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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대무사(必待無事)?

소요유 : 2014. 9. 10. 09:27


농원에 재작년 새가 둥지를 틀어 이들과 함께 한 적이 있다.
 
이들이 포란(抱卵), 부화(孵化), 육추(育雛), 이소(離巢)의 4단계를 거쳐 가며,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 참고 글 : ☞ 012/07/16 - [농사] - 포란(抱卵)
당시 나는 이게,
인도의 학습기(學習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와 유사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제 분서(焚書)란 책의 다음 구절을 만났다.
 
"既成人矣,又何佛不成,而更等待他日乎?天下寧有人外之佛,佛外之人乎?若必待仕宦婚嫁事畢然后學佛,則是成佛必待無事,是事有礙于佛也。
 
有事未得作佛,是佛無益于事也。佛無益于事,成佛何為乎?事有礙于佛,佛亦不中用矣,豈不深可笑哉?才等待,便千萬億劫,可畏也夫!"
 
"이미 한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갖추었음인데,
또 어찌하여 바로 부처가 되지 못하고서는,
다시 다른 날을 기다려야 함인가? 
어찌 천하에 사람 밖에 부처가 있고,
부처 밖에 사람이 있더란 말인가?
만약 벼슬하고, 결혼하는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부처를 배운다면,
이는 곧 성불함은 아무 일도 없을 때를 기다려야 하고,
세상사는 일은 부처됨에 장애가 된단 말이다.
 
세상 일 때문에 부처가 되는 공부를 미룬다면,
부처 되는 일은 사람 사는 일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부처가 사람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성불은 무엇 때문에 한단 말인가?
 
세상 일이 부처됨에 장애가 된다면, 
부처 역시 소용되는 바 없을지니,
이 어찌 가소롭지 않으랴?
 
잠시 미루다가,
천만억겁이 지나니,
가히 두려울진저."
 
학습기(學習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에서,
이게 차서(次序)를 갖춘 발달 단계로 본다면,
후자는 전자를 거쳐서야 도달하게 된다.
전자는 후자를 앞서 예비하고 있다 하겠다.
 
이리 본다면, 
벼슬하고, 결혼하고 나서 후일에 부처가 되는 공부를 함은,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다 경험한 후에 이르는 자연스런 과정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중이 진작부터 머리 깎고,
부자지를 명주실로 꽁꽁 묶고 부처가 되겠다고 나섬은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신부, 수녀가 결혼도 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 서약을 함은 무슨 까닭이란 말인가?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我今見聞得受持  願解如來真實義
 
"위없이 심심 미묘한 법,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워라,
이제 듣고 받아 간직하니,
여래의 진실한 뜻을 알기 원하옵니다."
 
중이란 말이다.
진리를 만나,
전격(電擊),
벼락불을 맞듯,
세상일을 다 버리고서라도,
도를 일구고, 부처가 되겠다고 작정한 이들이다.
 
성인(成人)이건 부처고 간에,
온 생애를 걸지 않고서는 이루기 힘든 법.
중이란 이를 겨루고자,
선 자리에서 바로 나선 이임이라.
 
흔히들 말이다.
나중에 은퇴를 하면,
시골에 가서 전원생활을 하여야지 하고 벼르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란 말이렷다.
돈도 더 벌어야겠고,
아이들 가르치고 결혼도 시켜야 하니,
무작정 시골로 달려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엔 언제고 간에 기필코 시골에 가리라.
이리 작정들을 하고는 한다.
 
"若必待仕宦婚嫁事畢然后學佛,則是成佛必待無事,是事有礙于佛也。"
 
"만약 벼슬하고, 결혼하는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부처를 배운다면,
이는 곧 성불함은 아무 일도 없을 때를 기다려야 하고,
세상사는 일은 부처됨에 장애가 된단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인데,
세상 일 때문에 평생 미루며 꿈만 꾼다.
하지만 늦더라도 이 일을 이루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때론 마지막 순간에 이게 다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는 이도 있다.
 
자신이 그리 동경하던 시골 생활이,
사실은 마냥 아름답지만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때론 아직 충분히 돈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든가,
아이들 뒷바라지하기 바쁘다는 핑계는,
결행이 늦어짐을 충분히 변명할 구실이 된다.
 
내가 중들을 가만히 관찰해보니,
부처가 된 이는 거의 없더라.
그렇다면 그가 진작에 버린 젊은 청춘은 어찌 되는가?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면,
나중엔 맛있는 김치가 된다.
허나 청춘을 불전(佛殿)에 저당 잡혔다한들,
부처가 되지 못하면,
양지 바른 언덕배기에 등을 기대고 앉아,
몸에 득실거리는 이(虱)만 잡아도 서 말이 넘는다.
 
그려러니,
차라리 눈 맞아 짝 맺고,
새끼나 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으랴?
사는 일이란 게 본디 신산고초(辛酸苦楚)를 겪는 바임에랴,
그 가운데 울고 웃는 일을 낙으로 삼으면 어떠리?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이 말은,
부처가 어리석은 이들을,
일편으론 겁박(劫迫)하고,
일편으론 꾀는 말이 아닐까?
 
그를 바로 알고 싶다면,
이리 할 수밖에.
 
"見神殺神 遇佛殺佛 逢祖殺祖. "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잡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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