 절해야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성철이 천배 해야 자신을 친견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제가 성철을 만났다면 뺨을 오지게 때려주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소식은 글로 쓸 수 없는 것인데,
    이리 어지럽히고 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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