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무사벌(無赦罰)

소요유 : 2018. 7. 7. 21:17


내가 근래 모 사이트에서 잠시 소요유(逍遙遊)했다.


그런데, 거기 모인 인간들은 대개 미치지 못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한자를 쓰지 말라는 축에서부터, 별별 주문이 다 들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길을 걸을 뿐,

남에게 어여쁨을 받기 위해 분단장을 할 노릇이랴?

士為知己者死,母為悅己者容。

항차 지기자도 아닌 쭉쟁이들인 바임에랴?


그저, '가즈아' 단말마의 비명이나 질러 될 뿐,

긴 호흡의 사고를 할 수 없는 淺하고 薄한 인간들에 불과하다.

도대체가 무지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의 버려진 사생아들인가 하노라.


어느 날, 거기 어떤 자가 기부 운동을 벌이겠단다.

일개 개인이 뜬금없이 나타나 이를 제안하였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다.

기부 목적도, 기부처가 정해진 것도 아니오,

계획한 바도 없이 무작정 기부하자는 것이다.

천둥벌거숭이도 아니고, 이리 엉터리일 수 있는가?

혹, 뒷구멍으로 무엇인가 꾀함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의심을 일으킬 수도 있으나,

더럽기 짝이 없으니, 아예 신경을 껐다.


그런데 참으로 야릇한 일이 벌어졌다.

그 일을 맡은 총무란 이가 떡하니 이리 공지를 올렸다. 


"현재 기부 ooo는 어느쪽으로 기부를 할지 논의중이며, 

해당 사항은 ooo의 홍보에 최선책이되는 방향으로 기부지를 정하겠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ooo은 기부금 매개물이자, 어떤 독립 사업 단위임.

하지만, 거기 인간들은 대개는 이 사업과 경중은 달라도 음양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글을 보자마자 열이 확 오르고 만다.


애초 순수한 의미에서 어려운 이를 돕는 기부를 하자고 발의를 하였는데,

이 작자의 언술은 그게 ooo 홍보에 뜻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기부의 뜻은 실종되고,

다만 목적 사업 홍보에 동원되고 말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를 지적하였다.


그랬더니만, 이런 대꾸가 돌아왔다.


'착한 일 하려는 것이다.'

'기부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착한 일 하려는 것이 왜 ooo 홍보와 연결되는가?


마치 내가 기부 자체를 반대한다는 듯,

개떼처럼 달겨들어, 난리를 쳐댄다.


나는 안다.


기부가 목적이 아니고,

실인즉 ooo 홍보에 더 뜻이 있었던 것이다.

기부 발의자는 물론 죽 들러선 이들도,

기실은 ooo 사업에 목을 맨 것이라 할 밖에.

감추어진 이것이 드러나자,

체면이 깎이었을 터.

하지만, ‘착한 일 하자는 것이 아니냐?’

이런 외양만의 고깔모자 속으로 숨어들며 컹컹 짓고 마는 것이다.

마치 두려움에 쫓긴 개가 제 집 속으로 들어가,

무섭도록 사납게 짖는 것 말고, 제 자신을 구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달 보고 짖는 吠月之犬 형국이 아닌가 말이다.
하기사 우리집 강아지가 이 짓을 하면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인간들이 이 짓을 하면 여간 흉칙스러운 게 아니다.


이제 사태는 번져, 애초의 일은 까마득히 잊고,

열등감에 젖고, 자격지심의 나락에 떨어진 영혼들은,

더욱 이빨을 드러내고 정신없이 짓기 시작하였다.

개떼처럼.


그런데, 이 와중에도, 무리 중 하나가 쪽지를 내게 보내왔다.

잘못하였다며, 앞으로는 자중하겠단다.

그래 내가 그에게 주문하였다.

그리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

내게 사과를 할 일이 아니라,

좌중에게 그대 잘못을 고하라.

저자는 이것 할 위인이 못된다.

그 이후, 그는 자신의 약속대로 얌전해지긴 하였다.


그런데 최근 또 하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지난 일이라, 다 잊고 있었음인데 말이다.


‘무례함을 사과드린다.

후회하고 있다.‘


버스 떠나고 나서,

손 흔들기라.


한참 현장을 벗어나,

노란 손수건 지아무리 흔든다고 떠난 버스가 돌아오나?


나는 안다.

양심 속에서 빨간 손가락이 꾸물꾸물 올라와,

명치끝을 송곳되어 아프게 찌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사과를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관대한 자가 되어 두루 칭송을 받을 것이다.

허나, 나는 관인(寬仁)한 자로 남기보다,

다만, 바른 이가 되고자 할 뿐이다.


한편, 저 자는 시달리던 열등감이 가시고, 아팠던 양심이 진정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착한 아이씩이나 되어 살아갈 것이다.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참으로 싸게도 먹히는 수작질이다.

그러다 또 다시 이런 따위의 일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

교활하고, 되퉁스럽기 짝이 없는 품성인데, 어련할려고.

본디 사람의 기질, 성격 그리고 그릇이라는 것이 쉬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벼락을 쳐 맞아 거의 죽다 살아나야,

머리털 왼 가마가 오른 가마로 바뀔까?


故明君無偷賞,無赦罰。賞偷則功臣墮其業,赦罰則姦臣易為非。是故誠有功則雖疏賤必賞,誠有過則雖近愛必誅。近愛必誅,則疏賤者不怠,而近愛者不驕也。

(韓非子)


“고로 밝은 군주는 함부로 상을 주지 않고, 형벌을 사면하지 않는다.

.....”


사람은 믿음의 존재가 아니다.

제 이익을 챙기기 바쁠 뿐인 것이다.

그런즉, 제 행위에 밝히 책임을 묻는 일을 거를 수 없다. 


만약 그가 나로부터 믿음을 회복하려면,

내게 사과할 것이 아니라,

역시나 제 혈(穴)자리로 돌아가 좌중에게 제 허물을 고하고,

자신의 용렬함을 배 밖으로 창새기 꺼내놓듯 까발려야 하리라.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저 이빨로 퉁치고 말아버리면,

너무 수월하다.

이로선, 결코 세상을 바로 이끌 수 없다.


나쁜 짓 한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

한비자는 말한다.


輕刑罰者,民之所喜,而國之所以危也。


“벌이 가벼우면, 백성은 기뻐하나, 나라는 위험해지는 까닭이 된다.”


헌즉 잘못한 자에겐 엄히 벌을 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써 나라, 즉 공적 영역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다.



한비자 학도인 나는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는 용서가 아니라 죄엔 응당의 댓가를 치루게 하여야 사회 정의가 바로 선다고 가르쳤다.

역시 그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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