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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공덕(汲水功德) - (2)

농사 : 2011.05.12 22:27


농원을 조성하자면 사전 준비하여야 할 일이 적지 않다.
나는 무엇보다도 전기, 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물이 아니라 전기와 물이라니 정말 우습다.
물이 없으면 작물을 제대로 키우기 어렵다.
그런데 물을 끌어들여 대려면 - (이를 관주(灌注)라고 말한다.)
예전처럼  벽골지(碧骨池), 축만제(祝萬堤) 등의 저수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기가 더 필요하다.

관정(管井)을 파고,
아니 기실 요즘은 파는 게 아니라 뚫는다고 해야 옳겠다.
착정기(鑿井機) 즉 드릴링머신으로 땅을 드릴로 뚫어 구멍을 낸다.
어쨌건, 이리 구멍을 뚫고 모터를 달아 지하수를 퍼 올리면 된다.
그런데 모터를 구동시키려면 전기가 필요한 것이다.
물이 없으면 작물을 키우기 어려우니,
관정을 뚫어야 하고, 관정을 뚫고 지하수를 퍼 올리려면 전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하니 내가 농원을 조성하려고 할 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해결하려고 한 것이 당연 전기 설비이다.

그런데 또 우스운 것이 밭에 전기를 설치하려고 하니,
한전에서 요구한 것이 전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시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정을 위해 전기를 인입하고자 하였더니 먼저 관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전기를 먼저 준비하고,
관정을 뚫고 모터를 달아 이 전기를 이용 통수 테스트를 바로 하고자 하였는데,
이리 요구하니 우선은 지하수 개발신고를 한 후,
이 서류를 바탕으로 전기 설치 신고를 병행하였다.

나의 경우는 지하수 외에 수도도 별도로 설치를 하였다.
수도의 경우는 거주 또는 생활하는 사실을 입증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주택을 지어야 하는데,
이게 아니라면 비닐하우스라든가, 컨테이너를 설치하여,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관계를 드러내거나,
주민등록을 당해 토지로 옮겨두어야 한다.

다시 지하수 개발 이야기로 돌아간다.
처음 업체를 선정하여 착정하였더니 다행히 물이 나왔다.
다만 당시 내가 추정한 필요 수량에 비해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애초 관련 서적을 바탕으로 추정한 것에 잘못이 있었다.
관련 서적에서 제시한 수량은 터무니없이 크게 잡아진 것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내가 차차 공부를 더해가자니 최초 양수량(揚水量)만 하여도 넘치게 충분한 것이었다.
이 폐공 처리한 것을 다시 살리면,
우리 농원으로서는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여간 당시로는 이게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나는 수 차 굴정(掘井) 공사를 되풀이 하였다.
하지만 이게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도중, 여기 시골에서 사귄 이웃에게 지하수 개발업자 소개를 부탁하였다가,
차일피일 시간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큰 낭패를 보기도 하였다.
소개 받은 개발업자 역시 거의 양아치 수준이었으니,
도대체가 여긴 얼 바로 선 이를 만나기 어렵다.

그 당시 일어난 일을 죽 꿰어 늘어놓자면,
이 또한 한 광주리 넘치게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다.
하지만 차츰 시간에 바래 싱거워져 그저 간단한 소회를 펴는 것으로 그쳤음이니,
그 내용은 다음 글을 참고하시라.
(※ 참고 글 : ☞ 2010/03/02 - [농사] - 급수공덕(汲水功德))
다만 나중에 시리즈로 농원 조성에 따른 글을 새로 엮어낼 때,
내키면 이 이야기도 적실하니 발라내어 듣는 이의 흥을 한참 돋아볼까 한다.

그러고 보자니,
여기 시골에 와서,
만나는 이마다 야료를 부리고,
해망(駭妄)을 부리니 실로 시골 인사들이라는 것이 망측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게 다 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실인즉 이는 내가 평소 수덕(水德)을 본받아 따르지 못한 소이가 아닌가 싶다.
부끄럽다.

