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담바라
나는 소싯적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려고 벼른 적이 있다.
당시 작정하고 내가 들르곤 하던 조계사 앞 불교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샀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 쫓기며 독학으로 배운다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 않았다.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아쉽게도 포기하고 만 일이 있다.
흔히 산스크리트어는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 한글에 습합된 흔적이 적지 않다.
게다가 그쪽 문화를 제대로 알자면 역시나 그 언어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러하니 나이만 공연히 먹고 하나도 이룬 것이 없다.
우담바라는 산스크리트어로 उडुम्बर Udumbara라고 한다.
한자로 음역하여 우담발라화(優曇跋羅華)라고 한다.
줄여 우담화(優曇華)라고도 한다.
번역하면 영서(靈瑞), 서응(瑞應)의 뜻을 갖는다.
즉 상서로운 징험(徵驗)이라 할 것이다.
원래 이 꽃은 상과(桑科)에 딸린 무화과의 일종이라 한다.
이 나무는 크기가 한 길 남짓, 잎이 4~5寸이며,
꽃은 3천년 만에 한번 핀다고 한다.
이 꽃이 출현하면 금륜(金輪)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근자에 어느 사찰에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소문이 일곤 하는데 과문한지 몰라도 금륜은커녕 어진 사람도 목격한 바 없다.
다만 신도들이 꾀인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적이 있다.
불교사전에는 이 꽃을 두고 이르길,
“... 又草蜻蛉之卵子也,其卵附著柳棄上,有線形長柄托之,多數簇聚,如樹之有花。
日本稱為優曇華。... ”
이리 말하고 있다.
즉,
“풀잠자리 알이라,
그 알이 버들잎에 부착되어 그 자루가 실처럼 긴 모습이러니,
다수가 그리 무리져 모여 있은즉,
마치 나무에 꽃이 핀 격이라.
일본에서는 이를 우담바라라고 하나니 ....”
대개는 풀잠자리 알을 두고는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호들갑을 피우고 만다.
두어라,
풍륜이어든 금륜(金輪)이어든 이를 굴리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타나길 기대하느니,
차라리 내 마음의 풍금을 울리니만 못하리.
지난 일요일 들깨를 수확하였다.
봄철 모종을 심느라고 며칠 진고생을 하더니만,
가을 이제 수확하느라 또한 고초가 적지 않다.
거두어들인 들깨 단이 세 군데나 된다.
무더기 하나를 차고 앉아 빨래 방망이로 두들기며 깨를 털었다.
“만경창파~”
“배를 저어가세~”
아무도 없는 들녘 나는 괴발개발 되는대로 노랫가락을 뱉어내며,
무심결에 흥을 부추기며, 힘을 내어본다.
곁에서 흉이라도 볼 량이면,
짐짓 노동요(勞動謠)라 이르며 가을을 이리 맞는다.
깨타작을 하고 있는데,
얼핏 가느다란 깨줄기 하나에 무엇인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일을 멈추고 가만히 그 줄기를 들여다보았다.
아, 순간 이것이 세인들이 부르는 우담바라가 아닌가 싶다.
청령(蜻蛉)
내 마음의 잠자리 떼.
원래 잠자리 떼는 번뇌를 상징한다.
사람들은 풀잠자리 알을 보고도 굳이 우담바라라고 부른다.
문득 생각한다.
번뇌를 우담바라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정녕 지혜가 아닌가 말이다.
우담화가 피자,
주지 스님이야 해우소에 들어 남 몰래 미소 지으며,
신도들 꾀일 궁리를 틀지 모르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다만 신심 깊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는
연신 두 손 모아 합장하며 가업는 염원을 허공중에 사뢰 올린다.
그 누가 풀잠자리 알을 미망이라 이르는가?
풀청령(草蜻蛉)!
내 마음의 은빛 방울.
번뇌이어든 미망이어든,
문득 꽃으로 피어나 가을 하늘을 은빛으로 빛내는 우담바라.
뭇중생들에게 올가을 은총(恩寵)이 이리 아름다워라.
(이웃 밭 또는 우리 밭에 왜가리가 앉아 쉬면서 젖은 몸을 말리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