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현실장악 二題

소요유 : 2008.03.11 15:08


※. 이 글은 앞 글 “☞ 2008/03/10 - [소요유] - 사천왕(四天王)과 복전함(福田函)”의 댓글에
     대한 답글 성격을 겸합니다.

나는 모든 게 비교적 늦은 편이다.

우연히 고1 때 노자도덕경을 보게 되었는데,
잘 알지 못하지만, 거기 묘하게 댓닢 지나는 바람 소리가 나는 듯,
청한탈속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이어, 장자, 열자, 포박자 등을 접하며,
나는 그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나섰다.

문득 눈을 드니,
사람들은 자주 이빨을 드러내며
먹이를 다투고 있었다.

첫 직장 생활 때,
동료는 내게,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 조나단을 건내주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용한 것을 던져 버리듯,
내게 어울린다며,
그리 내 책상 위로 툭 던져 주고는 사라졌다.

그는 아주 열심히 살았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는 꽤나 열심히 산 폭이다.

저들도 교회를 가고, 절을 간다.

저들과 나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

저들은 7일 중 하루는 예배당에 가서,
죄를 사함 받고,
이내 착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남은 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대신, 정치인은 5년을 일주일로 삼고,
선거일을 하루의 주일로 삼아
따뜻한 선량이 된다.

장삼이사,
범부는 경각(頃刻)간이 7주야고, 찰나간이 단 하루이니,
전전반측 생멸이 해파(海波)처럼 부침한다.

나는 절도, 교회도 가지 않는다.
나는 다만 시종(始終) 7일 나 자신의 성전에 거한다.

때문에 나는 7주야 내내, 신이 아니라,
기어히 내게 부끄럽다.

고은의 시를 인용한다면,
다만,
숲이 내겐 경전이요,
물소리가 기도소리다.

***

백장청규(百丈淸規)의 백장회해(百丈懷海)는
당나라 때 선승이다.

당나라 무종의 폐불때도 다른 종파는 다 쑥대밭이 되었지만,
선종만은 무사했다.
까닭은 백장(百丈)의 선문규식(禪門規式) 때문이라 한다.

“선원에는 부처님과 보살상을 안치하는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다만 설법을 하는 법당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선종은 불전을 세우되,
그 안에 불상을 안치하지 않았으며,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도만을 닦았다.

그런즉 무종의 트집을 비껴날 수 있었음이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이 역시 백장이 남긴 이야기 터럭이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겠다.
그래 모든 스님이 낮엔 밭을 갈고,
밤엔 도를 닦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찬탄(讚嘆)한다.
아름답다.
과연 그런가 ?

***

“이명박이나 이건희처럼 지상의 권세와 내세의 구원까지 모두 함께 장악하는 현실적인 인간이 되거라!”

ooo님이 말하는 현실 장악법을 나는 조금 더 뒤적거려본다.
꺼진 화롯불 뒤적이며 혹 군밤 두어 알 남았을까 싶이.

그런데, 먼저 "현실 장악법"이란 용어에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의하기 나름인즉,
일응 그 뜻을 좇아 따르기로 한다.

“현실 장악법”에는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

이명박이나, 이건희식 세상 건너기가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성직자가 되는 것이다.

전자는 지상의 권세를 얻는다.
후자라야 비로서야 지상의 권세도 잡고, 내세의 구원도 넘볼 수 있다.

전자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리는 요즘 매일 실감하고 있다.
후자는 왜 아닌가 말이다.

저들 양 치는 어느 목자는 월급이 기천을 넘는다 하지 않던가 말이다.
우리 집 식구 하나는 성당을 나간다.
어느 날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목사와 만났는데, 그들 월봉이 내 연봉과 맞먹더라”
이리 말씀하시더란다.
성직자라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도 갈등을 때리고 있음이다.
저들도 끼리끼리 권세를 칭량하고,
청탁불문,
금화 갯수를 헤아림에 벗어나 있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 은총에 내세를 담보잡힌 그가
목사 주머니 속 금닢은 왜 세었겠으며,
툭하면
“에어콘 달아야 한다,
성전 짓느라 빚이 10억이나 남아 있다,”
하면 우는 소리를 하시겠는가 ?

