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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공사

농사 : 2011. 10. 29. 10:14


수도 검침원이 이르길 누수가 염려된다고 한다.
짐작되는 곳은 4군데.
두 군데는 비교적 검사가 용이하나 나머지 두 군데는 개착공사를 벌여야 할 판이다.
우선 쉬운 곳부터 점검해본다.
두 군데 모두 이상 없다.

도리 없이 땅을 파기로 한다.
제일 가능성이 많은 곳을 골라 땅을 파보았으나 이상이 없다.
결국 남은 한 곳마저 파보기로 한다.

수도관은 동결심도(凍結深度)이하 깊이로 묻는다.
그러하니 이게 파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애초 개설공사시 내 주도하에 일이 진행되었기에,
지하 매설 위치라든가 관로 분기 구조 따위는 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다.
내가 직접 나서서 일을 하자니,
지나던 동네 분이 땅구덩이로 고개를 내리 숙이고는 무슨 일을 하느냐 묻는다.
수도 공사를 한다고 하니 땅이 파헤쳐져 있기에 무슨 커다란 입간판을 세우는지 알았다 한다.

내가 땅을 파자하니 이리저리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이젠 땅 표면뿐이 아니고 지하까지 두루두루 내가 직접 모두 겪은 셈이다.
지표면은 그야말로 오체투지하듯 기어 다니며,
땅을 고르고, 식재구(植栽口) 작업을 하고, 작물을 심었다.
게다가 빌려주었던 이가 남긴 폐비닐 따위의 오물도 얼추 다 주어내었다.
이번에 땅 속 깊이까지 파보게 되었으니,
이제 비로소 우리 땅의 내막을 온전히 엿볼 수 있게 된 폭이다.
이로서 나는 농부로서의 기본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 또한 고마운 노릇이다.

우리 어렸을 적엔 수도공사시 땅을 팔 때,
굴삭기 등의 장비 없이 인부들이 삽으로 직접 팠다.
나는 우리 집에 수도가 들어올 때 이를 직접 목격하였던 기억이 있다.
땅 전체를 개착하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기다랗게 판 이후,
인접 구덩이 맨 밑을 파이프 따위로 뚫어 서로 연결하였다.
그 노고가 오죽하였을까나 이제 와서 이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는 기계의 힘이 아니라 내 육신을 빌어 땅의 영혼과 교감한다.
땅의 신비, 자모(慈母)의 덕을 느껴보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농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구덩이를 파보니 과연 물이 파이프 관 옆으로 새어나온다.
연결부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그동안 배수관로 설치라든가, 펌프 설치에 이골이 나서,
이젠 거의 준전문가 수준에 올랐다.
저 부분은 처음에 무엇도 모르고 저리 배관하였으나,
이제라면 저보다는 한결 간편하고 튼튼한 방식으로 해결하였을 것이다.
체결구를 풀고 보니 패킹용 가느다란 고무링이 압착되어 끊어져 있다.
새 고무링을 다시 끼우고 슬쩍 조여주니 물이 새지 않는다.

(PE관 체결법 : 우측처럼 2~3 바퀴 남겨둔 채 멈춰야 한다.)

문제는 연결 캡을 너무 많이 조여 주었던데 있다.
연결 캡은 무조건 많이 조여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대략 2~3바퀴 정도는 여유 있게 남겨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온전히 조이게 되면 고무링이 압착되어 나중엔 결국 끊어지게 된다.
이런 것을 모르고 나사가 조여진다고 끝까지 조였던 게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초보자의 한계인 것.
모르면 바보, 아는 이를 당할 수 없는 것.
그러하니 배움엔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땅 파는 것도 재미가 있다.
여름이라면 땀 깨나 흘렸을 터인데,
요즘 날씨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다.

한 삽 두 삽 떠내며,
땅의 기억을 엿본다.
개착구 일대는 과거 농원 앞 군부대 면회객들이 드나들던 곳이라,
가끔씩 쓰레기가 나온다.
이들을 하나하나 주어내며 저들의 몰염치를 말끔히 훔쳐낸다.
땅도 이번에 기분이 한결 개운해졌을 것이다.

도도처처 쓰레기를 버리는 인간들.
도대체가 땅을 홀대하고서야 어찌 농부 노릇을 할 수 있겠음인가?
차창 밖으로 예사롭게 담배꽁초, 휴지를 버리는 무뢰배들,
온 국토를 더럽히는 저들 시민들은 또한 어찌할 것인가?

개착공사후,
땅을 다시 덮을 때는 몇 가지 조치를 해두었다.
우선 배관이 지나는 곳에 마사토를 부려 토압을 고루 분산시켰다.
제흙보다 모래는 사뭇 지반을 안정적으로 고정시킨다.

구덩이 부근은 마침 지표상 물길이 나는 곳이라,
이번 참에 이 지점을 배수구역으로 설정하여 지하로 물을 뽑아내기로 하였다.
구덩이 상단 부분에 마사토를 두툼하니 덮어 물이 지표로 흐르지 않고,
직하 토양 속으로 스며들도록 조치해보았다.
이는 나만의 고안이니 나중에 성공하면 그 방법을 자세히 밝히고 널리 알릴 예정이다.

얼마 전 조경 기술사로부터 물길 잡는 몇 가지 방법을 알아두었는데,
그 분이 일러준 떼수로 방식은 그럴 듯하나,
통행 길을 확보하기 위해선 그릴 등의 추가 시설이 필요하다.
이는 여기 여건상 조금 품이 드는 고로,
우선은 이를 응용하여 은폐형으로 내가 새로 고안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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