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내 마음의 우박

소요유 : 2018.03.19 20:34


내가 방금 어떠 분의 글을 읽다,

내일도 아닌데 혀를 끌끌 차며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엔, 기술적 공력이 투하된 일을 거저 누리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분트를 모르는 이도 설치할 수 있게 해주고, 몇몇 특별한 일을 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이것 거저 달라거나, 설치해달라는 식의 떼를 쓰는 이들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있다는 말이다.


하여 구름처럼 뭉글뭉글 솟아오르는 제 생각을 여기 늘어놓고자 한다.


들은 얘기 한 토막이다.


어떤 이가 솜씨가 좋아 쿠키를 만들어, 

종종 주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내다 팔았

다.

늘 그러하듯이 커뮤니티엔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인다.

그래서 심심치 않게 사단이 벌어진다.


쿠키 아주머니가 입소문이 나자,

직접 찾아오는 이까지 생겼다.

하루는 어떤 이가 찾아와서는 좋은 일(봉사단체)에 쓰려고 하니 레시피를 달라고 하였다 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 나는 바로 의심이 든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남의 레시피를 거저 달라고 할 수 있음인가?

한 사람의 손을 거치고, 여러 사람의 혀를 만족시켜,

마침내 최종적으로 셋팅이 된 것은 아무리 간단한 레시피일지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것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불쑥 거저 달라고 할 염치가 있겠는가?

거기엔 수년간의 시간과 열정이 녹아 있음이라,

knowhow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저 몰염치를 대하자니,

절로 탄식이 인다.


내가 처음 농장일을 하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다.

힘들지만, 이것 따지고 보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재배 기술은 차라리 공부를 하면 얼마든지 따라 갈 수 있다.

하지만, 두더지가 출몰하고, 새들이 열매를 다 따 먹는 데 이르러서는,

이까짓 재배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소출의 태반을 까먹게 된다.

헌즉 농사일은 고사하고, 이들을 어찌 제어할 것인가?

이 과제상황을 극복하는 게 더 바쁜 형국이 되었다.


하여, 두더지 퇴치기도 만들고, 조류퇴치기도 만들었다.

어느 날 어찌 이 소식을 듣고 이웃 농부가 찾아왔다.

이것 모두 전기, 전자 장치이며, 

GUI로 사용자 접근성도 높이느라 공이 제법 들었다.

농부들에게 이를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아낌없이 그리고 세심하게 챙겨 무료로 전수해주었다.


시불망보(施不忘報)


베풀면 그 갚음을 기대하지 마라.

나는 어려서부터 이리 배웠다.


헌데, 그리 배웠음에도,

내가 아직 성인의 말석에도 끼지 못할 위인임에 틀림없고,

부처나 예수의 마음을 다 밝히 읽지는 못하고 있음이라.

참으로 부끄럽다.

저들이 아무런 답례가 없음이 좀 섭섭도 하구나 싶었을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초기에 시골과 인연 지을 때,

가근방 여러 이웃에게 때마다 선물 건네고,

이해가 엇갈리는 것은 물러나 양보하였다.

백 번 베풀었으나, 10 여년 세월 동안,

이제껏 저들로부터 답례를 받아본 적은 두어 차례에 불과하다.

이것은 아무리 보답을 바라지 않고 하였다 하지만,

한참 속물 때를 벗지 못한 나는,

한편으론 인간적으로는 저으기 슬픔을 느끼곤 하였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머무르는 시골의 촌 녀석들은,

서울 놈들보다 곱은 더 이악스럽더라,

어느 녀석들 하나 예를 차리지 못하더라.


도대체, 서울 사람이 죄인인가?

나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였음이다.

헌데, 저들은 염치를 차리지 못하고, 경우가 없는 것이 항다반사라,

이젠 거의 문을 닫아걸고, 저들과 아예 거래를 하지 않을 심산이다.


실인즉슨, 내가 여기서는 호왕(虎王)이라,

혹여, 어느 날 분심을 자제 못하고, 술 처먹고,

스스로 울타리를 넘어 마을로 내려가면,

다 잡아 먹고도 남을 위험이 큰 고로.


