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초선(草禪)

농사 : 2011.09.29 11:12


내가 농원을 개설하면서 작물을 심었는데,
남들은 거개가 하는 방초시트를 덮지 않았다.
방초시트는 말 그대로 방초(防草) 즉 풀을 막는 sheet를 말한다.
이 방초시트로는 부직포라든가 차광막 따위를 쓰거나 전문적으로 개발된 방초망을 사용한다.
이들로 작물 주변을 제외하고는 전 포장(圃場)을 덮어 풀이 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리 하면 풀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여 관리 품을 한결 덜 수 있다.
이보다 더 모진 방법으로는 제초제를 뿌리는 것이다.
이는 방초시트에 비하여 사뭇 비용이 덜 들고 간편하다.
하지만 약해로 인해 자칫 잘못하다간,
일하다 쓰러지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는가 보다.

나는 주말농사 시절부터 자연농법을 고집하여,
제초제는커녕 멀칭용 비닐도 일부만 사용하고 그냥 풀과 함께 작물을 재배하였다.
대신 예초기(刈草機)를 장만하여 틈이 나는 대로 풀을 베어나갔다.
하지만 풀엔 장사가 없다.
이쪽 끝을 다하고 저쪽 끝에 이르르면,
맨 처음 예초를 하였던 곳은 다시 다 자라나 있다.
 
예초기를 메고 밭에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도 아프고, 손목도 시큰, 팔뚝도 뻐근해진다.
이게 대략 10kg 정도 되는데 장시간 이를 메고,
작업봉을 휘두르면서 연() 수 십 km를 휩쓸고 다녀야 되니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다.

아무리 예초기를 능숙하게 다룬다고 하여도,
작물 밑은 자칫 다칠까봐 피해가기 때문에 늘 베지 못한 잡초가 남아 있게 된다.
이런 것까지 참아내지 못할 양이면,
필경은 낫을 들고 일일이 손으로 뽑아내야 한다.

하기사,
나는 이젠 포정해우(庖丁解牛)를 흉내 낼 정도엔 이르렀다.
풀과 흙 사이에 칼날을 넣어 흙 한 점 건드리지 않고 풀의 생장점을 끊어낸다.
칼날은 하나도 무디어지지 않아 19년을 내리 써도 칼날은 새것과 진배없다.

몇 년 후 나는 아마도 이리 기염을 토하지나 않을까 싶다.
장자에 나오는 저 포정이여,
네 무딘 칼날로 어찌 감히 나의 칼날과 겨루고자 함인가?

莊子 - <庖丁解牛>


庖丁為文惠君解牛,手之所觸,肩之所倚,足之所履,膝之所踦,砉然嚮然,奏刀騞然,莫不中音。合於《桑林》之舞,乃中《經首》之會。文惠君曰:“譆!善哉!技蓋至此乎?”庖丁釋刀對曰:“臣之所好者道也,進乎技矣。始臣之解牛之時,所見無非牛者。三年之後,未嘗見全牛也。方今之時,臣以神遇,而不以目視,官知止而神欲行。依乎天理,批大郤,道大窾,因其固然。技經肯綮之未嘗,而況大軱乎!良庖歲更刀,割也;族庖月更刀,折也。今臣之刀十九年矣,所解數千牛矣,而刀刃若新發於硎。彼節者有間,而刀刃者無厚,以無厚入有閒,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雖然,每至於族,吾見其難為,怵然為戒,視為止,行為遲。動刀甚微,謋然已解,如土委地。提刀而立,為之四顧,為之躊躇滿志,善刀而藏之。”文惠君曰:“善哉!吾聞庖丁之言,得養生焉。”