수 차의 착정이 모두 원하는대로 되지 않자,
대공을 뚫어야하나 싶었다.
당시 대공을 반값에 파주신다는 분이 계시긴 하였으나,
나는 이 또한 염치없이 신세를 지는 것이라 사양하였다.

그러던 차 이웃에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우물이 하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 이웃은 도로를 건너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음이니,
지난 수년간 우리 밭을 거저 빌려 쓰던 이였다.

그 이와 접촉하자니,
노모는 슬쩍 눙치며 아들을 거론하며 이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게 묻지 않아도 뻔한 능청인지를 알지만,
모르는 척 그 아들과 통화를 하였다.
그 아들은 두말없이 쓰시라며 쾌히 허락을 한다.
이러하자니 노모 역시 마지못해 허락하는 양하며 잔뜩 생색을 낼 수 있었다.

총공사비 1,200,000원을 들이고,
이웃 할머니(노모)에게 700,000원을 사례하였다.
이게 작년 2월 말경이다.

그러한데,
이 할머니가 최근 나한테 찾아오더니 해마다 물세를 치뤄야 한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위인됨은 가근방에 다 알려져 있지만,
과연 그 적나라한 실체가 다시 한 번 내 앞에서 발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차 내게 찾아와 물세를 내야 한다고 하였지만,
하는 이야기를 나는 그저 담담히 듣기만 하였다.

그러한 것인데,
그제에는 1년에 물세를 500,000원을 내라고 최종 통보한다.

작년 2월 취인 공사시 잡비까지 총 이백 여만원이 들었는데,
이 정도라면 사실 폐공 다시 부활하는 비용을 상회한다.
하지만 당시엔 수량을 더 확보할 요량으로 할머니 우물을 이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것인데 매년 500,000원이라면,
이것은 속말로 내 코를 꿰었다고 기고만장하고 있음이 아닌가?
설혹 수돗물로 농수용 물을 전용한다고 하여도 이 보다는 훨씬 적게 들 터이다.

몇몇 이웃 사람들과 상의하니, 모두들 혀를 내두른다.
최근 우리 밭을 거저 빌려 썼던 처지임이니 이는 배은망덕한 처사라는 이가 있는가 하며,
그게 예전 공동우물이었던 것이고, 지금은 거의 폐정(廢井)으로 사용하는 이가 없는 실정인데,
그리 욕심을 부릴 수 있는가 하며 어이없어들 한다.
내 처형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만,
당장 착정 비용을 대겠다며 거금을 바로 송금하겠다고 한다.
이는 곧 그른 인간에 분노하고 옳은 인간을 상대하여야 한다는 의기(義氣)를 일으켰음이시라,
송구하고 고마울 따름이나 거슬러올라가자면,
이 또한 내 실덕(失德)의 소치(所致)이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혹자는 당시 계약을 확실히 하여야 하지 않았겠는가 하는데,
기실 그리하였으면 오늘에 와서 이런 사단이 일어날 일이 없다.
하지만 시골 동네에서 이젠 이웃이 되었는데,
문서로 계약서를 작성하겠음이며,
여름철 그 집 세차 하는데 잠깐 사용하는 정도라는데,
내가 물을 사용한다고 한들,
우물 취수량에 부족함이 있을 것인가?
게다가 우물에 파이프를 별도로 취입하여,
우리 밭까지 끌어 우리 농원 전기를 쓰고, 모터를 별도로 달아 씀이니,
그 집에서 부담해야 할 우물 유지비용은 없다.

어느 정신 나간 인간이
2,000,000원 들이고,
년년세세 매년 500,000원씩 추가로 부담할 짓을 하겠는가?
차라리 그냥 새로 파거나, 수돗물을 이용하고 말지.
이것은 그냥 상식이 아니겠는가?

나는 대책을 앞서 세워두고,
바로 판단을 내린다.
나는 더이상 저 할머니의 욕심을 도와줄 수 없다.
하기에 그 집 씨족들 모임인 종친회장을 찾았다.
무슨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그를 만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저이의 흉한 정모(情貌)를 드러내 천하에 알리고자 함이 우선임이라.

