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다.
농사를 짓다.
내가 수일 전 산길을 걷다가 한 가지 뜻과 마음을 일으킨 적이 있다.
내가 곧 농사를 짓지 않는가?
그런데 여느 공장(工匠)이라면 물건을 만든다고 하지 짓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농사를 짓는다는 말에는 무엇인가 경건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먹어야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하다면 먹는 일만큼 귀한 일이 어디에 있으며,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농사는 또한 어디 예사로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짓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밥을 짓다.
옷을 짓다.
집을 짓다.
대개 물건을 만든다고 하지,
짓는다고 하는 경우는 드물다.
위 예의 경우처럼,
의(衣), 식(食), 주(住)의 대표격인,
밥, 옷, 집의 경우에는 ‘짓는다’라는 표현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는 예로부터 흔히 쓰여진 까닭이리라.
어원을 고구(考究)하고 싶으나,
갖춘 전문지식이 없음이니,
나름 장님 선지팡이질 하듯 어림짐작으로 가닥 어름을 짚어본다.
다만 한자어로는 짓는다는 말이 어떻게 될까?
보통 만든다는 의미를 갖는 한자어는 제(制), 제(製), 작(作), 조(造) 따위가 있는데,
이들은 대개 물질로 서로 얽어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뜻에 가깝다.
반면, 주(做)는
做飯 : 밥을 짓다.
做衣服 : 옷을 짓다.
등으로 쓰인다.
그렇다 하지만, 주(做)는 이런 말 외에도,
일반적인 물건을 만들 때에도 사용된다.
예컨대 做桌子 : 탁자를 만들다.
이렇게 볼 때 짓는다는 말은 한자어에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순수 우리말에서 기원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대저 만든다는 말의 뜻은,
개별 물체들을 구성하여 기능적, 기술적인 단위체를 구현하는 일에 그치나,
짓는다는 말은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서 있다.
즉, 그 안에 명(命)을 모시는 부름에 응하는 작업인 게다.
그러하기에 집, 옷, 음식 등 유독 생명활동에 관계되는 말하고만 짝을 맺고 있는 게다.
때문에 그 작업엔 정성으로 임하지 않을 수 없고,
이내 하늘을 의식하고, 땅에게 비는 신성한 의식으로 전화한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탈 없이 마치길 빌고, 지은 후에 집에 든 이의 안태(安泰)를 위해,
상량식을 올린다든가, 정초(定礎)식 따위의 고사(告祀)를 지내는 것도,
다 이러한 이치임이다.
음식 역시 명(命)을 기르는 것이요,
옷은 명(命)을 보(保)하는 것인즉,
마찬가지로 귀한 인연을 지을 때 작례식(作禮式)을 치르곤 한다.
‘짓는다’는 말과 비슷한 말로는 ‘빚는다’란 말이 있다.
거지반 비슷한 의미이지만,
다만 ‘빚는다’ 할 때는,
떡을 빚듯, 애초의 재료가 갖는 형상이 (짓)이겨져,
그 개별성을 잃고 마지막 작물(作物)에 체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리 볼 때,
‘농사를 짓는다’라는 말은 자못 엄숙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의 명(命)을 보중(保重)하는 것이니,
과연 그러하지 않을 까닭이 없음이다.
추석절에는 농사를 지은 소출물을 가지고 ‘빚는’ 작업을 잇는다.
짓고 - 빚고 - 잇고.
농사를 짓고 - 떡을 빚고 - 명을 잇고.
그러한 것인데,
세태가 하수상하니,
나라에서 나서서 농사를 저버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음이라.
한미FTA체결이 그러하고,
생때같은 소, 돼지를 산 채로 수백만 마리씩이나 땅에 묻고 있음이 아니더냐?
그러하니 이젠 농사꾼이 곧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다.
농촌엔 곧잘 농사꾼이라는 탈을 쓰고는 이악스럽게 돈을 밝히는 모리(謀利) 장사꾼이,
그럴 듯이 농업인이라 자처하고 숨어들어 있는 세상이라.
그러하기에 밭엔 농장이 들어서고, 나아가 목장이 아예 공장식축산이니 축산공장이니 하며,
인간으로서의 염치를 저버리고 악귀가 되어 모두 남을 쥐어짜내는데 혈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함인데,
과연 아직도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모두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나 역시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세상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돼가고 있다.
전답은 공장부지로 둔갑을 하고,
급기야 국토 곳곳은 동물들 무덤가로 뒤덮여 가고 있음이다.
과연 이러하고도,
명(命)을 이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시대,
천지신명(天地神明)은 남아 있음인가?
그 신령스러움으로 바른 이치를 밝혀주실 수 있을까?
그러하나,
천지신명이 문제가 아니라,
정작은 인간의 문제가 아닌가?
"신은 죽었다."
이 부르짖음을 과연 이명박 이 분은 어찌 해석할까?
멀쩡한 4대강을 살린다고 말하며 죽이고,
용산 철거민들의 집, 생업 터전을 한순간에 빼앗고,
강제로 생매장시킨 가축 사체를 퇴비로 밖에 바로 볼 수 없는 청맹과니 위정자들.
단 일호(一毫)의 주저함도 없이,
뜨거운 명(命)을 차가운 물질로 보는데 익숙한 이 자들.
이 분들의 신은 얼마나 신령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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