지나다 보면,
저들이 말하는 성전은 가근방에서
제일 크고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한다.
평일엔 텅 빈 저 성전,
그 때,
저 안에 무엇이 거하실까나 ?

도시에 사는 비둘기는 하나같이 불구의 몸이다.
실에 묶여 발가락이 하나, 둘 끊어진 게 예사다.
가여운 비둘기들,
대낮엔 저 잿빛 성령들만이
성전이란 이름의 지붕에 내려앉는다.

***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요게 요즘 아해들 식으로 말하면
낚인 것 아닐까 ?
나는 이리 회의하곤 한다.

저 찬란한 아름다움 앞에 어인 불경스러움이란 말인가 ?
그런가 ?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이 언술은 무엇인가 ?
지금 당대에 놀고 먹는 땡중이 많았다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
그러하니, 백장은 분연히 시줏쌀 훔쳐 먹는 도승(盜僧)들을 나무라고 계심이 아닌가 말이다.
저 위대한 말씀이 빛을 다할 때쯤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 ?
떡 하니 저 말을 앞장 세우면,
승단은 청렴강직해지고,
스님들은 절로 고결해진다.

어느 기업체 광고에서
"모두 부자되세요." 할 때,
정작 고객이 부자되기 전에
저 광고를 믿는만큼 더 많이
그 기업체가 먼저 부자가 되고 만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지금 이 말이 간판이 되고, 고깔모자가 되고, 가면이 되고 말았다면,
백장은 다시 와서 무엇이라 말씀하실까 ?
그 때는 사전(寺田)을 내놓자고 하시지 않을까 ?
복전함을 기우려 저잣거리에 풀어내놓자고 하시지 않을까 ?

그게 아니라면,
왜 지었다하면 동양최대 불전이고, 불상이어야 하며,
사찰을 둘러싸고 툭하면 싸움박질을 하여야 하는가 ?

백장이 말하는 일일부작(一日不作)에서,
저들은 일일작(一日作)할 밭데기라도 있기에
저리 고아하니 호기라도 부릴 형편이 아닌가 말이다.

쭉쟁이, 흑싸리껍데기인 주제라면,
도대체가 일일부작(一日不作)은커녕,
일각일작(一刻一作)할
메뚜기 이마빡 만한 밭데기 하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 땅엔 비정규직이 이미 반수가 넘어 가고 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야말로
메뚜기 이마빡 만한 밭데기 하나 없는 그 당체다.
그런데,
이들 앞에서 목탁소리처럼 고아하니 울려퍼지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란 말은
얼마나 봄 아지랑이 같은 현기증을 일으킬까나 ?

얼마전 만난 국립공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왈,
당신은 비정규직 보다 더 못하다고 하더라.
비정규직이 데모를 하여,
해마다 하는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였단다.
하지만, 자신들은 이도 못되는 일용직인가 뭣인가 하는 처지라,
년년세세 재계약하는 신세라고 하더라.

단 10년도 지나지 않은 사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그곳도 저리 분화를 하고 있음이다.

그러니,
백장에게 나는 묻는다.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실업자 보고,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이리 말씀하실 배짱이 있으신가 ?

백장은 寺田이라도 가졌지 않은가 말이다.
밭뿐인가 ?
저들이 가진 산은 또 좀 너른가 ?
얼마전 공개되어 유명해진 봉암사,
그 너른 희양산 강역을 그들은 번을 세워 지키며 잡인을 내쫓는다.

복전함은 저들 불쌍한 이들이 꼬박꼬박 채워넣는다.
세금도 없고,
잡인도 없는,
저 경계,
아아 높고 거룩하여라,
그러하니, ooo님은
아드님에게 하나를 마져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자손이 걱정이실런가 ?
중질도 잘 가리면 대처(帶妻)도 가능한 종파가 있고,
신부도 성공회 등은 얼마든지 가정을 꾸릴 수 있음이다.
목사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 집안에 신부가 나면,
한국에선 얼마나 우쭐거리는데,
이건희나 이명박만 교보재(敎補材)로 쓸 일이 아니시다.

