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인스턴트화된 글들

소요유 : 2012. 8. 15. 09:32


어느 카페에서 글 하나를 대하고 쓴 글이다.

“명심보감, 오래보면 천해진다.”

이런 제하의 글이었는데,

명심보감을 오래보면 천해진다는 의미였는가 싶어,
제법이구나 싶었다.
평소 내가 가진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즉 바로 살펴보았다.
허나 실인즉 '오래보면 천해진다'라는 제목은 명심보감 내에서 하나 뽑은 글에 불과하였다.

 

 


좋은 글이긴 한데,
이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하고 이글을 단서로 하여 곧바로 유출된 내 생각을,
이 자리에 펴두기로 한다.

***

“명심보감, 오래보면 천해진다.”

이 제목을 대하자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기중 하나는,

‘近寺人家不重僧.’
‘절 근처에 사는 사람은 중을 존경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예쁜 계집사람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똥을 싸는 것을 알게 된다.
제 아무리 잘난 사내도 알고 보니 단처(短處)가 있더라.
마치 옥에도 흠결이 있듯이.

하니, 수행하는 산승(山僧)은 깊은 골에 숨어 도가 절로 높아지는 것이며,
계집은 사려 지킬 때라야, 꽃다운 향을 장구히 은은히 풍겨낼 수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이 년 저 년 가리지 않고 쩍쩍 벌리고, 깝대기 벗기 바빠서야,
어찌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그러하다 하고, 하나 남은 이야기가 정작은 더 하고 싶은 바다.

명심보감이라든가, 채근담 따위의 형식 고전을 전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나,
나는 특히 이들에 대하여 경계의 말씀을 해두고 싶다.
이런 다이제스트 형식의 서적은 공과 과가 함께 있다.
공이라 함은 지은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폭넓게 수집하여 정리해 둔 것인 바,
독자들이 수고로움 없이 무임승차하여 함께 편승하여 배움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 있음이니 중인(衆人)들은 대개는 이를 소홀히 생각하고 있다.
해서 난 오늘 이를 특히 지적해두고자 하는 것이다.

발췌한 문구들은 앞뒤가 잘려 있다.
즉 전후좌우 그것이 놓인 문제 상황이 절제되어 있는 것이다.
단말마의 비명처럼, 어둠 속에서 적군이 던지는 비수처럼,
내 가슴 속에 와 박히는 저 경귀들은 사뭇 놀랍고 충격적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건(event)이란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것.
외톨박이 사건은 없다란 말씀이다.

그 사건이 배태되고, 일어난 내외의 상황 조건을 배제하고서는
그 사건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때로는 불충분한 이해는커녕 전혀 엉뚱한 오도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이것은 사뭇 위태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뿐인가?
단편적인 지식들의 나열.
이들을 마치 인스턴트 식품처럼 수동적으로 주어먹다 보면,
사물을 종합적으로 조망하고, 근원적으로 살피는 분석 능력을 잃게 된다.
아무리 시시한 책일지라도 한 권을 다 읽으면,
저자의 일관된 주장, 사상, 관념을 추적하며 비평할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호오(好惡), 찬부(贊否), 정반(正反) 여하 간에,
전체를 훑으며 시종(始終) 거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발췌물들은 거두절미(去頭截尾)된 것인 바,
거긴 외마디의 외침, 절규는 있을지언정,
왼통의 전존재는 저 어두운 숲 속에 늘 잠겨있을 뿐이다.

가끔씩 발췌물들을 읽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될 수는 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 혹하여 빠지는 것은 곤란하다.
차라리 만화책을 읽더라도 시리즈 전체를 꿰어 마쳤을 때,
무엇이든 간에 한 소식을 거머쥘 수 있다.

이 뿐이 아니다.
명심보감과 같은 처세훈, 처세술 일반의 글들은,
세상을 토막 쳐 임기응변, 요령을 가르치는 폐단이 있다.
제 아무리 훌륭한 말씀이라 한들 체계적인 앎의 경로가 생략되어 있다.
그러한즉 깊이 있는 성찰을 하기 어렵다.

