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북소리

소요유 : 2015. 2. 8. 14:44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조그마한 축제가 열렸다.

어제는 바빠서 슬쩍 눈길만을 주고 지나다녔지만,

오늘은 좀 틈이 나서 가까이 가서 저네들과 섞여보았다.


만국인들이 모여 저마다 장기를 자랑하고,

배당된 천막 안에서 음식을 만들어 내놓았다.


서양인들은 대개 미소를 머금고 있는데,

동양인들의 표정은 저들에 비해서는 한결 표정이 굳어 있다.


왜 그런가?

어떤 이에게 이리 물었더니만,

여유가 있어서 그렇단다.


대개 오늘날에 있어 이 말은 이치에 닿는다.

사람들이 내 소싯적보다 사뭇 강퍅해졌고 메마른 소이이다.

허나 본디 동양인들의 표정이 굳은 것은,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 절제 훈련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정칠정을 쉬이 바깥으로 표출하는 것을 경박한 짓으로 보아 경계하곤 하였다.


축제 현장을 채운 외국인들은,

눈도 파랗고, 머리칼도 적색, 갈색, 금색이라,

알록달록 색색이 모여 있으니 흥취롭다.


공연장 좌우에 벌려놓은 파워 스피커 근처에 가니,

가슴통이 절로 떨리며 마구 쿵쾅거린다.

나처럼 무딘 이도 덩달아 흥이 일며,

북소리에 맞춰 피가 재빨리 혈관을 타고 뱅뱅 돈다.

아, 소리의 공덕이란 이리도 크구나.


大扣則大鳴 小扣則小鳴 不扣則不鳴


종을 크게 치면 크게 울고,

작게 치면 작게 울며,

치지 않으면 울지 않는다.


종 속도 텅텅 비었고,

스피커 안도 텅 비었는데,

두들기는 강도에 따라 소리가 달리 난다.

아, 온 세상 떨림의 이치가 이러함이라.


내 흉곽(胸廓) 속 안도 필경 오동나무 속처럼 비었으리라.

허니, 한 줄기 바람 자락 앞에서도 그리 서걱거리며 매양 울리라.


첫 이틀 동안은 외국인이 차일을 치고 난전(亂廛)을 벌였었는데,

그 이후는 한국 사람들이 자리를 물려받아 장사를 하고 있다.


헌데 재미있는 일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외국인들은 하나 같이 가격 표찰을 붙였었는데,

한국인들은 단 하나도 외부에 가격 표시를 하지 않고 있다.


외국인들이 물건 가격 표시를 등한히 하지 않음이니,

이로써 그들이 정직함을 미뤄 알겠더라.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서,

떳떳한 자기 모습에 대해,

부끄러움 없이 당당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랴?


하지만, 여기 우리네 상인 사람은 개미지옥을 펼치고 있음인가?

물건으로 꾀고, 선전으로 이끌어,

우선은 사람을 자신의 가게 안으로 잡아채는데 열중한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의 속내를 슬쩍 드러내고 흥정을 유도한다.

경계하고, 조심하는 일변, 상대를 어르고, 채기도 하며,

때론 겁박하고, 몰아 채 나아가기도 한다.


이게 나같이 그들 곁을 그저 스쳐 지나는 나그네에겐,

제법 흥미롭기조차 한 구경거리이지만,

시장 속에서 물건을 매개로 필요에 의해 만나는 사람들에겐,

어떠한 조건 환경으로 작용할 것인가?


이 양자는 일장일단이 있겠음이나,

분명한 것은 우리네는 아직 한참 조심스러운 세상을 살고 있구나 싶다.

타자를 경계하고,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달팽이처럼 제 집을 지고 다니며, 자신의 안위를 늘 확인하지 않으면,

편안치 않기 때문이 아닌가?


달팽이는 외적이 나타나면,

이내 더듬이를 거두고,

지고 다니는 제 집 안으로 숨어들지 않던가?


사람이 사람을 앞에 두고,

동종, 동류일런데,

어찌 당당해질 수 없단 말인가?


그러하고 있음인데,

난, 순간 허공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한 말씀을 듣는다.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누가복음 7장)


자고로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출 수 있는 법,

허나, 요즘 우리네들은 돈 버는데 거추장스럽다고 소매도 바짝 잘라 버리고,

치마도 무릎 위로 싹둑 잘라버리고서는 암내 풍기며 남정네를 꾀는데 분주하다.


그러함이니, 피리 소리 아냐 천둥이 친들,

틀어막은 귀딱지 떼고 들으려 하겠음이며,

생떼 같은 아이들, 바다 귀신이 되었다고 피눈물을 흘린들,

제 손수건 부러 적시며 수고로이 따라 울 일이 있겠음인가?


깃발을 흔들어도 병사들이 달려 나가지 않고,

북을 쳐도 물러나지 않고 제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어찌 달팽이를 비웃을 수 있음인가?


大扣大鳴 小扣小應


이 말씀은 얼마나 순진한가?


大扣不鳴 小扣不應


찢어진 깃발,

터진 북이어니,

설혹 바람이 지난들 떨 일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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