“... 저는 기술이 아니라 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이 처음 소를 잡았을 때는 왼통 소만 보였지요. 하지만 3년이 지난 후 소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봅니다. 감각기관을 여의고 마음이 닿는 곳을 따라 일을 하지요. 하늘의 이치만 따르기 때문에 커다란 틈과 구멍에 칼을 놀려 그 기술로 아직도 긍경을 다친 적이 없습니다. 솜씨 좋은 소잡이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칼잡이는 한 달에 만에 칼을 바꿉니다. 이는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19년 동안 수천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이 방금 간 것처럼 날카롭습니다. 뼈마디엔 사이 틈이 있고, 칼날엔 두께가 없습니다. 두게가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넓고 넓어(恢恢) 칼날을 놀리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19년이 지났지만 칼날은 방금 간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매번 일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경계합니다. 보는 것을 숨죽여 멈추고 조심스럽게 움직여 미묘하게 칼을 다룹니다. 살이 뚝 떨어져 나가는 것이 마치 흙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칼을 든 채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고는 머뭇거리다가는 이내 만족하여져 칼을 거둬 챙깁니다. ......”


나는 예초를 하면서도 이것은 무엇인가 미련한 짓이 아닌가?
이리 회의를 하곤 했다.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초망을 씌우지 않아 미련한 것이 아니라,
풀과 이리도 각박하게 싸우는 짓거리가 우둔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풀은 제 아무리 인간이 다스리려고 하여도,
이를 가열차게 비웃으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시 밭을 덮어간다.
필경은 풀과 겨루지 않고 친해지는 방법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농사를 지으면서 해결하여야 할 나의 과제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인간의 의지로 꺾어가려는 모습이,
마치 당랑거철(螳螂拒轍)처럼 얼마나 우매한 것이더냐?

‘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씨는 무농약 유기농 사과농사를 짓다 실패하고는 자살하려고 산에 오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인가?
기무라씨의 밭과 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흙이 달랐던 것.
산의 흙에선 잡초가 제멋대로 자라고, 미생물이 풍부하다.
하지만 열심히 풀을 뽑아낸 기무라씨의 밭에선 사과는 열리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온 그는 이제부턴 풀을 뽑지 않았다.
그리고는 세칭 기적의 사과가 열리기 시작했다.

내가 주말농사 시절엔 어느 해 전 밭에 콩을 심었다.
하지만 풀을 제어하지 못해 낟알 하나 건지지 못했다.
풀과 함께 작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풀이 번무(繁蕪)하여 작물을 덮어버릴 지경에 이르면,
작물은 이에 치여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사과 같은 키가 큰 과수라면 혹여 이를 이겨내고 높이 자라면 모를까,
초본 작물은 풀을 이겨내기 어렵다.

특히나 일반 작물 또는 과수는 인간의 손에 의해 끊임없이 개량된 것이기에,
자연계에 그냥 내버려두면 저들 야생의 강인한 생명력을 이겨내지 못한다.
열매를 크게 한다든가, 달게 만든다든가 하는 점에 중점을 두어 개량하고,
충분한 비료를 주어야 제 역할을 하게 만들어졌기에,
자라면서 사람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제대로 발육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그냥 식물이 아니다.
인간에게 종속된 새로운 종인 것이다.
인간의 손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게 끊히면 그냥 명을 놓고마는 특수한 생명.
현대에 존재하는 거개의 모든 작물, 과수가 그렇다.
이게 따지고 보면 영악한 짓거리를 넘어 여간 가여운 노릇이 아니다.

기무라씨의 사과 역시 자연계의 야생 상태 그대로인 능금, 사과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인간의 손에 의해 개량된 현재의 사과란 품종은 이미 예전의 사과가 아닌 것이다.
때문에 비료, 농약, 제초 따위의 사람에 의한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10년 남짓 기무라씨는 실패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풀을 키움으로써,
사과가 저 깊숙이 간직한 원래의 본성을 일깨운 것일 것이다.
차츰 그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사과가 비로소 맛과 향을 뿜어낸 것일 것이다.
이런 노력은 전 인생을, 아니 목숨을 건 생활 철학의 실천 의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하다.
잘은 모르지만 기무라씨가 학문이 깊은 것 같지는 않은데,
일본인 가운데 노장(老莊) 철학을 농업에서 실천적으로 행한 사람을 가끔씩 만나게 된다.
가령 후쿠오카 마사노부도 그중 한사람인데 이 분 역시 풀과 친한 농업을 짓는다.

