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농사 : 2011.08.28 16:27


연 3일 간에 걸쳐 농원에 목책(木柵)을 두르다.

예초를 하여야 하는데 주문한 예초기 날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 덕에 간만에 짬이 나다.
여기 시골에서 사귄 지인이 진작 가져다 준 나무를 활용하여,
농원 둘레를 돌아가며 울타리를 치기로 한다.

말뚝을 땅에 박는 것이 조금 힘이 든다.
땅이 무른 곳은 말뚝이 잘 들어가지만 흔들리기 십상이고,
아니 그러한 곳은 오함마로 예닐곱 번 이상 때려 박아야 겨우 들어간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야간 안전을 위하여,
군데군데 반사판을 설치하였다.

이참에 후문 쪽에 주차장을 조그맣게 하나 더 만들어두었다.
쇠사슬을 둘러놓았는데,
어떤 인간이 두어 번 훼손시켜놓았다.
짐작되는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나,
마침 CCTV를 꺼두었기에 확인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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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08.29 05:43 PERM. MOD/DEL REPLY

    농원이 굉장히 너른가 봅니다.
    목책을 두른 모양새가 예사 솜씨가 아닙니다.
    파란 싹으로 덮인 밭고랑이 무척 상큼합니다.

  2. bongta 2011.08.29 10:18 PERM. MOD/DEL REPLY

    방초(防草) 목적으로 대개는 부직포 따위로 멀칭을 하지만,
    저는 풀을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둡니다.
    다만 너무 번무(繁蕪)하여 작물이 치일 정도가 되면,
    예초를 하여 적절히 다스립니다.
    이게 힘이 들고 어렵지만 일단은 이리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여 후일 방초포를 덮을 때에 이르르면,
    그 때는 제가 힘이 부쳐 감당이 아니 될 때가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제 처는 방초포를 덮자고 하지만,
    제가 조금 더 지켜보라고 이르며 지나갑니다.

    비가 많이 온 올해에는 풀의 덕을 많이 본 셈입니다.
    저들이 열심히 물기를 머금어줘 작물이 한결 견디기 수월하였을 것입니다.

    보시고 계신 파란 싹은 작물이 아니고 거의 풀입니다.
    풀을 어찌 대할 것인가?
    이게 저의 중심 과제 중 하나인데,
    앞일이 어찌 진행될지 저도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3. 은유시인 2011.09.01 11:06 PERM. MOD/DEL REPLY

    풀이랑 보리싹이랑 서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잡초를 제거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지요.
    그 노고가 전달되어 오는 것 같습니다.

  4. bongta 2011.09.02 10:52 PERM. MOD/DEL REPLY

    숙맥불변(菽麥不辨)이라 했는데 저야말로 풀 종류를 잘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 차분히 잡초를 공부해보려 해도 지금은 농원 조성중이라 도무지 틈이 나지 않는군요.
    심고 거두지 않아도 잡초는 제 홀로 잘도 크고 번식합니다.
    반면 작물들은 조금만 다쳐도 그냥 죽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예초기를 돌리며 잡초를 열심히 베어나가다 보면 문득 아래 인용한 성경 말씀들이 떠오릅니다.
    성경의 뜻과는 다르지만, 사람들의 역(役), 즉 부역(負役)이란 이다지도 심하구나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얼핏 보기에 새들이 창공을 자유롭게 날고, 거저 곡식 낟알을 먹는 것같지만,
    저들 역시 가만히 관찰해보면 치열한 생존경쟁의 틈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제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농원 앞 판잣집에서 개들을 다 처분하고 한 마리만 남겨두었었지요.
    이제는 저 짓을 그만 두려나 보다 하였는데,
    뜬장 속에 어린 강아지들 두어 마리가 더 보이더군요,
    바람구멍도 없이 천막으로 막아놓아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벌어진 틈 속에서 저 녀석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새끼 강아지가 얼마나 귀엽습니까?
    그러한 것일진대 차마 ....

