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청문회에 등장한 공

소요유 : 2016. 12. 8. 13:04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를 시청하자니, 절로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의 대부분은 위원들의 질문에 바로 답을 하지 않고,

이리저리 빼고, 자빠지며, 사실을 은폐하고, 진실을 감추기 바빴다.

동문서답을 전문으로 하는 이, 거꾸로 눈에 힘을 주며 상대를 무시하는 이,

제 양심을 속이며, 죄를 덮고, 벌을 받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들 있다.


위원 중에는 거꾸로 곤궁에 빠진 이런 증인을 교묘히 거드는 이도 있었음이니,

세상은 이리도 잡박(雜駁)하구나 싶다.

위원은 국회의원이기도 한데, 법을 다루는 이들이,

법의 적용을 자의로 해석하는 이까지 목격되고 있다.

바로 앞에서 잡박(雜駁)이라 말했는데, 박(駁)은 본디 얼룩말을 뜻한다.

검은 색, 흰색, 붉은 색이 섞인 얼룩말은 보기라도 그럴싸한데,

사람 사회에서는 정인군자(正人君子)가,

실로 기린(麒麟)이나 봉황(鳳凰) 보기 어려운 것처럼 드물다.

하지만, 소인배들은 모래밭의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


어느 증인 하나가 나와 연신 동문서답을 하는데,

장구재비가 추임새 넣듯, 이어 내뱉는 말 하나가 귀에 거슬린다.

그는 동문서답을 하며 위원들의 예기(銳氣)를 거슬리고는,

이내 뒤이어 ‘송구하다’란 말을 부려 내놓으며 현장의 노기(怒氣)를 누그러뜨리려 한다.

거죽으론 어눌하게 보이지만, 기실은 그 능갈치는 재주가 여간이 아니다.
변호사 지도를 받으며 여러 차 연습을 하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양 싶다.


송구하다는 말의 뒷 글자 ‘구’란 장단질에 이끌려, 절로 생각 한 올이 뛰쳐나온다.

이것 운율(韻律)이라 하기엔 실로 여간 기분이 언짢은 것이 아니다.

제 잘못을 덮거나 연신 변명하기 바쁜 이들의 말 뒷다리를 따라,

운(韻)을 맞추고 있다니, 아무리 제풀로 인 생각이라지만, 

일시 창피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나, 기왕지사인 바라,

내 이제 일은 생각의 한 올 터럭을 따라 이를 밝혀두고자 한다.


고구(高毬)


송구하다는 말에 고구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수호지(水滸志)에 등장하는 고구(高毬)의 구(毬)와 송구(悚懼)의 구(懼)는 물론 뜻이 다르다.

하지만 ‘송구’란 말은 위원회 앞 뜨락에 공처럼 연신 굴려지며,

위원들이 펼치는 그물망의 포획으로부터 면피(免避)하는 신통한 도구가 되고 있다.


고구(高毬)는 본디 시중 잡배인데, 일약 출세하여 태위(太尉)가 된 인물이다.

이는 그가 축국(蹴鞠) 즉 공차기의 명수인 바라, 

이게 북송(北宋)의 단왕(端王)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 단왕은 후에 송황제가 되니, 곧 휘종(徽宗)이다.)

고구(高毬)의 구(毬)는 여기서 유래함이니, 구(毬)는 공을 가리킨다. 

헌즉 고구는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고축구라 함과 같다.


(ⓒ痞客邦)


이렇듯 고구(高毬)의 구(毬)와 송구(悚懼)의 구(懼)는 한자 어의는 다르나,

그 실질 내용은 별반 다를 것도 없지 않다 하겠다.

그러함이니, 내가 회의장 안에 마구 뒹구는 ‘송구’라는 말을 듣고,

이내 ‘고구’란 말을 떠올리게 됨은 창피할 일이라기보다는,

외려 기특한 노릇이 아니랴?

‘송구’나 ‘공구’나 모두 공을 매개로,

천하를 희롱하고 있음은 매 한가지인 바라,

내 세상을 이를 빌어 탄식함에 무슨 잘못이 있겠음인가?


一個浮浪破落戶子弟,姓高,排行第二,自小不成家業,只好刺鎗使棒,最是踢得好腳氣毯。京師人口順,不叫高二,卻都叫他做高毬。後來發跡,便將氣毬那字去了毛傍,添作立人,便改作姓高,名俅。

(忠義水滸傳)


“일개 부랑 파락호 자제로서, 성은 高로, 둘 째 자식으로 가업을 이룬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창으로 찌르고, 봉을 휘두르는 것만 좋아하였고, 공차기를 잘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입에 익숙한 대로 고이(高二)라 하지 않고 고구라 불렀다.

