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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ⅵ

생명 : 2015.08.04 19:11



이 나무는 농원 개설 초창기 때 구한 것인데,

소문과 달리 열매가 사뭇 작아 수확 품이 많이 든다.

게다가 먹을 때 과피가 씹히고, 과육 맛도 별로 취할 바가 없다.

몇 년간 자란 것이라 캐어내는 것도 안타깝고,

나무에게도 미안한 노릇이라 거의 방치해두었다.


그러다 이번에 짬을 내어 캐어내기로 하였다.

삽을 발로 힘을 주어 쿡 박아 꽂으며, 고정 뿌리(anchor root)를 절단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큰 대침으로 몸 여기저기를 찔러오듯 통증이 일어난다.

그러다 잠깐새 무의식중에 급히 몇 자 옆으로 날아올라 피신을 한 자신을 발견하였다.

(anchor root : 

 A large root whose main function is to hold the plant in place in the soil)


내 몸은 위험에 처하여 이리도 재빠르게 자신을 스스로 구하는구나.

용하고도 기이(奇異)한 노릇이어라.

나무 주변엔 윙 소리를 내지르며,

말벌들이 사처난비(四處亂飛)라, 사방으로 어지럽게 날고 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말벌과 친하여 이젠 별로 무섭지 않다.

(※ 참고 글 : ☞ 2013/11/04 - [소요유] - 말벌 ⅴ)

나무 가지엔 큰 말벌집이 달려 있다.

내게 저게 흉하지 않고 그 위용이 장하게 느껴지며,

숭고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저리 장엄한 무늬로 꾸미며,

밀랍으로 발라 비바람을 막고,

새끼를 기르며 명을 잇지 않음이더냐.

이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그런데 저 말벌집은 앞서 겪은 쌍살벌과는 모양이 다르니,

세간에서 흔히 사람들이 일컫는 전형적인 그 살벌한 말벌인가 싶다.

모두 다섯 방을 쏘였다.

말벌에 석상(螫傷)을 입을 경우 때론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는데,

나는 일순(一瞬) 내를 건너고, 들을 가로지르며 내달다,

급기야 천근 몸뚱이를 새털처럼 가벼이, 치지구천(馳至九天) 하늘가로 날아 올리며,

삼삼한 열락의 경지를 노닐고 있음이니,

필경 멀지 않아 신선이라도 될 모양이구나.


내가 석독(螫毒)으로 붉게 부풀은 혈위(穴位)를 조사하니,

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여간 수지 맞은 것이 아니다.


후계(後溪), 완골(腕骨), 승산(承山), 양구(梁丘),

그리고 환도(環跳, or [환저])를 아래로 빗겨 승부(承扶),

이리 도합 다섯 군데를 말벌들이 옥침(玉針)을 박아 넣고,

금독(金毒)을 주입하였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승산(承山)이니, 승부(承扶)니 하는 혈은 모두,

근육 주름 또는 힘살 밑에 처하여 위를 받쳐주는 위치에 있다.

승(承)이란 글자도 본디 받쳐준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그 혈명(穴名)이 적실하니 알맞아 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올해 연일 바쁘게 일을 해나가는데,

농장에 가서 용을 쓰고 돌아온 날, 어느 때 잠을 자다 한 때 다리에 쥐가 오른 적이 있다.

이 때 가만히 발목을 중심으로 발끝을 위 아래로 끌거나 밀며 근육을 풀어주고는,

바로 이 승산 혈을 강하게 압박하여 대처한 적이 있다.

그 위 산(山) 즉 갈라진 비복근(腓腹筋)을 받치고 있는 혈이 이곳이니,

어찌 효험이 없겠음인가?


후계(後溪), 완골(腕骨) 이 둘은 본디 감기에 특효한 혈처이니,

올 겨울엔 감기가 걸릴 일이 없겠다.

전에도 쌍살벌에 쏘여 그해 겨울을 별 탈 없이 지내겠다고 여겼는데,

과연 겨울에 감기 하나 걸리지 않고 넘겼다.


천금요방(千金要方)이란 의서엔 이런 말이 있다.


‘凡諸孔穴,名不徒設,皆有深意。’


‘무릇 모든 혈 자리 이름이란 게 공연히 허언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모두 심오한 뜻이 있는 게다.’


후계(後溪) 역시 이름이 심상치 않다.

후(後)란 당연히 전(前)이란 말에 대(對)한다.

혈기가 배후의 독맥(督脈)으로 운행된다는 뜻을 지칭하고 있다.

계(溪)는 혈기가 흐르는 도로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수태양경(手太陽經) 혈맥이 독맥(督脈)과 통하는 것이니,

도가(道家)에선 특히 이 후계혈을 중히 여긴다.

