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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하라 - ⅰ

소요유 : 2014. 5. 12. 10:15


‘기본에 충실하라.’

이 말씀 앞에 서니 불현듯 여러 상념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기본이라 하면 언뜻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식물의 기본은 지상에 나온 줄기나 잎이 아니고 뿌리라고 생각한다.
그래 세상엔 근본(根本)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뿌리와 기본을 같이 묶어 두었음이니,
이게 작언조어(作言造語) 그저 말을 꾸며 지어낸 것이 아닐진대,
뿌리를 중요하게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뿌리는 땅 속에 숨겨져 있고,
거죽으로 들어난 줄기나 잎처럼 도대체가 정체를 알기 어렵다.
우선 줄기나 잎이 무성하면 보기 어여쁘고 가슴이 벌떡벌떡 두근거린다.
그러함이니 비료니 영양제니를 처넣고,
이도 부족한 양 싶어 해초 다린 물, 3년 묵힌 효소니 하는 것을,
지극정성으로 마련하여 옆면(葉面) 시비한다.

일 년 가야 책 한권 읽지도 않으면서,
화장은 떡칠을 하고,
금가루 슈퍼 나노 팩을 낯짝에 붙이며,
홀딱 벗고 전신 마사지를 마다하지 않는다.

온 천하의 여인들이 제 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이 짓을 사양할 뿐 어찌 마음인들 없으랴?

이것을 마냥 나무라기도 어려운 것이,
뽀얀 은빛 낯색을 가진 여인네를 마다할 사내가 어디에 있으랴?
몸매가 호리병처럼 아리따운 계집을 염오(厭惡)할 녀석이 하나라도 있겠음인가?
헌즉 저리 꾸미고 단장하는 것이야말로 수지가 맞는 일이 아닌가?

子曰:「君子不可以不學,見人不可以不飭。不飭無貌,無貌不敬,不敬無禮,無禮不立。夫遠而有光者,飭也;近而逾明者,學也。譬之如圩邪,水潦集焉,營蒲生焉,從上觀之,誰知其非源水也。

공자가 아들 리(鯉)에게 이르시는 말씀이다.

군자는 배우지 아니 할 수 없다.
사람을 대할 땐 꾸미지 않을 수 없다.

꾸미지 않으면 단정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으면 불경스럽고,
불경하면 무례하다.
무례하면 처세상 자신을 세울 수 없다.

멀리서도 의표(儀表)가 남보다 출중하니 드러남은 꾸밈 때문이다.
가까이서 지혜가 남달리 총명함을 알게 됨은 배움이 깊기 때문이다.

여기 보면 원(遠)과 근(近), 그리고 광(光)과 명(明)이 서로 대하여 짝을 이루고 있다.
거죽 꾸밈은 멀리 효과가 미친다.
오늘날 농부도 자신을 알리지 않으면 光이 나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주질 않는다.
제아무리 바르게 키워도 팔리지 않는다.
하여 농업기술센터 강의를 들어보면,
이 선전술을 가르치기 바쁘다.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어떠 하느니,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니 하며 의표(儀表)를 가꾸고,
널리 알리는 술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급기야 년전엔 관이 나서서,
가짜 유기농인증서를 나누는 일을 꾸미기까지 하였다.

그러함인데, 
여기 등장하는 光이 아니고 明은 무엇인가?
명은 일월이 합쳐 있다.
도대체가 세상에서 해와 달 말고 스스로 光을 발하고 있는 것이 있던가?
물론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 되비추인다.
하지만 대음(大陰) 달은 대양(大陽)인 해의 권능을 위임 받아 야밤에 대행하는 것이니,
온전히 밤을 밝히는 전권대사인 것이다. 
그러함이니 明은 곧 光의 뿌리요 근본인 것이다.
공자는 말한다.
光을 내려면 飾 곧 꾸며야 하고,
明으로 돌아가려면 學 곧 본을 배워야 한다고.

遠은 널리, 멀리 光을 뿌려 보이려니 곧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빛을 내는 주체가 아니라 이를 감수(感受)하는 객체를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近은 다만 자신만을 의식하고 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남의 사타구니가 아니라,
내 발 밑을 비추란 말씀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리 하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이 백년이 지난들 알아줄 일 있으랴?

벽암록 제일칙에 나오는 “達磨廓然無聖(달마확연무성)”에서 말하는 무성(無聖)이란 무엇인가?
달마가 서쪽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양 무제를 만난다.

擧:梁武帝問達磨大師:「如何是聖諦第一義」 磨云:「廓然無聖」

들어보자! 
양나라의 무제가 달마대사에 물었다. 

『도대체 불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게 뭐요?』 

달마가 대답했다. 

『텅 비었지. 성스럽긴 뭐가 성스러워?』 

도올은 나보다는 조금 점잖은 것 같다.

이 부분의 내 譯을 따르면 이렇다.
달마는 한 마디로 이리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니미 씹이다.”

양무제가,
전국에 절을 수없이 일으키고,
불경을 금박 물려 수천 권을 베끼었다는 등등 자랑을 늘어놓자,
달마는 니미 씹이다란 말을 뱉어놓고는,
숭산 소림사로 숨어들어 면벽 9년에 들어간다.
아직 인연이 아닌 것이다.

설원(說苑)이란 책엔 이런 말씀이 있다.

惡於根本而美於枝葉,秋風一起,根且拔也。

근본을 싫어하고, 지엽말단을 좋아하였더니,
가을바람 한 번 일자,
뿌리가 뽑혀버리도다.

이는 노(魯)나라 애후(哀侯)가 나라를 버리고 제(齊)나라로 도망 왔을 때 한 말이다.

魯哀侯棄國而走齊,齊侯曰:「君何年之少而棄國之蚤?」魯哀侯曰:「臣始為太子之時,人多諫臣,臣受而不用也;人多愛臣,臣愛而不近也,是則內無聞而外無輔也。

‘제후가 묻기를 그대는 어찌 나라를 버리게 되었는가?’

‘제가 어린 태자시절 저를 간하는 이가 많았으나 이들을 쓰지 않았습니다.
또한 저를 아끼는 이가 많았으나 이들과 가까이 지내질 못하였습니다.
그러한즉 안으로는 듣질 못하고,
밖으로는 보좌할 이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신세가 가을 쑥대처럼 신세가 고단해졌다는 말씀이다.

내가 실인즉 이 말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말 물꼬를 따라 가다 보니 이리 이르고 말았다.

정작은 애초 기책(奇策)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였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다.
금년 들어 처음으로 간밤에 비다운 비가 와서 오늘은 밭에 할 일이 많다.
정(正)과 기(奇)를 배대하여 말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오늘 말은 서론만 늘어놓다 그만 둔 꼴이다.

옛 바둑 기언(棋諺)에 이르길

‘묘수(妙數)가 한 판에 세 번 나오면 진다.’

이러하였다.

재주도 적당히 피어야지,
근본을 버리고 지엽말단에 치우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오늘의 말씀은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나 다 아시는 이리 뻔한 말씀에 이르렀으니,
맥없는 글이 되었다.

다만 그럼 묘수, 기책은 소용이 없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의논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오늘 글은 완결이 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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