나는 언감생심 그 정도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고,
그저 방초시트를 깔지 않고 견디어 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때문에 수시로 예초기를 돌려 풀을 단속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실정으로는 풀을 그냥 놔두면 과수가 밭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 말라죽을 터이니까.
이 시험이 언제 끝날지, 어떻게 나아갈지 나도 잘 모른다.
다만 나는 천천히 공부하듯 나아간다.

어쨌건 나는 밭에 예초기를 메고 나선다.
악착같이 뿌리까지 뽑아내겠다는 심산으로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과수가 치여 눌리지나 않을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며 잘라나간다.
하지만 혼자 일을 치르기엔 다소 넓은 밭이라 이만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묵묵히 예초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정신을 다른데 팔 틈이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접신의 경지에 오른 무당처럼 거의 무아지경에 이르곤 한다.
등짝에 땀은 흐르고 팔은 아파오는데 이게 익숙해질 때쯤이면,
불현듯 달달하니 느껴지는 기분과 야릇한 향이 가슴께를 지나 뇌리까지 피어오른다.
이 때 슬쩍 산들 바람이라도 지나면 묵직하던 예초기도 가쁜 가쁜 설렁거리고,
정신은 뜨락에 핀 가을꽃처럼 맑고 깨끗해진다. 

스님네들이 출가해선 삭도(削刀)로 머리를 자른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이른다.
12연기(十二緣起)를 순관(順觀) 할 때 처음 출발은 무명으로부터다.
자르고 잘라도 또 자라나는 머리카락, 풀을 아우러 무명에 빗댄,
저들의 비유가 고심참담(苦心慘憺)한 가운데 사뭇 그럴 듯하다.

( ※ 12연기(十二緣起) :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첫 출가함에 계사(戒師) 스님으로부터 수계 받고 본사(本師)께선 머리카락을 자른다.
이때 낙발(落髮) 게를 읊는다.

毀形守志節 割愛無所親
出家弘聖道 願度一切人

형을 허물어 지절을 지키며,
애를 끊고 소친과 이별한다.
출가해 성도를 넓히고,
일체 중생을 제도할 사.

여기 형을 허물고, 애친(愛親)을 끊는다는 말처럼 삼엄한 말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음인가?
손끝부터 시작한 소름이 팔뚝을 자르나니 살처럼 지난다.
내가 가끔씩 저들을 탓하곤 하지만,
이만으로도 삼가 저들에게 존경의 념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달리 복전(福田)이라 이르는 오정덕(五淨德)에 역시 같은 말씀이 있다.

一者 發心離俗,
二者 毁其形好
三者 永割親愛
四者 委棄軀命
五者 志求大乘

예서 형을 허문다는 말은 곧 법복(法服)을 입는다는 것이니,
이는 삭발염의(削髮染衣)한다는 말과 같다.
머리카락을 밀고 물들인 옷을 입는다는 것이니,
과연 무명초(無明草)를 자름으로써 무명 번뇌를 끊을 수 있음인 것이며,
애친을 잘라 적막(適莫)을 없앨 수 있음인가?

내가 여름 내내 아니 상금(尙今)도 예초기를 메고, 낫을 들고,
온 밭을 헤매이다시피 분주히 돌아다녔지만 풀은 매양 다시 돋아난다.
체발(剃髮)하고 승복(僧服)을 입는다고 무명에서 벗어난다면,
온 천하에 구경열반(究竟涅槃)에 든 중들이 갠지스 강 모래알보다 더 많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유식(唯識)은 오위백법(五位百法)을 말한다.
이게 무착(無着), 세친(世親)의 작법체계이지만,
오위백법(五位百法) 아냐 백위천법(百位千法)으로 벌려놓는다한들,
따지고 보면 12연기(十二緣起)로 돌아가고,
오온(五蘊)에 다름 아니다.
하나로 돌린다면?
오위백법(五位百法)은 다만 무명번뇌(無明煩惱)일 따름인 것을.