독맥이란 일신의 양기를 주관하는데 양기가 왕성하면 전신도 따라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 ※ 肉之大會為谷 肉之小會為溪 <黃帝內經 素問 氣穴論>)


주먹을 가볍게 쥐면 약지(藥指) 관절의 끝 손바닥 횡문(橫紋)이,

도톰하니 튀어나온 부분이 생긴다.

이게 후계 혈이다.

평소에 이를 상시로 주무르면,

심화(心火)를 다스리고 양기를 기르며, 경추를 조절하고, 

척추를 바르게 하며, 눈을 이롭게 한다.

실제 허리가 굽은 곱사등의 경우,

이 후계 혈을 열심히 주물렀더니,

굽은 등이 펴지고 자세가 현저히 바르게 돌아왔다고 한다.


농장이 있는 시골 마트에 셈을 다루는 이가 하나 있다.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기승을 부릴 때 그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일하였다.

어느 날 보니 마스크를 벗고 있다.


‘이제 마스크를 벗으셨네요?’


내가 이리 인사를 치르자,

그는 대뜸 받아 쏜다.


‘악담을 하시는 것이지요?’


흠을 잡고자 비웃는 말이 아니냐란 되물음이다.

나는 낯색도 바꾸지 않고 바로 대꾸를 해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와는 낯이 익어 스스럼없이 농을 주고받는 사이다.


‘그 동안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 힘든 짓을 왜하셨습니까?

그리 하지 않아도 좋은 도리를 찾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와는 피차 할 일을 앞에 두고 있어 그냥 헤어지고 말았으나,

시간이 더 있었다며 그에게 몇 가지 더 일러줄 말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가 하니,


첫째는 면역력을 기르려면 블루베리를 충분히 취해두라라는 것과,

둘째는 평소 틈이 날 때마다 심심풀이라도 후계 혈을 열심히 주물러 두라는 것이 그것이다.


양구(梁丘)혈 역시 내겐 요긴한 혈이다.

내가 농장 일을 하느라 무릎을 심히 혹사하였는데,

이로 인해 오른쪽 무릎 관절이 아플 때가 혹간 생기곤 한다.

본디 양구혈의 양(梁)은 집의 가로지른 들보(橫樑)를 뜻하며,

구(丘)는 흙이 쌓인 언덕을 뜻한다.

그러니까 경수(經水)가 흐르는 가운데 이 양구가 둘러싸고 막아,

그 흐름을 조절을 하는 것이다.

경수가 충일하여 넘칠 때는 가로지른 횡량(橫樑)을 넘어 배설하고,

아닐 때는 흙 둔덕으로 막아 두는 것이다.

양구혈은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의 극혈(郄穴)인데,

이는 급성병을 다스려 치료하는데 좋다.

이런 극혈은 넘치고나 부족함에 적절히 대응하여,

최적의 상태로 빨리 조절한다.

따라서 슬개두통(膝蓋頭痛)을 급히 다스리는데 이 혈을 사용한다.

마침 그래서 그러한가?

무릎이 무엇인가 편치 않았는데,

말벌 떼가 이 혈을 쏘고나자,

이후론 아무런 아픈 증상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이번에 벌침을 맞은 곳이 하루가 지나자 붉게 충혈이 되어,

부풀면서 가려움이 심해지고 있다.

별반 아프지는 않은데 간질간질한 것이 재미를 더하고 있다.

조금씩 근지럽다가는 이내 야릇한 쾌감을 일으키며 사람을,

묘처(妙處)로 이끌며 시험을 하곤 한다.


본디 이러한 현상은 외부 물질이 체내로 들어왔을 때,

몸의 방어체계가 재빠르게 대응을 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해당 개소에 백혈구가 급격히 늘고,

혈류가 증가하게 되며,

신경계는 신호 정보 전달물질을 다량으로 방출하게 된다. 


마치 변경에 적군이 나타났을 때,

지휘부에 급보(急報)를 치게 되며,

중앙에선 그곳으로 방위군을 급파하고,

자원을 총동원하여 보급하는 것과 유사하다.


아측(我側)이 견딜만한 상황이면,

일상의 자원 배분이 적절히 새로 일어나고,

잠자던 기능이 활성화되며,

조직이 재정비되며 외려 활력이 생기게도 되는 것이다.


게다가 외부 침입처가,

혈 자리로 치면 마침 요혈인 바라,

기혈이 강하게 자극이 되고,

새로 정비되며 당해 오장육부 기능이 활성화 되는 공덕이 있게 된다.


사람들이 자침(刺針)을 한다든가,

봉독(蜂毒)을 자청하여 맞는다는 것은,

이 모두 이런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내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마침 말벌들이 요혈(要穴)에다 옥침(玉針)을 박고, 금독(金毒)을 주입하니,

기혈(氣血)이 기운차게 돌며,

오장육부(五臟六腑) 온 기능을 새롭게 일떠 일으키며,

정신을 봄날처럼 새로 돋우고 있는 것이다.  


말벌의 공덕이 이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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