    뜬장 속에 어미 개 한 마리가 지내기도 얼마나 고역인데,
    거기다 몰아 두어 마리를 구겨 넣고 있다니.
    아, 모질고뇨!
    정녕 이러고도 사람일 수 있음인가?
    그리고도 사람 목숨을 부지하여야 하는가?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이관대?
    저리도 이웃 생명에게 무정할 수 있음인가?
    징그럽고 한스러운 우리네 삶의 모습입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천부께서 새를 자유롭게 기르시는지는 모르지만,
    그들보다 귀하다는 사람은 어찌 이다지도 모질고 모질 수 있음인가?
    닭도, 소도, 개도 ...
    뼈를 발라내고 살을 쥐어짜내기 위해,
    저들을 현생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고뇨.
    하늘나라의 의를 구하려 하기 전에,
    먼저 땅 위의 의를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음인가?

  5. 은유시인 2011.09.04 14:13 PERM. MOD/DEL REPLY

    뜬장에 갇혀 소중한 생을 허비하는 강아지들의 삶이 그려집니다.
    반면에 오늘 듣기로는 이건희가 1천억원대 사재를 털어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는군요.
    정몽준이 2천억을 내놓겠다니까 이건희도 뒤질세라 그리 나서는군요.
    좋은 일입니다.
    강아지 목숨도 하나요, 이건희 목숨도 하나요,
    그 둘의 목숨의 가치가 그렇듯 클 수가 있는지요?
    어차피 죽으면 강아지나 이건희나 썪어 거름이 될 그저 자그마한 생명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6. 사용자 bongta 2011.09.05 08:59 신고 PERM. MOD/DEL REPLY

    거기 개를 기르던 공간이 많이 있는데도, 똥 치기 싫다고 좁은 뜬장에 여러 마리를 구겨 넣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저네들의 삶이 힘든다든가, 무식하다든가 하는 차원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저는 이게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의 부재, 인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 뜬장을 볼 때마다 저는 폭파시켜버리고 싶은 욕망이 불같이 터져나옵니다.

    지난 번에 재벌들이 피의 사실이 차츰 확인되어 가자, 저들이 불법으로 편취한 것 일부를 자진해서 토해내놓겠다 하고 사법적 양형을 줄여보려 하지 않았습니까? 이쯤이면 이게 기실 사법적이 아니라 초법적 흥정이자 장바닥 밤 거래에 다름 아니지요.
    당시 저들은 모두 면탈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상당한 시일이 지나고 있지만 자진해서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소식은 엇그제까지만 하여도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사회적 압력이 작동하자 그게 먹혔던지, 아니면 저들 나름의 계산 속으로 일부만 출연한 것입니다. 그것도 저들이 만든 재단에 말입니다.

    재단에 출연할 양이면, 자신들이 만든 재단이 아니라, 제 삼의 공정한 단체에 맡겨야 바르지요.
    요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자기 재단에 맡기면 하기에 따라서는 이게 왼쪽 호주머니에 든 돈 오른 쪽 호주머니로 옮긴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재단법인 목적사업이 장학, 복지 따위일 경우 면세가 이루어집니다. 이 면세된 정도만 사회에 내놓아도 잘 모르는 사람에겐 제법 일하는 양 보여지지요. 이쯤 되면 이것은 재단 설립자가 생색은 다 내고 실인즉 국민들 세금을 헐어 부조하는 격이 되고 맙니다. 이런 짓 하는 재단 적지 않습니다.

    물론 정, 이씨 재단이 이렇다는 것이 아니라, 재단 일반은 제대로 평가하기 전에는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 재단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고, 알 이유도 없기에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하기야 뭐 재단이 되었든 아니든 사재 출연하면 조금이라도 사회에 흘러나올 여지는 있겠군요.
    하지만 문제는 그 이전에 불법으로 경제시장 질서를 유린한 사법적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든가, 교묘히 그 죄벌이 상찬으로 둔갑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설혹 출연의 효과가 있다하더라도 불편부당, 부정의 효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7. 은유시인 2011.09.06 12:17 PERM. MOD/DEL REPLY

    추석이 낼 모레네요.
    민족대이동이 벌어질텐데
    어딜 갔다올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원룸에 홀로 갇혀서 지내야지요.
    추석때 여행 계획은 있으신지요?

