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괴한

농사 : 2011. 11. 29. 00:41


나는 그제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와 어제는 농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밖에 나가 일을 하려도 비가 와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신 방에 들어앉아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벼락총 소리가 난다.
(나중에 확인하니 3m 높이의 하우스 철문을 단번에 열어 재끼는 소리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가만히 멈추어 귀를 기우렸다.
그러자 잠깐새 느닷없이 방문이 열리며 괴한 하나가 침입했다.

괴한은 맨 발로 들어서서는 숭어 뜀을 뛰듯 내게 쉼 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그 형용을 보자하니 마치 선불 맞은 멧돼지 꼬락서니요,
염라나졸에게 쫓기는 붉은 귀신 짝이다.

처변불경(處變不驚)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나도 모르게 공부가 한참 무르익었는가 보다.
괴한이 방안까지 쳐들어 왔는데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렇듯 담담하니 대하고 있을 뿐이로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객손 맞듯 그를 대하자니
조그마한 이 하나가 허우적 허우적 연신 삿대질을 하며 제법 열심히(?) 말숨을 토해낸다.
가만히 들어보니 내뱉는 말마다 요령부득이요,
다 토막 쳐진 말의 파편들이 공중제비를 돌며 쫓기듯 흩어질 뿐이다.

“여기 찾아온 용건이 무엇이냐?”

이리 물었지만,
그 검붉은 괴한은 여전히 횡설수설, 중언부언이다.

“밝은 날 맑은 정신 추려 갖고 다시 오라”

내가 이리 타이르자 이 조그마한 괴한은 이젠 내 멱살을 거머쥐며 대든다.
그자는 조금 술에 취한 상태다.
원래 술에 취한 상대는 제 아무리 힘이 세고, 싸움 기술이 좋아도 별거 아니다.
왜인가?
술에 취하면 상기(上氣)되어 상단전에 허열만 그득 차올라 손짓만 허우적거릴 뿐,
하단전 이하는 그저 흉내만 내어 허공 줄에 매달린 다리만 남은 허깨비인 것,
이 때 외로 비껴 피하며 그저 슬쩍 딴죽만 걸어도,
중심이 무너지며 제 아무리 거한도 그대로 쓰러져버린다.
게다가 이자는 이미 상단전을 넘어 백회혈 밖으로 기가 막 빠져나가고 있는 형편무인지경이었다.
원래 무가(武家)에서는 이런 경우 세인들이 속칭으로 부르는 관자놀이,
즉 태양혈(太陽穴)을 그저 슬쩍 점혈(點穴)만 하여도 능히 제압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내가 총망중에 이리 놀며 무협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고 있음을 저자는 미처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자는 아귀 힘도 별로인지 손을 잡아 막자마자 절로 풀어져버린다.

일순(一巡), 이순(二巡) ...
이자의 질척이는 말들은
마치, 하수도 밑구멍으로 구정물 빠지듯 연신 맴돌이를 하는 양,
혹은, 밑터진 계집 설사를 하는 듯,
그저 속절없이 지속될 뿐이다.

이 괴한은 농원 아래에 사는 박씨 성을 가진 인간이다.
조금 있다가 그 옆에 사는 노가다 황씨 부부가 벌건 낯색을 하고 나타났다.
머뭇거리다 일응 말리는 시늉을 하는 듯싶은데,
내가 점잖게 핸드폰을 꺼내 112에 신고를 하자,
어느 틈에 이들은 철솥에 든 콩자반 튀듯,
급히 20여 미터를 되물러나 농원 밖 도로로 피하여 서서 있다.
아니 이것은 추길피흉(趨吉避凶)을 하였다는 듯,
이젠 제법 안심이라는 표정이 아닌가?

돌 들어내자 흩어지는 가재 새끼들처럼,
저들이 저리 재빠르게 피하여 있는데,
이 철모르는 화상은 화택(火宅)에 갇힌줄도 모르고,
돌틈에 낀 채 꺼익꺼익 소리만 지르고 있다.
가련토다.
저 불쌍한 영혼이여.

그 와중에도 저 멀리 이들의 모용(貌容)을 언뜻 훑어보니 대충 사정이 집힌다.
비도 오겠다 일을 쉴 수밖에,
노가다 하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술추렴을 하고 있었으리라.

