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행전(行纏)

농사 : 2011.06.14 20:01



행전과 비슷한 말인 각반이라는 말이 혹 귀에 익은가?
각반(脚絆)은 요대(腰帶)와 함께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교련시간에 쓰였다.
각반은 발목을 감는 띠로 걸을 때 간출하게 수습해준다 한다.
하지만 실제는 자주 흘러내려 오히려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었다.
요대는 허리띠인데 너비가 넓고 무겁기 때문에 이 또한 달갑지 않은 착용구였다.

내 전거를 살필 겨를이 없어 그냥 짐작만 하지만,
요대는 몰라도 각반은 필시 왜색 용어일 터다.
요대란 말은 중국 고전을 읽다보면 자주 만나지만,
각반은 내가 소학(疏學)하여 어두운 소치이겠지만 접한 기억이 별로 없다.

잠시 짬에 떠오르는 말을 먼저 주워섬겨보았으나,
여하간 오늘 이야기는 행전이니 말을 제대로 이어 시작해본다.

내가 2007년도에 주말농사를 하게 되었는데,
풀 때문에 여간 농사짓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해서 예초기를 하나 장만하게 되었다.
허나 세상만사 그러하듯이 득(得)이 있으면 실(失) 또한 따라오는 것.
허리를 굽히지 않고 일을 하니 좋긴 하나 엔진 소리가 제법 크고,
배기가스도 머리 뒤로 폴폴 솟아올라 이 또한 편치 않다.

하지만 순식간에 풀을 베어나갈 수 있으니,
예초기에 의지하여 농사를 짓지 아니 할 수 없었다.
예초를 해가다보면 예초기 칼날에 잘린 풀이라든가,
흙먼지 따위가 비산(飛散)하면서 신고 있는 장화 속으로 마구 들어간다.
그러노라면 발바닥에 이물감이 느껴져 일을 멈추고 이들을 수시로 털어내야 한다.
일에 한참 집중하다가 이리 멈추자니 이게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해서 발목에 행전을 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 감발은 발을 감는 것이지만,
행전은 그 위 발목에서 무릎까지 띠로 두르는 것이니,
이 양자는 차이가 있다.)

이게 예초기를 사면서부터 필요성을 느껴오던 바이나,
수년이 지난 어제서야 만들게 되었다.
어지간히 게으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실인즉 우물사건이후 임시로 수돗물을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 참고 글 : ☞ 2011/05/12 - [농사] - 급수공덕(汲水功德) - (2))
물탱크 뚜껑을 열고 모기장을 덮어 염소 성분을 휘발(揮發)시키고 있는 게다.
처음엔 브로와를 뚜껑에 달았으나 이게 별로 효과가 없었다.
해서 처에게 모기장이나 양파망을 부탁하였다.
이게 도착하자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사춤에 행전을 만들어 보게 된 것이다.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나는 이번에 양파망을 이용했는데,
모기장이라고 아니 될 까닭이 없다.
양파망을 타서 펴보았더니,
맞춤하게 좌우 두 개의 행전을 만들 만하였다.
반으로 가르고 윗 벼리 부분에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붙였다.

(벨크로는 암, 수 짝을 앞/뒤 반대로 붙인다.)


(케익 상자를 세워두고 발 인양 행전을 입혀보았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벨크로가 필경은 중국산인가보다.
조금 쓰다 보면 잘 떨어진다.
호치키스로 드믄 드믄 몇 군데 박아주면 좋다.

구멍이 숭숭 나서 바람이 잘 통하니 우선은 답답하지 않고,
풀 조각 따위가 장화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
제법 쓸 만하였다.

농군이 맵시를 뽐낸들 누가 쳐다나 볼 것이며,
또한 그럴 까닭도 없는 것,
이리 용처(用處)따라 가까운 곳에서 임시변통으로 구처(區處)하여,
사나흘 풀을 다스리니 나만의 풍취(風趣)로새.

