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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망(倚門而望)

소요유 : 2018. 12. 7. 18:28


소위 사법농단에 연관된 대법관 하나가,

영장 심사에서 의문이망(倚門而望)을 언급했다 한다.

그러자 노모를 모시고 있다는 점을,

법원은 기각 사유로 제시하였다 한다.

서로 북치고 장구치며,

장단이 여간 잘도 맞는 게 아니다.


박 전 대법관은 영장심사에서 '기문이망'을 언급했다고 전해진다. 의문이망은 중국 고서인 '십팔사략'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아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각에는 어머니가 문에 기대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박 전 대법관은 임 부장판사에게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판사님께 달렸다"라고 호소했다. 그의 변호인 또한 "93세 노모가 있다"며 구속을 피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 ohmynews)


헌데, 의문이망의 출전을 아는 이라면,

이게 그리 표면적 이해에 머무를 만한 이야기가 아님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것을 들어 구속을 모면하고자 하였다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야릇하기도 하다.

이야기를 더 잇기 전에,

고전에서 그 장면을 먼저 자세히 살펴본다.


(※ 기초 상황 정보 : 

제나라가 연나라의 침략을 당해,

초나라에게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초나라에서 뇨치(淖齒)를 장수로 하여 파병을 하였다.

제왕은 이를 반겨 뇨치에게 재상 벼슬을 하사하였다.

하지만, 뇨치가 은밀히 연나라 악의(樂毅)와 내통하여,

외려 제나라 왕을 죽여 버렸다.)


(출처 : 網上圖片)


卻說齊大夫王孫賈,年十二歲,喪父,止有老母。湣王憐而官之。湣王出奔,賈亦從行,在衛相失,不知湣王下處,遂潛自歸家。其老母見之,問曰:「齊王何在?」賈對曰:「兒從王於衛,王中夜逃出,已不知所之矣。」老母怒曰:「汝朝去而晚回,則吾倚門而望。汝暮出而不還,則吾倚閭而望。君之望臣,何異母之望子?汝為齊王之臣,王昏夜出走,汝不知其處,尚何歸乎?」賈大愧,復辭老母,蹤跡齊王,聞其在莒州,趨往從之。比至莒州,知齊王已為淖齒所殺。賈乃袒其左肩,呼於市中曰:「淖齒相齊而弒其君,為臣不忠,有願與吾誅討其罪者,依吾左袒。」市人相顧曰:「此人年幼,尚有忠義之心,吾等好義者,皆當從之。」一時左袒者,四百餘人。時楚兵雖眾,皆分屯於城外。淖齒居齊王之宮,方酣飲,使婦人奏樂為歡。兵士數百人,列於宮外。王孫賈率領四百人,奪兵士器仗,殺入宮中,擒淖齒剁為肉醬,因閉城堅守。楚兵無主,一半逃散,一半投降於燕國。

(東周列國志)


“각설하고, 제나라 대부 왕손가(王孫賈)는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제민왕은 이를 가엽게 여겨, 벼슬을 주었다.

제민왕이 나라를 버리고 도망갈 때, 왕손가 역시 따라갔다.

(그러나) 위(衛)나라에서 왕을 잃었다.

제민왕이 어디에 계신지 아지 못하였다.

마침내 몰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노모가 왕손가를 보고는 물었다.


‘왕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왕손가가 대답하였다.


‘저는 위나라에서 왕을 따랐으나,

왕께서는 야밤에 도망가셨기에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노모는 노하여 말하였다.


‘네가 아침에 나가고 저녁 때 돌아올 때까지,

나는 문에 기대어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 倚門而望)

또 네가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동네 어귀에 세운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

왕이 신하를 기다리시는 것과 

어미가 자식을 기다리는 것이 어찌 다를 것이 있겠느냐?

너는 제나라왕의 신하다. 

왕이 밤중에 달아나셨다면, 

신하된 네가 가신 곳을 모르고서,

혼자 돌아온단 말이냐?’


왕손가는 크게 부끄러웠다.

그는 다시 노모께 아뢰고는 제민왕의 종적을 찾아 나섰다.

거주(莒州) 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향해 달려갔다.

(허나) 거주 근처에 이르자, 

제민왕이 이미 (초나라) 뇨치(淖齒)에게 죽임을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왕손가는 왼 어깨를 드러내놓고, 시정을 다니며 호소하였다.

(※ 左袒 : 본래 상례에서 유래. 

유방 사후 여후로부터 다시 빼앗긴 정권을 찾고자,

주발(周勃)이 편을 가르며, 

좌중을 향해 유씨 측에 서는 자는 좌단하라 이른 고사가 있다.

이로부터 좌단은 곧 동조(同調), 방조(幇助)를 의미하게 되었다.)


‘뇨치는 제나라 재상의 벼슬을 얻었지만, 그 임금을 살해하였다.

신하된 자로서 이는 불충인즉, 그 죄인을 토벌코자 하니,

모두는 나를 따르라.’


그러자 거주성 안의 백성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저이는 나이도 어리지만, 충성이 대단쿠나.

우리들도 의기로운 사람이다.

마땅히 그를 따르리라.’


일시에 이에 동조하는 이가 400여명에 달하였다.

이 때 초병이 비록 그 수효가 많았지만,

모두 성 밖에 나눠 진을 치고 있었다.

뇨치는 제나라왕궁에 거처를 정하고는,

술을 마시며, 여자들이 탄주하는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병사 수백 인이 궁밖에 지키고 있었다.


왕손가는 4백인을 거느리고, 

병사의 무기를 빼앗고, 죽이며, 궁중 안으로 쳐들어갔다.

뇨치를 잡아 죽이고서는 육장 즉 고기젓을 만들어버렸다.

거주성을 닫아걸고, 굳게 지켰다.

초병은 주인이 없어지자,

반은 도주해 흩어지고, 반은 연나라에 투항하였다.”


재미있지 않은가?

저 어처구니 없음이.

그리고, 저 야릇함이.


의문이망(倚門而望)은 의문의려(倚門倚閭)라고도 하는데,

앞서 인용한 오마이뉴스에선 기문이망이라 하였고,

또 다른 언론에서도 이리 적고 있다.

이것 잘못이다.


기자가 잘못 말한 것인지,

아니면 문제의 대법관이 그러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는 한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소치라 하겠다.


어쨌건,

왕손가의 노모가 의문이망을 꺼내들 때,

돌아온 아들을 품기는커녕, 

기실은 왕손가를 엄히 꾸짖으며,

외려, 잃은 왕을 돌보라 내친 장면을 연상해보라.


잃은 왕이란 오늘 날에 대비시키자면,

사법 거래로 물구나무 선 사법 정의,

사법 농단 따위로, 거꾸로 돌아가는 나라에 비견된다 하겠음이다.

헌즉 노모가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의로움을 안다면,

잘못을 저지른 자식을 어찌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릴쏜가? 


만약 나라를 어지럽힌 자식이라면,

이문이망이란 말조차 꺼내지지도 않고,

싸리를 꺾어 회초리를 단으로 만들고서는, 종아리를 때리며,

집밖으로 쫓아내지 않았겠음인가 말이다.


헌즉, 이문이망을 들어,

구속을 면코자 기도하였다면,

이는 실로 고사를 잘못 들었다 하겠음이며,

참으로 면괴(面愧)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라 하겠음이다.


하기사,

오죽 다급하였기에,

이리 칼을 거꾸로 잡고,

나섰겠음인가?


참고로 당시 연나라가 제나라를 침공하였을 때,

크게 활약한 전단(田單)과 관련된 이야기 한 토막을 여기 소개해둔다.


☞ 나는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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