( ※ 오온(五蘊) :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

스님네들이 때맞춰 옹기종기 모여들어 체발식(剃髮式)을 행한다.
어떤 이는 금란가사 쫙 뽑아 입고 위엄을 뽐내기도 하고,
혹은 판수쿨라를 다려 입고 폼을 잡는다.
그래 화두는 아직도 성성(惺惺)한가?
무명은, 번뇌는 과연 사라졌는가?
아마도 저들 가슴팍엔 욕심이, 머릿속엔 어리석음이,
우리 농원 밭에 자라는 풀보다 더 무성하지 않을까?

( ※ 판수쿨라 : 분소의(糞掃衣),
불에 타고, 쥐가 쏠고, 계집 월경한 천 등으로 만든다.
온갖 더럽고 천한 것으로 기워 만든 옷.
중들이 수행의 방편으로 입는다고 하지만,
개중(個中)엔 폼 잡고 뻐기느라고 입는 양도 싶다. )

여자들은 역시 독하다.
내가 설겅설겅 예초기를 메고 온 밭을 헤매듯 돌아다녀도,
힘이 딸리고 어깨가 저리고 팔목이 시큰거려 죽겠는데,
내 처는 하나하나 잡초를 뽑겠다고 대든다.

“아, 그리하려면 어느 명년에?
딱 10평 농법이고뇨.
그 이상은 어려운고,
그릇이 그러한데 어찌 말리겠는가?
그러다 끝내는 옆집 누구처럼 제초제 치자고 덤비게 된다.”

물론 우리 집 사람은 절대 제초제를 칠 그럴 위인은 아니다.
하지만 방초망을 치자고 채근한다.
하다못해 비닐멀칭이라도 하자고 한다.
하마, 내년엔 일부 시험 삼아 그리 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위생관념은 필경 사내사람이 아니라 계집사람이 세운 것일 것이다.
중세 시대 골목길은 집집이 밖에 내다버린 오물, 똥으로 범벅 진창 수준이었다.
뾰족구두 만들어 진창을 골라 딛고 다니다.
닦고, 소독하고, 예방주사 만들고 ...
필시 이게 다 계집사람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하기에 우리네 속담엔 이리 이르고 있다.

‘과부 집엔 은이 세 말, 홀아비 집엔 이가 서 말,’

무명을 자른다고 부지런히 삭도로 잘라내지만,
이도 부족하면 단지(斷指), 단비(斷臂)도 예사로 하고,
끝내는 제 몸을 불사르는 분신(焚身)도 불사한다.
무상(無常)한 것이라,
번뇌는 여전히 풀처럼 다시 돋는다.

허나,
풀을 매는 저나,
풀을 내버려두는 나나,
모두 미망(迷妄)인 것을.

밭에 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나는 문득 신수와 혜능을 떠올린다.

神秀 偈  唐 神秀大師 (당나라 신수대사의 게송)
 
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의 나무요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 같나니
時時勤拂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莫使有塵埃    티끌과 먼지 끼지 않게 하라.
 
慧能 偈  唐 六祖慧能大師 (당나라 육조혜능대사의 게송)
 
菩提本無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無臺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佛性常淸淨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何處有塵埃     어느 곳에 티끌 먼지 있으리오.

(※ 참고 글 : ☞ 2009/02/01 - [소요유] - 무선무불선(無善無不善))

연신 풀 뽑는 신수,

허나, 풀과 작물은 하나인 것을.
혜능은 장작 패고 방아질을 하며,
법조(法祖) 스승 홍인(弘忍)의 말씀을 기다린다.

