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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

농사 : 2012. 1. 8. 19:39


얼마 전, 우연히, 
당(唐)나라 문장가 유종원(柳宗元)(773—819)이 지은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이 소개된 글을 읽었다.

고문진보(古文眞寶)란 책에도 나오는 글이지만,
한글판엔 완역이 되어 있지 않다.
농부인 내겐 좋은 참고 자료인즉,
한참 미숙한 처지이지만,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끊어진 글을 덧붙여 번역해둔다.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

郭橐駝,不知始何名。病僂集資,隆然伏行,有類橐駝者,故鄉人號之“駝”。駝聞之曰:“甚善,名我固當。”因舍其名,亦自謂“橐駝”雲。其鄉曰豐樂鄉,在長安西。駝業種樹,凡長安豪富人爲觀遊及賣果者,皆爭迎取養,視駝所種樹,或移徙,無不活,且碩茂、早實以蕃。他植者雖窺伺效慕,莫能如也。
  有問之,對曰:“橐駝非能使木壽且孳也,能順木之天以致其性焉爾。凡植木之性:其本欲舒,其培欲平,其土欲故,其築欲密。既然已,勿動勿慮,去不複顧。其蒔也若子,其置也若棄,則其天者全而其性得矣。故吾不害其長而已,非有能碩茂之也;不抑耗其實而已,非有能早而蕃之也。他植者則不然。根拳而土易,其培之也,若不過焉則不及。苟有能反是者,則又愛之太殷,憂之太勤,旦視而暮撫,已去而複顧。甚者爪其膚以驗其生枯,搖其本以觀其疏密,而木之性日以離矣。雖曰愛之,其實害之;雖曰憂之,其實仇之:故不我若也。吾又何能爲哉!”
  問者曰:“以子之道,移之官理,可乎?”駝曰:“我知種樹而已,理,非吾業也。然吾居鄉,見長人者好煩其令,若甚憐焉,而卒以禍。旦暮吏來呼曰:‘官命促爾耕,勖爾植,督爾獲;早繅而緒,早織而縷;字而幼孩,遂而雞豚。’鳴鼓而聚之,擊木而召之。吾小人綴饔飧以勞吏者,且不得暇,又何以蕃吾生而安吾性耶?故病且怠。若是,則與吾業者,其亦有類乎?”
問者嘻曰:“不亦善夫!吾問養樹,得養人術。”
傳其事以爲官戒也。

(※ 참고 사항
橐駝, 駝, 僂 : 모두 꼽추를 지칭함.
理 : 高宗의 이름 李治를 기휘하여 “治”를 “理”로 적은 것임.
長人者 : 他植者에 빗겨 理 즉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모르는 위정자를 지칭함.)

곽탁타란 사람이 있었다. 그 이름이 어찌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곱사등이 즉 등이 부풀어 오르듯 구부러져 있고 기듯 다니는 탁타(橐駝) 따위를,
고향에선 일러 타(駝) 즉 낙타라 칭한다.
탁타가 이를 듣고는 말한다.

“과시 심히 옳고나, 나를 두고 이름이니 마땅하고도 마땅하고나.”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아예 그대로 쫓아 스스로도 역시 탁타라 불러 일렀다.

그가 사는 향리는 장안 서쪽에 위치한 풍락(豐樂)이다.

탁타는 나무 심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무릇 장안의 부호들은 놀이 구경삼아,
과일 장수는 모두가 다투어 그를 맞이하며,
나무를 기르고, 심는 것을 배우려했다.

그의 경우, 혹 옮겨 심거나 해도 죽는 일이 없으며,
크게 무성하고, 열매도 빨리 열리고 많이 달렸다.
다른 재배자가 비록 이를 엿보고 따라 해도 탁타와 같지 못했다.

혹간 탁타에게 묻는 이가 있을 경우, 탁타는 이리 말해주었다.

“나 탁타는 재주가 뛰어나서 나무를 오래 살고 잘 번식시키는 것이 아니오.
다만 나무의 자연스런 성질에 순응하고 그 본성에 닿아 그르침이 없었을 뿐이오.
무릇 식물의 본성이란, 뿌리는 펴져서 널리 뻗어나가기를 좋아하며,
북을 줄 때는 균일하니 평평한 것을 좋아하오. 또한 흙은 원래 심어져 있던 제 흙을 좋아한다오.
또한 눌러줄 때는 꼭꼭 다져주는 것을 좋아하오. 이게 나무의 자연스런 성품이오.
연후엔 이젠 움직이지도 말고, 굳이 돌볼 필요도 없는 것이니,
염려되어 다시 돌아와 살필 것도 없오이다.

