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로드킬 ⅱ

생명 : 2015.10.09 18:13


인터넷에서 어떤 글 하나를 읽었다.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어느 날 출근길에 너구리가 도로에 죽어 있는 것을 보았으나,

서둘러 가느라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는 일하면서 하루 종일 이게 마음에 걸렸다.

퇴근길에 기어이 가보니 아침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개는 후속 차량 바퀴에 깔려 어육(魚肉)이 되고 말지 않던가?

행으로 그리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죽은 너구리를 거듭 치지 않고 피해가는 운전자들이 고맙고, 존경스러워 보인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이뤄지는 현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 그는 정말로 마음이 아름다운 이구나 싶다.

종일 버려진 너구리를 염려하였을 뿐이 아니다.

뒤이어 지나는 차량들이 사체를 훼손하지 않고 피해간 것조차,

고맙고 존경스럽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피해가는 운전자들이 존경스러울 정도로 예의가 바른 자라면,

도대체 종일 걱정하다 되돌아와서 치울 생각을 하는 이는 무엇인가?

마음 바탕 곧 심지(心地)가 이리 아름답다니,

실로 이 분이야말로 존경스럽다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수 십, 수 백인이 지나면서 너구리를 타넘지 않은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인가?

우리는 길을 지나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육이 된 것을 쉽사리 보지 않았던가?

그 누가 있어 도로 위의 동물 사체를 깔고 지나길 원할까?

비참하니 어육이 되는 것은 사람들이 미처 피할 틈이 없어 깔고 넘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날 너구리 사체를 깔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요행 운이 좋았을 뿐,

밤이 되고, 시일이 지나면 필경은 어육으로 변해갈 것이다.

선(善)한 그 누군가 있어 옮기지 않는 한.


따라서 지적한 저들 운전자들이 예의가 발라 사체를 훼손하지 않았다 보는 것은,

좀 과분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그보다는 저 글의 필자가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다치지 않게 된 상황이,

다행스러웠기 때문에 상대들을 한껏 미화하게 되었다.

이리 보는 것이 좀 더 이치에 닿는 분석일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위무(慰撫)하기 위해,

우리는 때론 다른 착한 조역을 필요로 한다.

그 조역을 맡은 자가 실제로 착하든, 악하든 이것은 문제가 아니 된다.

어차피 그는 극중에 동원된 역할만 담당하면 족하다.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진정 저들 운전자들이 예의가 그리 바른 사람들이라면,

어째서 수백인 중에 단 하나라도 차를 멈추고 사체를 처리하지는 못하였는가?

저 필자가 종일 전전긍긍하다 저녁에 되돌아와, 도로 밖으로 치기까지,

그 누구도 그런 생심(生心)을 내지 못하였으니,

저들 운전자들이야말로 실인즉 예의가 없는 자들이라 일러야 맞지 않은가?


게다가 애초 너구리를 치고 달아난 녀석은 더욱 나쁜 인간이 아닌가?

그리 달아나면, 뒤따르는 차량들이 도로 위에 버려진 너구리를 깔고 지날 수도 있고,

때론 사체를 피하려다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함이니 뒷수습을 하고 떠나는 것이 인간의 바른 도리라 할 것이다.

그리 못된 녀석을 두고 어찌 예의 바르다 할 수 있겠음인가?


이리 본다면,

저 필자처럼 종일 근심을 하고,

퇴근길에 다시 들러 뒤처리를 끝내 하고 마는 이야말로 인간적 예의가 바르며,

마음이 아름다운 이라 하겠다.

그날 저곳에서 유일하게.


이런 분을,

언제 뫼시고 탁주라도 함께 나눌 수 있게 된다면,

내겐 넘치는 복이라 하겠다.


헌데, 이러하였음이라.


