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이혼과 평천하

소요유 : 2014.08.31 22:51


흔히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대학(大學)에 나오는 이 말은 사람들은 살아오면서 수없이 들어보았기 때문에,
설혹 대학을 읽지 않았어도 얼추 그 뜻을 안다.

여기 출전에서 그 부분을 가려 먼저 실어둔다.


所謂修身在正其心者:身有所忿懥,則不得其正;有所恐懼,則不得其正;有所好樂,則不得其正;有所憂患,則不得其正。心不在焉,視而不見,聽而不聞,食而不知其味。此謂修身在正其心。

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人之其所親愛而辟焉,之其所賤惡而辟焉,之其所畏敬而辟焉,之其所哀矜而辟焉,之其所敖惰而辟焉。故好而知其惡,惡而知其美者,天下鮮矣!故諺有之曰:「人莫知其子之惡,莫知其苗之碩。」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無之。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孝者,所以事君也;弟者,所以事長也;慈者,所以使眾也。《康誥》曰:「如保赤子」,心誠求之,雖不中不遠矣。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一家仁,一國興仁;一家讓,一國興讓;一人貪戾,一國作亂。其機如此。此謂一言僨事,一人定國。堯、舜率天下以仁,而民從之;桀、紂率天下以暴,而民從之。其所令反其所好,而民不從。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無諸己而後非諸人。所藏乎身不恕,而能喻諸人者,未之有也。故治國在齊其家。《詩》云:「桃之夭夭,其葉蓁蓁;之子于歸,宜其家人。」宜其家人,而後可以教國人。《詩》云:「宜兄宜弟。」宜兄宜弟,而後可以教國人。《詩》云:「其儀不忒,正是四國。」其為父子兄弟足法,而後民法之也。此謂治國在齊其家。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上老老而民興孝,上長長而民興弟,上恤孤而民不倍,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所惡於上,毋以使下;所惡於下,毋以事上;所惡於前,毋以先後;所惡於後,毋以從前;所惡於右,毋以交於左;所惡於左,毋以交於右。此之謂絜矩之道。《詩》云:「樂只君子,民之父母。」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詩》云:「節彼南山,維石巖巖。赫赫師尹,民具爾瞻。」有國者不可以不慎,辟則為天下戮矣。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 수직적 가치 역학 구조는 돌 성벽을 차곡차곡 쌓듯 반듯하고 굳다.

‘宜其家人,而後可以教國人。’

‘그 집안사람들을 화목케 한 후라야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아, 곧은 가르침의 말씀이 사뭇 아름답구나.

그런데 한편,
이런 의문이 든다.
부정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데도, 
다만 그의 가정이 불행하면 나라 일을 맡기지 못하는가?

내가 어느 날 친지와 함께 담소를 나눈 중이었는데,
상대는 모 재벌 회장이 이혼을 하였다고 그를 탓하였다.
그 때 그 재벌 회장은 큰 화를 당해 그룹이 와해될 형편이었다.

상대의 말인즉슨 저이가 이혼을 하였으니,
결국 제가(齊家)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아닌가?
헌즉 어찌 제 회사인들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는 하는 투였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우리네 사람들은 부지불식 간, 이 말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혼은 몹쓸 짓으로 쉽사리 단정하고 만다.

개중엔 남의 불행은 무엇인가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씹어 주며 고소한 재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 재벌회장과는 아무런 친소, 애증 관계도 없지만 즉각 반론을 폈다.
이혼이란 개인사에 불과하며, 
국외인은 그 내부 사정을 미처 아지 못하는데,
어찌 그를 들어 직접 관련이 없는 회사의 일과 연관을 지을 수 있는가?

이혼을 굳이 칭송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 하여 이를 마냥 나쁜 짓이라 나무랄 일도 아니다.
다만 그가 불행한 일을 치렀으니 힘이 들었을 테다.
이런 정도에 그칠 일이지,
앞으로 더 나아가 그의 역량이나 인격까지 가늠할 까닭이 없다.  