내 학생시절 끼리끼리 함께 모여 술을 먹는다.
젊은 혈기에 1차, 2차, 3차로 술자리가 이어지고,
급기야는 바가지까지 쓰고 셈 치룰 돈이 모자랄 경우도 생긴다.
내가 늘 말하지 않던가?
사람은 비상한 때라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햇볕 따스하고 바람 잔잔할 때는 어깨동무하고 히히닥거리며 사이좋게 지내지만,
막상 비바람 몰아치고 위기가 닥치면 친구 내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간다.

이리 낭패스런 상황인데,
같이 모여 술 먹던 이들 중 약삭빠른 놈은 화장실 간다고 나가더니만 감감 무소식.
이미 줄행랑을 친지 오래다.
사람 됨됨은 이 때라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
그러하기에 사람 사이의 사귐은 비상한 때라야 명명 밝히우고 찰찰 굳어진다.

나는 이 분란 중에도,
찰나간 저들의 정모(情貌)가 전광석화처럼 읽히운다.
궂은 날 모여 한 때나마,
삶의 인고(忍苦), 등에 지고 머리에 인 찌든 때를,
술로서 달래고 있을지라도,
(기실 나를 안주 삼아 놀았을 것임이라. 감히 주제를 모르는 화상들.)
총중(叢中)은,
처(處)로써 정(情)을 돋우며,
시(時)로써 언약을 짓는 것임이라.

그날 앉은 자리에 설혹 벼락이 내리 떨어진다한들 함께 동사(同死)를 할지언정,
제 혼자 살겠다고 남을 버리고 제 명(命) 하나만을 어찌 차리겠는가?
비록 술 한 잔 앞에 두었을지언정 동심결(同心結) 결듯 굳게 맺어지는 것.
이 때 술은 바로 준엄한 언약의 증명법사(證明法師)인 게라.
나는 친구는 그리 사귀어야 한다고 배웠음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먹이 보자 우르르 달겨들며 모이고,
천둥벼락 치자 와장창 자리 깨고 흩어지는 갈가마귀 떼에 다름 아닌 것.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저 제 비윗장 맞춰 깨춤 추는 짓거리에 불과한 것.
이런 자와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것.
나는 그리 배웠음이다.

그러한데 하나는 흡사 비 맞은 중이 되어 인사불성인데,
하나는 저 멀리 물러나 안전하니 비를 긋고 있음인 것이라.
아, 우리네 인정은 새털을 앞에 두고도 이리도 가벼워 부끄럽구나.

기실 나도 사내이고 장부인데,
어찌 저들의 애환을 모르랴?
설혹 나를 두고 씹고 흉보았다한들,
틈이라도 난다면 나도 한자리 끼어 나 역시 거기 동참할 수 있겠음이다.
술상 앞에 두고 옥황상제인들 꾸짖지 못하랴?
얼마든지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임을.

원효가 호리병 허리에 꿰차고,
호음쾌소(豪飮快笑)하며,
서라벌 저잣거리를 누비던 심정을 내가 어찌 모를쏜가?
그러하기에 진실로 이르노니,
나는 천 사백 년 세월의 벽을 넘어,
여기 전곡 마을에 노니는 재림한 원효성사(元曉聖師)인 것임이라.
하마, 아는가?
그대 촌것들은?

만약 그 때 황이 박을 구하여(?) 데리고 나갔다면,
필시 소(訴) 당하는 것은 면하였을 것이다.
이게 술자리를 같이 한 사람의 예법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이게 어찌 술자리 뿐이랴.
의리(義理)는 그래서 중한 것임이라.

이게 마음밭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
그저 피차 책임지지 않는 막연한 말 품을 팔고, 사는 관계만 지속될 뿐인 것을.
나라면 이런 관계는 사양하고 싶다.
절해고도에 떨어져 혼자 살지언정,
이런 관계는 다 부질없고 번뇌만 더할 뿐인 것을. 

내가 저 조그마한 괴한에게 이르길 내 집에서 물러나라 수차례 요구하였는데도,
이자는 나가지 못하겠다고 어깃장을 부린다.
이러면 주거침입죄에 퇴거불응죄가 보태어지는 것을 저자는 필시 모를 것이다.
얼마 후 경찰 둘이 도착했다.
괴한이 방안에 들어와 떠드는 모습을 절로 보이게 되었으니,
내가 입증을 하여야 할 수고를 덜었다.

