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눈깔사탕

농사 : 2015. 10. 26. 20:03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농업경영체 등록 관리청 직원이다.

해마다 농업 경영과 관련된 정보 변경 사항을 묻는다.


2년 전인가는 단순히 이것 조사 하는데,

군민 전체를 읍사무소로 출두하라 호출하였다.

내가 가서 확인하니 별반 특이한 것을 묻는 것이 아닌지라,

영농 철에 한창 바쁜 이들을 불러내서야 되겠는가?

이리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이리 대든 것은 아마 시골 동네에선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번 전화상으로도 별반 두드러진 질문은 없었다.

나로선 그렇게 소용이 되지도 않으면서 성가시기만 한 일이다.

하지만 농업 정보 사항의 국가 차원 통계를 내자면 이 정도의 조사는 필요하리니,

내가 응하는 것을 피하지는 않는다.


여기 직불제인가 뭣인가 하는 제도가 있다.

이것 신고하면 국가에서 농업인에게 돈을 준다.


얼마 전 시골 동네 농부 하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자신들한테 도장을 받아야 직불제니, 보조금 따위를 받을 수 있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며 생색을 낸다.

슬그머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자신들이 농부면 나도 농부인 것임을,

어찌 차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차이가 있다면 나보다 다만 먼저 농부가 되었을 뿐이 아니더냐?

너와 내 도장의 무게에 차이가 없는 한,

원한다면 내 것인들 저들의 소용에 닿지 않을 텐가? 


게다가 때론 도장이라는 것이 애꿎게 남을 묶는 밧줄과 매한가지임이라,

결코 잘못도, 책임질이 없는 이가 왜 이 일에 동원되어야 하는가?

이런 근원적인 의심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음인가?

고작 3,000원 짜리 도장 가졌다 으쓱 댈 이유가 없다.

부끄러운 짓이다.


그러자 저들은 이리 말할 태세다.

너희 서울 것들이 없어도 우리는 도장 찍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들끼리 돌려가며 도장을 찍고 말지 네들 것이 뭣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서울 사람들은 서울 사람끼리 별도로 계 모임이라도 만들어,

도장을 받아야 하는가?


세상을 다리 꺾어 분절(分節)하는 저들 향리인들,

팔 분질러 패당(牌黨)을 만드는 저들 무리들.


내 오늘 종로 4가를 거니는데,

참으로 많은 외국인을 만난다.

이제 거리마다 외국인들이 낯설지 않도록 차고 넘친다.

베트남 여인들인가?

조그마한 여인 서넛이 제 몸뚱이만한 쇼핑 꾸러미를 들고서는 시시닥거리며 지난다.


아, 우리 모두는 사해동포(四海同胞)이고나.

참으로 재미롭고도 아름다운 세상이 도래했구나.

이젠 군민으로서 살아가지 말고,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나아가 세계인으로서 모든 인류와 친구가 되어야 한다.


앞의 저 농부가 이리 말한다.


‘직불금을 받았는데 이리 국가에서 혜택을 준다.’


내가 그 농부에게 말해주었다.


‘그것은 혜택이 아니다. 

다만 눈깔사탕이다.’


그가 의아해 한다.

내가 다시 보태 말해준다.


‘우는 아이 달래려고,

아가리 벌려 물려주는 눈깔사탕 말입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조사모삼(朝四暮三)일지라도,

3+4나 4+3이나 일곱에 차이나 없지,

저 직불금이란 애시당초 밑지고 들어가는 셈법인 게라.

이도 모르고 혜택이라고 감지덕지(感之德之)하고 있으니,

도대체가 촌부란 위인들이 모두 원숭이보다도 사뭇 덜떨어진 종자가 아닌가 말이다.


한미FTA 따위로 농업인들의 입지가 어려워지자,

농민들의 불만이 왜 아니 없을쏜가?


이게 국가에선 보상이나 위로 명목으로 주는지 내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이 정도 터무니없는 돈으론 결코 쓰린 가슴에 붙이는 반창고 값도 치룰 수 없다.


농민이 거지인가?


저 직불금을 받으려면,

이장 하나에 거주민 두 명의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한단다.


쥐꼬리만 한 것을 받기 위해,

서류를 들고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우리 같이 서울에서 귀농한 이들은 답례품을 챙겨들고,

저들을 만나지 않으면 섭섭해 할 이가 적지 않다.


듣건대 귀농을 하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백만 원에서 삼백만원을 동네에 내놓아야 한다고 한다.

어떤 이가 왜 돈을 내놓아야 하는가 물었더니,

그 돈으로 노인들 모시고 동네잔치를 하여야 한다는 핑계를 대더란다.

이것은 거지반 협박 수준이다.

알아서 기지 않으면 앞으로 견디어내기 어려울 것이란 통첩 같은 것이다.


외지에서 들어온 이가 봉인가?

여러 모로 서툰 이를 챙겨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올바른 도리가 아닌가?

그러자면 외려 마을 회에서 조촐하나마 환영식을 열어주는 것이,

이치에 닿는 처사가 아니겠음인가?

아, 아지 못할세라.

세월 따라 변하는 부박(浮薄)스런 인심의 향배를.


직불금이란 것이 소액이라 실질적으로 농민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저것 받기 위해 세 집을 돌아다니게 하는 것도,

농부들 자존심을 돌보지 않는 처사다.

매년 조사원이 농업 경영 현황을 직접 조사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면 족하지 별도의 확인을 구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 생각한다.

이는 종국엔 자신들이 조사한 것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고,

농민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또한 전제되어 있다.

농민들은 저들끼리 돌아가며 도장을 받기 때문에,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연대하여 엮이게 된다.


농협 대출금이라는 것도 이런 식으로 상호 연대보증을 섰다가,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엮이어 떼로 빚쟁이가 되어,

사회적 문제가 된 적도 있지 않은가?


난, 직불금을 받지 않기로 하였다.


대저, 돈을 주는 이가 있고,

돈을 받는 이가 있다 할 때,

받는 이는 자연 주는 이에게 매어 묶이게(隷屬) 되는 법.


有錢能使鬼推磨。


돈이 있으면 귀신에게조차 맷돌질을 시킬 수 있다.


돈을 받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주는 이에게 혼을 저당 잡히게 된다.

받는 이는 돈에 기대게 되고,

주는 이는 받는 이를 제압하게 된다.

급기야 받는 이의 뇌에 노예의 정신이 깃들 게 된다.


아니 할 말로,

뺨 맞고 밑까지 대주는 꼴이라,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임이라.


가만히 생각해보라.

저것이 어떻게 혜택인가?

빼앗긴 것을 돌려받아도 시원치 않은 판인데,

의심 받아가며 도장을 받아와야 하고,

굽신거리며 신청을 해야 하며,

바로 주는 것도 아니고 반 년 이상을 넘기고서야 준다.


농민은 결코, 

보조금에 혈안이 된 돈귀신(錢鬼)이 아니고,

직불금 타먹는 거지가 아니다.


내 그러하다한들 직불금 타 잡수신 분을 매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돈이 많아서 배가 부른 소리를 하고자 함도 아니다.


다만 저것을 대하는 자세라든가 입장에,

나 같은 관점도 있음을 환기하고자 함에 본 뜻이 있음이다.


허니, 타 잡수실 분은 얼마든지 악착같이 타 잡수시라.

농부들은 국가로부터는 얼마든지 받을 권리가 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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