이혼은 아픈 일이로되,
이게 사정도 모르는 외부인이 마냥 허물이라 단정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코치는 선수를 지도하며 훈련을 시킨다.
만약 코치가 선수보다 더 낫다면 그가 경기에 임하면 될 노릇이지,
왜 남을 가르치며, 자신은 나서지 못하고 선수를 내보내는가?
코치가 운동 역학 이론과 실기(實技) 운용의 이치를 선수보다 잘 안다 할지라도,
기량(技倆)을 발휘하는 능력은 선수보다 못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나눠 훈련을 하고, 경기에 임하는 것이다.

한즉 코치나 선수가 서로 자신이 잘나고, 못났다고 따지며 가릴 일이 아니다.
다만 제 역할과 소임이 다를 뿐이다.

코치를 두고, 실제 경기에 임하면 선수보다 못할 터라며,
이를 핑계 삼아 그를 나무란다면,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아는 이라 할 수 없다.

이혼한 사실을 원인으로,
그 사람의 경영 능력을 의심함은 온당치 않다.
이 둘은 한 자리에 섞어 함께 논할 대상이 아니다.

‘宜其家人,而後可以教國人。’
‘그 집안사람들을 화목케 한 후라야,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 

이 말은 사뭇 그럴 듯하고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전자가 후자의 필요충분조건인가?
때론 전자가 후자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가령 제가 이후라도, 치국의 도리를 아지 못한다면,
어찌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스릴 수 있으랴?

게다가 전자가 과연 후자의 필요조건인지도 의문이다.
오늘날 공무원은 다만 행정내지는 특정 기술에 장기가 있는 이를 선발할 뿐,
그의 가정사라든지 인성까지 모두 점검하지는 않는다.
이는 그로써 공무 담임의 일을 수행하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無之。’

‘치국은 필히 제가를 먼저 한다는 말은,
집안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나라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도대체가 있어본 적이 없다.’

대학의 이 말씀은 도덕적 차원에 한정되어 있다.
가령 공무 담임 능력을 가정사와 연결 짓는 것이 타당한가?
이런 의문에 충분한 근거를 담지(擔持)하지 못하고 있다.


吳起者,衛人也,好用兵。嘗學於曾子,事魯君。齊人攻魯,魯欲將吳起,吳起取齊女為妻,而魯疑之。吳起於是欲就名,遂殺其妻,以明不與齊也。魯卒以為將。將而攻齊,大破之。
(史記-孫子吳起列傳)

오기(吳起)는 위나라 사람이다. 병법에 밝았다. 일찍이 증자에게 배웠다.
그가 노나라 군주를 섬겼는데,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해왔다.
노나라가 오기를 장수로 세우려 하였는데, 오기의 처가 제나라 사람인지라,
노나라 사람들은 그를 의심했다.
오기는 노나라 장수가 되고자,
그 처를 죽여 제나라와 함께 하지 않음을 밝혔다.
마침내 노나라는 그를 장수로 삼았다.
오기는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오기는 제가(齊家)는커녕 파가(破家)하여 노나라를 구했다.
이 경우는 제가가 치국내지는 용병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닌 전형적이 사례라 하겠다.

헌데,
여기서 멈추면 충분치 않다.
다음 이야기를 마저 새겨 볼 필요가 있다.

후에 오기는 위(魏)의 문후(文侯)를 섬겼는데,
이 때의 장면을 마저 음미해본다.


魏置相,相田文。吳起不悅,謂田文曰:「請與子論功,可乎?」田文曰:「可。」起曰:「將三軍,使士卒樂死,敵國不敢謀,子孰與起?」文曰:「不如子。」起曰:「治百官,親萬民,實府庫,子孰與起?」文曰:「不如子。」起曰:「守西河而秦兵不敢東鄉,韓趙賓從,子孰與起?」文曰:「不如子。」起曰:「此三者,子皆出吾下,而位加吾上,何也?」文曰:「主少國疑,大臣未附,百姓不信,方是之時,屬之於子乎?屬之於我乎?」起默然良久,曰:「屬之子矣。」文曰:「此乃吾所以居子之上也。」吳起乃自知弗如田文。
(史記-孫子吳起列傳)

위(魏)는 재상 제도를 두었다.
재상으로 전문(田文)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오기는 이를 불쾌하게 생각했다.
해서 전문에게 말했다.