祖以杖擊碓三下而去

지팡이로 세번 땅을 쿵쿵 내지르는 말씀인즉,
야반삼경 법을 받으로 오라는 것이라 (三更受法),
六祖大師法寶壇經엔 이 장면을 이리 문학적으로 장엄하고 있다.
그 때 조사가 설한 것이,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다.

何期自性,本自清淨
何期自性,本不生滅
何期自性,本自具足
何期自性,本無動搖
何期自性,能生萬法。

자성은 이리 구족한데,
풀을 뽑는 정성은 무엇이관대.

훗날 신수는 북종선을 일구고,
혜능은 남종선을 선양한다.

신수가 앞에 있음으로써 혜능의 길이 마련된 것,
북이 있고 나서야 남이 있는 것,
아니 북은 북, 남은 남인 것.
비록 혜능이 의발(衣鉢)을 물려 받았지만,
수미쌍관(首尾雙關), 내겐 신수와 혜능은 법(法)의 자오(子午)일 뿐 차등이 없다.

번뇌(煩惱)가 곧 지혜(智慧)가 아닌가?
번뇌즉보리야(煩惱卽菩提也)

환이로세, 꿈결인 것이니,
당체는 모두 빈 것임을.
如幻如夢 當體全空

고로 도는 둘이 아니다.
故道不二相

생사 역시 열반과 다르지 않다.
旣體達生死卽是涅槃故滅無生相

時時勤拂拭이나,
本來無一物이나,
이게 다른 것이냐 같은 것이냐?

새는 숲에 들고,
물고기는 물속을 헤엄친다고 했다.
농부인 나는 무명초 풀속에 노닌다.
鳥入森林, 魚遊大海, 我遊草場

밭은 풀의 도량(道場)
초(草), 번뇌(煩惱), 보리(菩提) ...

선사(禪師)
아니 나는 고법대덕승(高法大德僧)이 아니니, 
선사(禪士) 농부 bongta.


***
***


※ 참고 사항

출처 : http://blog.naver.com/mandala7/130009870941
감사합니다.

오위 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

俱舍論 : 색본심말(色本心末)

色(11)

眼·耳·鼻·舌·身[五根], 色·聲·香·味·觸[五對境], 無表色

心(1)

六識

心所

(46)

大地法

(10)

受·想·思·觸·欲·慧·念·作意·勝解·三摩地

大善地法

(10)

信·不放逸·輕安·捨·慚·愧·無貪·無瞋·不害·勤

大煩惱地法

(6)

癡·放逸·懈怠·不信·惛沈·掉擧

大不善地法

(2)

無慚·無愧

小煩惱地法

(10)

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

不定地法

(8)

尋·伺·睡眠·惡作·貪·瞋·慢·疑

心不相應行法

(14)

得·非得·衆同分·無想·無想定·滅盡定·命根·生·住·異·滅·名身·句身·文身

無爲法(3)

虛空·擇滅·非擇滅


오위 백법(五位百法)

大乘百法明門論 · 成唯識論 : 심본색말(心本色末)

心(8)

眼·耳·鼻·舌·身·意[前六識], 末那識·阿賴耶識

心所

(51)

遍行(5)

作意·觸·受·想·思

別境(5)

欲·勝解·念·定·慧

善(11)

信·慚·愧·無貪·無瞋·無癡·勤·輕安·不放逸·行捨·不害

煩惱(6)

貪·瞋·癡·慢·疑·惡見

隨煩惱

(20)

忿·恨·覆·惱·嫉·慳·誑·諂·害·憍·無慚·無愧·掉擧·惽沈·不信·懈怠·放逸·失念·散亂·不正知

不定(4)

悔·睡眠·尋·伺

色(11)

眼·耳·鼻·舌·身[五根], 色·聲·香·味·觸[五對境], 法處所攝色

不相應行(24)

得·命根·衆同分·異生性·無想定·滅盡定·無想報·名身·句身·文身·生·老·住·無常·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方·時·數·和合性·不和合性

無爲(6)

虛空·擇滅·非擇滅·不動滅·想受滅·眞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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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유시인 2011.09.30 01:11 PERM. MOD/DEL REPLY

    농사짓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껏 일해봐야 표도 안 나는 작업이겠습니까?
    잡초 베는 작업이 특히 그러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대우 받지 못하는 직업이 농사꾼인 듯싶습니다.
    원리원칙에 충실한 봉타 선생님의 철학이 옛 선비의 기상을 닮은 듯합니다.

