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뇨마(鬧魔)

소요유 : 2014.05.08 10:05


내가 앞에서 올린 글 '☞ 준협박'의 상대가 어찌하여 그 글을 보신 모양이다.
그 글은 당시 가급적 상대의 신원(身元)이 노출되지 않도록 유의하였다.
해서 카페명이라든가, 물건 이름 따위를 탈색화시켰었다.
그런데 상대 분께서 전화까지 주시면서 그 글을 삭제하길 청하신다.

인격만 있는가? 글격도 있음이라,
개인의 글 하나가 개폐된다는 것이 혹자에겐 별것이 아닐 수 있지만,
자신의 글에 책임을 가진 이라면 이게 또한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내 글에 거짓이 있다면 응당 바로 잡아야 할 터이지만,
내 부러라도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분 말씀이,
‘그대로 가지고 계시면 내가 가지러 가겠습니다’ 
바로 이분은 내가 기술한 것과 다르게,
실제로 그럴 작정으로 그리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럴 수 있겠다.

아직 그 분께 드리지 않은 말씀이지만,
하지만 말이다.

내심(內心)의 의사와 표시(表示)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카페 따위에 글을 쓰고나 읽을 때,
글쓴이의 내심까지 어찌 온전히 다 읽을 수 있으랴?
우리는 다만 일차적으로는 글로서 드러난 외표(外表)를 두고 거래를 할 뿐인 것을.
다시 말하자면 외표로써 책임을 지고, 그로서 신뢰를 물을 수밖에 없단 말이다.
하기에 글을 쓰자고 한다면,
이를 잘 헤아려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도록 형식을 차리고 내용을 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나로선 그에게 어떤 의미에선 기회를 준 것이다.
과오를 바로 인정하고,
널리 공시를 하며 책임을 지겠다.
이리 나섰으면 외려 단정한 이로 인식전환을 하는 계기가 되었을 터이다.
그러함인데 뒤꿍꿍이 속으로,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사태를 구겨 숨기려하였음이니,
이는 조금 안일한 대처였음이라.

나 역시 실수 투성이로 살아가는 이로서니,
어찌 마냥 상대의 실수를 탓만 하랴?
다만 예의염치를 저버리거나, 유책(有責)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이를 그대로 보기만 할 수는 없다.

다만, 선량한 이라면,
내 어찌 마냥 각박하게만 대하리요.

이하 내가 최근 겪은 일로서,
뒤따라온 감상 하나를 잠간 틈을 내어 적어보는 것이다.

***

어떠한 일로 심기가 어지럽혔을 때,
대개 사람들은 중얼거리거나 칭얼댄다.

가령 사람 하나가 있어 실수를 저질렀다 치자.
이로 인해 해를 입은 사람의 원망(怨望)을 사게 된다.

정작 불평을 늘어놓을 사람은 피해자인데,
가해자는 자신의 처지를 잊고,
저질러 엉클어진 사태가 영 못 마땅하다.

그러자니 외려 상대를 탓하고,
때론 보채며 상대 보고 잊고 넘어가자고 채근까지 한다.

내 가만히 겪어보자하니,
사내들은 중얼 중얼 대거나 씩씩거리며,
퉁불거져 종일 화를 내기 바쁘다.                   - 도낭(嘟囔)
여자들은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며,
피해자를 잡고 늘어지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 뇨마(鬧魔)

이쯤 되면 본말이 전도되어,
피해자가 외려 가해자를 돌보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저이들의 딱한 상태를 지켜보자니,
은근히 미안해지며 가여어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 용서를 하마하고 사내의 지청구를 받아들이고,
여자의 상한 마음을 위로라도 해주어야 한다.

저들이 악의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 아닌 바임에라,
다만 마음이 상하고 애를 끓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지 않은가 말이다.

살교(撒嬌)

나는 진작부터 이러한 모습을 일러,
어른들의 어리광이라 불렀다.
어리광이란 무엇인가?
거긴 ‘책임’이 부재하다.
이를 부담하지 않기에,
앞뒤 사정을 돌보지 않고,
마냥 보채거나 귀여움을 떨어내는 것이다.

귀책(歸責)

어린아이였다가 자라가면서,
책임을 자신이 온전히 부담할 때가 다가온다.
이 때 우리는 문득 자신이 어른이 되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중얼거리거나, 칭얼거리지 않고,
단호히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어른이 된다.

이 때 실수는 용서되고,
우리는 곧잘 서로 친구가 된다.
그이의 본바탕 마음을 엿보았기 때문에,
기꺼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서서 바로 닦음 채비를 하는 이는 드물다.
이런 일상의 여느 사람과 다른 귀한 이를 보았는데,
어찌 그를 사모하고 사귀고 싶지 않으랴?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못된다.
실수를 되풀이 하며 뒤뚱거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때 그 실수의 후과를 온전히 홀로 감당할 때,
성실함과 진실됨이 드러난다.
眞誠信
진실과 성실 그리고 믿음.
한 인간에게서 이를 목격할 때,
목마르다 샘을 만나듯,
어찌 환희심(歡喜心)이 일지 않으랴?
실수(失手)는 흉하지만, 부책(負責)은 당당하다.

담부책임(擔負責任)

책임을 부담할 때,
진정한 어른이 된다.

汎愛衆,而親仁。

널리 대중을 사랑하되,
다만, 어진이와 친하다.

조수불가여동군(鳥獸不可與同群)이라,

 "새, 짐승과는 함께 무리를 같이할 수 없다. 
내가 이 사람의 무리와 함께 하지 않고 누구를 함께 하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바로 잡을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공자의 말씀이다.

하지만 말이다.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으되,

仁人志士라,

어진이,
곧은 뜻을 가진 이라야,
애오라지 가까이 사귈 수 있다.

공자는
애(愛)에 비해,
친(親)을 이리 한참 달리 격을 두고 보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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