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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 유감(遺憾) - 補 (인드라망)

농사 : 2012.02.07 16:14


제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연농업에 대해 궁구하다보니,

번뇌만 깊고, 그 가운데 들어 그저 손짓 발짓 허우적거리는 양 싶습니다.

이런 모습이 깨우치신 분께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사뭇 두렵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 물장구치는 모습이 때로는 귀엽기도 하지 않습니까?

혹 언짢게 여기시는 분도 더러 계시겠지만,

가끔은 재롱 피운다고 여기실 분이 계시리란,

저만의 억측을 하며 글 하나를 지어 올려봅니다.

 

저는 자연농법이 지향하는 본의에 충실하자면,

공덕회향(功德回向)하는 정신을 잃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사실 이 글의 중심 주제어인즉 말미에 다시 언급하려합니다.

 

말씀 잇기 전에 사전 기초(基礎) 하나를 놓아봅니다.

 

인드라망(因陀羅網)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

불교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수미산 남쪽 남섬부주에 속합니다.

사실 불교의 우주관은 인도 고유의 종교 힌두교를 차용한 것이 많습니다.

여기서 얘기 할 제석천(帝釋天)은 힌두교의 인드라의 습합(襲合) 결과입니다.

(* 오늘 인드라망을 설명하자면 도리 없이 수미산을 얘기하여야겠기에 불교를 듭니다만,

혹 종교를 달리하시는 분이 계시더라도 종교적 편견을 드러내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정 종교의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그냥 인도 문화, 철학 일반이라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도 제가 앞으로 얘기 하려는 내용은 불교 자체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영혼의 땅 인도대륙에서 피어난 저 아득 웅혼(雄渾)한 아름다운 이야기일 뿐입니다.)


수미산 꼭대기에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는 궁궐 격인 선견성(善見城)이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임금)인 제석천(帝釋天)이 그 궁궐에 사십니다.

이 제석천은 사방(四方)에 있는 三十二天과 수미산 중턱에 사는

사천왕을 거느리고 불()과 불법(佛法)을 수호합니다.

인드라망은 본디 이 제석천이 사용하는 무기로서,

수많은 보배 구슬이 그물코마다 달려 있습니다.

이 보배 그물을 흔들면 서로 빛을 발하게 되고 이것으로 아수라 군사를 정벌합니다.


그런데 그 그물코에 달려 있는 보주(寶珠)의 하나하나 마다에

각각 다른 낱낱 보주의 영상(影像)을 나타내고,

그 한 보주 안에 나타나는 일체 보주의 영상마다

또 다른 일체 보주의 영상이 나타나서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됩니다.

(* 중중무진(重重無盡) - 거듭 비추길 다 함이 없다. 즉 한없이 되 비춘다란 뜻.)


화엄()에서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논하며

이것을  가 상즉상입(相卽相入)하였다고 말할 때, 전례로서 들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내지는 양자역학과 이 인드라망 사이의 상사(相似, analogy)를 들어,

불교인들이 자존을 건져 올리기도 합니다만,

불교적 우주관이 온존(穩全)히 과학을 포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는 철저히 마음자리를 참구하며 진여(眞如)의 세계를 탐험(explorer)합니다만,

물리 또는 과학이란 철저히 경험의 세계를 가설,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소승(小乘) 소의(所衣) 경전인 구사론(俱舍論)의 정치(精緻)한 원자론은

희랍의 원자론보다 몇 배 더 훌륭하며,

현대 물리학의 보어의 원자구조 못지않게 지극정밀합니다.

그외 유식(唯識), 화엄(華嚴)등의 세계도 실제 현대 물리학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가설체계로 차용되기 하는 등 충분히 놀랍고도 재미있습니다.

칼융의 무의식 연구도 이에 기()하고 있음이니 마냥 경계하는 것도 능사는 아닙니다.


internet에서 url의 앞에 붙여 쓰는 www(world wide web) web이 거미집 아닙니까.