  8. 사용자 bongta 2011.09.06 19:53 신고 PERM. MOD/DEL REPLY

    저는 지난해 먼저 성묘를 마치고 그냥 여기 농원에 머물렀습니다.
    그랬더니 여기 사람 하나가 추석 때 서울 왜 안가고 여기 있었느냐고 묻더군요.
    이 이야기를 처에게 하였더니 그러기에 왜 청승을 떠느냐 하는군요.
    금년에도 진작 성묘는 다녀왔지만, 청승을 떨지 아니하려해도 ...
    올해는 그게 아니더라도, 서울에 갈 일이 생겨 추석 땐 서울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언제 마주 뵈오면 그 일이란 것이 무엇인지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당대를 사는 이에게는 아마 이런 인연을 짓기 어려울 것입니다.
    요즘 안철수의 멘토라는 윤여준을 두고 장자방이라고 세인들이 칭하곤 하는데,
    사실 장자방 즉 장량은 윤여준 같은 이와는 천리를 격하고 있지요.
    장량이 황석공을 만나 황석공소서란 책을 전수 받습니다.
    이게 거의 전설과 같은 것이지만 이게 그리 허무맹랑한 게 아니지요.
    이 상징적인 설정 장치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자는
    장량이 그 후 돌연히 큰 그릇으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 구조 속에서 황석공의 存否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장량이 황석공을 만나서 큰 그릇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이미 큰 것을 담을 만한 그릇이었기에 황석공을 만났는지,
    선후, 수미가 문제의 핵심이 아닌 것이지요.
    다만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황석공을 등장시켜 장량을 꾸며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장치를 장엄한다고 말합니다.
    목조로 佛殿, 佛堂을 짓고는 울긋불긋 단청을 올립니다.
    저 역시 일찌감치 일마치고 술 한잔 먹으니 얼굴이 단풍 빛으로 빛납니다.

    이러하듯 황석공은 그저 장량의 단청 노릇으로 족한 것이지요.
    하지만 단청이 있음으로서 비로소 불당은 불당 답고,
    거기 삼가 부처가 모셔지게 됩니다.
    그러하니 단청이 있음인즉 실인즉 불당이 서고,
    불당이 자리 잡은즉 단청이 빛나지요.
    불이문(不二門)인저.

    그런데 장량이 후에 한고조 즉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후 홀연히 자취를 감추지요.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공수신퇴(功遂身退)인 게라,
    공을 이룬 다음에는 물러나는 것.
    아니 그러하고 떡고물 나눠 먹겠다고 버티다가는 이내 토사구팽 당하고 말지요.

    윤여준은 같은 이름의 ‘한나라’당 책사로 이름을 팔았는데,
    해도 다 저문 녘에 아직도 골목길 헤매는 월부 책장사처럼 공을 세우려고 분주합니다.
    벌써 이것만 보아도 장량과는 비교할 상대가 아니 됩니다.

    외람되지만,
    저에게 그 황석공 같은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가을 물 같이 맑고,
    정월 보름에 떠오른 달처럼 밝은,

    그런 인연이 제겐 있습니다.

    그 인연께서 지금 有故중이라 저는 서울에 가야 합니다.
    올 추석 보름달도 여느 해처럼 교교(皎皎)히 빛나련만,
    고월명(孤月明)이라 제 홀로 언덕 위를 비추려는가?

    은유시인님,

    저녁엔 여긴 벌써 제법 서늘합니다.
    그 청량한 기운에 정신이 한껏 고양됩니다.
    창문도 방문도 모두 열고 夜氣를 흠뻑 맞이 합니다.

    맑고 고은 추석 하루를 맞이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올해 선생님과 함께하여 뜻 깊고 감사했습니다.

  9. 은유시인 2011.09.16 14:58 PERM. MOD/DEL REPLY

    봉타선생님!
    하루에 한두 번씩은 어김없이 이곳에 들러
    새 글은 없는가 늘 살펴본답니다.
    추석은 즐겁게 지내셨습니까?
    전 방에 콕 박혀서 할일 없이 지냈습니다.
    시안작업이 끝난 큰 건 두 건의 계약을 기다리고 있으니
    마냥 늦어지는 계약에 조바심도 일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날도 선선해 지니 곧 결실의 계절이 오겠네요.
    농부로써 풍요로운 결실을 기대하실 선생님의 마음도 저와 같을까요?