이치가 이러하다면,
백장의 일작일식(一作一食)이야말로,
뒷 걱정없는 신선놀음이 아닌가 말이다.

판수쿨라(糞掃衣=분소의)란 무엇인가 ?
불에 타고, 쥐가 쏠고, 계집 월경한 천 등으로 만든다.
온갖 더럽고 천한 것으로 기워 만든 옷.
가끔 보지 않는가 ?
이것저것 갖은 천으로 기어 만든 스님네들 옷,
그것을 판수쿨라, 분소의라 부른다.

이 옷도,
요즘은 진짜배기가 아니다.
저들은 때빼고, 광내며, 곱게 다려 입는다.
그저 패션인 게다.
척 하니 걸쳐 입고,
뽐내기에는 그만인 게다.

나는 그리 폼잡고 가는 스님네들을 보면,
속으로 이리 말한다.
허 거참, 말쑥한 게
어디 계집 후리려 나가나 !

계집들이 입는 밀리터리룩 패션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총 한번 잡아 보지 않고,
포복 한번 해보지 아니한 계집애들은
저 패션과 더불어 영웅이 되고 원더우먼이 된다.
사내 홀릴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님네들이 폼 나게 다려 입은 저 판수쿨라야말로,
신도들 신심을 훔치고,
지전을 빼앗는 장치에 불과하다.

만약 백장네들이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을 진정 외치려면,
저잣거리에 서서 벌거벗고 그리 말해야 한다.

강아지도 집 주인 있고,
뒤에 제 집이 있을 때라야,
맘껏 짖을 수 있다.
주인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강아지는
그저 꼬랑지 사리고,
내빼기 바쁘다.

寺田이라도 있으니,
저리 말씀이 숭고하니, 우렁차시지,
집도 절도 없으시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리 집 식구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처럼,
우시는 소리나 하시지 않을까 싶다.

판수쿨라를 입으려면,
인도의 시인 까비르처럼,
화장터에 거해야 한다.
똥 묻고, 시체 잿가루 범벅인 진짜배기 똥걸레옷,
그런즉 이름하여 분소의임이라.
천하의 분소의룩(look) 땡초들은 분소의 욕뵈이지 말라 !

백장이 여기 와서 다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을 진정 외치려면,
벌거벗고 저잣거리에서 외쳐야한다.
목탁 하나만 의지하여.

아니라면,
그 또한
분소의룩,
밀리터리룩,
모두 계집아이들의 도척(盜蹠) 패션과 다른 바 없다.
세상을 호리고 있음이다.

우리 동네 산엔 딱따구리가 많이 산다.
참새만한 새끼 딱따구리가
가느다란 나무 가지를 360도 돌아가며 부리를 쫀다.
자세히 관찰해도 겁이 없다.
부리를 아무리 쪼아도 나뭇가지는 기별도 가지 않는다.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어미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는 참 일품이다.

똑또그르 똑또그르르...

새벽 산사의 목탁 소리처럼 경건하다.
저야말로
네겐 경전(經典)이요,
기도소리다.

***

그런데,
한참 얘기하다 보니 정작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저리 내팽겨치고,
길섶에 바퀴가 빠져 나동그라진 행색이 되고 말았다.
기왕에 애초 말하고 싶었던 것이니,
일어나, 옷 털고,
건데기만 얼추 추려 부려내놓는다.

저들 이명박, 이건희는 지금 문제에 봉착했다.

“경제가 최고야 !”

요, 화법 말이다.
이게 유효하려면,
남은 모르고 나만 알아야 맘껏 객들을 요리할 수 있는 게다.
그런데,
대권 잡을 욕심인지,
모든 국민들을 일깨워 이 길로 나서자고 부추겼지 않았는가 말이다.

“부정부패고 나발이고,
돈 버는 게 최고 장땡이야 !”