경찰서에 갔다.
나는 그저 의율(擬律) 처리해줄 것을 저들에게 청한다.
그러자 조서를 꾸며야 한다고 한다.
한쪽 구석에선 저자의 거짓으로 꾸며낸 발명(發明)이,
모가지 비틀린 닭새끼 소리인 양 지속되는데,
마침 거기 계신 책임자 한 분이 이미 사태를 꿰고,
조리 있게 추궁하며 졸가리를 세우고 가지런히 정황을 바로 맞춰놓는다.
노련하고 지혜로운 분을 만나 고맙다.
그 분은 이르시길 조만간 농장을 방문하시겠단다.
시골 인심의 험함을 아시고, 우정 격려해주실 요량이신 것이다.

이것으로 끝이다.
조서를 꾸미는 동안 저자가 혹 사과를 해오며 내게 용서를 빌까 싶기도 했다.
나는 참으로 정도 깊고 오지랖도 넓구나.
그런데 이게 내가 걱정할 일인가?

기실 소(訴)가 정식으로 제기되면,
까딱하다가는 사정을 모르는 이는 나만 모질다고 탓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저자는 연신 염치없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
내가 거꾸로 자신을 내 방으로 잡아 끌고 들어갔다고 고변을 하고 있다.
소장 작성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저자는 저리 스스로의 묘혈을 사뭇 진지하게도 파고 있음이다.
진실로 겨울 벌판을 헤매는 작은 새처럼 가련한 화상인 게라.

그러하다면 도리 없는 것.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고 스스로 자청하여 저리 미련을 떨고 있다.

***

하루 지난 오늘,
어제 괴한이었다가,
오늘 박씨 성 가까스로 되찾은 이가 찾아왔다.

찾아온 것만 하여도 다행이다.
그래도 인사는 조금이라도 차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니까.

이제야 사정을 들어보니,
그자가 쓰레기 태우는 것을 보고 내가 신고를 하였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는 마침 내가 그 당시 글 하나를 올려둔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11/10/03 - [소요유] - 재(灰))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저자도 드럼통에다 불을 내고 있었다.
다가가니 이미 다 태워가는 중이라 무엇을 태웠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내가 문제의 인간을 확인하고 오는 중이라 이르며,
그자에게 지나가는 소리로 비닐 따위는 태우면 아니 된다는 소리를 한 적은 있다.
그저 일반론적이 말이었을 뿐,
그자가 지금 태우고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는 참고 글을 다시 읽어보아도 명명백백하다.

그런데 이자는 오늘 말하길 당시 자기 보고 비닐을 태웠다고 지적하였다고 한다.
아니 내가 아무려면 현장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닐을 태었다고 적시할까?
나 그리 미련한 사람 아니거든.
그리고 그리하였다면 그 당시 내게 따지지,
비겁하게 술을 먹고 이리 행패를 부릴 수 있음인가?

게다가,
자신이 불태운 것을 빌미로 내가 신고하였기 때문에,
이웃 보기 미안하였다 한다.
이리 바다처럼 마음보가 넓고,
강처럼 정이 넘치시는 분이다.
그런데 나는 이웃이 아닌가?
그래서 내게 야료를 부렸단 말인가?
이 얼마나 용렬한 작태인가?
백번 양보하여 내가 설혹 신고를 하였다한들,
맑은 정신으로 자초지종을 말하며 내게 섭섭하다고 대들려면 대들 것이지,
젊은 것이 한 세대를 훌쩍 넘은 내게 욕설을 퍼붓고,
칼침 맞는다는 협박을 할 수 있음인가?

게다가 단속을 당해 자신이 벌금을 물은 것도 아니다.
아니 당국에 바로 확인해보니 단속 자체가 부재하다.
이 작자가 조그마한 동네에서 양아치 판관 노릇 다 해먹겠다고 설치는 격이 아닌가 말이다.

