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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서

소요유 : 2013. 11. 25. 11:08


아는 이 중에 외고 출신의 선생이 하나 있다.
이이와 최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바, 
요즘 외고를 지원하려는 아이들이 추천서를 써달라고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별반 추천할 내용이 없는 아이가,
추천서를 써달라고 할 때는 상당히 곤란한 모양이다.
외고 입학을 위해서는 추천서가 필요한데,
도움이 되지 않을 내용이 적힌 추천서는 아니 제출함만 못하리라.

그래서 그런 아이의 청이 있을 때는,
써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모양이다.

그의 단점을 감추고,
없는 사실을 부러 꾸며 적는 짓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다면, 
의당 거절할 수밖에 없으리라. 

선생에 따라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추천서를 써서 제출하라는 이도 있다 한다.
그러면 그것을 적당히 손보아 처리한다고 한다.
추천서라는 것이 본디 추천하는 이가 쓰는 것일진대,
본말이 전도되어 추천을 원하는 아이가 자작으로 추천서를 쓰고 있는 꼴이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정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회 초년병 시절.
담당 부장은 나를 가만히 불러내었다.
나를 상찬하는 표문(表文)을 상신(上申)하려는데 자신 대신 나보고 그것을 써오라 한다.
그 분이 나를 어여삐 보곤 우정 생심을 내신 것이로되,
도대체 내가 나를 추켜 세우는 글을 어찌 쓸 수 있으랴?
나는 그리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오늘날 입시처럼 아이의 인생에서 중요한 의례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형편에서,
추천서를 나쁘게 쓰려고 하여도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을 터.
그러함이니 대개는 그저 좋은 말로 닦아세워 윤(潤)을 내어 쓰게 되리라.
그러하다면 도대체 추천서라는 것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음인가?

이보다는 차라리 3년 동안 아이의 행동발달 내력을 역사적으로 적은,
선생의 관찰 보고서 형식의 것이 있다면,
이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것도 문제는 있다.
한참 자랄 아이들을 과거의 내력으로 규정하고 묶을 수 있는가?
나는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이다.

상급학교에 가서 괄목할 만한 변화를 겪는 아이도 있을 터이며,
늦게 개오각성하여 자신의 잠재된 본성이라든가 능력을 틔우는 아이도 있을 터이다.
 
결국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추천서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그 본래의 취지는 퇴색하고 말리라.

선생의 입장에서 보자면,
추천서를 사실에 입각하여 바로 쓴다고 하여도 적지 않은 부담이 있다.
모두들 그러하지 않은데 혼자서 툭 불거진 행동을 취하면,
이게 만인의 지탄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러하더라도 선생이라면 정도를 걷고자 노력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추천서를 써오라고 하는 선생이 있다는 말을 듣자,
기분이 심히 언짢아진다.
그자의 관상을 유심히 살펴보고,
사귐에 유의하라고 일러주었다.
이런 자일수록 입이 달고 행동의 꾀바르다.
처세에 능할 터이지만,
언제나 사람은 비상한 때라야 감춰진 그 진면목이 들어나는 것.
정작 네가 위험에 처하였을 때,
저런 이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훼방을 받기 일쑤이러니,
사람 사귐은 삼감으로써 본을 삼고,
담담함으로써 바탕을 삼아야 하리.

그러면서 노목공과 범무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2013/05/29 - [소요유] - 망왕지속(亡王之俗)
☞ 2010/09/09 - [소요유] - 난언(難言) 

과연 이 두가지 이야기를 통해,
그는 어떤 깨달음을 얻을까?

거짓으로 미화된 정보로 혹 한 아이가 득을 볼 수 있겠지만,
학교측은 해를 입게 된다.

노목공은 어리석어 진실을 외면하였지만,
자복려백은 군주와 나라를 위해 사실을 곧게 밝혔다.

추천서를 쓰는 선생이 공정하니 바른 길을 걷는다면,
학교만 득을 보는 것이 아니다.

만약 거짓 추천서가 횡행한다면,
그로 인해 멀쩡한 학생 하나가 꾸며진 아이를 대신하여,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고 미끌어질 수도 있다.
그러하니 진실된 추천서는 학교뿐이 아니고 종국엔 학생 일반에게도 바른 일이 된다.

이런 이치가 펴지지 않는 세상은,
질척거리며 엉겨 붙는 뻘흙을 걷는 것처럼 우리를 평안케 하지 못한다.

거짓된 추천서를 쓰는 선생은 군주나 사회라는 이름이 지시하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실은 제 자신의 안녕과 편안함을 구할 따름이다.

자사의, 
「君子尊賢以崇德,舉善以觀民。若夫過行,是細人之所識也,臣不知也。」(☞ 망왕지속(亡王之俗))
이 말은, 
“我不殺伯仁,伯仁由我而死" (☞ 봉타(棒打) 하나)
이 말처럼, 
그 얼마나 간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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