처음 모종을 낼 때는 마치 자식을 기르듯 정성을 다하고,
나중엔 그냥 놔두길 마치 내버린 듯이 해야 하오.
그러면 나무의 본성이 온전하여져,
그 본성대로 최상의 상태를 얻게 되오.
그런고로 나는 그 성장에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아니할 뿐이오.
내게 나무를 크고 번성하게 할 아무런 능력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또한 나는 열매 맺는 일을 더디게 하지 않았을 뿐인 것이오.
내가 열매를 빨리 달리게 하고 많이 달리게 할 능력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를 아니하오.
뿌리는 주먹처럼 뭉치고, 제 흙을 아니 주고 새 흙을 주며,
북돋을 때는 너무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주오.
진실로 나무의 본성을 거스리는 사람은 너무 지나치게 사랑하고 아끼어,
근심하고 바지런을 떨며, 아침에 보고 또 저녁에 돌보고,
갔다가는 또 돌아와 살피오.
심지어는 껍질을 손톱으로 긁어 살았는가 죽었는가를 실험해보고,
나무뿌리를 흔들며 제대로 꽉 박혔는가 허술한가를 알아보오.
그러하니 나무의 본성은 날이면 날마다 그 자리를 잃고 떠나오.

이런즉 비록 사랑한다고 하지만 기실은 해를 끼치는 것이며,
또한 걱정한다고 하지만 실인즉 원수처럼 괴롭히는 형국인 것이오.
고로 나와 다른 바이니, 어찌 내가 특별히 나무 다루는 재주가 있다 하겠소이까?” 

어떤 이가 묻는다.

“당신이 나무를 심는 도리로써, 백성들을 다스리면 어떠하겠소?”

탁타가 말한다.

“나는 다만 나무 심는 것만을 알 뿐이오,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내 일이 아니오.
나는 다만 향리에 살뿐이오.
지방 현령이 그 영을 번다히 즐기면 백성이 심히 애처로워지며,
종국엔 화가 미치오.
아침저녁으로 아졸들이 불러재끼길,
‘관명으로써 밭갈기를 재촉하고,
빨리 심으라 충동이고,
수확을 독촉하고,
누에고치를 켜서 빨리 실을 뽑으라 하고,
빨리 피륙을 짜서 비단을 만들라 하고,
어린 아이에게 자 짓기를 촉구하고(빨리 양육하길 재촉),
양계, 양돈을 독려하듯.’

북을 쳐서 소집하고,
나무를 두들겨 불러댄다오.

우리 같은 보잘 것 없는 백성은 조반을 거두고, 저녁을 미룰 정도로 사역에 시달려
미처 틈을 낼 여유도 없어지오.
그러하니 내가 숨 쉬기도 바쁠 판인데 어찌 백성을 안정시킬 수 있으리오?
한즉 나는 병이 들고 피로에 쌓일 것이오.
내 따위가 이런 정도가 아니리오?”

그러자 물었던 이가 이리 탄식한다.

“아, 역시나 훌륭하시구나!
내가 나무 심는 것을 여쭈었더니,
도리어 사람 기르는 법을 배우게 되었구나.

내 전하노니, 이 일로써 관리들은 거울에 새겨 경계로 삼을진저.”

이글을 대하니,
발묘조장(拔苗助長)이란 고사가 또한 떠오른다.
천하의 농부는 어떻게 하든 헐한 비용을 들여 비싼 값으로 농산물을 받고자 노심초사한다.
그러자니 작물의 특성도 무시하고,
밭에다 농약이나 비료는 물론 좋다하는 미생물이니, 영양제니 하며 각종 자재를 쏟아 붓듯 한다.

거죽으로는 아닌 양 싶지만 따지고 보면,
묘를 손으로 잡아 뽑아 올려놓고는 빨리 자랐다고 좋아하는 어리석은 늙은이나,
거지반 엇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 참고 글 :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기우(杞憂))

나 또한 식물에 대해 깊이 아는 바 없으니,
부지불식 간에 이리 어리석은 짓을 한참 저지르고 있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천하지사 모든 것이 매 한가지이듯,
농사의 길도 그 본성을 따라 충실할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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