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용한 점쟁이는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 ?

소요유 : 2008. 2. 25. 12:33


미아리 점집은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버티어내고 있다.
그리 지나다보면, 꾀죄죄한 지붕밑에 시난고난
살아가고 있는 정경이 서늘하니 눈에 들어온다.
남루할지언정, 저리 천년을 버티어내고 있는
끈질긴 생명력은 도대체 무엇때문일까 ?

특히 현대에 들어와 미신이라고 경원시 당하고,
갖은 모멸, 질시를 다 받아가면서도,
점치는 행위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
그것은 물론 인간의 미래의 예측에 대한 간절한 욕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게 그리 간단한 셈술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만약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면 저리 파리똥 켜로 묻은 깃발을 펄럭이며,
추레한 모습으로 도시 한켠에서 신산고초(辛酸苦楚)를 겪고 있지만은 않았으리라.

도대체, 천군만마 달려 싸움질 하는 전쟁터도 아니고,
노다지 외국 원수가 방문하는 날도 아니건만,
일년 내내 사시장철 ‘占’이란 검은 글씨 해박은 깃발을
지붕 높이 내걸은 사연은 무엇이란 말인가 ?
저 음침한 術數, 야릇한 유혹은 어이하여 이 메마른 도시인의 가슴팍에
아득히 머나먼 계절 떠나간 님을 그리는 애뜻한 사연인 양
이리도 질척이며 서성거리고 있단 말인가 ?

***

음양오행, 간지
정말 놀랍다.
그 어둡고, 막막한 시절,
저리도 찬란한 사고체계를 구축한 叡智가 정말 눈물나도록 고맙고 존경스럽다.

까마득한 옛적,
막측(莫測)의 컴컴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
지푸라기 하나라도 의짓거리가 되련만,
거기 그 자리엔 추위, 배고품, 두려움만이 엄습하였으리라.

그 때, 그 누가 나타나,
음양으로 갈라 천지를 정립하고,
오행을 내세워 세상 돌아 가는 이치를 발라내었던가 ?
이들은 정녕 인간이 아니라,
멀리 외계에서 날아온 가슴이 따뜻한 Alien이었으리라,
하여 인간을 측은히 여겨 이를 내리 전한 것이 아닐까 ?

(* 나는 침술도 이리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끔 품어본다.
그 까마득한 옛날 어이 저리 정치(精緻)한 術法을 나툴 수 있었으리오.)

이 때부터 아둔한 인간의 머리가 깨이고,
지식이 쌓이며 한발두발 어둠을 헤쳐 나아가며 길을 내간 것이 아닐까 ?
이것이야말로 당시의 사람들에게 한줄기 구원의 등불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

아니라면, 저리 기기묘묘한 이치를
인간의 머리로 생각해내었다는 게 도무지 了解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이를 제대로 배우자면 보통의 아둔한 머리로는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로
法數 전개가 신묘막측(神妙寞測), 실로 녹록치 않다. 

나는 오래전 피서지에서 嚴道士라 칭하는 이를 만났던 적이 있다.
그 분은 휠체어를 타고 계셨는데,
우연히 숙소가 같아 며칠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있다.
동행한 그의 친구는 몸이 불편하여 평생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한 그를 위해,
승용차도 드문 그 시절 그의 손발이 되어 섬까지 배행을 하였다 한다.

별이 쏟아지는 바닷가의 민박집 마당,
평상위에 그들과 함께 며칠간 목마른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 때 그가 소개한 것이 연해자평, 명리정종 등등 소위 명문당刊 책 등속이었는데,
당시에 미쳐 읽지도 않은 형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도사 앞에서 요령 흔드는 격’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의 바닷속으로
그와 함께 빠져들었던 추억이 있다.

***

하지만 나는 이 아름다운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음에도,
사주팔자든 신수, 궁합이든 그게 그리 썩 잘 맞지 않는다는,
짙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선이 가까워 지자 장안의 術士들은 저마다 조동부리를 헐어
“某某가 大運이 임했다.”라며 나서고 있다.

술사마다 하는 얘기가 다르고,
지난 시절 망신 당했던 이들도 게거품을 물고 용틀임질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년말에 이들 술사 중  단 하나만 점지 받아 대선주자와 함께 거푸 용이 되리라.
그렇다고 이내 나머지가 지렁이로 전락하는 게 아니다.
그들 모두는 애시당초 지렁이였을 뿐이다.
다만 단 하나의 로또 술사만이 용케 대박을 터뜨렸을 뿐이지 않을까 ?