그 거미집 실이 교차하는 하나하나마다

개별 site 내지는 이를 이용하는 사용자가 처()하여 있는 셈이니,

이들은 곧 인드라망의 보주(寶珠)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개별 사용자들이 LINK로 중중무진 서로 상하종횡(上下縱橫)으로 연결되어

가상공간(cyber space)이란 소통(疏通)의 장(, field)을 창출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전에 "선생님과 님"이란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이란 어의(語義)에는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품안겨 있습니다.

한편 ooo씨라 할 때, 씨는 아랫사람에게 쓸 수는 있지만 웃사람에겐 쓸 수 없습니다.

대체로 이 말은 그리 품위 있는 말거래씨는 아닙니다.

""은 시에 등장하듯이 사랑하는 연인의 호칭으로 쓰이곤 합니다.

""은 인터넷 용어로는 제법 무난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에 참여한 사람들은 남녀노소부귀귀천 불문하고 하나의 단독자(憺者)로 임()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선 주체적 자아"를 단독자라 불렀습니다만,

저는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은 신이 아닌,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주체적 자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독자들이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고 타자(他者)와 소통할 때라야

투명하게 비추고, 비추이는 인드라망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터넷은 종교, 철학, 사상, 인종 등 일체의 차별적 장애를 초월하여

..............이란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소 무기미(無氣味) ""이 적절해 보이는 것이지요.

님이란 말은 원래는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애틋한 정을 상기시킵니다만,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님은 이젠 그런 정은 거세(去勢)된 느낌입니다.

공식적인 존재 인식 외에 별다른 인간적인 깊은 정감을 자아내지는 않습니다.

인드라망 그물코에 꿰인 그 보주와 같은 단독자를 보주라 부르면 어떨까?

ooo보주?

좀 어울리지 않는군요.

그러나 상대를 보주(寶珠)처럼 대할 만은 하다는 생각입니다.

함께 인드라망을 만들어 가는 귀한 존재들이니까요.


우리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집회를 할 때, 바로 인드라망의 체현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든 촛불 꽃이 함께 모인 군중들 낱낱 상대의 눈에 어리고,

그 눈을 마주한 눈들은 각각의 눈에 물든 촛불 꽃을 중중무진 이어 비추게 됩니다.


사실은 인드라망 자체가 구속이기도 합니다.

그 그물망을 찢고 절대자유의 세계로 나아가는 해탈의 세계,

그리고 web 이란 그물에 걸려 파닥이는 나비와 같은 현대인들....

실은 언젠가 언급한 동산양개(洞山良价)의 화두가 겨냥하는 과녁은

이쯤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생을 펼쳐놓고 가두고 조이며 궁박(窮迫)하는 이 잔인한 그물 구도(構圖).

이게 정작 실상입니다만, 오늘의 주제와는 궤를 달리 하기에

이런 측면에 대한 말씀, 지금은 거르기로 합니다.

(* 이글은 일부 제 묵은 글을 끌어들이기도 하였습니다. )

 

***

 

저는 자연농업은 바로 이런 세계에 대한 인식구조 하에서 출발하였으면 합니다.

 

토양 속에서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을엔 낙엽을 떨구어 다시 미생물에게 돌려줍니다.

인간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부축이고 도와주며,

가을엔 보답으로 열매를 거두어드립니다.

 

이리 중중무진(重重無盡),

서로 얽혀 다함이 없이 돌아드는 세상,

실상이 과연 그러하냐 아니냐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리 인식하면 세상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평온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타자를 향해 사랑의 빛을 던져줄 수 있고,

책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현대의 잔혹한 축산업은 사실 이런 정신이 실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실상을 사무치게 꿰어 깨우치고는 12 년 전 어느 날,

바로 육고기를 끊고, 그날 이래 오늘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해마다 괴질이 그치지 않고 발생합니다.

자연농업 역시 뜻은 높고 고상하나,

일각에선 욕심이 앞서 삐끗 다른 길로 접어든 이들이 목격되어 걱정이 앞섭니다.

 

도성구우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만,

최근에 그와 관련된 글을 얼추 다 읽은 폭입니다.

그의 열정과 구도정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이런 분들과 교우하는 정겨운 꿈을 꾸기도 합니다.

마치 화엄경에 등장하는 선재동자처럼,

순진무구하고, 가림 없는 구도자의 풍모를 그분에게서 느꼈습니다.