그러함인데,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음이니,
그날 만나는 이마다 하나씩 그 할머니의 내력을 들추어내는데 과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떤 이는 내가 그 집 성씨를 꺼내자마자,
듣지 않아도 벌써 문제가 있음을 자신은 예견하였노라고 한다.
앞으로는 그이와는 행여 거래를 트는데 조심하고,
될 수 있는 한 멀리하라고 충고를 한다.

예전 가뭄이 들면 논은 전쟁터를 방불한다.
서로들 제 집 물꼬를 막고 물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저 할머니가 젊었을 때 일약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서울내기인 나로서는 실로 난생 처음 듣는 해괴망측한 이야기로,
놀라 열려진 입이 한 동안 다물어지지 않는다.
옮기자니 내가 절로 민망해져 여기에서는 삼가고자 한다.

작년,
이 할머니가 새로 지은 내 농원 비닐하우스로 찾아왔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서는 옥같이 깨끗한 황토 바닥에,
더럽디 더러운 노인 가래침을 탁 뱉는다.
이게 웬 횡포인가 싶었는데,
이야기가 거품과 함께 풀풀 게워져 나온다.
이웃 밭에 사는 이가,
또 다른 이웃 할머니 P에게 잠깐 1년간 밭을 빌려주었는데,
이게 배가 아팠던 것임이라,
그것을 일부 빼앗아 다시 자신과 함께 나눠 갖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그 이웃 할머니 P는 자신의 밭 한 평도 없이,
남의 대지에 얹혀 집하나 짓고서는 시난고난 사시는 형편이다.
반면 이 문제의 할머니는 여기저기 논, 밭을 경작하고 있음이며,
생활도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함인데도,
이미 남이 얻은 밭이 탐나 그를 나눠 빼앗으려 함이니,
이 어찌 참람스럽다 하지 않을쏜가?

그뿐인가?
농원 조성 때문에 그 할머니에게 빌려주었다가 회수한 밭을 다시 노려 재차 할애하여 달라고,
몇 차고 졸랐음이나 나는 정중히 물리쳤다.
아니, 농원 조성 중인데 남을 위해 예정 중인 땅을 유보하여야 할 까닭이 있음인가?
이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염치를 저버림이 아닌가 말이다.
욕심이 눈을 흐리게 하고, 신(神)을 어지렵히고, 얼을 빼앗고 있음이라.
이 얼마나 흉한 노릇인가?
게다가, 그 할머니가 농사를 지었던 곳에 버려진 비닐조각을 줍느라고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는 터인데 어찌 그리 고단한 일을 다시 감당할 수 있겠는가?
(※ 참고 글 : ☞ 2010/10/13 - [소요유] - 쓰레기 전대(纏帶))
사용이 끝난 멀칭비닐을 제대로 거두지 않고 농사를 짓는 태도를 보면,
그자가 땅을 어찌 험하게 대할지는 불문가지다.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땅을 정갈하게 가꾸려는 나를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그리 염치 접고,
또 욕심을 낸들 통하겠는가?

제 욕심이 해결되지 않자,
이 집 저 집 다니며 밭은 심지에 불을 지르고 다니고 있음이라.
왜 남의 신성한 땅에 들어와 가래침을 뱉는가 말이다.
포악(暴惡)스럽기가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을 방불하고,
간사(奸邪)하기가 사갈(蛇蝎, 뱀과 전갈)을 뒷 세울 정도가 아니든임가?
패덕((悖德)함은 끝내 하늘도 넘겨두시지 않으시리라.
참으로 가여운 중생임이라.

천하의 사람들에게 고하노니,
남에게 절대로 밭을 빌려주지 말지니.

여기 와서 겪는 것인 바,
열 중 아홉은 남의 밭을 빌려서는 모두들 엉망으로 만들고 있음이다.