일을 마치자니,
어느 덧 서쪽 하늘에 흡사 커다란 홍시만한 석양이,
막 함지(咸池) 속으로 떨어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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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06.15 01:35 PERM. MOD/DEL REPLY

    발명정신도 대단하시군요.
    마지막 문장은 마치 잘 익은 시 한 수 같습니다.

    ***

    어느 덧 서쪽 하늘에 흡사 커다란 홍시만한 석양이,
    막 함지(咸池) 속으로 떨어져들어간다.

    ***

    농사 짓는 재미에 흡뻑 빠지신 모습입니다.
    은근히 부럽습니다.

  2. bongta 2011.06.15 17:51 신고 PERM. MOD/DEL REPLY

    저희는 도시 사람이었지만 원래 농사 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한 것인데, 여기 시골 인심이 박하고 흉하여,
    농사를 짓는 가운데 저이를 다스리려고 궁리를 트고 있습니다.

    우물사건의 주역 할머니.
    20년간 우리 밭을 거저와 다름없이 붙이던 이였는데,
    이런 패악질을 하니 주변 사람들은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이릅니다.
    오늘 예초작업을 하다 그 집 마당을 보니,
    그 할머니가 허리를 굽힌 채 뒤뚱뒤뚱 걸어갑니다.
    조금 있다가 보니 농약 통을 지고 매실 나무에 약을 치더군요.

    자신은 농업박사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보기엔 그 비결의 상당부분은, 농약, 제초제가 아닐까 싶더군요.
    이것저것 노인 농부들에게 농사의 지혜를 배우고도 싶었습니다만,
    저이의 평소 행실을 미루어 농사법 역시 그다지 대단할 것 같지 않습니다.

    훅 불면 넘어질 위인이 농약을 주는 것을 보니,
    일편 애처롭게도 보입니다.
    하지만, 저 조그마한 육신에 얼마나 많은 욕심이 들어 있기에,
    평생 저리 주변 사람들에게 갖은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인가?
    당신 자신은 알고 있을까?
    노망이 든 것도 아니고 정신은 성성(惺惺)합니다.
    한 평생 살면서 도대체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산다면,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문득 산다는 것이,
    참으로 단작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저이의 욕심 앞에서 우리는 거의 양보를 하고 살아왔지요.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용서가 아니 됩니다.
    농사에서 물은 곧 業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
    이것 가지고 농단을 부리는 것은,
    상대의 목을 조르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해서,
    하나 둘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는 크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중 하나 본 글로 올립니다.

  3. 은유시인 2011.06.16 01:05 PERM. MOD/DEL REPLY

    적당히 양보할 줄도 알고 다툼 없이 살면 얼마나 서로가 편하겠습니까?
    다 늙은 사람이 뭔 욕심이 그리도 많이 지니고 있답니까?
    젊은 놈이나 늙은 놈이나 욕심은 절대로 버리지 못하는 법인가 봅니다.
    저는 저금이 없습니다.
    돈을 못 벌어서 적금이 없는게 아니니...
    이게 생활인으로써 되게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물욕이 없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자랑하는 건 절대 어닙니다.
    돈 없는 것도 무능한 것으로 일종의 죄악이라 합니다.

  4. bongta 2011.06.16 08:54 신고 PERM. MOD/DEL REPLY

    양보는 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 크기만 지켜 밖을 넘보지만 않아도 좋겠습니다.

    돈 없는 것이 죄악이라면,
    돈 있는 것은 덕이겠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악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착하게 살다가 세상의 풍파에 떠밀려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과연 죄악과 상찬은 어디에 서 있는 것입니까?

    문제는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양심이란 거울을 얼마나 믿고 아끼느냐 아닐까요?
    이 고루한 이야기가 오늘엔 그저 비웃음을 받고 말지만,
    그래도 일 다 끝나고 저녁에 밭 언덕 위에 서서 바람을 맞으면,
    여전히 맑고 향기롭습니다.
    저의 거울도 그리 영혼의 혼줄을 이어 닿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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