凡治之大者,非謂其賞罰之當也。賞無功之人,罰不辜之民,非所謂明也。賞有功,罰有罪,而不失其人,方在於人者也,非能生功止過者也。是故禁姦之法,太上禁其心,其次禁其言,其次禁其事。今世皆曰「尊主安國者,必以仁義智能」,而不知卑主危國者之必以仁義智能也。故有道之主,遠仁義,去智能,服之以法。是以譽廣而名威,民治而國安,知用民之法也。凡術也者,主之所以執也;法也者,官之所以師也。然使郎中日聞道於郎門之外,以至於境內日見法,又非其難者也。 

<韓非子>

(※ 郎門 : 謂宮中之門。郎,通 [廊]。)


무릇 정치의 큰 요체는 그 상벌의 타당성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공 없는 자에게 상을 주고,

죄 없는 백성을 벌함은 소위 밝은 도리가 아니다.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죄가 있으면 벌을 주며,

그 해당자를 놓치지 않는 것은,

이제 바로 그 자가 있어서이지,

그로써 능히 공을 생기게 하고,

죄를 그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간악함을 금하는 법은,

최상은 그 마음을 금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그 말을 금하도록 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그 짓에 대하여 금하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모두 말하기를,

군주를 존중하고 나라를 안정되게 하는 자는 필히 인의와 지능으로써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군주를 비하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자도,

반드시 인의와 지능으로써 한다는 것을 아지 못한다.

그러므로 도를 아는 군주는 인의를 멀리하고, 지능을 버리며, 법으로써 따르게 한다.

이로써 명예가 널리 퍼지고, 명성에 위엄이 생기며,

백성이 다스려져, 나라가 안정되는 것은,

백성 쓰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무릇 술(術)이란 군주가 장악해야 하는 것이며,

법이란 관리가 수범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낭중으로 하여금 날마다 궁 밖으로 나아가 도를 듣게 하고,

궁 안으로 법을 알게 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간악함을 막는 일은 인의로 되는 것도 아니며,

지능에도 의지할 바가 아니다.

법으로써만 민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 것이야,

개인적으로는 덕스럽고 어진 일이라 하겠음이나,

나는 이것으로써 여러 사람을 다스리고 나라를 안정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有功者不賞,有罪者不罰;多黨者進,少黨者退;是以群臣比周而蔽賢,百吏群黨而多姦;忠臣以誹死於無罪,邪臣以譽賞於無功。其國見於危亡。

<說苑>


공이 있는데 상을 주지 않고, 죄가 있는데 벌을 주지 않으면,

크게 무리를 지은 다당파는 벼슬에 나아가고,

작게 무리를 지은 소수파는 물러나게 된다.

이로써 군신이 무리를 지어 현명함을 가리게 되며,

신하들이 무리를 지어 파당을 만들며 간사하게 된다.

충신은 죄가 없음에도 비방을 받고 죽게 되고,

간신은 공이 없음에도 칭찬을 받으며 상을 받게 된다.

이런 나라는 위험에 빠지고 망하게 된다.


공이 있으면 필히 상을 주어야 하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받도록 하여야 한다.

이게 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죄지은 놈이 재물을 더 많이 취하고,

나쁜 짓을 많이 할수록 벌 대신 상을 많이 받는 사회라면,

어찌 앞일을 밝히 전망할 수 있으리오?


난 의심을 한다.

당국자들이 어째서,

도로에서 동물을 치고 달아나는 이를 적발하여, 그 책임을 묻는 일을 등한히 하는가?


1차로 동물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하고,

2차로, 이를 도로 한가운데 방치하고 도망을 치고,

3차로, 뒤따르는 후속 차량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


이것은 엄연히 죄임이라.

마땅히 벌로서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소임(所任)을 도맡은 입법자들의 바른 인식과 판단을 구하며,

엄정한 관련법의 발의, 제정 활동을 촉구한다.


이제 로드킬과 관련된 나의 이전 글을 소개해두며 마친다.


☞ 2009/08/27 - [소요유] - 바위, 볕 그리고 바람

☞ 2010/04/01 - [소요유] - 로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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