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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무인 한전 가지치기 3

농사 : 2015.08.16 10:24


며칠 만에 농장에 들리니 입구에 질러놓은 쇠사슬이 벗겨져 있다.

순간 노여움이 솟구친다.

며칠 동안 농원이 그냥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을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니 우편함이 열려져 있고,

입구 한켠에 서있는 미루나무 가지가 잘려져 있다.

게다가 나무 울타리까지 부서져 있다.


필경 한전 가지치기 용역들의 소행이리라.

2010년, 2012년도에도 이들의 침탈이 있었다.

(※ 참고 글 : ☞ 2010/11/22 - [농사] - 안하무인 한전 가지치기

                     ☞ 2012/03/20 - [농사] - 안하무인 한전 가지치기 2)

당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저들은 용서를 빌었다.

헌데도 세 번이나 연거푸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저 불한당 같은 녀석들은 어이하여 이리도 의식이 엉망진창인가?


나무는 공용의 도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사유지에 속해 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앞서 사단이 일어난 곳이니,

어찌 염려가 없을쏜가?

쇠사슬을 벗기고 들어왔으면 나중에 돌아갈 때,

흔적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원상회복 시켰을 터이며,

우편함 역시 호기심에 들여다보았다 하더라도,

얌전히 닫아놓았을 것이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아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녀석들이니,

이들은 술에 취한 회자수(劊子手) 망나니와 무엇이 다른가?


한전 전봇대야말로 사유지를 무단 점용하여 설치되어 있다.

수십 년 간 점용료를 결코 한 푼이라도 내고 있지 않다.

저들은 전봇대를 이용하고 있는 군청 방범용 CCTV라든가,

케이블TV 업체로부터 사용료를 받으며 장사를 하고 있다.


설혹 내가 가지치기를 인용(忍容)한다 하여도,

사전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야 마땅할 터이다.

게다가 앞서 벌인 전과(前過)가 있질 않은가 말이다.

그러함인데도 매번 이런 일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저들이 엉망진창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증좌가 아니겠는가?


나도 전기를 사용하며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일진대,

나뭇가지로 인해 전깃줄이 끊길 위험이 있음을 알고,

어찌 모른 척 외면할 수 있겠음인가?

가지치기를 하기 전 사전 동의를 구하고,

양해 하에 일을 치루고 사의를 표함이,

인간된 도리가 아니겠음인가 말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용접기를 챙겼다.

쇠사슬이 걸려 있는 쇠기둥에 환형 고리를 새로 다는 등, 

시건(鍉鍵) 장치를 채비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애초 이리 하지 않은 것은 매번 자물쇠를 잠그는 것이 성가셨기 때문인데,

이번 기회에 마음을 바꾸기로 한다.


전봇대 하나 옮기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모양이다.

그 동안은 그냥 용인하였음이나 이번엔 기어이 옮겨 가라 요구하리라.

이리 파렴치한 불한당 녀석들에겐 더 이상의 관용(寬容)이 무용(無用)한 노릇이니.

그런데 여기 땅을 우회하여 전봇대를 새로 설치하는 일이,

여기 지형 사정상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으리라.

그것은 저들이 자청하여 불러들인 일인즉, 이 또한 그들에게 맡겨둘 일이다.

권주(勸酒) 마다하고 벌주(罰酒)를 기꺼이 마시겠다하니 지켜만 볼 뿐인 것을.


며칠 후 한전 직원과 마주하다.

그는 말한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용역업체 역시 새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지난번에도 사단이 일어났음인데,

똑같은 곳에서 재차 되풀이 되고 있는 사유를 물으니 이리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새로운 이들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러하니 참아라 하며 배를 쑥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은 뭐 책임이 자신들한테 있질 않고,

게으르게도 이런 사정을 이제야 알아차리고 있는 나한테 있다는 격이다.


하여 내가 인수인계할 때 이런 사정을 전해 받질 않았는가?

가치치기 작업을 할 때 역사적인 기록을 담은 작업일지가 남겨지지 않는가? 

이리 물으니, 그는 말한다.

아직 인수인계가 된지 오래지 않아 미처 파악하지 못하였단다.


허나, 내놓는 말투가 영 석연치 않아,

문서 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냐?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데 기록도 남기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일이듯 발주하고 그냥 끝나면 그 뿐이 아니냐?

이리 재우쳐 말을 채니,

그는 전자문서로 되어 있을 터인데 아직 보지 못하였다 한다.

나를 무지렁이 촌부 다루듯 전자문서 운운하면 놀라서 물러설 줄 아는가 보다.


전자문서이든, 종이문서이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가?

있고 없고가 문제이지.


도대체가 무슨 일을 꾸미는데 있어 문서화(documentation)가 되지 않고 있다면,

어찌 역사적 관리가 가능하겠음이며, 평가가 따르고, 새로운 계획이 세워질 수 있겠는가?

한전이 구멍가게가 아니라면 참으로 딱한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그런데 그 때 웬 녀석이 농장 안으로 쑥 들어온다.

옆구리에 양손을 턱하니 걸치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지난번에도 겪은 적이 있기에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필시 용역 직원일 터인데 사과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까짓 것으로 성가시게 하고 있느냐 하는 태세(態勢)이다.


먼저 온 한전 직원은 그자 보고는 잘못하였으니 사과를 하라 채근한다.

하지만, 그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옆으로 비켜선다.

그러고서는 의자에 한 발을 척 올리고서는,

먼 산을 한가롭게 치어다보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발주처 한전 직원의 위령(威令)도 먹히지 않고 있음이다.


한전 직원은 내게 연신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과를 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먼 산을 바라보며 제 뻔뻔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음이다.

