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격언의 배리(背理)

소요유 : 2008. 3. 12. 16:05



속담(俗談)과 격언(格言)은 얼추 비슷한 말로 받아들여진다.
그외에도 잠언(箴言), 명언(名言), 속언(俗諺), 경구(警句), 금언(金言) 등
유사한 말들이 두루 쓰이곤 한다.

사전을 들여다 보면 각기 뜻이 차이가 날 터이지만,
여기서는 사전의 뜻이 어떠하든, 맞든 그르든,
주전부리 하듯,
그저 한자 뜻에 기대어 내나름대로 풀어본다.

속담(俗談) : 세속, 즉 민간에 전하여 오는 말쯤으로 새기면 어떨까 싶다.
                  우리가 속되다라는 말을 쓰듯이,
                  이 말엔 왠지 권위가 없다.
                  하지만, 끈끈하며 질긴 생명력은 느껴진다.

격언(格言) : 格이란 말에 주목하게 된다.
                  이는 격식, 틀에 맞는 말이니,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 터.
                  게다가, 전범, 모범을 이루는 말이겠거니,
                  나는 태권도의 품세처럼 정형화된 말의 결정체,
                  이리 심상에 형상화된다.

잠언(箴言) : 잠이란 원래 바늘을 뜻하지만, 이로부터 전의되었음인지
                  경계한다는 뜻도 아울러 갖고 있다.
                  그러니 잠언이란 곧 경계하여 가르친다는 말이 된다.           
                  성경에도 잠언이 있으니,
                  거기 생명과 구원의 말씀이 인생을 가르쳐 경계하신다.

명언(名言) : 말 그대로 유명한 말인즉,
                  이내 유명인이 말한 것도 명언이 되곤 한다.
                  때로는 별 시답지 않은 말도 유명인사의 말이라 하여 명언이 되곤 한다.

속언(俗諺) : 속담과 비슷하지만,
                  諺이란 어의가 상스런 말이란 뜻을 가짐에 유의하자.

경구(警句) : 경계하는 글귀. 句인즉, 특히 짤막하겠거니 여겨진다.

금언(金言) : 말은 말이되 금싸라기 같이 귀한 말이라 !

금과옥조(金科玉條) : 과나 조나 모두 法을 의미한다.
                  이 말이 금옥으로 수식되니,
                  과히 요지부동 그 뜻을 해칠 수 없을 정도로
                  반듯한 지침, 가르침, 법이라 할 것이다.

이리 뜻 풀이를 해보는 이유는 속담, 격언이라는 것에 예전부터,
비판의식을 키워오던 차, 우선은 그 단어부터 점검하고 싶었다.

나는 한 때, 주식 격언을 꾸준히 모으고 연구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상호 정반대되는 의미를 갖는 것들이 버젓히 쓰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해서, 이에 착목하여 주식뿐이 아니고 속담 일반에 대하여도
흥미를 가지고 오랜 시간 관찰해왔다.

주식투자도 그렇지만, 무슨 일에 임하여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 실행하려고 할 때,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고, 합리적 판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또는 실행가가 투자격언, 잠언 등을 인용한다든가,
이에 비추어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이들 행위에 占하는 심리적 요소가 크기 때문이다.
최종의 막바지에 際해서 무엇인가 의지할 곳을 찾게 되고
그 역할이 격언에 부과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심리(心理)의 주름살은 복잡하고 감정(感情)에는 숨겨진 배면의 진실이 있다.
격언에는 정반대의 표현이 비일비재한데 이는 그 일단의 투영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逆도 眞이라고 하여 어느 쪽이 바르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 속단하기도 어렵다.
장면(場面)과 상황(狀況)에 따라 함께 살(活)아 오기 때문이다.
(주: 이 부분 어느 일본책에서 인용함.)
다만 case by case로 현실에 즉응하여 분별지을 수 뿐이 없다.

예컨대, 주식투자에 임하여 온갖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은
결국 최후의 결심을 바르게 얻어 내기 위함이다.
이 최종의 결심을 만드는데 助言者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전래되어 오는 투자격언이다.
옛 사람들이 다년간 걸러서 쌓아 올린 그 境地의 精髓가 거기 顯現한다.
溫故而知新.
격언과 더불어 많은 노력없이 옛 先人들의 지혜를 빌러 보게 되는 것이다.

이리 춘풍에 하느작거리는 봄풀처럼,
혓바닥 나불거리는대로 설을 풀어내놓고 보자니, 사뭇 그럴싸 하다.
과연 격언은 지혜인가 ?
좀 두고 보자.
이는 나중에 더 따져 보기로 하자.

국내의 어느 바둑 프로기사는 후배에게
“바둑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바둑만을 모든 것인 양 생각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라고
일러 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바둑격언에 “정석은 배워라 그러나 다 배운 후에는 모두 잊어 버려라” 라는 말도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무책임한 말이다.
하지만, 그 본 뜻은 외부에 펼쳐지는 장면과 상황은 한결 같지 않으니,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담력과 지력에 의지하여야 함을 가르침이 아닐까 ?