실제 그런 의심은 그리 잘못이라고 할 바 없다.
그 숱한 “신이 내린 여자”도 4년 또는 5년이상을 넘겨 내리
그 자리를 지켜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한번만 잘 맞추면,
최소 5년간은 용한 술사로 내노라며 행세할 수 있다.
맞출 확률도 적지 않다.
기껏 3명 안팎중 하나를 맞추는 게임이다.
제법 수지 맞는 장사다.
술사라면 이런 장사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

그들은 삼라만상의 무늬(紋)를 음양, 오행, 십간십이지로 갈라 나눈다.
특히 인간 중심으로 보자면 사주팔자라는 것 즉 생년.생월.생일.생시를
이들 기호체계를 빌어 재단하고 있다.

시간, 공간 제약적 존재인 인간.
그러한즉 태어난 당해(當該) 그 시각(時刻)의 우주 精氣와 개체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라는 가설이 일응 그럴 사하다.
유전적 형질, 즉 공간 구조는 相學에서 다루고,
명리(命理) - 사주팔자는 시간 도메인에 집중하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믿기로 한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마구다지로 부정할 근거도 딱히 없다.

문제는 현재 생시를 2시간 단위로 구별하고 있기 때문에 정도(精度,precision)가
너무 낮다라는 지적은 어찌 할 것인가 ?
천체의 운행을 時기준 2시간씩 쪼개 열둘로 나누는 것이 과연 마땅한 것인가 ?

더욱이 나뉜 시간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사주팔자가 불연속적으로
확 바뀌어 버리는 것도 틀림이 없는 作法인가 ?
예컨대, 자시와 축시로 바뀌는 1:00 이전과 이후는 사주팔자가 갈린다.
0:59 이전과 1:01 이후는 그리 확연히 다른 경계인가 ?

사주 역시 양자도약(Quantum Leap)하는가 ?
그렇다 하여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과연 그 연월일시의 기준은 절대성을 갖는 것인가 ?
유사이래 曆法체계라는 것이 계속 바뀌어왔듯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그럴듯한 답변을 그들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의 2진체계든, 사주팔자에서의 60진법체계이든
모두 digital적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다.
컴퓨터의 세계에선 끊임없이 계산 精度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pc만 하더라도 8bit apple 컴퓨터가 지금 64bit로 진화하고 있다.
8bit에서 64bit라면 단순히 8배로 처리능력이 증가함이 아니다.
2^8=256, 2^64=18,446,744,073,709,551,616이니
실제로는 72,057,594,037,927,936배로 정보 분해능이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사주팔자에선
60*12*60*12=518,400 분해능으로 제한되어 있다.
60억 인구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6,000,000,000/518400=11,574.074074074074074074074074074...
셈법의 시비는 고사하고, 사람이 만여명 넘어가면,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처리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이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천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나는 사주팔자가 이런 한계에 대한 명확한 해법내지는 해명을 내놓지 않는 한,
늘 아리송한 현 위치를 극복할 수 없으리라 본다.

주역의 64괘도 한번 더 변전하여 배로 괘를 늘어놓는 시도도 있었고,
사주팔자도 한발 더 나아가 시간을 더 세밀히 쪼개려는
실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게 내재적 한계인지, 아니면 후학들의 아둔함 때문인지 ?
그들은 이 물음에 성실히 답을 내놓아야 한다.

혹 그들은 애써 피함으로서 구름 뒤에 숨은 달처럼,
그저 닷냥 서푼짜리 은근짜 추파나 던지며 연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그렇다면,
두어라,
하기사, 산다는 게,
달 보며, 술추렴하는 것,
그 이상 더 구할 것이 있더란 말인가 ?

萬古長空
一朝風月일사 !

***

현실이 이러한데도 장안엔 용한 점쟁이라 불리는 이들이 남아 있다.
어인 사정일까 ?

승자만 살아 남는다.
그렇다.
점의 세계엔 맞춘 자만이 기억된다.
맞추지 못한 자들은 바로 침몰하며 기억에서 사라진다.

수많은 점쟁이 중에서 용케도 연달아 제대로 맞추는 사람은
확률적으로 미미해서 그렇지 부단히 출몰한다.

천명이든 만명이든
토너멘트를 치루면 언제고 승자는 나타난다.
단 한번의 패전도 없이 내리닫이 이기기만 한 사람은 기필코 나타난다.
이 게임 형식은 유일한 하나만이 걸러지는 filter, 체같은 것이다.

이 게임은 늘 승자 하나를 예비하고 있다.
점의 세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
못 맞추는 자는 아침 이슬처럼 스러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어제도 맞추고 이번에도 맞춘 점쟁이는 인구에 회자됨과 동시에
그의 화려한 영광을 지속시킨다.

이게 실력이다. 이리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실력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에서도 그와 같은 신화는 곧잘 만들어진다.
이런 게임의 구조하에선
참여하기만 하면, 실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하나
그 자리를 반드시 차지하게 된다.

나는 점이라는 게 이런 체(篩)의 구조 속에 갇힌 게 아닌가 이리 의심한다.
그렇지만, 衆人은 점에 대해 은근한 기대를 놓치 않는다.
언제고 우리들 앞에 찬란한 영광에 빛나는 용한 점쟁이는 최소한 하나는 있게 마련이니까.

