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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사람들

소요유 : 2017.10.16 14:17


며칠 전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하얀 봉투를 주고 가셨다.

전해주면서 하는 말, 두어 마디도 듣기 전에 나는 그것이 무엇인줄 짐작하였다.


왜 아니겠음인가?


아파트 관리직원 감축에 대한 의견 청취서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북한산 바로 아랫 기슭에 맞닿아 있다.

하여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때문에 그리 많지도 않은 관리 요원이 있음인데,

30% 정도를 감축하자는 것이다.


최저 임금 인상에 따라 관리비 증액이 불가결하니,

관리인을 줄여 대처하자는 취지이다.

저대로라면, 열 두엇 가운데 서넛은 일자리를 잃고 떠밀려 나가고 만다.


30%는 그저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저 지시어 밑에 은폐된 지시 내용은,

그저 단순히 경비를 삼사 할 줄이겠다는 것이 아니다.


아무렴.


저것은 남의 생계 기반을 허물고서라도,

자신의 이해를 도모하는데 조금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인 것이다.


그동안 관리직원들의 임금은 국가에서 인식하는 최저 임금에도 못 미쳤음인즉,

이를 고쳐 현실화해야 했다.

이는 당위(當爲)인 바라,

그 취지를 십분 이해한다면,

십시일반(十匙一飯) 

내 밥그릇의 밥을 떠내,

다른 이들의 입을, 인격의 존엄을 구해야 하지 않겠음인가?


주민들 각자는 사정이 있겠으나,

물가도 오르고, 봉급도 오를 터인데,

어이하여 경비원들의 임금은 수십 년 최저 임금 이하에 놓여 있었는가?

이 물음 앞에 서면 우리는 그 동안 저들을 착취하지 않았는가 하는 부끄러움을 일으켜야 한다.

당연한 회오(悔悟)의 물음이어야 한다.

한참 늦었지만.


내가 청취서를 받자마자,

의견을 적어 바로 돌려주었다.

자칫 늦으면 아니 될 것 같았다.

그리되면 곧 잘못을 저지르는 일인 양시피 서둘렀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나서, 새로 입주하면서, 내내 함께한 경비반장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그는 말한다.


“결코 임금을 올려 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이로 인해 동료들이 쫓겨 나가는 것을 원치 않을 뿐이다.”


저분들이 언제 임금 올려달라고,

파업을 일으켜가며,

춘투를 하였는가?

가투를 하였음인가?


여기 주민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새로 이사 온 젊은 측들은 인원 축소를 찬성하고,

오래 살아온 나이 드신 분들은 반대한다.”


의외였다.


젊은이들이 보다 사리 분별력이 밝고,

함께 사는 공동체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높을 줄 알았다.

아마, 새로 입주하였기에,

관리직원들에 대한 공감 수준이 떨어져서,

감축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적어서 그러한 것인가?


하지만, 이게 남녀노소, 진보/보수에 따라 갈릴 일인가?

이제까지 평온한 삶을 영위한 저들의 일상에,

즉각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에 생각이 미침에 있어,

어찌 다름이 있을런가?

다 같이 알량하나마 인두겁이라도 들러쓰고 살지 않는가?


마침 내 집을 방문(訪問)한 친지가 계셔,

엘리베이터에 방문(榜文)이 붙어 있다란 말을 들었다.


바로 아까까지 나는 이게 붙어 있었는지 의식하지 못하였다.

하여 엘리베이터에 가서 확인하니 방문 두 개가 붙어 있다.

사진기를 가져 와 이를 찍어두려고, 집에 다시 들려 채비를 갖추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내 앞에 선 엘리베이터 안엔 모녀 두 분이 서계셨다.

나는 이 분들을 거르려, 그냥 지나시랴 이르고 다음을 기다렸다.

저이들을 보내고, 다시 올라온 빈 엘이베이터를 탔다.





방문은 그 새 셋으로 늘었다.

필시 저 모녀분들이 새로 하나를 더한 것이리라.

아, 그럴 줄 알았으면,

모셔 들이고, 내가 남보다 좀 여유있게 가지고 있는 블루베리를 드렸으면 좋았을 터이다.

착한 마음엔 보상이 따라야 한다.

아니, 보상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최저임금제란 법적 조치는 거꾸로 말하자면, 

그 이하는 옳지 않았다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동안 저분들이 그 이하로 대접 받았다는 법적 고백에 다름 아니며,

이제라도 바르게 돌려놓자는 결의의 말이다.


헌데, 이 법을 거죽으로 지킨다는 표를 내려고,

이제까지 함께 한 사람들을 거리로 내쫓고,

장부 계산상만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겠단 말이다.


너무 더럽다.

이런 셈법을 트고 있는 짓 앞에서 나는 구역질을 일으킨다.


이런 낯 간지로운 짓을 하지 말고,

차라리 최저임금제가 부당함을 이유로 거리로 나서 투쟁하라.


내가 은근히 조사를 하니,

저런 일을 꾸민 이들은,

동네의 몇몇들이라 한다.


내 그래 혼자서 마구 욕을 내뱉었다.


혹자는 말한다.


‘거죽으로는 체면치레로 감축을 반대하는 듯하지만,

내심으로는 이를 원하는 이가 많다.’


‘인원을 감축하여도 경비 일은 별반 차질 없이 돌아간다.’


세상을 보수/진보로 그저 단순히 이분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곧잘 나는 이리 나누인 일에 익숙하다.


보수는 역시 셈을 잘한다.

진보가 바보라 셈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슴에 셈하는 주판이 아니라, 맑은 샘물이 흐르는 바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음이 다를 뿐이다.


며칠 후 회의가 있다고 한다.

내 낯가림이 있어 어디 나서길 꺼리나,

참석하여 내 의견을 보탤까 싶다.


관리직원 여러분들 힘내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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