내가 작정하고 이자를 다루기로 한다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 한번 건네지도 아니 하고,

내 앞에 자진하여 기어 와서 사과를 하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원증회고(怨憎會苦)라,

저들을 다시 또 만나는 것조차 나는 고통스럽구나.


난 여기 시골에 와서 겪은 바,

다년간 경험으로 저들의 생리를 알게 되었다.

저들은 특수 종족이다.

사리가 통하지 않고 정상적인 거래가 불가능한 이들이다.

하여 나는 진작부터 저들과는 접촉을 삼가기로 하고 있다.


그물코가 천 개, 만 개인 그물을 다룰 때,

그 그물코 하나하나를 일일이 상대하는가?

아니다, 다만 벼리(綱) 줄을 잡아당기면,

모든 그물코가 하나로 통괄(統括)되어 끌려온다.


저들을 상대하다가는 부아가 나서 제 명에 살지 못할뿐더러.

꾀하는 일도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책임자를 만나 교섭할 일이다.

마치 그물의 벼리를 다루듯.


한전 직원에게 이르다.

이병(二柄) 즉 두 가지 자루가 있음이니 상(賞)과 벌(罰)이다.

저들을 부리는 것은 한전인데,

매번 저들로 인해 똑같은 짓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대와 같은 관리자가 뒷설거지를 하고 있다.


이는 이병을 제대로 쥐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질러도 언제나 아무런 벌칙이 가해지지 않고 넘어간다.

허니 그 누가 있어 잘못을 고치려 하겠는가?

백년하청(百年河淸)인 게라,

어느 명년에 황하(黃河) 그 누런 황토물빛이 맑아지랴?


난 오늘의 사태도 저들이 잘못이 아니라,

이병을 제대로 쥐고 상과 벌을 행사하지 못하는 한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용역회사 사장을 상대로, 

잘못을 저지르면 상응하는 패널티를 물리고,

잘하면 상을 주어 저들의 멱줄을 틀어쥐어야 한다.

이게 아니 되니까 잘못은 아랫 일꾼이 저지르고,

뒷수습은 부리는 상전이 하며 곤욕을 치루고 있다.


하니 옛글에 이리 이르고 있음이 아니더냐?

내, 이제야 여기 이를 남겨두는 바이다.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제어하는 바에는 두 가지 자루(二柄, 이병)가 있을 뿐이다.

  (※ 柄은 흔히 권병(權柄)이라 이르곤 하는데, 

  권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이른다.

  가령 편수(片手)냄비처럼 긴 자루가 하나 달린 냄비는, 

  애오라지 그 자루를 손으로 쥐어야만,

  자유자재 마음대로 냄비를 다룰 수 있다.

  이렇듯 사물의 제어 중심을 자루(柄)에 빗댄 것이다.)

이병이라 함은 형(刑)과 덕(德)이다.

무엇을 형(刑)과 덕(德)이라 하는가?

이르길,

죽이는 것을 형(刑)이라 하고,

칭찬하여 상주는 것을 덕(德)이라 한다.


남의 신하된 사람은 벌을 두려워하고,

상을 이득이라 생각한다.

그런즉 군주 자신이 형(刑)과 덕(德)을 직접 쓰면,

신하들은 그 위엄을 두려워하고,

그 이득으로 돌아들어갈 것이다.


明主之所導制其臣者,二柄而已矣。二柄者,刑、德也。何謂刑德?曰:殺戮之謂刑,慶賞之謂德。為人臣者畏誅罰而利慶賞,故人主自用其刑德,則群臣畏其威而歸其利矣。


군주는 권병을 잡아 세의 자리에 처한 고로,

명령이 행해지고 금하면 그친다.

권병이란 죽이고 살리는 수단이며,

세란 것은 대중을 이기는 자원이다.


君執柄以處勢,故令行禁止。柄者,殺生之制也;勢者,勝眾之資也。


권병이란 다른 이를 죽이고 살리는 제어 수단이라 하였음이다.

또한 세의 자리란 남을 이길 자원이라 하였다.


그러함인데도 이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 끼칠 손해를 자청하여 쉬이 감수하려 하고 있음이니,

참으로 해괴한 노릇이라 하겠다.


발주처의 입장에서 용역 회사를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헌데 매번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제재(制裁)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니,

이들이 어찌 인주(人主) 즉 다른 사람의 주인이 될 수 있겠음인가?


게다가 나로선 실로 한심하게 느끼는 일이 하나 더 있다.

한전 직원들은 전봇대를 옮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들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우리 밭의 전봇대를 옮긴다면,

하나 옮기는데 수소문대로 오백이 드는 것을 가정한다면, 

가외 지지용 전봇대를 새로 세우는 등 부수 작업 등을 고려할 때,

적지 아닌 금원이 소요될 것이 예상되고도 남는다.

나무 가지 치는 것을 내가 부러 막지 않는 한,

전봇대를 옮길 일은 애시당초 일어나질 않는다.


그러함인데도 어렵지도 않은 일인,

용역직원의 난행(亂行)을 직접 단도리를 못하고서는,

비용이 드는 것을 불사하고, 전봇대를 옮기려들고 있음이니 괴이쩍다.

(먼젓번 직원도 자진하여 전봇대를 옮기겠다고 이르다,

통보도 없이 유야무야되더니만,

이번 직원도 만나자마자 전봇대를 옮겨야겠다고 운을 떼고 있다.)

만약 공기업이 아니고 사기업이라면 이리 쉬이 결정할 수 있으랴?

가령 어떤 이가 그런 기업의 사장이라면,

직원들이 현장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고도,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으랴?


한참 의심이 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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