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벌레
최근 연나흘 내리 하루살이인지 초파리인지 조그만 날벌레들 때문에,
저녁나절 지내기가 영 불편했다.
지난해에는 하루 정도 극성을 부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는데,
올해는 쉬지 않고 연일 극성이다.
창틀에 쳐진 방충망을 유심히 보아도 이리로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연신 진공청소기로 방안을 청소해도 조금 지나지 않아 이내 저들의 숫자가 불어나 있다.
그래 어제는 간단한 장치를 만들어 보았다.
환풍기 위에 전등을 달아놓고 날벌레들을 유인한 후 포집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남아도는 환풍기가 여러 개 되는데,
그중 제일 작은 것으로 시험해보기로 한다.
(폐박스를 이용해 후두를 만들러 씌어준다. 바람을 수속(收束)하기 위함인데, 흡입력이 강해진다.)
(한 밤중 뜰에다 내놓아 보았다. 잡는 것이 아니라, 온 동네 벌레를 다 모아 오는 짓이 되고 말다.)
삼각대 위에 환풍기를 거치한 후,
바람 들이 입구 앞에 전등을 달았다.
어제 저녁 내내 사용해 보니 제법 포충(捕蟲)효과가 있어 보인다.
포충기(捕蟲器 or 捕蟲機) 상공을 비행하던 날벌레들이,
갑자기 금나수(擒拿手) 초식(招式)에 잡혀 밑으로 쪼르륵 끌려들어가고 만다.
혹은 블랙홀인 양, 저들이 순식간에 그 무한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포충력 자체에 있지 않았다.
나는 포충기를 방 밖에다 두었는데,
전등이 하나 추가로 더 켜지자,
날벌레들이 평소보다 총량에선 오히려 더 많이 늘어난 느낌이다.
예컨대 전등 하나당 1단위의 날벌레가 날아든다면,
전등 2개가 되면 2단위의 날벌레가 꾀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하자니 아무리 열심히 포충기가 날벌레를 잡아들여도,
유입되는 숫자가 늘어나다보니 방안으로 들어오는 숫자는 별반 줄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이리 무한정으로 벌레들을 죽이는 것도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최근 나흘간 저들에게 워낙 시달리다보니 도리 없이 자구책을 세운 것이지만,
단 며칠간 살다가 제풀로 사라지고 말 것을 욕심껏 잡아내고 있는,
네나 나나 우리네 모습들도 참으로 고약하니 딱하다.
어제 저녁 더 정밀히 관찰을 해보니,
방충망 그물코가 성기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어찌 저리도 빛을 사모하여 다투어 그리로 투신하고 있는 것인가?
불빛은 물론 전등에 반사되어 다른 곳보다 한결 밝은 벽면에도,
흡사 딸끼씨처럼 날것들이 점점(點點)이 달라붙어 있다.
부나방들이 불을 쫓듯,
저들은 남아 있는 짧은 생을,
일순간 불속에 뛰어 들어 장엄히 산화하고 만다.
촛불 속으로 스스로 자신을 다비(茶毘)에 부치고 있는 저들.
평생 도를 닦았던 이들이라야 스님처럼 육신을 다비란 인연에 맡길 수 있다.
저들은 애벌레로서 어둡고 축축한 땅 속에 수년 동안 인고의 나날을 보냈음이니,
이야말로 수덕(修德), 수도(修道)가 아니던가?
애벌레가 성충으로 우화(羽化)되자,
단 며칠간의 삶이란 한낱 유예된 숙진(宿塵)에 불과한 것이라는 듯.
장작 지피어, 죽어 자빠진 육신까지 철저히 무화시키는 저들 스님네처럼,
깡그리 불 질러 마지막 하나까지 허공중으로 흩어지고 마는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스님네들이 다비식 후에,
사리를 주워내는 의식은 내 몸매 다 보아라 하고 훌훌 벗어재끼고,
사진 박고, 화보 내고, 별 짓 다하는 요즘 계집들 꼬락서니하고 비슷하다.
차라리 다 벗기라도 하면 용서라도 하지,
저들은 끝내는 조그만 천 조각 하나 사타구니에 덮어놓고서는,
나는 아직도 예의범절을 알고 있다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반야심경에 보면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하기에 일점 티끌 하나 남김없이 다 불사르고자 다비식 하는 것 아닌가?
그러함에도 뭇 새끼 중들은 다 타버린 잿더미에서,
죽은 아이 부랄 만지듯,
사리랍시라고 주어내고 있음이며,
혹간 내가 죽어서 사리라도 나오지 않으면,
살아서는 내가 명색이 고승대덕이라고 추앙을 받았는데 망신을 당할라,
그러려니 차라리 내가 죽으면 사리는 내놓지 않으리라,
또는 사리를 수습하지 말거라,
이리 우정 도통한 이처럼 미리 그럴싸한 연막을 치고 죽지나 않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내 몸엔 사리가 없으니 줍지 말거라,
하였던 이의 다비장터에서 어째서 사리가 나오며,
사리가 많이 나오리라 세인들이 입방아를 찧던 이의,
잿더미에선 사리가 한 톨도 나오지 않음인가?
내 이러하니 이들을 모두,
벗기에 안달이 난 계집 보다 더 천한 것들이라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세비 타먹고 종일 분탕질만 일삼으니 필시 죽어 화탕지옥에 들 것이며,
땡중들은 높은 법석에 짐짓 눈을 부라리고 앉아있으면서,
시줏쌀 평생 빌어먹고 주장자와 요령만 흔들고 있음이라,
이들을 어찌 요승(妖僧)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으랴, 필경은 무간지옥에 빠지리라.
하여간 이것은 그렇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말을 마저 잇자.
해서 이리저리 방법을 더 알아보았다.
이제서야 알아내었지만 방충망의 그물코도 여러 가지인 바라,
시골에선 서울보다 더 촘촘한 것을 쓰고 있는 것이라.
통상 사방 1인치 기준 18*16 짜리를 쓰지만,
18*22, 18*24, 24*24 짜리 등 보다 더 촘촘한 그물망이 있다.
나는 24*24 스텐그물망을 택하였다.
당연 단위 면적당 구멍 수가 많은 만큼 촘촘하여 통기성은 좋지가 않다.
하지만 그물망 하나 두고 천년 절벽인 양,
날벌레와 나는 그리 나눠 서로의 고독을 탐하기로 타협한다.
여름 한 철 나는 내 방식대로,
향일(向日) 주광(走光).
빛을 향해 달리리라.
허나,
빛을 사모함은,
저나 나나 무엇이 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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