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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공덕(汲水功德)

농사 : 2010. 3. 2. 20:53


급수공덕(汲水功德)

하고 많은 공덕 중에서 급수공덕이 으뜸이란 말이 있다.
옛날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물처럼 귀한 것이 없었음이라,
설혹 흉년이 들어 밥을 못 먹을지언정 물이라도 있으면 벌컥벌컥 들이키며,
갈증이라도 가리고 쪼그라든 제 배를 일시 속일 수도 있겠음이다.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사업이 고대의 가장 중요한 국가사업이었으되,
자신이 사는 고을 지경에선 마을 원님이 칭송 받는 공덕으로는,
굶어 죽는 이 구휼하는 기사구제공덕(饑死救濟功德)과
다리 놓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이 제일 큰 으뜸 공덕이었다.

과객이 마을 우물가에 이르러 처자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한다.
이 때 처자는 얼굴을 붉히며 내외를 가리면서도,
차마 내치지 못하고 두레박을 내어 새로 시원한 물을 긷고는,
바가지에 버들 몇 잎을 따 넣고는 외로 서서 가려 내민다.

동냥하는 거지에게 밥 한 덩이를 내주기는커녕
들고 온 쪽박을 깨뜨릴 수는 없다.
처자는 부끄러운 가운데에서도,
두레박으로 새로 찬 우물을 긷고,
게다가 목마른 김에 급히 먹다가 체할까봐 버들잎까지 넣는 지혜를 발휘한다.

우리 몸은 수분이 체중의 60% 내외라 한다.
물을 먹지 못하면 생명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
그러하니 급수공덕이 공덕 중에 으뜸이란 얘기는
이것이 바로 생명을 부축하는 소이(所以)이니 당연하다 하겠다.

오자서가 초나라를 탈출하여 오나라지경에 들어갔을 때다.
오자서는 배가 고파서 밥을 빌러 다녔다.
그 때 마침 큰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한 여자를 보았다.
오자서가 그 여자에게 밥을 청하는 데 여자가 이리 말한다.

“첩은 어머니를 모시고 30이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하고 홀로 삽니다.
어찌 나그네에게 음식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자서가 이리 말한다.

“길이 막혀 살려고 밥 한술 적선을 구하는 것입니다.
처자께서 진휼(賑恤)의 덕을 베푸시는 것인데 어찌 혐의가 있으리오.”

“군자의 용모를 뵈니 보통 분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조그마한 혐의나마 질지언정 어찌 모른 척 하겠습니까?”

오자서가 처자가 내놓은 음식을 다 먹고는 이리 치하했다.

“처자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였으니 은혜를 폐부에 새기겠습니다.
나는 망명중인 처지이니 혹시 누가 묻더라도 모른다고 하십시오.”

처자가 이 말을 듣더니만 처연히 답하여 가로대,

“슬프다.
첩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30세가 되도록 시집을 못 가고 있다가 이제야 절개를 잃는고뇨.
외간 남자에게 음식으로 궤휼(饋恤)하고 말을 섞고서도,
어찌 이리 의(義) 패(敗)하고 절개를 버리게 될 줄 알았으랴.
군자는 어서 갈 길을 가소서.”

오자서가 여자와 작별하고 몇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여자는 큰 돌을 껴안고 냇물에 몸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저 우리네 설화에서는 처자가 부끄러운 가운데서도 지혜를 내어 과객을 맞는데,
오자서와 만난 여자는 실절(失節)을 무릅쓰고 덕을 베풀었으되,
외려 오자서로부터 입조심을 부탁 받자 죽음으로써 절개 푸르름을 드러냈다.

내가 이리 급수공덕을 이리저리 새기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난해 말부터 밭에 우물을 하나 파려고 하는데 갖은 우여곡절을 다 겪었다.
이제 얼추 겨냥이 서니 문득 옛 사람들이 전하는 급수공덕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애초에 우물 파기를 도와주려 하였던 사람의 영 석연치 않은 짓에
일변(一邊) 놀라고, 한편으로는 괘씸하여 내 이전에 예고하였던 대로,
그 자의 정모(情貌)를 다 밝혀 후인을 경계하려 했었다.

세상에 급수공덕이 제일이라고 하는데,
설마하니 다른 것은 몰라도 감히 우물 파는 것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훼방놀 수 있으랴?
나는 당시 이리 생각했다.

아무리 패륜아라도 마을 공동우물만큼은 해꼬지를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저게 그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생명수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골에선 물이 곧 쌀이자, 집식구가 일년내 살아갈 양식에 다름 아니다.
농민들끼리 물꼬 싸움이 터지면 쇠스랑이, 곡괭이 들고 살인까지 나지 않던가 말이다.

허나 시간이 지나니 이 또한 싱겁기 짝이 없는 노릇이 되고 말았다.
폐가에 얹힌 기왓장을 보라.
수십 년, 수백 년을 지나면 단단하던 기와도 누렇게 뜨고,
이끼가 얹혀 삭아가지 않던가?
시간이 흐르자,
그간 내가 품은 한(恨)과 독(毒)도 절로 삭아지고 있던 게라.
또한 이제와서 뒤늦게 글로 새기며 시시콜콜 따지고 들,
내가 가엽고 딱해지지 않겠는가 싶어지는 게라,
영 글을 쓸 의욕이 생기지 않았음이다.
하여 그냥 접고 만다.

그런데 사람 일이라는 게 참으로 묘한 것이라,
그 범강장달이 같은 왈짜패거리 괴한(怪漢)들이 나드는 가운데,
우정 자청하여 나를 돕겠다고 나서는 귀한 분을 만나기도 하였으며,
관정 파는 비용도 반으로 해주겠다는 분을 뵙기도 하였으니,
가히 골 안쪽 깊숙한 곳엔 기인의사(奇人義士)가 숨어 우리를 지켜보시고 계시지 않은가 말이다.
이리 하니 과시 열 마리 닭 무리 가운데 한 마리 꿩이 있음이요,
백 마리 꿩 가운데 한 마리 봉황이 숨어 있음인 게라.

내 이르노니,
먹는 물 가지고 중인(衆人)을 희롱하는 죄를 지어서는 아니 될 것인 바,
그게 식물을 기르는 물이라 한들 무엇이 다르랴,

“동냥을 주지는 못할지언정 쪽박까지 깨랴.”
“급수공덕을 짓지는 못할망정 우물 파는 것을 훼방이나 놓으랴.”

물이란 결국 명(命)을 기르고, 덕(德)을 키우는
천지간 으뜸인 게라,
어찌 이를 소홀히 하랴.

봉덕(奉德)

범사(凡事)에
삼가 덕을 받들길,
마치 물의 덕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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