 

제가 먼젓번 글에서 주제넘게도 그가 던진 말의 껍데기를 주어들고,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만, 이는 결단코 그의 인격을 대향한 것이 아니라,

우정 어린 걱정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그의 닉 도성구우는 짐작컨대 道成救宇일 것입니다.

도를 이루고 우주, 즉 세상을 구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자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떠올립니다.

십우도(十牛圖)에도 보면 열 번 째 마지막 단계가 입전수수(入廛垂手)가 아닙니까?

입전수수에서 전()은 곧 집시(集市)이니 장터쯤 됩니다.

거기 손을 드리었다는 것이니,

깨우친 바 모든 것을 중생과 함께 반본환원(返本還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원효가 호리박 술병 옆구리에 차고는 서라벌 장바닥을 누비며 노래를 부릅니다.

이 정경이 아스라하니 의식에 떠오르며 온 빛이 누리에 가득 비추입니다. 

도성구우인 역시나 이런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계셨으라 여겨집니다.

사뭇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에 대해 이리 생각합니다.

, .

이렇듯 여기에 나타나는 인식구조, 실천형식은 수직적입니다.

보리(菩提) 즉 지혜는 위에 있고,

공덕(功德)은 낮추어 아래로 펴는 식이지요.

물론 문자 그대로 풀이하는 것은 약간의 억지가 따릅니다만,

저는 여기에서는 다만 형식논리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요게 약간 저로서는 꺼림칙하니 거슬립니다.

 

왜냐하면 인드라망 구조에선 상하, 좌우의 위계적 질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선 상하(上下), 주객(主客) 이리 나뉘어져 있지 않고 모두 평등한 주체일 뿐입니다. 

객체가 사라진 마당 뜨락 안에선 모두가 주인입니다. 

언젠가 노태우가 나서서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외쳤습니다. 

가당치 않은 짓이지요. 

모두가 특별한 사람이 될 때라야 모두는 저마다 귀하고 주인답게 살 수 있습니다. 

저마다 특별한 사람들이 이루는 세상은,

그제서야 보통, 즉 보편적이고 평등한 세상이 되지요.

저이는 이 앞 뒤를 바꾸고, 결과를 꾸어다 그저 정치적 선전, 아니 선동을 한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머리를 돌려 잡고 잇습니다.

하지만 저기에서는,

내가 도를 이룬 다음에 남에게 편다는 식의 공간적 위계, 시간적 질서에 갇혀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대신 공덕회향(功德回向)이란 의미 구조가 더 적실하니 마음에 와 닿습니다.

공덕을 이룬 다음 누구에게라도 돌리는 덕성.

(* 공덕 : , 지혜, 덕행 따위를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입니다.)

이것은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지요.

마치 인드라망의 network node 즉 망점(網點)들의 상호 관계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인터넷이란 망 위에 노닐 때,

각자는 망점을 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망점들은 다른 망점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빛을 비추고 되비추이는,

즉 회광반조(廻光返照)하는 수평적, 평등 관계입니다.

 

저는 자연농업 역시 인간이 식물을 착취하는 구조가 아니라,

상보적(相補的)인 모습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땅 속에선 미생물이 열심히 유기물을 분해하여 식물을 돕고,

하늘에선 빛과 비가 내려 대지와 식물 그리고 인간을 어루만지십니다.

 

이러함이니,

어찌 과정은 돌보지 않고 그저 양적인 소출이 많다고 마냥 좋아할 수 있음입니까?

 

저 소출이 그들이 감내할만한 수준을 넘어서도록 쥐어짜내진 것이라면,

저것은 회광반조(廻光返照)가 아니라,

인광직조(引光直照)이니 곧 빛을 내게 끌어들여 나만 비추이게 하는 것이니,

나머지는 모두 만년 어둠, 차가운 얼음짱 속에서 떨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니 종국엔 그 기반까지 얼어붙어 인간 자신도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자연농업이 저는 천지자연이 모두 평등하니 참여하여,

광명변조(光明遍照),

즉 빛이 두루 차별 없이 누리를 비추이는 그런 지경으로 나아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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