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필부유책

소요유 : 2018. 3. 7. 21:29


내가 시골과 인연을 지은 것이 2007년이다.

삼년 간 시골에서 주말 농사를 지었다.


이웃 녀석 역시 서울에 연고가 있어,

오가며 농사를 지으네 하며 헛 폼을 잡고 있었다.

녀석은 자칭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일요일엔 만사를 재끼고 서울 교회에 간다.


묻지도 않았지만, 뱉어낸 말에 의하면 녀석은 교회에 헌금을 좀 한 모양이다.

하지만, 예배에 참여할 때마다, 불이 타올라 가슴이 끓을 때가 많다고 한다.

왜 그러냐 하니까?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한다.

더는 묻지 않았지만,

녀석이 주섬주섬 섬기는 말 부스러기로 미루건대,

교회에 기여한 것이 많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 못내 못마땅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어느 한 종교에 매인 이가 아닐뿐더러,

그렇다하여 어느 특정 종교를 백안시 하지도 않는 입장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느 날,

그가 꺼내놓은 시답지 않은 것 중,

그러나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이야기 하나가 여기에 있다.


교회 목사 녀석이 신도를 성폭행하였다는 것이다.

교회내 몇몇이 이를 알고, 자신도 물론 안다고 한다.

내가 놀라, 그럼 이를 공론화 하고,

그를 교회에서 쫓아내는 등 징치하여야 하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그 동안 들인 공이 얼마인데 하는 투이다.

교회도 새로 신축하였고,

목사를 중심으로 단단히 구축된 세력 관계 구조를 허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는 자신이 들인 공을 헛되이 만들 수 없다는 게다.


그날 이후, 녀석은 더 이상은 거래를 지속할 위인이 아님이 확실해졌다.


내가 오늘 우연히 동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다.

김기덕, 조재현 관련 동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3u1YuqcsGY)


문화 권력?


웃기지 마라.


문화 권력은커녕 문화 조폭, 양아치에 다름 아니다.

문화를 빌미로, 약자를 괴롭혀온 저들에게 상응하는 벌이 내리길 바란다.

아울러 저런 폭주 기관차를 멈추지 못하고,

그저 보고만 있던 불쌍한 영혼들에게도 이번 me-too 운동이,

커다란 반성과 깨우침의 계기가 되길 빈다.


한편, me-too 운동이란 딱지를 붙여야만,

사회가 각성하는 세상은 얼마나 나약한가?

운동이란 곧 반동이다.

반동이란 피해가 쌓이고, 발화 임계점을 넘어야 폭발한다.

이것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그 동안 약자는 발화의 불쏘시개로 희생당하고 말아야 한다.


건강한 사회는,

피해가 사전 예방되고,

발생된 피해가 바로 방해되며, 

값하는 배상이 기약되는 사회다.

이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是故知保天下, 然后知保其國.保國者, 其君其臣肉食者謀之; 保天下者, 匹夫之賤, 與有責焉耳.

(顧炎武)


“그런고로 천하를 보존하는 것을 안 연후라야 그 나라를 보전할 것을 안다.

나라를 보존하는 것은 그 임금과, 그 신하, 그리고 육식자(肉食者)들이 도모하지만,

천하를 보존하는 데는 필부와 같은 천한 이도 책임이 있다.”


(※ 肉食者 : 고대 육식은 계급별로 엄격한 제한이 따랐다.

주(周)나라 예법엔, 천자는 소, 제후는 양, 대부는 돼지, 개를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래 계급은 윗 계급의 고기를 특정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을 뿐이다.

그 외의 일반 백성들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고염무의 저 말에 의지하여,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란 8자 성어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근원을 올라가보면, 본디 양계초(梁啟超)가 만든 말이다.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집권자들이 요리할 나름이지만,

천하가 요동을 칠 때는 집권자들의 문제를 넘어 천하인 모두의 책임이란 말이다.


큰 벌을 받고도 남을 짓이지만,

곁에서 두 눈 뜨고도,

이를 방관(傍觀)하는 것을 넘어 방조(傍助)한 이도 있었을 것이며,

사회 고발, 여론 환기를 게을리 한 언론 역시 책임이 있다.