이들을 앞에 두고 낙낙히 취(醉)해볼 수 있다.
우리는 취하고(enchanted) 싶은 존재니까.
마법에 걸림으로서야 때꾹 낀 이 진세(塵世)를 아딸딸하게 건널 수 있음이다.

***

굴원의 초사 복거편(卜居篇)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굴원은 자신의 불우함을 슬퍼하며 첨윤이란 복관(卜官)에게 점을 치게 했다.
그 복관의 대답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詹尹乃釋策而謝曰 : 夫尺有所短, 寸有所長, 物有所不足, 智有所不明, 數有所不逮, 神有所不通, 用君之心, 行君之意, 龜策誠不能知事.

“첨윤은 이에 점괘를 뽑는 대통을 내려놓고 말했다. ‘무릇 자(尺)라도 짧아 보이는 수가 있고, 촌(寸)이라도 길어 보이는 수가 있으며, 물건도 부족할 경우가 있으며, 지혜라도 밝지 못한 경우가 있으며, 숫자에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으며, 신령함에도 통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그대의 뜻대로 행하기 바랍니다. 거북점, 대통점으로는 참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식의 점해(占解)라면 어디나 적용되리라.
하니, 언제고 틀릴 일이 없다.
복관치고는 참으로 名복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개물물(個個物物) 척단촌장(尺短寸長)인즉, 이리 솔직하니 답하는 복관이 어여쁘다.

그럴 듯이 변설만 늘어놓다,
정작 중요한 시점에선 슬그머니 꽁무니를 사려 뽑는 술사들보다는,
차라리 이리 문복자(問卜者)에게 되돌리는 태도가 외려 당당하지 않은가 말이다.

까뮤 역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카운슬링이란 카운슬러로부터 새로운 답을 구하려는 게 아니고,
실상은 자신이 이미 준비하고 있는 해법을 그로부터 확인하는 작업일 뿐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점을 치러 간 사람도, 실상은 점술사의 말을 통해 자신의 안위를 구하곤 한다.
이 때 점술사는 해결사가 아니라, 그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유능한 술사는 이런 과정을 잘 인도하고,
그를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걸어가도록 조언을 해주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

정신과 의사 역시, 환자의 얘기를 편안한 가운데 잘 들어주고,
끝날 때, 대화 내용을 담은 녹음 테이프를 하나 전해주며,
이게 적나라한 그대 자신의 모습임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助演함에 足하다.
미치지 못함에 이르러 동원되는, 치료는 그 다음 순서인 게다.

이리 볼 때, 점술사, 정신과의사, 무당, 카운슬러
모두 한가지 counselor의 다른 이름이 아니런가 ?

두레박은 우물에 빠지는 것임으로 하여, 그다운 소임을 맡는다.
어찌, 우물이 두레박에 빠져서야 되겠는가 ?

***

로또에 한번 당첨되는 것은 마른 하늘에 벼락 맞을 확률보다 더하다고 하였던가 ?
그래도 로또에 대한 기대는 달콤한 솜사탕처럼 진하다.

왜 그런가 ?
거기엔 늘 승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도, 지지난 주에도, 그리고 이번 주에도 로또의 승자는 나타난다.
문제는 그게 자신이 아니고 매번 다른 사람인 것이지만,

술 취한 취객,
사랑을 잃은 불쌍한 젊은이,
돈 떼인 빚쟁이
희망이 절망인 이들...
아니 우리 모두들을 향해

로또는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다음엔 네 차례야’

이리 은밀히 다가오며
찰지게 유혹하고 있다.

***

때문에 용한 점쟁이는 물꽃 너울따라 남실거리며 나타난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드물지 않듯이.

하지만,
점은 늘 그러하듯이 그리 잘 맞지 않는다.
마치 로또에 자신이 당첨이 되지 않듯이.
이런즉, 기대는 늘 물안개 젖어 아련한 幻舞를 지어낸다.

어느메 어느 구석 자리에 또아리 튼 술사들,
이번 大選에 또 기고만장 점괘를 뽑아 올리리라.
누군가가 미아리 근처에 가면 점집을 기웃 거리듯이.

고장난명(孤掌難鳴).
그리 함께, 희끄리므리한 기대와 희망을 잣아 올리고 있음이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
시덥지 않은 짓거리 다 작파하고,
오늘,
로또나 하나 사보지 않으시려는가 ?


ps)
나는 점을 그리 신뢰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주옥같은 名文의 占辭들,
토정비결 등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문장,
인생百態에 대한 상세한 분류 白書,
고도의 추상성에 터한 엄정한 기하학적 논리구조,
이에 기초하여 사태를 분석해 들어가는 논리정연한 방법론,
진지한 구도자적 태도 등등...

그 간절한 정성과 뜨거운 탐구 정신엔
깊은 애정과 연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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