예하건대 N, P, K 가 비료의 삼요소인 것은 농부라면 누구나 다 안다.
그러하다면 화학비료를 이용 N, P, K를 작물에 충분히 넣어주면 그것으로 족한가?
하지만 대신 퇴비를 넣어준다면?
거긴 N, P, K외에, 부식산, 항생물질, 비타민, 식물호르몬 따위의 생리활성물질이 쉬이 생성되어진다.
N, P, K가 물론 중요하다지만 기실 생리활성물질이야말로 작물을 건강하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다.
수십 년 화학비료를 이용하여 밭에다 제 아무리 N, P, K를 넣는다한들,
절대로 생리활성물질은 넣어줄 수 없다.

(※ 참고로 내가 키우는 블루베리의 경우엔,
비료는 물론 나아가 일반 작물에서 일컫는 퇴비 따위도 필요없다.
이에 대한 말씀은 샛길로 접어드는 바, 이 자리에선 아끼기로 한다.) 

마찬가지로 처세훈이란 것은 마치 N, P, K처럼 일견 그럴듯하니 좋아 보이나,
정작 중요한 것,
저 안짝에 감추어진 삶의 근원적인 원인(原因)들,
그것을 한 인격의 삶에 대한 태도, 사상, 관념 그 무엇이라 불러도 좋지만,
이러한 것들은 처세훈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나라면 외려 처세훈과 같은 이런 짧은 토막글을 의식적으로도 멀리 하고 싶다.
대신 논어를 읽든 아니면 칸트를 대하든 온전한 텍스트 한 권을 수 년이 걸려도
읽고 읽어 내 것으로 완전히 체화시키는 공부를 하겠다.

마음밭(心田)은 결코 화학비료와 같은 처세훈 따위로 일구어질 수 없다.
심전에도 퇴비를 넣어주어야 한다.
말이 그럴듯하지, 실제 퇴비는 얼마나 번거로운가?
우선 제조부터 어렵다.
단박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야 익어간다.
뒤집고, 덮고, 미생물 넣어주고 ...
이런 과정을 농부가 직접 치루어야 질 좋은 비료가 만들어진다.
이것으로 끝인가?
당장 효과가 나지도 않는다.
수십 년 수행하듯 밭에 넣어주어야 비로서 온전한 밭이 만들어진다.

세상의 엉터리란 것들이 늘 그러하듯,
인스턴트식품이라든가 화학비료 그리고 처세훈 따위엔 시간이 거세되어 있다.
모든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시간의 세례를 받아야 익어간다.
만약,
시간이 생략되어 있다고,
그래서 그것이 좋다고,
목청 다듬어 그대를 부르고 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단코 의심스런 것일 수밖에 없다.

심전이란 결코 처세훈 따위로 갈아지는(耕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퇴비가 필요없는 밭으로 나아가야하겠지만.
이 자리에선 말 실오라기를 풀어내자하니,
대개는 이 정도가 적당하겠다.


※ 그렇다 하여 퇴비를 최종, 최선의 해(解)라 주장하는 게 아니다.
왜 그런가?
이에 대하여 마저 이야기 하여야겠지만,
글이 길어지는 즉, 나의 다른 글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 오줌 액비와 죽

***

“명심보감, 오래보면 천해진다.”

애초, 이 제목을 대하자 나는 명심보감을 오래 보면 천해진다는 뜻으로 새겼었다.
해서 순간,
나는 위에서 풀어놓은 내 이야기를 또 생각한 분도 계신가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이리 긴 이야기를 보태게 되었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
이 글은 OOO 님의 본글을 비판한 글이 아니다.
다만 그 글을 단서로 하여 유출된 전혀 다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한즉 혹여 오해를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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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2. 8. 15. 09: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