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인간현상(人間現象)

소요유 : 2014.05.10 10:13


내가 얼마 전 아로니아 묘목을 모(某)카페로부터 구하였다.
이미 농원엔 아로니아가 조금 심어져 있지만,
나는 이 작물의 시장 전망은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예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본 품종은 그냥 생으로 먹어도 먹을 만하다고 한다.
해서 재미 삼아 조금 구해본 것이다.

그런데 애초 바로 택배를 보낼 것처럼 공지를 하였지만,
슬그머니 뒤로 미뤄 일괄 배송을 하는 것으로 바뀌어버렸다.
나는 사실 이 때부터 판매자가 그리 스마트한 분은 아니시구나 짐작하였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이미 입금은 진행되고 있는데,
아무런 사유도 없이 두리뭉실 저 혼자 배송 일자를 뒤로 미루는 결정을,
그저 지나는 말로 해댈 수 있음인가? 
나는 순간 이 묘목이 어지간히 작겠구나 바로 알아차린다. 
뒤로 늦춰 그 동안 좀 키운 후 보내겠다는 수작이리라.

그러던 차 얼마 전 묘목이 도착하였다.
꺼내보니 묘목이 포트에서 다 뛰쳐나와 나뒹굴고 있다.
이 분이 농사 이력이 꽤 되어 보이던데 아직도 배송 연구가 이리 아니 되어 있구나.
그런데 주문량에 비해 몇 주가 부족하다.
쏟아진 흙을 헤치고서야 이쑤개만한 것을 겨우 찾아내었다.
이것은 배송방법이 부실한 것을 넘어,
계약 내용을 불완전하게 이행한 것이 아닌가?
이러할 때는 의당 하자(瑕疵)담보책임이 발생한다.

그러하고 있는데,
나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나와 같이,
몇 주가 부실하다든가, 부족하다든가 하는 실정이었다.
가관인 것은 이들이 담보책임을 묻지는 아니 하고,
그저 사실 전달에 충실한 기자처럼,
부실하다든가 부족하게 물건이 도착하였다는 기술만 하고 있는 것이다.
판매자가 카페 운영자인즉 잔뜩 몸을 사리고 있음이 아니던가?
카페 운영자가 얼마나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기에,
이리 주눅이 들고 있는가?

그러한데 이 사태의 원인을 일으킨 카페지기의 태도 역시,
상궤(常軌)를 벗어나 있다.

퉁불거져 말하길,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가지러 가겠다.’

이리 말하고 있다.
아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거라도 하겠단 말인가?

이게 현실성이 없을뿐더러,
‘가지러 가겠다.’가 아니라,
최소한 ‘바꿔주겠다’라든가 ‘환불해주겠다.’ 
이리 말해야 그나마 도리를 챙긴 모습이 아니겠는가?
가지러 가겠단 말은 자칫 폭력적인 언사로 독해될 수도 있다.
가령 당신한테는 팔지 않아, 빼앗아 올 테야.
이런 사태 발전의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도착한 물건은 이미 구매자 것인데,
그 누가 있어 가지러 가겠다 하여 그냥 내줄 수 있겠음인가?
하자담보책임이란 전적으로 불완전이행을 한 자의 책임인 것인즉,
하자 보수라든가, 완전이행을 요구할 권리는 피해자에게 있음이다.

사태가 이리 흘러가자,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생각을 하였다.
나만이 아니고,
어쩌지도 못하고 참아내고 있는 다른 분들을 대변하고 싶었다.
이로서 이러한 일이 생겼을 때의 바람직한 처리 방식을 제시하고,
그리고 그에 따라 피차간 당당하니 적응하는 지극히 공정한 흐름을 지켜보고자 하였다. 
그래 점잖게 글 하나를 닦아 올렸다.

그런데 이 글이 삭제되고 말았다.
그리고 바로 이 글로 인해 난 카페에서 탈퇴를 당하였다.
과연 이게 탈퇴를 당할 만한 사안인가?
이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나는 졸장부들이 꾸려나가고 있는 세상의 실상을 알고 있음이니,
이까짓 것이야 별반 이상한 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나는 이 사태를 두고 세상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그 면면(面面) 심리의 흐름을 가만히 관찰하며,
인간현상(人間現象)을 구경한다.

이하, 문제 글을 전재(轉載)한다.
단 댓글 단 분이 스스로 부끄러워 삭제하고 사라진 것은 일부 복원을 하지 못하였다. 

***



***


미국에서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모든 차들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 전방에 사고가 났거나 경찰차가 나타났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도로에서 경찰의 권위는 상상 이상입니다. 작은 위반 하나라도 적발되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가끔 과속 난폭 운전을 하는 차량을 엄청난 속도로 쫓아가는 경찰차를 볼 수 있었는데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갈 기세로 달립니다. 미국 생활 초기엔 ‘더 큰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경찰이 저렇게까지 같이 과속을 하며 단속을 하는 것이 합당할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에 예외를 하나 둘씩 인정하면 작은 구멍이 큰 댐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찰에게 걸리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인식을 그들은 고속도로에서 확실하게 심어주고 있었습니다.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54)

우리사회는 한참 미숙하다.
사태에 임하여 공정하게, 체계적, 객관적으로 처리하여 기강을 세우려 하지 않고,
언제나 적당한 구실을 붙여 덮고 기우는데 급급하다.
그러한데 내가 이러할 때를 가만히 관찰해보면,
대개 그 자리에서 부담을 지불하지 않는 입장에 처한 이들이,
호기롭게 때로는 관용의 미덕을 가진 양 이런 태도를 보인다.
미소를 뿌리며 어깨를 으쓱 거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자신의 이해에 관련되어 있을 때는,
언제 그러하였다는 듯이 태도가 확 바뀌어,
악마구리처럼 대든다.
그런데 이 때 나머지 사람들은 예전의 이이처럼 역시나 도량이 넓고 관후(寬厚)한 인사가 되어,
무엇 그까짓것 가지고 째째하게 구느냐 하며 수수 방관한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선,
언제나 약자, 피해자는 사태를 외로이 홀로 감내하여야 한다.

공적 참여가 부재하다.
아니 이를 넘어 이게 내재화 되어야 한다.
공적 울분이 아니라 그게 곧 자신이 일이 되어 참아낼 수 없는 상태라야 하는데,
공과 사를, 그리고 피(彼)와 아(我)를 별개로 나누다 보니,
사적경계에서 공적 영역으로 들어갈 때는 언제나 힘겹다.
이러할 때는 에너지 소비가 따르기 때문이다.
시간, 비용, 정력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이를 지불하지 않고자 하니,
허울 좋게 미소를 날리고, 관인(寬忍)한 사람씩이나 된다.
그리고 착한 나르시스가 되어 연못 속의 자신을 장하게 여긴다.
한참 어리고 미숙하다고 할 밖에..

때론 사태와 거리를 두고 연극을 보듯 즐기는 일까지 생기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은 자신이 그 연극의 주인공이 되어,
중인환시리에 홀로 모노 드라마를 연출한다. 
누구나 홀로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아무도 주인공의 역에 공감하는 이는 없다.
다만 구경거리로 전락할 뿐,
그 연극 객석엔 의분(義憤)은 없고,
비열함만 남살거린다. 
그리고 무대 위엔 쓸쓸함과 슬픔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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