  2. 사용자 bongta 2011.09.30 09:10 신고 PERM. MOD/DEL REPLY

    여기 시골에서 농촌 사람을 만나보면,
    젊은이나 늙은이나 모두 농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더군요.
    힘은 힘대로 들고 사회적으론 홀대 당하고,
    보람을 찾기 어렵단 이야기일 것입니다.

    거죽으로는 농부랍시고 폼을 잡지만,
    알고 보면 농산물을 매개로한 장사꾼도 제 주변엔 몇몇 보입니다.

    저의 경우엔 농사가 제법 재미있고,
    흙과 더불어 공부가 깊어지는 느낌입니다.
    이대로 나아가면 뜻과 보람을 찾을 수 있겠거니 그리 여깁니다.
    하지만 농사일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한참 더 배워야 할 것입니다.

  3. 은유시인 2011.10.01 00:50 PERM. MOD/DEL REPLY

    저도 얼른 시골에 정착하여 반 농삿꾼처럼 살게 되면
    그때 봉타 선생님을 한 번 초대할 생각입니다.
    예정은 2년 후로 잡는데 그것마저 뜻대로 될지 의문입니다.
    시골 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은 건 10년쯤 전이니까 쉽지 않습니다.
    시골에 살려 해도 오히려 도시보다 시골이 돈이 더 많아야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농사랍시고 지으려면 어느정도의 땅뙈기를 장만해야 하니까요.

  4. bongta 2011.10.01 10:11 PERM. MOD/DEL REPLY

    시골은 마음의 고향.
    도시 사람들은 막연하나마 시골을 동경합니다.
    저도 그랬지요.
    제 지인 한 분도 일흔 중반을 넘겨 혼자 사시지만,
    시골에 가시겠다고 집을 알아보시곤 했지요.
    그러다가 최근 아파서 쓰러지셨습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시골 생활을 꿈꿉니다.

    제가 여기 살아보니까,
    자연의 시계, 아니 결국은 생체 시계이겠지만,
    이게 늦게 가는 것 같습니다.
    우주선 타고 달나라 갖다오면 시간이 늦춰져 젊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로렌츠변환이란 것으로 시간 팽창(time dilation)이 일어난다는 것 아닙니까?
    여기 시골에서는 이 따위 物理가 아니라 心理가 이를 대신합니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여유(餘裕)라고 해야 할는지?

    구름은 한가로이 벽공을 흐르고, 바람은 뺨과 팔뚝을 어루만지며 사라집니다.
    제가 풀방구리와 함께 아침 신새벽과 저녁에 산책을 하는데,
    고개를 들것도 없이 바로 눈앞엔 하늘의 구름이 기기묘묘한 모습을 내보이며,
    은밀한 하늘의 말씀을 지상으로 내려주십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듣다보면, 그 순간을 맞은 운명에 전율하게 됩니다.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
    특히 우리 밭 언덕 위에 서서 팔뚝을 핥듯 스쳐지나가는 순간,
    바이올린 현이 떨 듯 영혼은 파르르 파닥이며 영원 속으로 잠영(潛泳)합니다.
    어제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린아이가 연필로 그리다 슬쩍 지운 듯이,
    초승달 하나가 희미하니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미소를 짓는 양 싶지만,
    얼핏 가엽고 애초롭게도 보이더군요.
    우리 풀방구리가 고물아저씨 흉수(凶手)에 잡혀,
    그 모진 겨울바람을 맞고 떨던 때에도,
    저런 모습의 달이 지켜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여기 시골 개들은 모두 추위와 더위에 떱니다.
    어젯 밤에 일어나 온도계를 보니 5도 밑이더군요.
    예보에 의하면 내일부터 화요일까진 2도까지 내려간다고 합니다.
    개들은 한 겨울 추위에도 그냥 바깥에 내던져져 있습니다.
    하다 못해 못쓰는 옷가지, 북데기라도 넣어주면 좋을 터인데,
    여기 촌것들은 모질고 무지해서 그리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제들은 몇 겹으로 껴입고,
    제 식구들끼리 오손도손 화로에 마주 앉아 군밤을 까먹을 것입니다.
    차마, 그리 무정할 수 있음인가?
    제들 혈관에도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을 터인데?
    정말 흉한 이들입니다.