후에 출세하여 이름 중 毬의 毛 방(傍)을 버리고, 인(人)을 붙여 새로 지었으니,

성운 高, 이름은 俅다.”


毬 → 俅


이것 재미있지 않은가?


俅는 공손하다 정중하다는 뜻을 갖는다.

그러니까 이름이 毬일 때는 공차는 것밖에 잘하는 것이 없었다.

우연히, 단왕의 눈에 띄어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고서도, 

별별 망나니짓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함인데도 이름은 점잖게 俅로 바꾸고 있음이다.


청문회 증인들은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해, 별별 못된 짓을 저질렀음에도,

낯빛을 그럴싸하니 꾸미며 연신 송구하다면,

회의장을 농락하고 있음이다.


이렇듯 이들의 행적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거짓과 위선의 공을 굴림에 있어 재간들이 엇비슷하다.


임충은 동경팔십만금군창봉교두(東京八十萬禁軍槍棒教頭)로써,

표자두(豹子頭)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신장이 팔 척으로 豹頭環眼이라,

즉 얼굴이 표범과 같고, 눈이 고리 눈이기 때문이다.

수호전을 읽으며, 임충을 지칭할 때는,

임충은 그냥 임충이 아니라,

동경팔십만금군창봉교두(東京八十萬禁軍槍棒教頭)이나,

표자두 임충이라 불러야 흥이 제대로 인다.


고구의 양아들 고아내(高衙內)가 바로 이 표자두 임충(林沖)의 부인을 넘본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고아내의 음심은 꺾이고,

임충은 창주(滄州)로 쫓겨나고 만다.

창주로 쫓겨나서도 갖은 음해와 모략에 걸려든다.

급기야 임충은 고구의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양산박으로 숨어들게 된다.


小人得志即是他人的不幸


소인이 뜻을 얻게 되면,

타인의 불행이 시작된다.


가령 한 인간이 학교에 출석도 하지 않고 점수를 따고,

시험 자격조차 없음인데도 대학에 들어가면,

이것이 저들 혼자만의 이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공부한 이의 노력을 무화시키고,

제대로 합격할 학생의 인생을 그르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을 위해 말(馬)을 사주며 뒷배를 봐주게 되면,

필시 댓가를 구하게 된다. 

저들이 원하는 바를 얻게 되면,

그게 그의 득책(得策)이 됨에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로써 시장질서는 무너지고,

기회를 얻을 수 있던 다른 이가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모두 공의(公義)를 저버리는 악행이다.


임충은 저들의 간계에 빠져 백호당(白虎堂)에 칼을 찬 채 오르다,

반역죄를 저질렀다며 체포되고 만다.

이렇듯 악인들은 언제나 선량한 이의 등을  치고, 목에 칼을 들이민다.

마침내, 그가 창주(滄洲)로 귀양을 가게 되면서,

양산박(梁山泊)과의 인연이 싹트는 계기가 된다.


현 정권 역시 블랙리스트란 명부를 만들어,

무고한 사람들을 억눌렀다.


약자를 누르고, 가난한 이를 핍박하며,

부자의 세금을 감해주고, 강자의 편에 서서,

한시 위임 권력을 사유화 하였다.

고구가 한 짓과 무엇이 다른가?


오늘날 한국에 양산박은 없다.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여,

드디어 고구와 같은 악의 무리들을 응징하자고 외치고 있다.

문득, 돌아보니, 광화문이 양산박으로 바뀌고 있음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양산박 호걸들은 나중에 나라의 공작, 선무에 따라 귀순한다.

하지만 대개는 무참히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충의로 꾀고, 애국하자는 말로 충동할 때는 조심하여야 한다.

저것이 얼핏 꿀 바른 떡인 양 그럴싸하지만,

독이 발라져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내 누차 이야기 하지만,

애국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개개 시민들의 행복이 보장될 때, 자발적으로 애국심이 솟는 것이지,

애국이란 나랏 권력의 말에 동원되어,

개인의 행복이 유보되거나 박탈되고나서,

후일에 기약되는 것은 도대체가 미더운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믿을 노릇이지,

소인들의 탐욕이 은폐된 충동질 감언(甘言)에 속아서는 결코 아니 될 일이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天下興亡,匹夫有責  (0) 2016.12.13
명예혁명은 없다.  (3) 2016.12.10
제환공과 박근혜  (0) 2016.12.09
청문회에 등장한 공  (0) 2016.12.08
3.5와 9 그리고 10  (0) 2016.12.04
사인즉실위(事人則失位)  (0) 2016.12.01
촛불과 태극기  (0) 2016.11.30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