시불망보에 대하여는,

기회가 닿으면 나중에 별도로 말씀을 한 번 들여보겠거니와,

이게 베풀었으니 갚음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일, 나의 각오이지,

상대를 구속하는 가치 철학이 아니다.

즉, 베품을 받은 너도 상대를 의식하지 말아라 이르는 말이 아니다.


시불망보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기실은 그 대척점에 서있는,

사기(史記)의 범수.채택 열전(范睢蔡澤列傳)에 실려 있는, 

애자지원필보(睚眦之怨必報)란 고사를 마저 들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눈 한번 흘겨도 반드시 갚는다는 뜻인데,

그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무슨 사연인 줄 알 게 된다.

이 두 가지는 나중에 맞춤에 합하는 기회가 생기면 소개할 수도 있으리라.


하여간,

위 사연을 처에게 듣자,

누군가 흘리고 간 실오라기를 밟아 쫓아가듯,

나는 시나브로 다음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안으로 더듬어 들어가 본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일러 말한다,


“위왕(魏王)이 내게 큰 박 씨를 주어서 내가 그것을 심었더니,

닷 섬을 담을 만큼 커다란 박이 열렸다. 

거기에 물을 담으려 했으나, 너무 단단하여 무거워 들을 수가 없었다.

갈라 타서 바가지를 만들려고 하였더니 납작 붙어서 소용이 없었소.

아닌 게 아니라 크기만 컸지 아무 짝에도 소용이 닿지 않으니 부셔버리고 말았소이다.”


장자가 대답하여 말한다.


“그대는 큰 것을 쓸 줄 몰랐노라.

송나라에 손이 터지는 데 용한 약을 가진 이가 있었는데,

그는 대대로 비단을 세탁하는 일을 했다오.

  (※ 不龜手之藥 : 

       여기서 龜는 龜裂과 통한다.

       즉 거북 등처럼 갈라져 튼 모습을 의미하는 즉,

       이 귀절은 곧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뜻한다.)

어떤 나그네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그 약방문(prescription, recipe)을 백금을 주고 사기를 청했소.

그러자 가족들을 모두 모아놓고 의논을 하였소.


‘우리는 대대로 세탁일을 해왔지만 불과 약간의 돈만을 벌었을 뿐이다.

이제 약 만드는 기술을 팔면 일조에 백금을 받을 수 있다.

그 사람에게 그것을 팔아버리자.’


나그네는 그것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는 오왕(吳王)에게 그 효용을 설했다.

  (※ 以說吳王 :

       說 : 그저 단순히 말한 것이 아니라,

            꾀어 설득을 하였다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프리젠테이션하며 열심히 약과 더불어 자신을 팔았다고 보면 된다.)

월나라에 난이 일자, 

오왕은 겨울에 장수를 보내어 월나라와 수전(水戰)을 벌였다.

월나라는 대패를 하고 말았다.

그러자 오왕은 그 공로로 그에게 땅을 떼서 주고 다스리게 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것은 한 가지이나, 

혹은 봉지(封地)를 받고,

혹은 기껏 세탁일을 하는데 그쳤다.

즉 이는 소용되는 바가 달랐던 것임이라.

지금 그대는 다섯 섬들이 박이 있는데,

어째서 큰 배를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울 생각을 하지 않고,

납작해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걱정하는가?

그대는 소견머리가 답답하니 그저 걱정만 많은 사람이고뇨.”


逍遙遊: 惠子謂莊子曰:“魏王貽我大瓠之種,我樹之成而實五石,以盛水漿,其堅不能自舉也。剖之以為瓢,則瓠落無所容。非不呺然大也,吾為其無用而掊之。”莊子曰:“夫子固拙於用大矣。宋人有善為不龜手之藥者,世世以洴澼絖為事。客聞之,請買其方百金。聚族而謀曰:‘我世世為洴澼絖,不過數金;今一朝而鬻技百金,請與之。’客得之,以說吳王。越有難,吳王使之將。冬,與越人水戰,大敗越人,裂地而封之。能不龜手一也,或以封,或不免於洴澼絖,則所用之異也。今子有五石之瓠,何不慮以為大樽而浮於江湖,而憂其瓠落無所容?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말이 있다.

