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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구슬은 종지에서 멈춘다.

소요유 : 2018. 3. 26. 19:17


오늘 어떤 온라인 모임에서 한 사람을 두고,

깎아내리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모르는 것에 이르면,

가던 길을 멈추고 ‘판단중지’할 것이지,

섣불리 좌우, 흑백으로 미리 나눠 재단할 일이 아니다.

나는 소싯적부터 이리 배워왔다.


한편 사람을 깎아내리려고 할진대, 사실에 바탕하여야지,

추측이나 제 감정상의 상해에 기대서는 자칫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이다.

우선 질러놓고 보면, 후련하지만,

세상사 상대가 있는지라,

미구에 반격이 따라오는 법이다.

내가 옳다면, 천둥 벼락이 쳐도 꿈쩍하지 않겠지만,

만약 허술한 논거에 기대거나,

자기감정에 충실하게 되면,

나중에 되우 후과를 치르게 된다.


나는 제삼자에 불과하니,

우선은 충분한 사실 관계를 파악할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어떠하든, 제시한 글 내용만으로는,

상대를 공격하기엔 여러모로 근거가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를 지켜보는 것이 무엇보다 불편하였다. 

나중에 설혹 상대의 잘못이 명백히 밝혀졌다 할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글 내용은 상대를 거의 파렴치한(破廉恥漢)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런 정도 수준의 글이라면, 충분한 사실 관계에 기반하여야 할 것이다.

혹 오해가 개재될 수도 있으니, 사전에 상대방과 접촉하여,

진위를 확인하고, 입증 자료를 모아두어야 한다.


나는 이때에 이르러,

다음 구절을 떠올렸다.


儒有合志同方,營道同術;并立則樂,相下不厭;久不相見,聞流言不信;其行本方立義,同而進,不同而退。其交友有如此者。

(禮記)


“유학자는 뜻이 합하고, 지향하는 바가 같은 사람과 

같은 길을 도모하고, 함께 수행한다.

위치가 같으면 함께 즐기고,

서로 다르다한들 내쳐 꺼리지 않는다.

오래도록 서로 보지 못하면,

근거 없는 말이 들려도 믿지 않는다. 

그 행실은 반듯함을 본으로 삼고,

의로움을 세워,

같으면 나아가고, 다르면 물러난다.

유학자는 사람 사귀는 법도가 이러하다.”


聞流言不信


유언을 들으면 믿지 않는다.


흘러다니는 말은 섣불리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는 길이 다르면, 다투지 않고 물러나라 가르치고 있다.


凡流言、流說、流事、流謀、流譽、流愬,不官而衡至者,君子慎之,聞聽而明譽之,定其當而當,然後士其刑賞而還與之

(荀子)


순자는 더 실제적인 말씀으로 우리를 일깨운다.


“무릇 떠도는 말, 유세, 일, 모략, 명예, 참소

이것들은 정통한 소식통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따지고 헤아려 판단하여야 한다.

군자는 이를 신중히 다룬다.

들었을진대, 그 명예를 밝히 판단하고,

그 정당함을 판정하여 떳떳함을 구한다.

그런 연후라야 상벌을 확실히 한다.”


流丸止於甌臾,流言止於知者。

(荀子 大略)


구르는 구슬은 종지(작은 사발) 안에서 멈추며,

유언비어는 지자를 만나면 그치게 된다.


유가와는 다르게 상벌로 분별을 확실히 하고 있다.

이 지점에 있어 양가는 확실히 다르다.

기실 순자를 남상(濫觴)으로 하여 법가가 나온다.

법가는 더욱 엄하고 방정하다.


마침 한 사람이 등장하셔서,

어지러운 자리를 정돈해주시고 계시다.

이분이야말로 대략편에 등장하는 지자(知者)가 아니신가 싶다.

이내 유언비어가 그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함이니 어찌 지자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혹자는 서로 사과하고, 말로 해결할 일이지,

법으로 다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한 인격의 명예에 관련 된 일이라,

당사자에게 맡길 일이지,

이를 제 삼자가 갈 길을 제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화해를 하는 것도 당사자가 하는 것이요.

싸움박질을 한다 한들 그것은 저 분들의 몫이다.


그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나는 그 선택에 시비를 따질 위치에 있지 않다.


하지만, 기왕에 싸우려면, 치열하게 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를 들어 말리거나, 분란을 일으켰다고 제재를 가하자는 논의가 반드시 일 터이지만,

나는 이에 반대한다.

모임에 언제나 웃음만 지어야 하나,

때론 시비가 일고,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는 법.

이 때 제 삼자는 냉철하게 사태를 주시하고,

바른 판단을 구할 수 있도록 저들을 도와주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무작정 말리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나라면,

아무리 시끄러워진다 한들,

옳은 이를 응원하고,

그른 이를 비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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