만약 그나마 오늘 내게 와서 거죽이나마 잘못하였다고 고하였으니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모욕죄로 한건 더 고소를 할 수도 있었음을 저자는 모를 것이다.
게다가 저자가 돌아가자 내가 소(訴)를 취하하려고,
우정 경찰서에 연락까지 하였음을 저자가 어찌 알 수가 있으랴.
그런데 담당 형사가 이미 퇴근하였다고 한다.
명일 오후 6시에 출근한다고 하니 공교롭게도 야간 근무조인가 보다.
그 때면 이미 소장이 넘어가지 않았을까 싶은데,
제 명운이 그리하다면 이 또한 제 업보일 터.

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일, 궂은 일, 험한 일을 겪는다.
그러함에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비참한 구렁텅이에 스스로 던져넣지는 말아야 한다.
이걸 지키지 못하면 필경은 비굴해지거나, 스스로 지른 불에 크게 다치게 된다.

하여간 어쨌건 다시 앞선 말을 마저 잇는다.
그 뿐인가,
박은 예전 우물사건의 할머니를 끔찍이도 위한다.
시골 사는 나이 많은 분하고 둥글게 살라고 내게 이른다.
나이도 한참 어린 자가 제 아무리 의견이 있다한들 조신하니 사리는 염치가 없는 저들.
이게 내 눈에 한참 미욱하게 보이나 내가 나서 가르칠 입장이 아니니 그냥 버.린.다.
어림없는 소리.
나는 둥글게가 아니라 바르게 살 뿐인 것을.
시골 먼저 산 것이 뭐 대단한 벼슬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이라.
저 촌 무지렁이의 그른 짓거리에 굽신거리며 비위 맞추는 것이 그래 둥글게 사는 것이냐?
이런 썩은 정신상태의 위인들이 일제시대라면 족발이에게 넋 건네 엿 바꿔먹고는,
나라 팔아먹고 이웃을 팔아먹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하니 진실로 말하거니와,
정작은 나야말로 언제나 이웃을 위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지사(志士)인 게다.

멀쩡한 시골 하늘을 비닐 태워 능욕하는 저들을 감싸안는 저들이야말로,
둥근 하늘을 이즈러지게 하는 패악질이 아니던가?
제 탐욕으로 인간된 도리를 저버리고, 향리의 훈향을 어지럽히는 저이들이야말로,
비뚤어지고 모난 위인들이 아니겠는가?

아니 내가 그동안 20년 동안 무료로 그 너른 땅을 빌려주고,
만날 때마다 저 끝없는 욕심에 치여 스트레스 받아가며 참고 참으며,
일마다 양보한 것도 모자라,
또 무엇을 양보하여야 한단 말인가?
서울 사람이 봉인가?
얼빠진 허재비인가?

은혜를 베푼 쪽은 내 쪽,
그러한 것인즉 방치된 우물물 그것도 동네 공동우물을 두고 치부를 도모하는 것도 아니고,
저리 욕심이 목구멍을 넘어 쏟아져 나오는 저 할머니가 옳은가?

내가 오늘 박에게 이르길,

“자네가 젊고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저 할머니를 그리 챙길 것이 아니라,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 70만원 받아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매년 50만원을 챙기겠다고 대드는 것이 경우에 옳다고 생각하는가?”
(※ 참고 글 : ☞ 2011/05/12 - [농사] - 급수공덕(汲水功德) - (2))

이러하자 이에는 일언반구 대꾸도 못하는 것이,
그러지 않아도 좋게 주선을 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말이 반지르하니 윤이 난다.
그러던 이가 내가 할머니 아들 면장과 접촉한 것을 두고는 왜 그리 탐탁지 않게  반응하였음인가?
더하여 나이드신 분 거스리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음인가?
젊은 것이 늙은이를 향한 사모의 정이 사뭇 차고 넘친다.

저 할머니 똥구멍에 달콤한 꿀이라도 발라져 있음인가?
저 집 다락에 꿀단지라도 숨겨져 있는가?
솥뚜껑 꼭지에 작년 그러께에 붙여두었던 조청이라도 아직 남아 있단 말인가?