위 장자의 이야기에서는 상(商)이 공(工)을 이겨내고(勝) 있다.

요즘은 약간 달라진 구석도 있지만,

유사이래 대개는,

공(工)은 상(商) 또는 사(士)에게 뜯기고,

농(農)도 역시나 이들에게 당하곤 한다.

사농공상(士農工商)

이 열 지은 계급 양 극단이 중간을 협살(挾殺)하는 일은 왜 벌어지는가?

사는 권력을 부리는 짓에, 상은 물욕이 승하여 취리(取利)에 밝은 재주가 있다.

언필칭 잘난 놈, 이악스런 놈이 양쪽에서 협살하려 드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이게 난마처럼 얽힌 이 세상의 실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제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 한들,

그 용처(用處)를 아지 못하면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게 이야기의 중심 주제이다.


이 글은 장자답지 않게 혜자를 빌어 용심(用心)에 밝지 못함을 탓하고 있다.

장자는 대저 기심(機心)을 경계하지 않았던가?

노력은 적게 들고 효과는 큰(用力甚寡 而見功多) 기계를 쓰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이 장면에서는 商人의 마음을 치켜세우고 있다.

상인의 마음은 한마디로 모리(牟利) 즉 이를 탐하는 마음과 다를 바 없다.

상리(商理)란 취리(取利)에 터하고 있다.

이(利)를 밝히는 마음이 곧 기심(機心)의 본(本)을 이루고 있다.


이리 보면 장자의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대하는 양 싶은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읽다보면,

다소 오해가 풀어진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한다.


“내게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죽나무라 부르네.

그 큰 줄기는 울퉁불퉁하여 먹줄을 매길 수가 없고,

작은 가지는 말려 구부러져 있으니 자로 잴 수도 없다.

  (※ 繩墨 ... 規矩 ... : 

       規矩準繩 : 컴퍼스, 자, 수평, 먹줄을 뜻한다.

       예전 목수들은 이 네 가지 도구로 목재를 재고 마름질 했다.)

길가에 서 있다한들 목수가 쳐다보지도 않네.

크지만 소용이 없으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지나치고 만다네.”


장자가 답하여 말한다.


“그대는 살쾡이를 본 적이 없는가?

몸을 낮춰 엎드리고는 어슬렁거리는 짐승을 살펴 기다리지.

동서로 날뛰고, 높고 낮은 곳을 가리지 않다가,

덫에 치이거나 그물에 걸려 죽는다.

대저 서우(斄牛)는 커서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네.

그렇지만, 크다한들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지.

이제 그대가 큰 나무를 가지고도 쓸모가 없다고 걱정한다면,

어째서 탈속한 곳이나 드넓은 광야에 심고,

그 곁에서 무위 자재하니 거닐고, 

그 아래 누워 소요유(逍遙遊)하지 않나뇨?

그 나무는 (쓸모가 없으니) 도끼로 잘리지 않고,

무엇이든 해치지 않는다네.

소용되는 바가 없으니,

어찌 곤경에 처하거나 괴로움이 있을손가?”


惠子謂莊子曰:“吾有大樹,人謂之樗。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立之塗,匠者不顧。今子之言,大而無用,眾所同去也。”莊子曰:“子獨不見狸狌乎?卑身而伏,以候敖者;東西跳梁,不辟高下;中於機辟,死於網罟。今夫斄牛,其大若垂天之雲。此能為大矣,而不能執鼠。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遙乎寢臥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내가 조류 퇴치기를 만들고 나서, 

한 때 득의양양 이것 팔면 좀 수지맞을런가 잠시 욕심을 일으켰다.


그러자 지인 하나가, 그런 짓 왜 하는가?

하나 팔면 근심이 백 가지가 생긴다.