천하인을 부추겼으니,
자다가 눈꼽도 떼지 않고 달려나온 백수건달에,
옹달샘에 물길러 가던 처녀도 물동이 내던지고 달려나왔으며,
오늘 내일 시난고난 앓던 옆집 노인네도 쌍지팡이 짚고 나스셨다.
지금 출발선상에는 동네 강아지까지 줄 서서 막 달려갈 태세들이다.
어디로 ?
돈 따먹으러.

사정이 이러하니,
경주가 되겠는가 ?
어차피 일등은 하나이고,
메달은 금은동 3개에 불과한 것.

대권 노려, 
국민들에게

“당신은 1등  할 수 있어.”
“당신도 돈 벌 수 있어”
“당신을 사랑해”

이리 달콤하니 꿀 발라 선전을 해대었으니,
저들 꿈은 푸르고
희망은 기지촌 철망에 걸린 처자 빤쓰처럼 벌겋게 나부낀다.

하지만,
이명박은 증명해야 한다.
증명은 증명될 수 있어야 증명된다.
만약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면,
노명박이 나서도 증명할 수 없다.

이명박이 좀 영악한가 ?
그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이 때 동원한 것이

“대운하” 인 게다.

언발에 오줌 눟기요,
뒷 치다꺼리는 5년 후 엄한 놈이 하면 되는 것,
북치고 장구 치며 노는 놈 따로,
잔치 집 뒷 설거지 하는 놈 따로 있는 법.
쓰레기 버리는 놈 따로,
줍는 놈 따로.

세상의 이치는 이러한 것이다.
그들은 이 이치를 알고 있음이 아닐까 ?

“솥뚜껑에 붙여논 엿가락”
좀 달디 단가 ?
논에 김 매다가도 그것 생각하면 침이 고이고, 힘이 솟는다.
어서 달려가 떼먹어야지.

문제는 제집 솥뚜껑 아니고 이웃집 솥뚜껑인 게라.
그런데 왜 하필 내 집 솥뚜껑이 아니고,
남이 집 솥뚜껑에 붙은 엿일까 ?
내 집 것이 아니기에 더 단 이치를 아는가 ?
하지만, 영영 그게 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이 간단한 이치가,
조청단지 앞에서는
눈깔이 멀어 보이지 않는다.

칠야삼경(漆夜三更)
물레방아간으로 달려나가는 3년 공방살 든 과수가
까짓 엊저녁 빗줄기에 움푹 파진 호방다리가 겁이 날까 ?
치맛갈기 말아쥐고,
개울 건너 허겁지겁 달려나가는데,
뒷태가 마치 암내난 피아말 엉덩짝처럼 요란스럽다.
천하가 이 지경이다.
과시 경관이 새록달록 가관이다.
(※ 피아말 : 다 자란 암말)

운하를 파든,
산을 옮기든,
금덩이를 주었다한들,
그게 당신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엿은커녕 꿀덩이라한들,
댁의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천년지감몽(千年之酣夢),
제 아무리 달디 달든
제 것 아니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일지니.

“反運河鬪爭”
“反運河鬪爭”
“反運河鬪爭”

***

“현실 장악”
이것도 할 수 있는 놈이나 그리 할 수 있는 것.

부정과 손 잡고,
부패와 키스할 배짱이 없으면,

현실 장악은커녕,
섣부른 짓 하다,
이내 감옥소에 가거나,
뒷집 굴뚝 드나드는 족제비 신세가 되고 만다.

어차피,

제 갈 길은 제가 가는 것.
숲 길 오른쪽으로 갈 놈은 바로 가고,
왼쪽으로 갈 놈은 외로 가는 것.

우리네 촌부들은 ‘팔자소관’이라고 하였으나,
이를 선비들은 ‘안분지족’이라 하였음인가 ?
이 둘은 물론 완연히 다른 문법이다.

나는 그저 소요유나 하련다.
소요유는 아무나 하나 ? ㅎㅎ
日日是好日인저.

그나저나 백이숙제 그리고 청탁을 논해야 하나,
이 또한 뜨거운 물 부은 푸성귀처럼 축축 이야기가 퍼질 판이요,
여든 할머니 오뉴월에 늘어진 젖퉁이 어깨넘어로 척하니 던져 널 짝이니,
예서 접는다.

///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6-1963)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u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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