‘선생과 공을 논하고자 청하노니, 괜찮겠습니까?’

전문이 말한다.

‘괜찮소이다.’

오기가 말한다.

‘삼군의 장수가 되어, 병졸들이 죽기를 달게 여기고, 적국이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하는데,
선생이 어찌 나만 하겠소?’

전문이 말한다.

‘그대보다 못하오.’

오기가 말한다.

‘백관을 다스리고, 만민을 친애하며, 부고를 충실히 채우는데,
선생이 어찌 나만 하겠소?’

전문이 말한다.

‘그대보다 못하오.’

오기가 말한다.

‘서하 땅을 지키고, 진(秦)’이 감히 동향을 넘보지 못하며, 
한(韓)과 조(趙)가 복종함에 있어 선생이 어찌 나만 하겠소?’

전문이 말한다.

‘그대보다 못하오.’

오기가 말한다.

‘선생은 이 세 가지가 모두 나보다 못하오.
그러함인데 벼슬이 나보다 위시오.
이는 어찌된 노릇이오?’

전문이 말한다.

‘군주는 어리고, 나라는 불안하며,
대신들은 아직 복속하여 따르지 않고 있으며,
백성들은 믿음이 부족하오.
바야흐로 시국이 이러한 때에,
선생을 따르리오?
아니면 나를 따르리오?’

오기는 오래도록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가 한 마디 한다.

‘선생을 따르겠지요.’

전문이 말한다.

‘이게 바로 내가 선생보다 윗자리에 있게 된 까닭이오.’

오기는 이에 자신이 전문에 비할 바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쯤이면 오기와 전문의 국량을 짐작할 만하다.
헌데 전문이 치국의 도리를 안다고 할 수는 있다만,
이것만으로 그가 수신, 제가도 다 충실하였다 확신할 수는 없다.

소임에 다른 능력과 기량은,
그 사람에 따라 다름이 있으니,
용인(用人)엔 적재적소를 가려 인재를 씀이 요긴하다.

헌즉,
패륜(悖倫), 범법(犯法) 따위의 부정(不正)한 짓을 하지 않았음인데,
그 사람의 개인사를 두고,
인재의 유, 무능을 재단함을 바르지 않다.

최근 유민 아빠의 단식과 관련되어,
그를 헐뜯는 이유 중에 하나로서,
그가 이혼한 사실을 꺼내드는 자들이 있다.

그는 급기야,
통장을 까내고, 카톡을 공개하며,
자신을 증명하려 공연한 애를 썼다.

이혼한 것이 나쁜 일이 아닌 바임에랴,
어찌 이를 변명할 일이며,
아비가 자식을 사랑함을,
통장으로써 증명하여야 하는가?

그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당당하니 자신을 지켜내었으면 족하였다.
저러한 것은 굳이 증명할 성질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역으로,
이혼을 거론하고, 
단식으로써 돈을 탐한다는 억지 주장으로,
유민 아빠를 공격하는 이들은 참으로 흉악한 이들임이라.

오기가 제 처를 죽여,
장수가 되자,
노나라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여,
갖은 비리를 다 들춰내며 그를 비난하였다.
결국 노나라 군주는 그를 의심하여 오기를 버렸다.
이에 오기는 노나라를 떠나 위(魏)나라 들어가 공을 세운다.

제가 품은 뜻과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다한들,
부정한 일이 아닌 사실을 들어,
그의 허물로 삼고,
옳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을 모욕함은,
정인군자(正人君子)가 취할 도리가 아니다.

내 오늘 이혼한 사실을 두고,
이리 사람 하나를 헐뜯고 비난하는 세태를 대하자,
오기(吳起)가 생각이 났다.

사람은 말이다.
각행기로(各行己路)라,
다 제 갈 길을 가는 것임이라.
그게 설혹 이배향지(以背向之),
등을 지고 찢어져 갈려 간다 한들,
치사한 방법으로 남을 헐뜯으며 졸렬하게 놀 일이 아니다.
하루를 살아도 좀 체통을 지키며 당당하게 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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