    구름, 바람, 달.

    유년 시절에 함께 하던,
    이들을 시골에 와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바쁜 이에겐 time dilation이 견딜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느려터지고 지루하고,
    게다가 이웃들은 거개가 무지하고, 경우가 없지요.

    시골이 순박하고 정이 많다는 것.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합리적인 사람한테,
    외려 순박함과 정을 느낍니다.
    신뢰를 기반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유출되는 정과 도움이란,
    박빙(薄氷) 위처럼 위태스럽고,
    나중엔 쉬이 원한과 배신으로 바뀌기 십상이지요,

    여긴 이치가 아니라,
    끼리끼리의 정분, 연고에 따라,
    비릿하니 끈끈한 관계가 맺어집니다.
    이것은 정이 많은 것이 아니라,
    더럽고 비열한 야합, 협잡 관계이지요.

    저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에게 위안을 받습니다.
    혹여 조금 더 살다보면 친구 하나 둘은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둘이면 족합니다.
    그도 아니라면,
    그것은 제 명운인 것,

    구름, 바람, 달.

    삼우(三友)외에 더 바란다면,
    과욕이겠습니다.

  5. 은유시인 2011.10.02 02:19 PERM. MOD/DEL REPLY

    그제와 어제는 해운대 벡스코 창업박람회에 갔었습니다.
    30년동안 해온 그래픽디자인으론 밥먹고 살기가 어려울듯 싶어서
    새로운 창업을 기대했습니다.
    주로 먹는것 창업을 소개하던데...
    요즘은 그래도 매스컴에서 장인이니 달인이니 하며
    오랫동안 관련기술에 매진해온 사람들의 실력을 인정하는 듯합니다만,
    사실 특정분야에 오랫동안 매진해온 대개의 사람들은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그저 돈 많이 버는 직업이 최고의 직업이요,
    특히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눈먼 공금이나 탐하는 자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정말 더러운 세상이지요.
    그러니 열심히 노력한다거나 성실해야 잘 살 수 있다는
    새마을운동의 철학은 실종된지 오랩니다.
    (박정희가 새마을운동 전개한 것은 잘한 짓입니다)

  6. bongta 2011.10.02 09:50 PERM. MOD/DEL REPLY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는 저는 약간 생각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농촌이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된 면이 있습니다만,
    정치적으로 즉 민주화가 억제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의 동력은 농촌 생활 향상을 위한 박정희의 순수한 뜻도 있었지만,
    국가가 국민들을 조직하여 정치적으로 관리하기 용이하게 하겠다는 불순한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 선거 때 이 조직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지요.

    그 후 전두환 정권 때는 동생 전경환이 이사장이 되어,
    사익을 위해 조직을 농단해 그나마 남아 있던 좋은 역할을 깡그리 허물어버렸지요.
    제가 예전에 등촌동에 땅을 알아보러 갔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 부동산업자가 말하길 이 일대 어마마한 땅이 대개는 저들 것이라 하더군요.
    최근엔 조직원들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어,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또 우물 이야기인데,
    작년에 우물을 팔 때 지난 주말농사시절 사귄 사람한테 관정업자 소개를 부탁하였지요.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더니만 근 한 달이나 지연시켰습니다.
    하루가 급한 상태였는데 이리 농단을 부리더니만,
    그나마 소개 받은 관정업자는 거의 양아치 수준이라,
    계약 끝나고 굴정하는 날,
    나타나지도 않고 야료를 부립니다.
    그날 서울에서 달려왔는데 약속시간을 한참 넘겨서도 깜깜 무소식이더란 말입니다.
    결국 이게 돈 더 받아먹겠다는 수작이었지요.
    저이들끼리는 건설 일꾼들이라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
    당시 그들 간엔 이미 은밀한 암약이 있었으리란 혐의가 발견되기도 하였지요.