종친회장이 현장에 왔다.
현장 조사를 하자,
우물 터 잡은 위치가 종중 소유 토지와 그 집 대지의 경계에 위치하여,
측량을 하기 전엔 그 누구도 위치 확정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함에도 이 할머니는 입에 게거품을 물며 자기 땅에 위치하고 있다며 언성을 높인다.
종친회장이 제지하자, 이 할머니는 한 술 더 떠,
종중 땅이라도 우물은 자기 것이라고 목청을 드높인다.

종친회장이 결론을 내린다.
우물 위치 확인 측량을 한 후,
만약 종중 땅에 속한다면 종친 임원 회의를 열어 조치를 취하겠단다.

그런데 문제는 설혹 종중 땅에 속한다한들,
저 할머니 욕심으로는 제 손아귀에 그려 잡힌 것이라 여길,
제 이익을 쉽사리 내놓지 않을 것이니,
현실적으로 이 또한 추잡스런 번거로움이 예상되고도 남는다.
나로서는 추가 부담을 지는 것은 단 몇 푼일지라도,
저 할머니의 소행이 괘씸하여서라도 인용(認容)할 수 없다.
게다가 저 할머니 집은 거기 종친회 부회장이란다.

오늘 날 종친회라는 것이 친목단체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질 않지만,
씨족끼리 우애를 돈독히 하는 데 그쳐서야 보람이 있겠는가?
수 대 내리닫이로 한 곳에 터잡아,
제 집 명(命)을 잇고, 향리 이웃에 덕향(德香)을 전하며,
사람 사는 아름다움을 일궈내야 하는 것.
그리하여 한 성 씨받이 후손들로서 조상의 위덕 광명을 널리 퍼지게 하는 소임을 등한히 할 수 없음이라.
하려면, 족문(宗門)의 명예를 더럽히고, 향내(鄕內)의 아름다운 풍속을 헤치는,
족인(族人)의 악행을 꾸짖고 바로잡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 바라,
이게 아니라면 굳이 씨족끼리 뭉쳐 회합을 가질 필요가 무엇이 있으랴.
족문(族門) 빗장 닫아 걸고 음정(陰情)만 나누는 폐쇄성을 허물고,
차라리 문짝을 활짝 열어재끼고 천하의 의리(義理), 순정(順正) 남남간 만남을 가짐만 못하리. 

내 일이지만,
내가 생각하여도 가관이다.
그리고 재미가 있다.

허세가 아니다.
이미 판단을 내리고,
대비책이 세워지고 나니,
외려 홀가분해지고 이 사태를 방관자의 입장에서 한껏 즐기고 싶어지는 것이다.

촌사람들이 때론 얼마나 용렬한지는 도시 사람은 잘 모른다.
내가 그 동안 어른이라고 깍듯이 공대하고,
때 맞춰 선물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도대체가 답례를 모른다.
경우가 없고 도리를 모른다.
도시인은 정이 혹간 엷을진 몰라도,
차라리 깍듯하고 명확하니 사리에 밝다.
한 마디로 이리 구질구질스럽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선주자(先住者)가 마치 대단한 권력이나 잡은 양 위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좁아터진 나라에 사는데, 먼저 살던 인간, 나중 들어온 이가
뭐 인종이 다르더냐, 어디 부족함이 있다든가?

맹자의 사단(四端) 하나가 다시금 생각난다.

수오지심 의지단(羞惡之心 義之端)

마땅함.
마땅하지 않은 일에 부끄러움을 느낌이 곧 의(義)이다.

인성(人性)에 과연 사단이 있는가?
만약 이게 없다면 이러하고도 감히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음인가?

지나는 과객에게 물 한 그릇을 떠주어도,
저 세상에 수미산만한 적덕을 쌓는 것인데,
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이웃을 훼하고,
농사를 그르치게 한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이러하고도 농민이라고 할 수 있음인가?
하늘은 사람 등 뒤에 지켜서 계심이라.
어찌 두려움을 갖지 않을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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