격언이란,
하나 하나 음미는 하되, 깊이 얽매이지 말고,
참고에 그쳐야 할 도리가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살아 숨쉬는 현실에서,
번개 같은 직관과 영감으로 역할되어지도록
다만 심리(心裏)에 녹아(融)들어
흔적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

생각커니,
왕필의 득의망상(得意忘象),
장자의 득어망전(得魚忘筌) 득토망제(得兎忘蹄)가 떠오른다.
이미, 뜻을 취하였으니, 격언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

우선 고사 하나를 소개한다.
실은 이 고사는 별도로 다루어야 하겠지만,
마침 내가 앞으로 하고자하는 말씀의
중요한 사례이기에 여기에서 겸하여 다루기로 한다.

결초보은(結草報恩)

진(秦)의 두회(杜回)는 키가 일장(一丈)을 넘는 거인이다.
게다가 뺨은 쇠로 만든 발우 같았고, 주먹은 구리쇠로 만든 주먹과 흡사했으며,
힘은 능히 천균(千鈞)의 무게를 들었다.
그는 무게가 120근이나 되는 개산대부(開山大斧)를 무기로 사용했다.

이 두회가 진(晋)의 장수 위과(魏顆)와 싸우게 되었다.
위과는 두회의 용맹에 밀려 싸움 판판이 깨졌다.

위과는 잠도 못자고 고심참담, 도무지 꾀를 낼 수가 없었다.
전반측후반측 삼경이 들어서야 자리에 쓰러져 혼몽히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누군가 속삭인다.

“청초파(靑草坡), 청초파, 청초파”

꿈속에서 누군가 이리 말했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위과는 동생 위기(魏騎)에게 이를 말했다.

“십리 길을 가면 보씨(輔氏)의 못에 청초파라는 둑이 있는데,
그를 말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
어쨌거나, 이는 神人이 나타나 秦이 청초파에서 패할 것을 일러준 것이 아닌지요 ?
좌우간 저는 청초파에 미리 가서 매복을 할 터이니,
형님은 秦軍을 유인해서 그리 끌고만 오십시오.”

날이 새자,
위과는 이 작전대로 秦軍을 청초파로 유인했다.

청초파에 이르르자,
그리 용맹무쌍하던 두회는 갑자기 기름칠을 한 신발을 신고,
얼음판을 걷는 듯 비틀거렸다.

위과가 자세히 보니,
저편에서 베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마치 농부처럼 둑 위의 풀을 한 묶음씩 갈라 잡고,
두회가 움질일 때마다 그 발을 묶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두회의 눈에는 그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위과, 위기 두 형제는 이에 쏜살 같이 달려들어,
두회를 사로잡았다.

그날 밤, 노인이 위과의 꿈에 다시 나타났다.

그 꿈에서 노인은,
자신은 조희(朝姬)의 아비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조희는 위과의 아버지인 위주(魏犨, = 魏武子)의 애첩이었다.
위주는 조희를 몹시 사랑했다.
위주는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그의 아들인 위과에게 말하길,

“내가 이번 싸움에 나가 죽거든 너는 조희를 좋은 곳에 개가시키거라.
결코 조희에게 적막한 일생을 보내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죽어도 눈을 감을 것이다.”

이리 일렀었다.

하지만, 정작 위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는 그 태도가 일변했다.

“조희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여자다.
내가 죽거든 나와 함께 묻어다오.
그녀는 반드시 나를 위해 순사(殉死)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땅속에 묻혀 외롭지 않으리라.”

위주는 말을 마치자 이내 죽었다.

그러나 위과는 그 아버지 장사를 치룰 때,
조희를 함께 순장시키지 않았다.

이에 동생인 위기가 묻는다.

“형님은 어째서 아버지 유언을 저버리십니까 ?”

조용히 위과가 말한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씀하시길,
자신이 죽으면 조희를 개가시켜 주라고 말씀하셨다.
임종 때 하신 말씀은 정신이 없을 때 하신 것이다.
효자는 부모님이 평소에 하시던 말씀을 따르는 법이다.
숨을 거두실 때 정신없이 하신 말씀을 어찌 따를 수 있으리오.”

이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는 흔히 보은의 사례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 이 자리에선 나는 “죽어 가는 사람의 말씀”에 주목하고자 한다.

흔히 하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새는 죽을 때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 말이 선하다.”
鳥之將死,其鳴也哀;人之將死,其言也善。

이 말씀 말이다.
죽는 마당에 누가 거짓을 말할 것이냐 하는 뜻이겠지만,
나는 이 말을 사뭇 경계한다.

죽음이란 극적인 사건에 임하여,
그 자리에 권위를 부여하고픈 인간의 나약한 태도가,
죽는 이의 말씀까지 그리 귀하고 선하게 대한 것은 아닌가 ?
나는 이리 의심을 한다.