  10. 사용자 bongta 2011.09.17 15:19 신고 PERM. MOD/DEL REPLY

    안녕하십니까? 은유시인님.
    추석이라 뭐 새삼 특별할 꺼리는 없습니다.
    이젠 나이도 나이니만큼 추석이라든가, 설날이라 하여도 그저 평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명절은 어렸을 때나 좋지 크면 성가실 때조차 있지요.

    저는 농사를 짓는다지만,
    초본 식물이 아니고, 나무라 결실을 제대로 보자면 수년을 보아야 합니다.

    하루하루를 담담하니 대하며 가끔씩 놀랍고 고마운 일을 마주할 뿐입니다.
    놀랄 경우는 여기 시골에 와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
    고마울 때는 사람보다도 자연일 경우가 많은데,
    이게 마냥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
    사람과의 좋은 인연 짓게 되길, 길 닦고자 합니다.

    글이란 게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써야 하는데,
    최소 석삼년은 농무(農務)에 전일하여야 할 처지이기에,
    가슴이 글 샘이 되지 못하고,
    온 몸이 몽몽(濛濛)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막상 저녁에 글을 쓰자하니 몸이 피곤하여 그냥 내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하루 일을 작파하고 빈둥빈둥 놀고 있습니다.
    어제 흙일을 과하게 하였더니 무릎이 조금 아파서 하루 정도는 쉬자고 작정하였습니다.

    예전 일본 소설을 읽었는데,
    자진하여 회사를 관둔 사람이 몇 개월은 진탕 놀며 여유롭게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인 것.
    지하철을 향해 종종걸음을 치며 바삐 서두르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하더군요.

    일이 있을 때가 복이지요.
    은유시인님께서는 일거리가 그리 계속 되니 뵙기 좋고 고맙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고 도모하시는 일이 창창(昌昌) 성성(盛盛) 하시길 빕니다.

  11. 은유시인 2011.09.17 16:54 PERM. MOD/DEL REPLY

    봉타선생님 글은 어느 땐 재미 있고 또 어느 땐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시릴 때도 있습니다.
    특히 고사와 관련된 글은 그 해박함에 탄복이 절로 나옵지요.
    그러면서 글 속에 인간에 대한 애증이 심화하여 그런 점에선 저와 유사하다 여겨집니다.
    저 역시 인간을 믿지 못하고 욕을 할 수밖에 없으니
    인간으로써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들을 만나면 울컥한 기분이 되다가도 우리 예삐(강아지)만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즐거워진다"

  12. bongta 2011.09.17 19:32 PERM. MOD/DEL REPLY

    마지막에 하신 말씀을 듣자오니,
    공자가 하신 말씀 중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羣)이 떠오릅니다.

    현대인은 특히 사람보다 기르는 동물에 더 진한 애정을 느끼곤 합니다.
    이런 이들을 보고는 이 말씀을 들어 비난하는 이들이 더러 있지요.

    저들은 이리 묻습니다.

    “사람보다 동물이 더 귀하더냐?”

    이에 대해 이리 대꾸를 한다면,

    “그래 차라리 우리 집 강아지가 더 귀하고 예쁘다.”

    장군 멍군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 물음과 답은 과연 옳은가?
    아니 이런 물음은 성립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갖습니다.

    저리 묻는 순간 이미 답은 기지의 것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나올 답은 예정되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물과 인간을 이미 이분하고 차별하고 있는 한,
    저 물음은 답을 하나로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에겐 기대를 하고 책임을 묻기에,
    때론 이를 어기는 자들에게 분노합니다.
    하지만 동물에겐 인간의 잣대로 잰 기대를 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들에게 도대체가 분노할 건덕지가 없지요.
    다만 동시대 한 곳에 어울려 살아가며,
    저들과의 인연을 귀히 여기며 사랑을 느낄 뿐이지요.

    만약 귀한 인간이 예 있다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하니,
    동물, 인간 이리 나눠 묻는 순간 이미 그 문법은 잘못 된 것이지요.

    공자 역시나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羣) 이 말씀은,
    동물과 인간을 차별하기 때문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제가 간간히 여기저기 써놓은 글이 있습니다만,
    이게 혹 참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羣) http://bongta.com/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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