필부 역시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 일이 아니라며 보고도 못 본 척 한 적은 없는가?

이런 물음의 물벼락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오늘만이라도.


여기서 말을 그치기 전에, 잠깐 是故知保天下 이 말의 앞을 좀 더 알아본다.

是故 그런고로 이리 하였은즉 왜 그러한가를 살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혜소(嵇紹)의 아버지인 혜강(嵇康)은 진문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여기 혜강은 바로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하나로 익히 알려진 이다.

(나는 다른 글에서 혜강에 대하여 몇 차 다룬 적이 있다.

죽림칠현 중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는 이를 아프게 기린다.)


그런데, 역시 죽림칠현 중 하나로 꼽는 산도(山濤)가,

혜소에게 진나라에 입조하여 출사할 것을 권하였다.

혜소는 당시 집에 은거하며, 처음엔 출사하는 것을 사양하였다.

그러자 산도가 말하길, 이리 했다.


為君思之久矣.天地四時猶有消息, 而況於人乎一時.


‘내가 그대를 오래도록 염려하고 있었다.

천지 사계절은 외려 때를 따라 변한다.

하물며 사람의 일생은 잠시일 뿐이다.’


이 문장은 나중에 사람들이 곧잘 인용하며,

자신의 변절을 정당화하는 핑계로 삼곤 한다.


아시다시피 이 글의 시대 배경인 위진남북조 시대에,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사마씨(司馬氏)가 집어 삼키며 진나라를 만들었다.

여기, 산도 같은 이는 사마씨의 진나라를 섬기면서,

혜소까지 이끌어 들이고자 저 말을 뱉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말은 왕조가 바뀌는 것은 사계절처럼 천리(天理)인 것이다.

짧은 인생인데, 고집하지 말고, 절개를 꺾으며, 대세를 좇자.

이리 권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가 뒤집히자, 대의(大義)는 꺾이고, 산도 같은 사설(邪說)을 늘어놓는 괴수가 등장하였다.

게다가 혜소까지 부리며, 불의를 저지르며, 돌아보지 않았다.

혜소는 후에 사마씨를 위해 탕음(湯陰) 전쟁에 참가하여 싸우다 죽었다.


무릇 사설과 정설은 양립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욕심에 이끌려 절개를 꺾고, 충의를 저버리며,

제 아비를 죽인 원수의 나라에 출사를 하는 이도 있지만,

왕부(王裒)처럼 은거하며, 끝내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이도 있는 것이다. 


유총(劉聰), 석륵(石勒)처럼 사로잡힌 전주(前主)를 모욕하면서도,

가슴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도 있는 법이다.

(※ 前主 : 서진(西晉)의 회제(懷帝)를 일컫는다.)


앞에서 언급한 是故의 문장이 그래서 이 뒤를 뒤따르게 된다.

기실 이 부분은 인용된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이해를 하는데,

내가 이 부분을 줄여 간략히 소개를 하는데 그쳤다.


사람은 비상한 때라야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는 법이다.

일상에선 누구나 착한 척, 좋은 사람인 양 살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일이 터지고, 제 양심을 불 밝히어야 할 때,

대개는 겁쟁이가 되어 외면하고, 

비겁하게 도망가기 바쁜 법이다.

제 일 아닌, 세상일에는 제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것이다.


허나, 

비상한 때에 이르면,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란 말을 기억하라.

이 때라야 필부일지라도 이내 장부(丈夫)가 된다.

장부란 한 길 크기의 사람을 말한다.

10척을 1장(丈)이라고 하는데, 

이를 상(商)나라 기준으로 보면 169.5cm 정도로 대략 사람 키에 상당한다.

장부(丈夫)라고 이르는 말은 사실 이에 유래한다.

그러니까, 제 키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장부라 이를 수 있다.


끝으로 맹자의 대장부론을 소개하며 그치고자 한다.


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不得誌行其道。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孟子)


“천하의 넓은 곳에 거하고,

천하의 바른 위치에 서며,

천하의 큰길을 가고,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좇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걷고,

부귀가 음탕하게 하지 않으며,

빈천도 (절개를) 변하게 하지 못하며,

위무도 굴하게 하지 못한다.

이를 일러 대장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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