비싸다고 트집 잡고,

무엇 잘못 되었다 고쳐 달라 하는데,

그 시중을 언제까지 다 들어줄 수 있겠는가?


아, 그의 가르침이 옳은 즉, 

어찌 따르지 않을쏜가?

나처럼 취리에 재주 없는 인간은,

그저 열심히 나무를 돌보는 일에나 힘을 쏟을 일이다.

언감생심 다른 사람의 일을 넘볼 일이 아니구나.


시불망보.


하지만, 시불망보는 인간의 근본적인 도리를 말하는 것일 뿐,

행위에는 이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는, 자연스런 이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바로 말하자면, 양자는 상호 차원을 달리하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以德報怨,何如?」子曰:「何以報德?以直報怨,以德報德。」

(論語)


“‘덕(은혜)으로써 원한을 갚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시다.

‘그렇다면 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원한은 합당한 댓가로 치르게 하고,

덕은 덕으로써 갚아야 합니다.’”


흔히 원수를 아량으로 대한다는 말을 곧잘 하며, 

정작 자신은 그리 하지도 못하면서, 입으로는 이를 칭송한다.

하지만, 공자는 바른 도리, 공정한 이치에 비추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하여야 한다고,

즉, 속된 말로 댓가를 치르게 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덕을 입으면 덕으로 갚아야 한다고 이르고 계시다.


이것을 거꾸로 해석하면,

내가 은혜를 입었으면,

이에 합당한 은혜로써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요즘 자본주의에 사는 인류에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더욱 공감이 가는 말씀이 아닌가?

서비스를 받았으면, 이에 합당한 셈을 치러야 한다고 이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이를 모르는 인간이라며,

염치를 모르는 것을 넘어,

그저 짐승이라 할밖에.


허나, 부처는 이를 두고 이리 가르치고 있다.


我昔曾聞,有一比丘在一園中,城邑聚落競共供養,同出家者憎嫉誹謗。比丘弟子聞是誹謗,白其師言:「某甲比丘誹謗和上。」時彼和上聞是語已,即喚謗者善言慰喻,以衣與之。諸弟子等白其師言:「彼誹謗人是我之怨,云何和上慰喻與衣?」師答之言:「彼誹謗者於我有恩,應當供養。」即說偈言:

 如雹害禾穀,  有人能遮斷,

 田主甚歡喜,  報之以財帛。

 彼謗是親厚,  不名為怨家,

 遮我利養雹,  我應報其恩。 ........

(大莊嚴論經)


비구승 하나가 사원에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공양을 다투어 바쳤다.

이를 두고 출가승 하나가 질투를 하며 비방하였다.

비구 제자들이 이를 듣고는 스승에게 고하였다.

그러자 스승은 비방한 자를 야단치지 않고,

외려 좋은 말을 하였다면 옷을 내려 주었다.

제자들이 저자가 우리들을 비방하였는데,

어찌 하여 옷을 주시는 것입니까? 따져 물었다.

그러자 스승이 말씀을 내리신다.

저자의 비방은 외려 우리들에게 은혜인 바라,

응당 공양을 올려야 하느니라.

그러면서 게송을 읊으시다.


우박이 내려,

곡식을 해치려 하자,

어떤 사람이 이를 막았다.

그러자 밭주인은 기뻐서,

재물로 은혜를 갚았다.

저 비방이란 친분이 두터운 행위인지라,

원수라 이를 것이 없노라.

내 자신의 우박을 자라게 하는 것을 막게 하는 바라,

마땅히 그 은혜를 갚아야 하리라. 

...


아,

내 마음에서 키우고 있는 우박이라.

내 마음 밭은 어느 분의 은덕으로 우박을 막아내고 있음인가?

오늘 이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르는 구슬은 종지에서 멈춘다.  (0) 2018.03.26
태백음경(太白陰經)  (0) 2018.03.24
그대 역시 이명박과 공범이다.  (0) 2018.03.23
내 마음의 우박  (0) 2018.03.19
성지는 없다  (0) 2018.03.11
필부유책  (0) 2018.03.07
청의동자(靑衣童子)  (0) 2018.02.14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