박이 어제 중언부언 하던 말 중엔,
내가 디카 들고 사진 박는 것까지 헐뜯더라.
여기서는 자신의 농장 사진 찍는 것도 눈치 보아야 하는가?
게다가 내가 다녔던 대학교, 정치인 선배까지 아우르며 들까불고,
어느날 불한당 하나가 우리 농원 울타리 부순 것 저한테 말한 것도 불만이란다.
이들은 구차하니 이리도 자격지심이 자심하다.
용렬하다.
도시 부끄러움을 모르는 위인이 아닌가 말이다.
십오륙세 철부지도 아니고,
그 나이 먹도록 도대체 어찌 몸가축 건사하고 살아왔음인가?

당시 우물 공사는 저들 황, 박에게 맡겼었다.
황이 주장(主掌)이었는데,
나중에 저들이 내게 털어논 사연을 합치니,
황은 내가 치른 노임도 박에게는 온전히 다 넘기지 않았음이라.
어련들 할라고.

물이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촌것들이라면 나보다 더 잘아는 이치 아니던가?
항차 지들이 우물 공사까지 맡았을진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면,
기대조차 하지 않지만,
우정 찾아와 걱정은 못해줄망정,
거꾸로 내게 양보하라고 주문할 수 있음인가?
내가 의뢰한 것이지만,
어쨌건 우물 공사 덕분에 저들이 곁에서 조그마하나마 이를 얻지 않았음인가?
도대체가 염치가 실종되었다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모두 천하에 불한당 같은 작자임이라.

어쨌건 우물 사건만 다시 꺼내면,
저 패악질에 그저 부아만 솟는다.

내가 저 박으로부터 말을 듣고는,
그가 돌아가자 군청 청소 담당에게 바로 확인 전화를 걸었다.
여기 괴한 하나가 내 집에 뛰어들어 주장하길 단속 요원이 다녀갔다는데,
과연 그러한가 하고 물었다.
그는 말하길 그의 집 일대는 금년은커녕 수년래 단속한 적이 없다고 이른다.

내가 나이면서 내가 한 일을 모를텐가?
신고한 적이 없는데도 저들은 어찌 그리 믿고 있음인가?
저기에도 저 우물 사건의 주역인 저 할머니가 끼어 있다.
박은 말하길, 저 할머니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코뚜레에 무엇이 꿰었음이며,
넋줄을 누구에게 빼앗겼기에
젊은이가 저 할머니 농간에 저리도 끌려다니는 것일까나?

그리고 백 번, 천 번 양보하여,
내가 설혹 신고를 하였다 한들,
젊은 것이 저리 인사불성이 되어 지지하 삼류 양아치 짓을 할 수 있음인가?
만약 비닐을 태웠으면 이 또한 부끄러운 짓거리임이 틀림없을 터이며,
아니라면 무사할 일인 것이라.
설혹 서리서리 가슴 속에 앙심을 품을지언정,
부끄러움 팽개치고 백주 대낮에 저 부끄러운 짓을 차마 저지를 수가 있을 터인가?
내 지인 하나는 이 이야기를 듣더니만 단호히 말한다.
저자는 정신병자인 게다.
행여 중학생이라도 저리 철없는 짓을 저지를 수 있음인가?
차라리 저 지경이라면 미련한 것임이라 할 터.

노가다 바닥에서 배운 한참 허름한 버릇으로,
감히 내게 덤빈 것임이로다.
똥푸는 대장군 메고, 지게 작대기 들고서는 내가 거하는 꽃밭에 든 격이니,
저런 천하에 불상것, 천한 것이 어디에 있음이더냐?
그야말로 장공(莊公) 행차에 당랑거철(螳螂拒轍)임이라,
제 주제도 모르는 벌건 핏덩이 바로 적육단(赤肉團)인 게로.
저들이 감히 어찌 진인(眞人)을 알아보랴.

시골인심이라는 것이 이리도 험하고 낯설다.
저 고약함이라니 과시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 사갈(蛇蝎, 뱀과 전갈)을 방불하고 있음이고뇨.
내 평생 상대거리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여기 시골에 들어와 몰아서 겪고 있음이다.
참으로 나는 복도 많다.
일상마다 저들 무뢰배, 불한당, 무지렁이들의 활극을 거저 공으로 보고 있지 않음인가 말이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인저.
운문(雲門)은 이리로 내려와,
도를 다시 닦아야 할 것임이라.
여기야 말로 불도(佛道)를 일굴 길음(吉音)의 땅, 복전(福田)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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