그 한가지 반증으로서 나는 위주의 말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위주의 사정과는 다르지만,
억울한 이가 이를 하소연 할 길이 없자 죽음으로서 항변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대부분은 사자를 동정하고,
그의 평소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정서가
남은 자리에 처연히 흐르게 된다.

“죽음으로서, 자신이 결백을 증명하다.”
사뭇 비장미 넘치는 정경이다.

하지만, 그게 결백의 증거가 될런지,
부끄러움의 징표가 될런지
장면과 상황에 따라 다를 뿐,
일률적으로 함부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

주식 투자 격언을 보면 어떤 때는 도시 종잡을 수 없다.

“시세는 시세에 물어라.”
“더 가는 것도 역시 時勢다.”
“지하1층 밑에 지하2층 있다.”

사람이 가는 뒤쪽에 길이 있다. 꽃의 山.
사람이 팔 때에 사고 사람이 살 때에는 팔아라.
 ( Buy when others sell, Sell when others buy. )

이 서로 등지는 말들이,
오연히 자기 자리를 버티며 살아 남아,
뭇 투자자에게 속살을 내맡기고 있다.

흔히 착각하기 쉬운 것이니,
격언처럼 결구(結句)되어 성어(成語)를 이루면,
이게 마치 진리, 진실이라도 되는 양,
시비를 걸지 않고 그 면전에서 머리를 조아리곤 한다.

이런 위험을 피하려면,
이리 생각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즉, 격언이  먼저가 아니고,
사연이 먼저라는 사실.
곧, 장면과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적당한 격언이 동원되었을 뿐이라는 사실.
이 전후를 혼동하면,
격언의 비굴한 노예가 되던가,
아니면 간사한 아첨꾼이 된다.

혹간은 무엇인가를 결하고자 할 때,
자신의 미덥지 않은 신념을 강화할 목적으로,
그럴싸 한 성구(成句)를 차출하여,
제 욕망에 부역시키고,
불안을 위무하곤 한다.

때로는,
이게 은유가, 수사가 되어,
대중을 선동하는 교묘한 술책이 되기도 한다.

이리 볼 때,
정작 격언의 기능은 흔히 오해되는 예지나 지혜가 아니다.

그것은 선언이어야 한다.
지금 이 현장에서 나의 두 눈으로, 내 정신으로 쳐다 본,
실증의 현장을 증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단 말이다.
저 격언이 나에게로 내려온 빛이 아니요,
천상에서 내려진 구원의 은총이 아니란 말이다.

그것은 나의 깨달음이요,
구체적 실존의 증물(證物)일 뿐이다.

이 때 비로소,
저 수많은 격언, 속담들이 사금파리 조각처럼 빛날 수 있다.
나는 저들 유리조각, 구슬들을 내 말씀의 객체로서 차출하여
내 증언의 역사에 복역시킨다.
이 때라야,
저 구슬들이
나의 꿰어진 玉목걸이로서 빛난다.

***

한가지 더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남았다.

격언에서 빼놓지 않아야 할 중요 점검처가 있다.
그것은 시간이다.

“사람이 가는 뒤쪽에 길이 있다.”

냉정히 말하면,
이 격언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도대체 뒤쪽 길은 어디까지 뻗쳐있는가 말이다.
그 길은 언제 끝나는가 ?
그 한계에 대한 대답이 부재하다.
대답이 없는 한,
이 격언은 현실에선 그리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컨대,
짐작커니 예가 뒷길 끝이라고 생각하고,
투자에 들어갔는데,
뒷길은 아직도 삼천포까지 가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러할 때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격언이

“시세는 시세에 물어라.”
“더 가는 것도 역시 時勢다.”

이리 토끼처럼 깡총 뛰어나와 길마중한다.

그러하니,
저들 격언들이란 시간의 파편, 흔적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탄하게 된다.
시간이란 도깨비를 어찌 부릴 수 있을까 하고.

이 때 때 맞추어 광대가 뛰쳐나오며 익살을 떤다.

“주식과 sex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리 사람을 놀리는데,

게다가,
중생은 미욱하여,
대개는 바닥은 겁 때문에 사지 못하고,
천정은 욕심 때문에 팔지 못하다 낭패를 당하고 만다.

이 때,
중국 바둑 國手 馬融은 점잖게 이리 말하며 사라진다.

怯者無功 貪者見亡.
“겁이 많으면 공을 못 이루고 탐(욕심)을 내면 망한다.”

내가 한 때 사숙(私淑)했던 Granville 역시
“주식시장을 지배하는 두 가지 감정의 원리는 탐욕과 공포( Greed and Fear )이다.”
이리 말했다.

그럼 도대체 어찌 하란 말인가 ?
이쯤되면 길섶에 나뒹글며 두발 부비며 땡깡이라도
펴고 싶은 심사가 되고 만다.

시간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
나의 기나긴 여로에서 약간의 비밀을 터득한 바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까 ?

하회(下回)를 분해(分解)하라.

( ※. 欲知後事如何, 且聽下回分解 :
다음 일을 알고자 하면, 다음 회의 이야기를 들으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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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8. 3. 12. 1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