    군(郡)에 들어가 알아보니,
    소개한 이가 새마을운동지도자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 아들이 당시 대학교에 입학하여 저는 내심 선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태를 이리 그르치자 괘씸하여,
    애초 장학 명목으로 주려던 것을 대폭 낮춰 주었습니다.
    그래도 그게 적지 않은 것이었는데 도중에 그리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헤살을 부렸지요.

    그래 새마을운동 사무실에 제가 찾아가 일장 연설을 하였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
    이게 새마을운동의 모토가 아니냐?
    귀농하려는 이가 마을에 들어오면 새마을운동 조직원이면,
    앞서 이끌고 뒤에선 밀며 살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리 훼방을 놓는다면,
    그게 무슨 새마을운동이냐? 넝마운동이지.
    여기 옹기종기 모여 끼리끼리 친목이나 도모할 양이면,
    새마을운동이란 타이틀을 왜 끼고 더럽히냐?

    그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제가 새마을운동 중앙회에 접촉하여,
    감사 요청하고, 조직원 모아놓고 정신교육할 터이니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할 참이었지요.
    그런데 처가 한참 말리기에 이것까지는 참았지요.
    아마 중앙회까지 일이 번지면 그자는 망신을 톡톡히 당했을 것입니다.

    제가 간간히 여기 농촌 사람들을 귀하지 않게 여기며 글을 적는 것은,
    이런 사람들을 겪은 게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동안 일평생 살아오면서 흉한 사람들 만난 것보다,
    여기 시골에서 짧은 시간 동안 겪은 게 몇 배나 더 많을 지경입니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군자라 할 수 없지요.
    군자는커녕 친구가 될 수도 없지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서로들 이런 지경이면서도 뒤로 호박씨 까면서 교류는 하는가 봅니다.
    남의 사정, 정보는 캐면서 뒤로는 제 잇속을 챙기겠다는 것이지요.
    전형적인 소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지금은 저자를 제가 용서를 하였습니다만,
    우물 사건의 할머니는 너무나도 패륜적이라 용서를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도대체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실수를,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저질러놓고도 뻔뻔한 저들을 보고 있자면,
    사는 게 대단히 쓸쓸해집니다.

    여기 와서 수년 되지만 새마을운동이,
    지역사회를 위해 도대체 무엇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군요.

    논어엔 이런 말이 나오지요.

    君君臣臣 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

    조직이 만들어지면,
    자체 생명력을 갖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고 힘을 내게 됩니다.
    그러다 끝내는 조직 목적에 위배되는 일도 예사로 삼게 됩니다.

    지금 새마을운동은 민간으로 이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관으로부터 유무형의 도움을 받고 있는 양 싶더군요.
    관의 입장엔 이런 관변 단체를 때론 요긴하게 동원시킬 수 있기에 그리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늘 그러하듯이 환골탈퇴하지 않으면,
    조직원끼리 친목하고 이권 나누는 단체로 전락하기 십상이지요.

    해서 저는 개인 레벨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비는 아비 노릇, 자식은 자식 역할에 충실하는 게 먼저란 생각인 것입니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요.
    그러기에 개인은 사회에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니까,
    조직이 횡포해지게 됩니다.

  7. bongta 2011.10.07 08:07 PERM. MOD/DEL REPLY

    수정)
    환골탈퇴 -> 환골탈태(換骨奪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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